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79
제779화
숲이 보인다.
다만 녹음이 우거진 숲이 아닌, 검게 죽어가는 숲이었다.
화마에 휩쓸린 듯 나무는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수풀은 줄기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잿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나뭇잎 대신 대지를 장식하는 건 수천. 아니, 만이 넘는 몬스터들의 시체였다.
숲이 아니라, 무덤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괴기스러운 땅의 중심에 검은 오크의 왕이 홀로 서 있었다.
시아가 쓰고 있던 오크의 투구처럼 이마에는 두 개의 뿔이 돋아났고, 사람의 주먹만 한 눈동자에서는 피를 짜낸 듯한 새빨간 안광이 번뜩였다.
먹물을 씌운 듯한 검은 육체는 오우거보다 우람했고, 강철보다도 단단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거대한 석검은 성벽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육중했다.
‘저게 왕의 영혼인가.’
라온이 이 심상의 세계의 주인인 녹색의 왕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종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다는 건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높게 봐도 그랜드 마스터 중급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본 녹색의 왕은 자신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기파를 휘감고 있었다.
살이 떨리게 만드는 패기. 오크의 군주이자, 녹색의 왕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괴물이었다.
‘음….’
라온이 녹색의 왕을 훑어보다가 눈동자를 돌렸다.
‘다른 영혼의 기척?’
조금 전 이 세계 어딘가에서 녹색의 왕이 아닌, 다른 영혼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자신의 누나인 시아가 분명했다.
‘살아있었어! 그런데….’
어디에 있는 거지? 존재는 느껴지는데, 보이질 않아.
분명 심상의 세계 어딘가에서 영혼의 꿈틀거림이 느껴졌지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건 시체와 불에 탄 숲 그리고 녹색의 왕뿐이었다.
‘결국 싸워야 하는 건가.’
라온이 한숨을 내쉬고서 녹색의 왕에게 다가갔다.
“…….”
녹색의 왕도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천천히 붉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네가….”
언제라도 제천검을 뽑을 수 있도록 검병에 손을 얹으려고 할 때 녹색의 왕의 입이 열렸다.
“밖에서 나를 막은 인간인가.”
녹색의 왕은 시선을 내린 채로 대륙의 공용어를 꺼냈다. 단어와 발음이 구시대의 것이었지만,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있었나?”
라온이 제천검을 쥐려던 손을 내리며 녹색의 왕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눈빛이 맑아.
현실에서 보았던 투구 속 안광과 달리 녹색의 왕은 차분하면서도 이지적인 눈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크가 아니라, 지혜와 영혼을 쌓은 현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인간의 언어라면 익히고 있다. 하도 싸우다 보니, 저절로 익혀지더군.”
녹색의 왕은 발음이 조금 이상하지만, 이해하는 데 문제는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은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그는 재가 휘날리는 숲을 둘러보며 낮은 숨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나도 모른다.”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까지 난 네 존재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런가.”
녹색의 왕은 그럴 것 같았다고 중얼거리며 손을 내렸다.
“네 발음과 단편적인 장면으로 볼 때 수백 년 이상은 지난 것 같군.”
그는 허무와 분노가 깃든 눈빛으로 재가 된 숲을 돌아보았다.
“다만 인간들의 욕심은 여전한 듯 하더구나. 아니, 더 독해졌어.”
녹색의 왕은 라온을 통해 인간들을 비웃듯 입매를 틀어 올렸다.
“죽은 나를 되살려서 이용하려고 할 정도니까.”
“너희는 사람과 싸우다가 죽은 건가?”
라온이 녹색의 왕 뒤에 쌓인 시체들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대로 이 숲과 몬스터 그리고 녹색의 왕은 사람의 손에 죽은 것 같았다.
“그래, 전쟁. 그것도 원하지 않는 전쟁이었지.”
녹색의 왕은 전생의 삶을 생각하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의 욕심에 우리는 숲을, 동족을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다. 살기 위해서는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지.”
그는 검게 그을린 시체들을 보며 피나도록 입술을 씹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우리가 먼저 마을을 습격했다는 누명을 씌운 뒤 대륙 전체에서 군사를 불러왔다. 결국 나와 동족들은 이 숲과 함께 불길 속에 가라앉았지.”
녹색의 왕은 아이로 보이는 작은 오크 시체의 눈을 감겨준 후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복수를 하기 위해서 에덴과 손을 잡은 건가?”
라온이 녹색의 왕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사연대로라면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부활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녹색의 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뭐? 네가 선택하지 않는다면 부활할 수가 없을 텐데?”
자신이 알기로 몬스터의 투구나, 가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영혼과 접촉해서 동의를 받아야 한다.
동의하지 않았는데, 부활을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말을 걸어온 이는 있었지만, 나는 이미 지쳐있었기에 거부했다. 하지만….”
녹색의 왕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눈을 뜨니, 나는 이 육체에 들어와 있더구나.”
그는 본인의 영혼을 통제하지 못한 채 이곳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
라온이 작게 손뼉을 쳤다.
‘그래서였나?’
실제 녹색의 왕의 영혼이 에덴을 따르지 않았기에 외부의 녹색의 왕이 짐승 같은 모습을 보이고, 쌍두귀의 통제를 받았던 것 같았다.
‘타천….’
대체 어디까지 가자는 거냐.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을 소멸시키고, 불쌍하게 죽은 몬스터들의 영혼마저 희롱하다니, 데루스와 맞먹는 악마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놈을 더 패지 못한 것에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래도 이 상태라면 말이 좀 통하겠는데.’
녹색의 왕에게서 호의는 아니어도,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경계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시아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라온이 녹색의 왕에게 한발 다가가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 육체에 있던 영혼은 어디에 있지?”
“그건 말할 수 없다.”
녹색의 왕은 지금까지와 달리 경계심이 선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왜지?”
“…….”
그는 아예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말하지 않겠다는 건가?”
라온이 제천검의 검병에 손을 얹은 채 시선을 좁혔다.
“그럼 험하게 물어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해도 말할 수 없다.”
녹색의 왕은 신념이 담긴 눈빛을 드러낸 채로 땅에 박혀 있는 석검을 뽑았다.
휘두르기만 해도 이 공간이 뭉개져 버릴 듯한 살벌함이 느껴졌다.
“네 선택이니, 감당하도록.”
라온이 녹색의 왕에게 쇄도하며 제천검을 뽑았다. 극쾌의 발검술. 글래시아의 냉기가 깃든 칼날이 녹색의 왕의 심장을 향해 뻗어나갔다.
후우우우웅!
녹색의 왕은 석검을 비틀어 올려서 쾌속하게 짓쳐 드는 제천검의 투로를 차단했다.
쩌어어어어엉!
제천검에 깃든 서리와 석검에 응집된 투기가 정면에서 부딪치며 새파란 불똥이 튀었다.
‘묵직하군.’
라온은 무게로 짓눌러오는 녹색의 왕의 석검을 밀어내며 입술을 씹었다.
‘정신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거겠지.’
이 심상의 세계는 실제 무력이 아니라, 정신력에 의해서 승패가 결정되는 곳이다.
녹색의 왕의 기파를 직접 느껴보니, 그랜트 마스터를 초월할 정도의 정신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정신력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며 녹색의 왕의 석검을 쳐냈다.
“으음….”
녹색의 왕은 본인이 힘에서 밀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는 기세에서 지고 싶지 않은지 더 진한 투기를 일으킨 채 석검을 횡으로 휘둘러왔다.
치이이이잉!
라온이 석검을 베겠다는 의지를 담은 채 적섬을 그었다. 불길로 타오르는 칼날이 석검을 짓누르고, 녹색의 왕의 가슴에 한 줄기 검상을 새겼다.
후우우우웅!
녹색의 왕은 부상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상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라온의 머리를 향해 석검을 내리찍었다.
화아아아아!
라온이 제천검의 검신 위로 불길의 방패를 일으켰다. 만화공의 방어 초식 염주벽이었다.
쩌어어어어엉!
염주벽과 석검이 부딪치자마자, 속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미친….’
염주벽이 깊게 파이고, 제천검의 검신이 휘어질 정도로 묵직한 검격이다. 녹색의 왕은 정신력은 자신의 예측 이상으로 굳건한 것 같았다.
“인간들이 나를 죽였지만, 내 영혼은 끝까지 꺾이지 않았다.”
녹색의 왕이 석검을 짓누르며 턱을 치켜 들었다.
“나를 우습게 보지 마라.”
“우습게 본 적 없어.”
라온이 제천검의 검신 위로 중천포의 묘리를 운용했다. 검극이 아닌, 검신 위에서 피어난 중검의 파동이 녹색의 왕을 향해 쏘아졌다.
쿠와아아아아아!
녹색의 왕이 석검을 대지에 박아넣었다. 뒤로 밀려 나가지 않으면서도 급소를 보호할 수 있는 좋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석검이 보호할 수 없는 그의 팔과 다리에서 새빨간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이제 말할 생각이 좀 생겼나?”
라온은 피를 쏟는 녹색의 왕을 보며 제천검을 아래로 내렸다.
“…….”
녹색의 왕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는 듯 다시 석검을 들어 올렸다.
“그럴 줄 알았어.”
저 정도의 정신력을 가진 존재가 상처 따위에 굴복하는 게 더 웃긴 일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나도 급해.”
라온이 탁한 숨을 내뱉었다. 더이상 실비아의 눈물을 보고 싶지 않았고, 가족을 하나로 만들고 싶었기에 자신 역시 물러날 수가 없었다.
왼발 직각을 밟으며 중검의 묘리를 담아낸 광아검을 내리찍었다.
쿠와아아앙!
뼈와 살을 으깨버릴 듯한 육중한 참격이 쏟아졌음에도 녹색의 왕은 신음 하나 흘리지 않은 채 정면에서 검격을 막아냈다.
쯧.
라온이 혀를 차고서 녹색의 왕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후우우우웅!
녹색의 왕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이 돌진하는 방향으로 대검을 내리쳤다. 한순간 육체를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풍압이 전신을 짓눌렀다.
‘힘을 아끼고 있었나.’
라온이 오른발을 가볍게 내디디며 광풍류를 운용했다. 발밑에서 일어나는 푸른 바람으로 녹색의 왕이 일으킨 압력을 풀어내며 서리연을 그었다.
치이이이잉!
은빛의 검격과 푸른 빛의 검격이 물결처럼 이어지며 녹색의 왕의 가슴과 허리를 향해 쏘아졌다.
쿠우우우웅!
녹색의 왕은 피하지 않고 대지를 향해 대검을 내리쳤다.
그는 대검의 충격으로 인해서 솟구친 땅거죽으로 서리연을 막아낸 후 자신의 머리를 향해 대검을 찔러넣었다.
쿠와아아아아아!
라온은 묵직하게 뻗어오는 녹색의 왕의 석검을 향해서 염룡결을 일으켰다. 검극에 어린 불길이 용의 형상이 된 채 검은 오크의 왕을 쓸어버렸다.
후우우욱!
정신의 세계조차 불태워버리는 화력이 지나간 후 녹색의 왕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염룡결을 견뎌냈다.
‘설마… 저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건가?’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에서만 싸우는 녹색의 왕의 모습이 너무도 기이했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전쟁 이후에 휴식 없이 바로 이 세계에 들어왔기에 자신의 정신력은 한계에 달했다. 녹색의 왕을 빠르게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이쪽이 먼저 쓰러질 것이다.
후우.
라온이 숨을 고른 후 제천검을 고쳐 잡았다.
‘최대한 빠르게 끝낸다.’
불길을 머금은 제천검으로 하늘을 겨눴다.
화아아아아악!
검신에 뿌리를 내린 붉은 나무 위로 천 개의 꽃잎들이 피어났다.
가을의 바람에 휘날리는 불꽃의 조각들이 화염의 폭풍이 되어 녹색의 왕을 휘감았다.
“크아아아아!”
녹색의 왕은 본인을 휘감은 불길을 지워내기 위해서 석검을 거칠게 내리쳤다. 전생의 기억 때문에 불꽃에 휩싸이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럼 그걸 이용해주지.’
라온이 재가 된 땅을 나아가며 기울여 두었던 제천검을 세웠다.
만화공 천화.
염해무결.
녹색의 왕의 석검에 의해서 사그라드는 불길을 다시 끌어와 하늘에 닿을 듯한 화염의 파도를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녹색의 왕이 일으킨 투기는 염해무결의 불꽃에 밀려 사정없이 쪼그라들었다.
“끄으으….”
검에 베이고, 살점이 터져나가도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던 녹색의 왕도 불길을 견딜 수는 없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낮은 비명을 흘렸다.
“이 육체의 영혼은 어디에 있지?”
“…말할 수 없다.”
녹색의 왕은 죽어서도 말할 수 없다는 듯 물러서지 않았다.
“대체 왜….”
라온이 미간을 찌푸릴 때 허공에 검은 구멍이 돋아나고, 그 속에서 푸른 구름 같은 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라스인가.’
드래고니안 록타의 투구를 썼을 때처럼 뒤늦게 라스가 따라붙은 것 같았다. 저 녀석이 쓸데없는 짓을 하기 전에 빠르게 끝을 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뿌득.
라온이 어금니를 지그시 씹으며 제천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후우우우우웅!
녹색의 왕은 절대 죽지 않겠다는 듯 대검을 머리 위로 세운 채 지닌 투기를 모조리 끌어 올렸다.
그의 머리 위로 타오른 투기가 붉은 태양처럼 이글거렸다.
“끄아아아아아!
녹색의 왕이 절실한 의지를 담은 채 대검을 내리쳤다. 거대한 투기의 파동에 한순간 세상이 어둑하게 물드는 것 같았다.
치이이이잉!
라온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제천검을 들어 올렸다.
검계현신 개벽.
지친 정신 속에서 한층 더 성장한 무리가 개화한다.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검극이 붉은 투기를 지우고 심상의 세계에 장대한 광휘를 일으켰다.
퍼어어어억!
녹색의 왕의 대검이 반으로 부러지고, 그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녹색의 왕은 가슴과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텨냈다.
“마지막이다. 말해.”
“…….”
녹색의 왕은 반토막 난 대검을 들어 올린 채 고개를 저었다. 그는 죽어서도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제는 시간이 없어.’
시야가 흐려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여기서 어떻게든 결착을 맺어야 했다.
“날 원망하지 마라….”
라온이 제천검을 세워서 녹색의 왕의 목을 베려고 할 때였다.
포옹!
막힌 구멍이 뚫린 듯한 경쾌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 열린 구멍에서 거대한 솜사탕 하나가 튀어나왔다.
“죽이면 안 되느니라! 켈록!”
라스가 이쪽을 내려보며 미간을 구겼다.
“저 오크 놈의 영혼 속에 인간의 영혼이 담겨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