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85
제785화
“라온. 서 있지 말고 앉거라.”
글렌이 본인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날카로운 시선을 들어 올렸다.
당장 앉지 않는다면 식탁 위에 창궁검을 내리칠 기세였다.
“라온. 음식이 식는구나.”
렉타르는 우측 빈자리를 툭툭 치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다만 옆에 앉지 않는다면 검을 뽑아 들 것처럼 살벌한 눈빛을 보내왔다.
“아하하….”
라온이 어색하게 웃으며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두 분 다 왜 저러시는 거야….’
글렌과 렉타르는 숙적이라도 된 듯 만나기만 하면 경쟁을 해왔다.
이전의 검술 교육은 그렇다고 쳐도 옆자리에 앉는 것으로 경쟁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아니, 이유는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어디에 앉느냐가 중요해.’
외할아버지인 글렌과 여러 대화를 나누며 관계가 개선된 것은 맞지만, 렉타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성검련주에 오르고, 그림자처럼 지켜봐 준 사람이다. 함부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무얼 하는 것이냐! 아무 데나 쳐 앉고, 포크나 들 거라! 켈록!
라스는 사람의 속도 모른 채 밥을 먹자며 등을 두드렸다. 녀석의 영혼이 성장했기 때문인지 꽤 아팠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라온은 등을 긁어대는 라스를 밀어내고서 볼 안쪽을 씹었다.
‘판단이 안 서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차라리 타천과 다시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평소라면 렉타르 님. 아니, 친할아버지 옆에 앉는 게 맞을 텐데….’
자신이 아는 글렌은 이런 사소한 일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렉타르에게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만큼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외할아버지 옆에 앉는 것도 마찬가지야.’
렉타르는 아직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다. 간신히 깨어난 상태인데, 여기서 글렌의 옆에 앉았다간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으….”
라온이 이마를 부여잡은 채 미간을 구기고 있을 때 식당 밖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튜를 가지고 왔어요.”
그 목소리는 헬렌의 것도. 다른 시녀들의 것도 아니었지만, 너무나 익숙했다.
“어?”
라온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하녀복을 곱게 차려입은 멀린이 스튜가 담겨 있는 그릇을 든 채 식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히이이익!
라스는 멀린에게서 훌쩍 떨어진 채로 비명을 질렀다.
-이, 이거였느니라! 본왕이 오한을 느낀 이유가 바로 저 광녀 때문이었어!
녀석은 이제야 알겠다며 자신의 뒤에 숨었다.
“머, 멀린? 네가 왜 여기에….”
리온이 멀린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잠시 일을 좀 도와드렸어.”
멀린은 할 일이 없어서 시녀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었다며 식탁 위에 조심스럽게 스튜를 내려놓았다.
“어머님이랑 함께 만들었지.”
그녀는 분명히 맛있을 거라며 웃고서 빈자리에 앉았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는 것 같던데….”
멀린이 노파의 가면을 살짝 틀어서 붉은 입술을 드러냈다.
“여기에 앉을래?”
그녀는 본인의 허벅지에 앉으라는 듯 하녀복의 치마를 쓸어내렸다.
“크흠!”
“으음….”
라온을 노려보던 글렌과 렉타르가 민망하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꺅!”
실비아는 볼을 빨갛게 물들인 채 눈동자를 빠르게 깜빡였다.
“아들! 대체 어떻게 저 미친 또라. 아니, 멀린을 사로잡은 거냐?”
에드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저도 몰라요….”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야. 물론 앉아도 좋았지만.”
멀린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서 몸을 일으켰다.
“가족들과의 시간. 재밌게 즐겨.”
그녀는 예상과 달리 저 말을 남기고서 식당을 떠났다.
라온은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멀린의 뒷모습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저 녀석….’
멀린은 언제나 일방적으로 돌진을 해오는 성격이지만, 이상하게도 가족이 관계되어 있으면 거리를 둔다.
그녀에게 가족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멀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구나.’
록타의 기억을 통해 본 것과 외부에 알려진 정보 외에 멀린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기회가 된다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라온.”
“라온.”
멀린이 사라지자, 글렌과 렉타르가 다시 라온의 이름을 부르며 옆자리를 가리켰다. 두 사람 다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 제발! 아무 곳이나 앉거라. 본왕이 늙어 죽을 것 같으니라.
라스 역시 배를 부여잡은 채 어디든 앉아달라고 사정을 했다.
“으음….”
라온이 이를 악문 채로 떨리는 발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그만들 좀 하세요! 왜 나잇값들을 못 하시고, 애를 힘들게 해요!”
실비아가 식탁을 내리치며 당차게 일어섰다.
“라온! 됐으니까. 내 옆에 앉아.”
그녀는 렉타르와 글렌을 향해 눈살을 찌푸린 채 라온을 불렀다.
“커흐흠….”
“아니, 나는 그냥….”
글렌과 렉타르는 민망한 듯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응? 그럼 나는 어디로 가라고?”
실비아의 옆에 딱 붙어 있던 에드가가 눈을 끔벅였다.
“애가 힘들어하면 막아줘야지!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
실비아가 눈썹을 내린 채 에드가를 걷어차 버렸다.
“으억….”
에드가는 갑작스러운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의자에서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아들. 엄마랑 앉자.”
실비아는 아이 시절 라온을 부르듯 부드럽게 손짓했다.
-역시 우리 엄마이니라!
라스가 다 해결됐다며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네!”
라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실비아의 저런 모습이 부담스러웠지만, 오늘만큼은 최고이자, 최선의 행동이었다.
“음….”
“끄응….”
실비아의 옆자리에 앉자, 글렌과 렉타르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어려운 일이 해결됐기 때문일까. 이제는 두 사람의 모습에 웃음만 나왔다.
“어윽.”
에드가는 실비아에게 걷어차인 허리를 주무르며 반대편 자리에 가서 앉았다.
“식사 전에 잠시만요.”
실비아가 식탁 중앙에 놓여 있는 술병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글렌과 렉타르, 에드가와 라온의 잔에 술을 따라준 후 본인의 자리에 돌아왔다.
“난 라온이 따라줘.”
“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술병을 받아 실비아의 잔을 채워주었다.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 모두 한 마디씩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일단 저부터 하자면….”
실비아는 라온이 따라준 술잔을 들어 올리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우리는 정말 고생을 많이 한 가족이니, 앞으로는 즐거운 시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모두의 얼굴에 구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서 에드가를 바라보았다.
“음!”
에드가가 실비아의 의도를 알아차리고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저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그 고통을 견디고 있습니다. 아, 물론 심하지는 않아요. 예전에 비하면 천국이니까요. 데스나이트 놈도 겁을 먹고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상당히 편해졌습니다. 이 모든 게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덕분이죠. 이제 시아만 일어나면 되는데, 그 시간이 빨리 와서 처음으로 가족 모두가 모이는….”
“에드가. 축사는 간단히 하는 거다….”
렉타르가 말 많은 아들이 창피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저보다 실비아가, 그리고 라온과 시아가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아비로서 세 사람의 얼굴에 항상 웃음만 피어나게 해주고 싶습니다.”
에드가는 진심이라는 듯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은 더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버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 갑자기 아버지가 나온 것도 놀랍….”
“아버님도 한 말씀 해주셔야죠.”
실비아가 에드가의 말을 끊어버리고서 렉타르에게 바통을 넘겼다.
“음….”
렉타르가 잔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하나다. 너희가 행복하면 된다.”
그는 그게 전부라고 말하고서 글렌에게 잔을 들어 올렸다.
“나는 내 인생에 후회가 많다.”
글렌이 실비아와 라온을 보며 거친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는 누구보다도 어렵게 만난 가족이니,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후회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그는 꼭 이루라는 듯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라온을 바라보았다.
“모두 행복하라고 하시지만,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라온이 차분히 의자에서 일어나며 상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할아버지가 함께 계신다면 어떤 일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하며 글렌과 렉타르에게 잔을 들어 올렸다.
“크흐흠!”
“커허험!”
글렌과 렉타르는 갑작스러운 손주의 칭찬을 예상하지 못한 듯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연달아 헛기침을 흘렸다.
“아들! 너 사회생활 좀 하는구나!”
에드가는 잘했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럼 누구 아들인데!”
실비아는 잘했다고 말하며 라온을 폭 끌어안았다.
“네…?”
라온이 눈을 끔벅였다. 아부가 아니라, 진심이었기에 저렇게 좋아하는 게 당황스러웠다.
식탁에 앉은 네 사람은 라온의 어벙한 모습이 귀여운 듯 더 진한 웃음을 머금었다.
-가족끼리 사이가 좋아진 건 본왕도 축하하는데….
라스가 부푼 머리를 부여잡은 채 비명을 질렀다.
-이젠 제발 좀 먹자고! 이 망할 인간 놈들아! 이건 고문이란 말이다!
* * *
글렌과 렉타르는 식사를 끝낸 후 산책 삼아 가주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실비아가 요리를 저리 잘하는 줄 몰랐소.”
렉타르는 정말 오랜만에 맛 좋은 음식을 먹었다며 작게 웃었다.
“나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소.”
글렌은 어둑해지는 하늘을 올려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둘 다 후회하는 일이 참으로 많은 것 같구려.”
렉타르가 연무장의 고운 모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늙으면 후회할 일만 떠오른다고 하지 않소.”
글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같구려.”
“…….”
두 사람은 노을을 감상하듯 한동안 말없이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이곳에서 라온을 가르치던 때가 내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소.”
렉타르는 진정한 행복을 느꼈던 순간이라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그 기억으로 평생을 지옥에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더 큰 기쁨이 오게 될 줄은 몰랐소.”
그는 더 진한 웃음을 그리며 글렌을 바라보았다.
“사돈 덕분이오. 고맙소. 그리고 미안하오.”
렉타르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글렌에게 허리를 굽혔다.
“소속이 소속이다 보니, 속일 수밖에 없었소.”
“이해하오. 나라도 그랬을 것이오.”
글렌은 괜찮다고 말하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 역시 사돈에게 고마운 게 있소.”
그가 렉타르를 보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오마의 편에 서서 라온을 지켜주어서 고맙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정말 고생 많았소.”
글렌 역시 렉타르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친 채 정이 흐르는 미소를 그렸다.
“이제 시아만 일어나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소.”
렉타르는 그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하며 손끝을 떨었다.
“그런 소리 마시오. 라온과 시아가 결혼하는 건 봐야지.”
글렌은 아이들에게 또 상처를 주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 내가 실언을 했소.”
렉타르는 몹쓸 말이 나왔다며 본인의 이마를 가볍게 쳤다.
“헌데 성검련은 괜찮소?”
글렌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렉타르를 바라보았다.
“제자 놈에게 답이 왔는데, 아직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전해왔소.”
렉타르가 품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며 눈매를 좁혔다.
“타천과 다른 오마에겐 바뀐 성검련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기에 한동안은 괜찮을 거요.”
그는 지금은 걱정할 필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시아가 깨어나는 대로 바로 돌아갈 생각이오.”
“그게 맞겠지.”
글렌도 동감한다는 듯 눈썹을 살짝 내렸다.
“그래서 사돈께 제안하고 싶은 게 하나 있소.”
렉타르가 글렌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라온 말인데….”
* * *
라온은 식사를 끝낸 후 헬렌에게 선물로 받은 구슬 아이스크림 상자를 가지고 방으로 돌아왔다.
-빠, 빨리 열거라!
라스는 상자의 틈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를 보며 길게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먹고도 더 먹겠다고?’
라온이 라스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식당에 있던 요리를 대부분 먹어치웠는데, 더 먹겠다니, 체구가 늘어난 만큼 위장도 커진 것 같았다.
‘너 정말 폭식 아니야?’
-그런 식충이 놈과 비교하지 말라니까! 켈록!
라스는 절대 아니라며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헛소리 말고 상자나 열거라. 어떤 아이스크림인지 궁금하느니라! 켈록!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데….’
라온이 고개를 저으며 아이스크림 상자를 열었다.
푸른 서리가 길게 퍼져나가고, 그 안에 있던 네 개의 구슬 아이스크림의 모습이 드러났다.
두 개는 민트초코였는데 하얀색 초콜릿이 박혀 있었고, 남은 두 개는 바나나 같은 노란색이었다.
-오오오오!
라스가 아이스크림 네 개를 한 번에 살피며 탄성을 흘렸다.
-살아남은 보람이 있느니라! 켈록! 어서. 어서 먹거라! 켈록!
‘뭐부터?’
-당연히 민트초코! 아, 아니, 신제품부터 먹을까?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민트초코부터….
녀석은 바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팔을 허우적거렸다.
‘네가 안 고르면 내가 고를게. 민트초코는 많이 먹어봤으니까.’
라온이 먼저 신제품을 먹어보려고 할 때였다.
갑작스럽게 눈앞으로 보상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 뭐냐! 갑자기 이걸 왜! 켈록!
라스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며 눈을 부릅떴다.
‘음….’
라온이 메시지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이번에 네 영혼의 격이 성장하면서 주는 보상 같은데?’
-아니, 그니까 그걸 왜 너한테 주냐고!
라스는 대체 뭐하는 짓이냐며 빽 소리를 질렀다.
‘그걸 나한테 따지면 어떻게 해.’
-끄으, 망할 녀석! 분명히 일부러 이러는 게 분명하느니라!
녀석은 마계로 돌아가자마자 부숴버릴 거라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전에 받은 것도 아직 확인 안 했지.’
라온이 피식 웃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 받았던 보상 메시지도 불러왔다.
-끄어어억….
시야를 가릴 정도로 솟구치는 메시지 창에 라스의 눈동자가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많기도 많네. 하긴 한 일이 있으니… 어?’
라온이 메시지를 보며 웃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보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