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78
제778화
“그게 가능하다고?”
라온이 멀린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투구를 쓴 지 몇 년은 지났을 텐데?”
시아는 자신이나, 루난과 달리 한참 전에 오크 왕의 투구를 썼을 텐데, 어떻게 그녀의 영혼을 확인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특히 시아는 에드가와 달리 인간이 아닌, 몬스터의 모습만을 보여주었기에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난 타천을 대신해서 투구와 가면을 만든 적도 있었어. 마법과 주술의 배열을 알고 있으니, 연결 정도는 가능해.”
멀린은 시아의 영혼이 남아 있는지 살펴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싱긋 웃었다.
-저 계집 스토커지 않느냐. 훔쳐보는 건 잘하겠지. 켈록!
라스는 스토커의 재능은 멀린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리 말한다면 믿어도 좋을 것이니라. 켈록!
녀석은 연달아 기침하면서도 멀린을 인정했다.
‘그건 그렇지.’
라스의 말대로 멀린은 할 수 있다고 말한 걸 실패한 적이 없었다.
조금. 아니, 많이 특이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너는 괜찮아?’
라온이 라스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멀쩡하던 녀석이 다시 마른기침을 시작하니, 더 미안해졌다.
-본왕을 무엇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마왕에게 인간의 걱정 따위는 필요 없느니… 켈록!
라스는 할 일부터 하라며 손을 젓다가 또 기침을 내뱉었다.
-본왕은 신경 쓰지 말고 할 일부터 하거라!
‘…알겠어.’
라온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멀린을 바라보았다.
라스가 걱정되지만, 일단 시아의 일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건데?”
“간단해.”
멀린이 두 손을 모으자, 그녀의 발밑에서 빛과 어둠이 뒤섞인 마법진이 돋아났다.
“이 마법진 위에 대상을 올리고, 접촉하면 돼. 지금 열어줄까?”
멀린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는 듯 자신감 있는 미소를 보였다.
“잠깐.”
글렌이 멀린의 앞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해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가 진천검을 가늘게 비틀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허공에서 핏물이 튀기더니, 반으로 갈라진 눈알이 툭 떨어졌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음….”
라온이 하얀 재가 되어 흩어지는 눈알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지?’
오마 중 하나인 건 확실한데, 누구인지 모르겠다. 자신도 전혀 알지 못하는 마법이나, 주술이었다.
“지금 내가 지그하르트에 없다는 게 드러난다면 가문이 공격받을 수도 있다. 부상자를 데리고 최대한 빨리 복귀하는 게 먼저다.”
글렌은 가문으로 돌아가서 남은 일을 마무리하자고 말하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게 맞겠네요.”
라온이 글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님이 움직였다는 게 알려지면 바로 쳐들어올 테니까.’
부왕과 생사결을 치렀을 때처럼 오마가 가문 자체를 습격할 수도 있기에 글렌은 현재 지그하르트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드래곤 로드와 알 수 없는 인물에게 들킨 이상 최대한 빠르게 복귀하는 게 우선이었다.
“할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따라야지요.”
멀린이 방실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자꾸 왜 할아버님이라고….”
글렌도 멀린의 저돌성에 당황한 듯 눈썹을 내린 채 뒤로 물러섰다.
“할아버님이 맞으니까요.”
멀린은 글렌이 물러선만큼 다가가서 한쪽 눈을 찡긋했다.
“으음….”
“헛소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라온이 멀린을 밀어내고 아리안 가문 내부로 들어갔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네.’
렉타르가 혼마석의 폭발을 최대한으로 줄여준 덕분에 중상자는 있어도, 사망자는 없는 것 같았다.
“가주님은 먼저 돌아가십시오. 저는 아리안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겠습니다.”
지그하르트가 언제 습격당할지 모르니, 글렌을 먼저 복귀시키고, 자신은 부상자들과 함께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음, 그건….”
“그럴 필요 없어.”
글렌이 거절의 의사를 비치려고 할 때 멀린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
“내가 지그하르트 근처에 공간이동 좌표를 뚫어놨거든.”
멀린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푸른 빛으로 명멸하는 문이 열렸다.
그 문 안쪽에 비치는 건 만년설이 쌓여 있는 지그하르트 근처의 산이었다.
“이, 이걸 언제….”
라온이 멀린을 돌아보고서 턱을 부르르 떨었다. 매번 동물의 모습으로만 찾아왔기에 이런 걸 준비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그하르트가 경계가 심해서 한 땀 한 땀 소중하게 팠어.”
멀린은 힘든 작업이었지만, 보람이 있었다며 헤헤 웃었다.
“어, 음….”
글렌은 이걸 칭찬을 해야 할지, 당장 제거하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멀린을 바라보았다.
-끼아아아아악!
라스는 진짜 스토커라고 외치고서 무섭다며 팔찌 속으로 도망갔다.
“하아….”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동부터 하고 생각하죠.”
* * *
성스러운 빛과 신앙이 일렁이는 교회.
“끄아아아악!”
풍채 좋은 중년인이 오른쪽 눈을 부여잡은 채 비명을 질렀다.
그의 안구는 반으로 갈라진 채 흘러내렸는데, 조금 전 글렌이 베었던 눈동자와 같은 색이었다.
“당한 모양이네.”
데루스 로베르트가 피식 웃으며 손을 젓자, 그의 옆에 서 있던 바르디엘이 중년인에게 다가갔다.
“사, 살려… 살려줘….”
“가만히 있거라.”
바르디엘은 냉혹한 눈빛을 드러낸 채 중년인의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파지지지직!
그의 손아귀에서 푸른 빛이 번쩍이자, 중년인의 육체가 감전된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고, 눈에서는 허연 연기가 피어났다.
“어어억….”
중년인은 지독한 고통을 겪은 듯 검은 피를 토하며 뒤로 넘어갔다. 즉사였다.
“누구에게 들킨 거지?”
데루스는 어서 말을 해보라는 듯 턱을 까딱였다.
“글렌 지그하르트입니다.”
바르디엘이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답했다.
“글렌? 처음부터 설명해보도록.”
데루스는 흥미가 동한 듯 몸을 일으킨 채 바르디엘에게 다가갔다.
“예. 우선 녹색의 왕 쌍두귀, 절혼검이….”
바르디엘은 전쟁에 직접 참여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데루스에게 말해주었다.
“그래. 그렇게 됐단 말이지?”
데루스는 즐겁다는 듯 키득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쌍두귀에 절혼검 그리고 녹색의 왕까지 잃다니. 타천이 죽지 않았다고 해도 에덴의 피해가 천문학적이겠군요.”
그의 뒤에 서 있던 쿠바라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눈매를 좁혔다.
“셋 다 그랜드 마스터니까. 피해를 측정조차 할 수 없지. 뭐, 천마라는 인간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데루스는 천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데….”
그가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타천의 말이 마음에 걸리는군. 마지막 조각이라는 게 무슨 뜻이지?”
“그의 반응으로 볼 때 라온 지그하르트가 마왕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바르디엘이 데루스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타천 역시 마기를 지니고 있으니까. 다만….”
데루스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다는 듯 말을 아꼈다.
“어찌 되었든 계획은 실패로군요. 힘을 키우기는커녕 손실이 더 커졌으니까.”
쿠바라는 오마의 성장 계획이 망가진 것 같다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물론 에덴은 망했지. 하지만 우리는 큰 이득을 얻었어.”
데루스가 쿠바라를 보며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글렌 지그하르트가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그가 십자가 위로 비치는 햇살을 보며 길게 입맛을 다셨다.
“글렌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게 무슨….”
쿠바라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기라는 건 말이야. 아무리 강해져도 한계가 존재해. 특히 글렌처럼 나이를 이겨내지 못한 초월자라면 생기의 소모는 막심한 피해를 이끌지. 그는 한동안 지그하르트를 벗어나지 못할 거야.”
데루스는 아주 좋은 기회가 열렸다며 키득거렸다.
“이제 네가 나설 차례다. 베오른.”
그의 부름에 교회의 어둠 속에서 적발의 청년이 걸어 나왔다.
“어때? 라온의 힘은 충분히 흡수했나?”
“확실히 대단한 재능과 오러더군요.”
베오른은 만족스러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월 직전인가? 내가 떠올렸지만, 대단하단말이야.”
데루스는 베오른의 성취가 마음에 든다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제 각오는 되었겠지?”
“…예.”
베오른은 본인을 믿어달라는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데루스를 바라보았다.
“좋아.”
데루스가 베오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길에 베오른의 외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데루스는 베오른에게 걸려 있는 금제를 풀어주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네가 지그하르트의 격을 무너뜨릴 때다.”
* * *
라온은 지그하르트로 복귀하자마자, 환자들을 데리고 넝마의 성자 페드릭을 찾아갔다.
“성자님. 부탁드리겠습니다!”
페드릭 앞에 오크의 투구를 쓰고 있는 시아, 데스나이트의 갑옷을 입은 에드가, 성검련주가 된 렉타르 마지막으로 실비아와 리메르를 내려놓으며 빨리 좀 봐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나도 부탁하마.”
글렌은 페드릭에게 모두를 살펴달라고 말하고서 먼저 가주전으로 떠났다.
“아니, 이게 뭔….”
페드릭은 쓰러져 있는 환자들을 보며 헛바람을 흘리다가 멀린을 보고서 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설마 인질들이냐?”
“아뇨. 일단 간략하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젓고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설명했다.
“그런 악귀 같은 놈들이….”
페드릭은 에덴의 패악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나오려는 눈물을 참은 듯 긴 한숨을 내쉬고서 환자들을 살폈다.
“네 말대로 렉타르와 실비아, 에드가는 정말 죽었다가 살아난 모양이구나. 아직 생기가 안정되지 않았어.”
“그, 그럼 문제가 있는 겁니까?”
“아니, 자신의 생기가 아니기에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깨어나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외상과 내상을 치유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야.”
페드릭은 이 세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라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기껏 모인 가족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암울했을 텐데,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리메르도 곧 일어날 것이다. 본인의 안위보다 벽을 세우는 데 너무 집중했어. 이 녀석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페드릭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리메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그건 실수가 아닐 겁니다.”
라온이 가늘게 입술을 씹었다.
리메르는 실수를 한 게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벽이 되어준 것이다. 그의 마음이 느껴져서 속이 더 아려왔다.
“분하지만, 나보다 더 빨랐어.”
멀린이 리메르를 보며 강아지처럼 으르렁거렸다. 그가 본인보다 먼저 라온을 보호했던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냐….”
언제나 농담과 장난을 걸치고 있는 리메르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보호해줄 줄은 몰랐다.
얼마 전 본인이 바뀌었다고 말하며 가주가 될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그게 진심이었던 것 같다.
‘깨어나면 도박이나 실컷하라고 돈을 좀 줄까?’
-보, 본왕도!
라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
-본왕도 돈을 다오! 먹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있는… 켈록!
녀석은 글러트니만 먹고 싶은 것을 다 먹는 건 못 본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라온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옹?
라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네놈이 웬일인 것이냐?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이냐?
‘네가 해준 게 많으니까.’
라온이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이번에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중 가장 큰 건 라스다.
한동안 해달라는 건 다 해줄 생각이었다.
-끼얏… 켈록! 호웅!
라스는 기침을 하면서도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네 누나는….”
페드릭은 마지막에 누워있는 시아를 살피며 눈매를 찌푸렸다.
“뭐랄까. 호흡이 인간 같지 않구나.”
그는 시아가 오크처럼 숨을 쉬고 있다며 혀를 찼다.
“일단 투구에 먹힌 건 맞는데, 특이한 점이 있어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음, 거기다 이미 깨어나 있는 것 같은….”
페드릭이 고개를 저을 때 검은 오크 투구 안쪽에서 붉은 광망이 솟구쳤다.
“끄으으으!”
시아가 매섭게 세운 손톱으로 페드릭의 목을 내리찍었다.
터엉!
라온이 환자용 침대를 걷어차서 페드릭을 공격하려는 시아의 시선을 돌렸다.
콰드드득!
시아가 환자용 침대를 쿠키처럼 부숴버렸을 때 그녀의 앞으로 나아가 서리를 휘감은 주먹을 뻗었다.
“으으윽….”
시아의 명치를 후려치자마자, 그녀가 가슴을 움켜쥔 채 주저앉았다.
퍼어어억!
라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아의 뒷목을 쳐서 그녀를 다시 기절시켰다.
“으….”
시아는 기절하고 싶지 않다는 듯 이를 갈았지만, 결국 그 자리에 쓰러졌다.
“허어….”
페드릭이 벽에 등을 기댄 채 헛바람을 흘렸다.
“누나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라온이 시아를 어깨에 업으며 고개를 저었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지만, 그녀부터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그럼 이들은 내가 돌보고 있으마.”
“아, 그게 다가 아닙니다.”
페드릭에게 고개를 젓고서 문을 열었다. 이번 전쟁에서 부상을 당했던 광풍대와 아리안 가문의 사람들이 페드릭의 저택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어, 어어?”
“말씀드렸다시피 전쟁이 있어서 부상자가 좀 많습니다.”
라온은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글렌 이 자식! 이래서 바로 사라진 거였어!”
페드릭은 조용히 사라진 글렌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이럴 거면 돈이나 주고 일을 시키든가!”
그는 돈을 달라고 외치는 것과 달리 바로 첫 번째 환자에게 들어오라고 손을 까딱였다. 역시나 성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라온은 조용히 숨을 내쉬는 가족들을 차례로 살펴본 후 페드릭의 저택을 나섰다.
* * *
라온은 시아를 안아든 채로 글렌이 기다리고 있는 알현실로 들어갔다.
“따라오거라.”
글렌은 조용하고 안전한 곳에서 시아를 살펴보자며 우측 끝 방의 문을 열고,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예.”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글렌의 뒤를 따라갔다. 알현실답지 않게 계단이 낮았고, 조명이 밝아서 아이도 오를 수 있을 만큼 편한 곳이었다.
2층 정도의 깊이를 내려가자, 연한 파스텔 톤의 방이 나타났다.
꽤 넓은 공간이었는데, 대단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작은 책장과 편안해 보이는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그리다 만 것 같은 그림들이 널려 있었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네 할머니가 사용하던 공간이다.”
글렌은 먼지 하나 없는 책장과 의자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짧게 입맛을 다셨다.
“지그하르트 그 어느 곳보다도 단단히 만들었으니, 이곳에 그 일을 진행하도록 하지.”
그는 여기서 시아의 정신에 접속을 하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
라온은 주변을 둘러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 장소를 보니, 소박한 분이셨던 것 같다.
“아, 할머님이….”
멀린은 감격스럽다는 듯 입술을 씹었다.
“너는 그, 좀….”
글렌은 멀린의 반응을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점점 감당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멀린. 빨리 시작이나 하자.”
라온이 글렌이 화를 내기 전에 끝내기 위해서 바닥에 시아를 내려놓은 후 멀린에게 손짓했다.
“걱정마. 다 준비해놨어.”
멀린이 양손을 펼치자, 쓰러져 있는 시아 위로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마법진이 펼쳐졌다.
우우우웅!
시아가 쓰고 있는 검은 오크 투구에서 푸른 빛의 기둥이 솟구쳤다.
“이 빛의 기둥에 손을 얹으면 돼.”
멀린은 본인과 함께 손을 뻗자면서 싱긋 웃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상태가 좋지 않은데, 정말 괜찮겠느냐?”
글렌이 걱정된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저는 경험이 있으니까요. 문제가 있으면 바로 나오겠습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미리 결정한 것이기에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
글렌은 잠시 라온의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무리는 하지 말거라.”
“예.”
라온이 고개를 숙이고서 다시 멀린을 돌아보았다.
“그럼 하나둘셋 하면 투구에 손을 얹는 거야. 하나, 둘, 셋!”
멀린이 셋을 외칠 때 푸른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아아악!
그 순간 세상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