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74
제774화
라온은 가슴이 갈라진 채 추락하는 타천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뭐지…?’
조금 전 자신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이성을 잃었다. 뇌리에 어둠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는데, 왜 정신이 돌아온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힘이 넘치는 상태로.
피폐해졌던 뇌리가 고요히 가라앉았고, 전신에는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전지전능. 천하 만물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었다.
-당연하겠지!
라스가 아래에서 튀어나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건 본왕의 힘이니까!
녀석은 또 힘을 훔쳐갔다면서 악을 질렀다.
‘훔쳤다고?’
-네놈도 분노에 잠식당한 걸 느끼지 않았더냐!
‘그랬지.’
-본왕이 네놈의 육체에 빨려 들어가서 폭주하기 직전에….
라스가 동그란 손을 들어서 자신의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네놈의 가슴에 박혀 있는 고리에서 날개가 솟구치더니, 본왕을 밀어냈느니라! 그거 정체가 대체 뭐야!
녀석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며 마구 고개를 저었다.
‘날개?’
라온이 떨리는 손으로 왼쪽 가슴을 어루만졌다. 라스의 말대로 하나가 된 것처럼 세차게 회전하는 여덟 개의 고리 위로 열기를 두른 불꽃의 날개가 피어나 있었다.
-그 날개가 피어난 순간 네놈의 정신이 파고들 수 없을 정도로 굳건해졌느니라. 힘은 넘어가고, 정신은 여기에 있다니 이게 말이 되냐고!
‘그래서 폭주가 멈춘 거야?’
-그렇느니라. 덕분에 본왕도 분노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느니라.
라스는 그게 아니었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이 죽었을 거라며 미간을 구겼다.
“음….”
라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 폭발 때문에 아리안 가문에 있던 사람들도 전부 쓰러졌는데, 거리가 있어서인지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하자면 그 날개가 네놈의 이성이 유지되는 시간이니라.
라스의 말대로 날개의 깃털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다. 이게 전부 사라지면 자신의 통제권을 잃는다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 사이에 저놈을 몰아내고, 여기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하느니라.
라스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려서 쓰러진 타천을 가리켰다.
‘심장을 베었는데?’
-저놈은 그 정도는 안 죽느느라.
라온이 타천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제천검으로 타천의 심장을 갈랐는데, 라스는 놈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라스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타천의 주변으로 찬란한 빛이 번져가더니,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부활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가져다 박은 듯 성스러운 광경이었다.
‘저런 놈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 거지?’
라온이 입술을 깨문 채로 제천검을 세웠다.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걱정 말거라. 지금 네놈의 육체 능력과 기운은 분명 본왕의 것이니까.
‘그래서 이런 기운이 느껴진 거였군.’
-정신이 많이. 아주 더럽게 많이 부족하지만, 육체와 기운이 최강이니 싸워볼 만할 것이니라!
라스는 본인의 힘을 전부 다 이용할 수는 없겠지만, 버티기에는 충분할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네놈은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해야만 하느니라.
녀석은 그 말을 하며 눈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아직 저들은 죽지 않았으니까.
‘아….’
라스의 말대로 멀린이나, 리메르는 물론이고, 에드가의 호흡 소리도 들려왔다.
다만 가장 앞에서 모든 마기를 막아냈던 렉타르와 에드가와 시아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졌던 실비아의 숨결은 곧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다.
‘그러네.’
라온이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무조건 해야겠어.’
사람들을 옮겨야겠다고 생각하자, 라스의 기운이 저절로 움직여서 쓰러져 있는 멀린, 리메르, 에드가, 실비아, 시아 그리고 렉타르를 허공으로 띄웠다.
라온은 여섯 사람을 아리안 가문 쪽으로 옮긴 후 앞으로 나아가 타천과 마주 섰다.
“…그 공포스러웠던 존재감은 사라졌군요.”
타천은 라스가 강림하려고 했을 때의 기파를 느꼈던 듯 눈동자를 가늘게 떨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기운은 그대로지만,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느낌이 드는군요.”
그는 이 기괴한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럼 덤벼. 그 주둥이부터 찢어줄 테니까.”
라온이 타천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확실히…. 당신을 여기서 죽이는 게 옳은 선택이겠죠.”
타천은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내는 라온을 이곳에 묻어야겠다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장대한 광휘가 솟아올랐다.
-긴장하지 마라.
라스가 라온의 어깨를 잡은 채로 낮은 숨을 내쉬었다.
-저 가면 자식이 무인이었다면 아무리 본왕의 기운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네놈에게 승산이 없었을 테지만, 저놈은 마법사이자, 주술사다.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것이니라.
‘그래. 해야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타천의 손에 어려 있던 빛이 날아들었다.
일반적인 마법처럼 화살이나 칼날의 형태가 아니라, 빛 그 자체였기에 자신의 안력으로도 희끄무레한 궤적만 보일 정도로 빨랐다.
-상단과 좌측은 닿지 않느니라! 정면만 막거라!
‘알겠어.’
라스의 조언을 들으며 번쩍이는 전방을 향해서 마나 회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서리를 쏟아냈다.
콰아아아아아!
제천검의 검극에서 뻗어나간 서리의 파동이 코앞까지 파고들어 온 빛을 끊어냈다.
“기운 자체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강대하지만, 실력은 그대로군요.”
타천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 당황하지 않고 더 짙은 빛을 쏘아냈다. 얇디얇은 빛이 응집되어 두터운 기둥을 만들어냈는데, 위력만이 아니라, 그 속도마저 배 이상 빨라졌다.
촤아아아악!
라온이 반의 반 호흡을 내뱉으며 서리연을 그었다.
칼날에서 솟구친 거대한 서리의 칼날이 포탄처럼 쏘아진 빛의 기둥을 그대로 갈라버렸다. 광채마저 얼려버리는 냉기, 세계의 이치를 벗어난 힘이었다.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타천이 굳어버린 빛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매를 구겼다.
“갑작스럽게 얻은 힘에는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죠.”
그는 결국 파국을 드러낼 거라며 더 짙고, 강렬한 빛을 일으켰다.
-보통은 그게 맞지. 하지만….
라스가 부들부들 떨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이놈은 다르니라! 제 혼자서 인과율도 비튼다고!
녀석은 타천에게 호소라도 하듯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여기서 끝을 보도록 하죠.”
타천이 손가락을 튕기자, 라온의 주변으로 여덟 개의 빛의 기둥이 솟구쳤다.
빠져나갈 길을 막고, 이대로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겠다는 듯한 섬뜩한 마법이었다.
-두려워할 필요 없느니라! 본왕의 기운을, 네놈의 검을 믿어라!
‘물론.’
라온이 머뭇거림 없이 발을 내디뎠다. 빛의 기둥을 향해 나아가며 서리의 염룡결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
새하얀 검극에서 광룡 카이바르보다도 거대한 용이 솟아오른다.
푸른 용의 입이 벌어지는 순간 온 세계를 얼려버린 듯한 냉기의 숨결이 쏟아지며 빛의 기둥들을 모조리 분질러 버렸다.
화아아아아아!
붉은 피와 새까만 마기로 가득 차 있던 평원이 발자국 하나 없는 새하얀 설원으로 변했다.
“하아….”
라온이 허연 숨결을 내뱉으며 허리를 곧게 세웠다.
‘이제 좀 감이 오네.’
평소 글래시아의 냉기를 자연스럽게 다뤘기에 라스의 기운을 운용하는 것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규모가 크다 보니, 버거울 때가 있지만, 육체 역시 성장해 있었기에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으으, 잘 되고 있기는 한데, 왜 화가 나는 건지….
라스는 안도와 짜증이 동시에 피어난다며 얼굴의 반은 웃고, 반은 찡그렸다.
“귀찮게 구시는군요.”
타천이 손을 길게 펼치자, 밤이 사라지고, 하늘과 땅이 찬란한 빛을 머금었다.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타천의 빛처럼 보였다. 검술의 종류처럼 다채로운 빛들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치이이이잉!
라온이 고고한 자태로 제천검을 세웠다. 하늘을 겨누는 듯 치솟은 칼날 위로 푸른 냉기가 깃든 꽃잎이 피어난다.
수천. 아니, 수만이 넘어가는 서리의 조각들이 타천이 일으킨 빛무리와 맞부딪쳤다.
쿠와아아아아앙!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격돌이 이어지며 대지의 거죽이 뒤집히고, 하늘이 비명 같은 천둥을 내질렀다.
현실 같지 않은 격한 파동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터어엉!
라온은 방어에 만족하지 않고, 대지를 밀어내며 나아갔다.
은은히 피어나는 냉기가 그의 등 뒤에 날개와도 같은 형상을 그렸고, 대지의 균열에서 솟구친 서리의 세계수가 더 하얀 냉기를 머금었다.
쩌어어어억!
푸른 벼락이 되어 쏘아진 제천검이 타천이 일으킨 빛의 벽을 가르고, 그의 왼쪽 어깨와 가슴에 깊은 상처를 새겨놓았다.
번쩍!
이어서 적섬을 찌르려고 할 때 타천이 빛의 조각이 되어 뒤로 물러섰다.
“아무래도 처음의 그 검격이 우연이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그는 라온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우우우웅!
타천이 두 손을 모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초고속의 영창을 끝낸 그의 머리 위로 빛의 궤적이 구름처럼 번지더니, 하늘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비가 쏟아져 내렸다.
‘전부 막아야 해.’
라온이 어금니를 씹으며 창궁대연을 펼쳐냈다. 하늘을 담아내는 검격 속에 마왕의 기파가 번지며 천공에서 내리치는 빛의 폭우를 휘감아버렸다.
콰아아아아아!
라스의 냉기는 빛의 기둥마저 얼려버린 후에도 힘이 남은 듯 하늘마저 하얗게 물들였다.
초월에 닿지 않은 자신의 무리로 이 정도 결과를 만들어내다니, 무학이라는 개념을 넘어선 힘이었다.
-놀랄 때가 아니니라! 지금 몰아붙여라!
‘알고 있어!’
라온이 격해진 숨을 내리누르며 타천의 좌측으로 파고들었다. 기울여둔 제천검을 들어 올리며 은검몽을 내질렀다.
치이이이잉!
타천이 일으켰던 빛무리처럼 수십 개로 갈라진 제천검의 칼날이 타천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우우우우웅!
타천이 손가락을 모으자, 그의 목에서 천천히 회전하는 어둠의 고리가 솟구쳤다.
찌지지지직!
제천검은 타천의 목에 다가가지 못하고 어둠 앞에 멈춰 섰다. 회전하는 어둠 속에서 검을 끌어당기는 무시무시한 인력이 느껴졌다.
“가까이 와줘서 수고를 덜었군요.”
타천이 이제 다 끝났다는 듯 웃으며 빛을 담아낸 손아귀를 내밀었다.
“네놈이 끝이겠지!”
라온은 빛이 번쩍이는 타천의 손아귀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분노의 군주 결전기.
은월마장.
라스의 기술을, 라스의 육체와 기운으로 펼쳐내자, 손끝에서 솟구친 격렬한 냉기가 빛만이 아니라, 타천마저 집어삼켜 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아!
갈라진 대지 위로 얼음의 산이 솟구치며 타천을 완전히 가둬버렸다. 말 그대로 세계를 얼릴 수 있는 힘이었다.
“후욱….”
라온이 왼쪽 가슴을 잡은 채 탁해진 숨을 토했다.
‘여기서 끝나면 좋을 텐데.’
고리의 날개가 이제 반도 남지 않았다. 큰 힘을 사용할수록 깃털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았다.
빠지지지직!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은월마장의 완성도가 모자란 듯 타천이 일으킨 어둠에 얼음의 산이 사정없이 깨져나갔다.
-한참 부족하느니라.
라스는 본인의 은월마장이었다면 여기서 끝이 났을 거라며 짧게 혀를 찼다.
“후우.”
타천이 얼음 조각이 묻어 있는 소매를 털어내며 헛바람을 흘렸다.
“이 정도 냉기라니, 무학이 아니라 마법 수준이지 않습니까.
그가 손아귀에 깃든 어둠과 빛을 지운 채 손날을 세웠다.
“이번에는 제가 검을 들어야겠군요.”
타천이 비단처럼 매끄러운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 순간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기척도 없이 공간을 가르는 힘이라니, 이걸 어떻게 피하고 막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바다에서 광룡을 잡을 때를 생각하거라! 공간을 가르는 검을!
‘아….’
라스의 외침을 듣자, 카이바르의 브레스를 갈라버렸던 아리스의 공간참이 떠올랐다.
그녀가 일으킨 궤적을 거꾸로 그리며 제천검을 세웠다.
라온 지그하르트류 검식.
제7형. 공허살.
위에서부터 공간을 가르는 참격을 막기 위해서 발밑에서 공허살을 쳐올렸다.
공간을 베어버리는 참격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맞물리며 허공에 새까만 균열을 일으켰다.
쩌저저저저저적!
쪼개지는 공간 사이로 푸른 서리가 차오르며 터져 나오려던 충격파를 그대로 얼려버렸다.
하늘과 땅이 새하얗게 얼어붙고 그 중심이 검게 쪼개져 있는 모습은 인세의 종말을 말하는 것 같았다.
“끄으….”
라온이 제천검을 쥐고 있는 손끝을 떨며 입술을 씹었다.
‘살얼음을 걷는 것 같아.’
타천과 부딪칠 때마다 등 뒤로 죽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격하게 뛰고 있어서 점점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지금부터이니라.
라스가 낮은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놈은 아직 진심이 아니니까.
‘…알고 있어.’
타천이 진심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지금 저놈은 처음에 느꼈던 라스의 존재감 때문에 힘을 아끼고 있었다.
“마족에게 영혼이라도 바치신 겁니까?”
타천은 라온의 이마에서 돋아난 뿔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영혼은 아니고, 나름 소중한 것을 바쳤지.”
라온이 억지로 호흡을 내리누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얼마 남지 않았어.’
불의 고리를 지켜주는 화염의 날개가 이제 사 분의 일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타천을 몰아내기 전에 이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근데 너 계속 입만 터는데, 설마 겁먹은 거야?”
라온이 턱을 치켜든 채로 키득 웃었다.
“나중에 지면 진지하게 안 했다고 하려고? 하긴 에덴의 수장이라는 놈이 그랜드 마스터한테 쳐발리면 쪽팔릴 테니까.”
이해해주겠다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좋습니다.”
타천은 표정의 변화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시간이 많지 않으니, 노는 건 여기까지 하죠.”
그가 오른손과 왼손을 모은 채 초고속의 영창을 흘려냈다. 오른손의 빛과 왼손의 어둠이 교차하자,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기둥이 솟구쳤다.
쿠구구구구!
빛과 어둠이 뒤섞이며 점차 회색으로 물들어가는 기둥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겠다는 듯 얼어붙은 하늘과 땅을 붕괴시키며 번져나갔다.
그야말로 꺼지지 않는 소멸의 폭풍이었다.
-저건 네놈의 힘으로는 무리니라.
라스는 저 기둥에 담긴 기운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해봐야지.’
라온이 제천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지닌 기운과 영혼을 불살라서라도 이겨내야 했다.
-안 되느니라.
‘뭐?’
-네 모든 것을 바쳐도 이길 수 없느니라. 그러니….
라스가 불가능하다고 중얼거리고서 자신의 왼손을 잡았다.
-본왕이 딱 한 번만 더 도와주겠느니라.
녀석은 쓰러져 있는 실비아와 에드가, 렉타르를 차례로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본왕이 맞춰줄 테니, 네놈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무학을 펼쳐내라.
라스는 본인을 믿고 나아가라는 듯 왼손을 더 꽉 잡아주었다.
‘…알겠어.’
라스는 한 말을 지키는 마왕이다. 녀석을 믿고 번져오는 빛과 어둠의 폭풍을 향해 개벽을 일으켰다.
“검계현신.”
-마도현신.
천지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제천검의 검신 위로 고고한 은빛의 서리가 피어났다.
“개벽.”
-설중화.
찬란히 번져가는 개벽의 광휘 속에서 푸른 꽃이 피어난다. 빛과 어둠조차 얼려버리는 괴력난신의 기운이 세계를 뒤덮었다.
콰아아아아아아!
그 뒤를 잇는 건 하늘을 가르는 듯한 장대한 검격과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뻗어 나가는 얇고 예리한 참격이었다.
얼어붙은 빛과 어둠의 기둥이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지워지고, 하늘에서 서리의 꽃이 휘날렸다.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