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95
제795화
라온은 렉타르의 저택이 있던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허수아비처럼 휘적이며 걸어오는 남성과 마주쳤다.
‘특이한 사람이네.’
키가 굉장히 컸고, 긴 백발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느껴지는 기파는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단단하다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처음 본 사람에게 바로 대련을 신청하겠다고 다짐했었기에 바로 고개를 숙였다.
“검사시죠? 제 도전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
백발의 남자는 바로 답을 하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뭐지? 내 정체를 들킨 건가?’
-네놈….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 라스가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저놈의 실력을 알아보고 대련을 신청한 것이냐?
‘실력?’
라온이 눈썹을 내린 채로 다시 백발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무슨 실력을 말하는… 어?’
불의 고리를 운용하자, 백발 남자의 단전 속에서 꿈틀거리는 기파가 느껴졌다.
이 골목을 넘어 성검련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거대한 기운이 가느다란 육체 속에 잠들어 있었다.
‘뭐야 이건….’
그랜드 마스터의 극에 오른 자신조차 닿을 수 없는 경지. 초월자의 기파였다.
‘처음부터 초월자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라스와 음식 논쟁을 벌이느라, 별생각 없이 대련을 신청했는데, 그게 초월자였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외부인인가.”
백발 남자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둔탁하면서도 느릿한 어조. 성격 자체가 느긋한 사람인 것 같았다.
“이번에 성검련에 들어왔습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지?”
“20대 중반입니다.”
백발 속에서 번들거리는 눈빛은 이미 자신에 대한 파악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거짓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아서 사실대로 나이를 밝혔다.
“…역시 말이 안 되는군.”
백발 남자는 헛바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왜 온 거지?”
“배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라온은 두 번째 질문에도 진심이 담긴 답을 꺼냈다.
“그런가….”
백발 남자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고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도전을 받을 때도 되었으니, 나쁘지 않겠군.”
그는 덤벼보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검이 없는데…?”
초월자라고 해도 검 없이 싸우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목소리에 작은 짜증을 담았다.
“이대로 충분하다.”
백발 남자는 손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 무시했다간 후회하실 겁니다.”
“무시한 적 없다.”
그는 고요한 눈빛으로 손가락을 펼쳤다.
“그렇게 말한다면….”
라온이 제천검의 검병에 손을 얹었다.
‘단숨에 결착을 내주겠어.’
검이 없는 상태에서 확실히 제압한 후 2차전을 치를 생각을 하며 왼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쿠웅!
백발 남자와 간격을 좁히며 제천검을 뽑았다.
발검술로 가슴을 노리려고 하는데, 눈앞에서 허연빛이 번쩍였다.
후우우웅!
무슨 일인지 파악을 하기도 전에 자신의 몸이 거꾸로 돌아간 채 공중에 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백발 남자가 자신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린 것이다.
‘뭐야 이건!’
상대가 검을 들지 않았다고 해도 초월자였기에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부터 자신의 멱살이 백발 남자의 손에 잡혀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망할.’
라온은 제천검을 뽑지 않고, 왼손과 오른손을 뻗어 백발 남자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파아아악!
허리와 복근에 힘을 줘서 백발 남자의 몸을 역으로 들어 올렸다.
“음?”
백발 남자는 본인의 육체까지 떠오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듯 눈매를 찌푸렸다.
그는 이대로는 손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풀고 뒤로 물러섰다.
“후….”
라온은 땅에 내려서며 탁한 숨을 내뱉었다.
“당신 방금 뭘….”
“너 단순한 천재가 아니로군.”
백발 남자가 허리를 살짝 내린 채로 손가락을 굽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재능만 믿는 것들은 방금처럼 들어 올려졌을 때도 검을 뽑으려고 하거든. 거기서 손목을 꺾어버리고 끝을 내는 게 딱 좋은데.”
그는 대련이 길어지는 게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손목….”
라온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는 앞섬을 풀며 눈매를 좁혔다.
‘움직임이 이상했어.’
큰 키에 어울리지 않는 물이 흐르는 듯한 자세와 움직임. 저 남자 단순한 검사 같지 않았다.
‘발에 주의하는 게….’
보법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백발 남자가 사라졌다.
그의 기척이 다시 나타난 장소는 좌우나 뒤가 아니라 정면이었다.
후우우욱!
백발 남자의 빗자루 같은 손이 다시 한번 목을 향해 쇄도해왔다.
‘벤다.’
좌측 뒤로 물러서며 제천검을 뽑으려고 하는데, 백발 남자는 자신의 움직임을 예측한 듯 더 빠르고 강하게 손을 뻗어왔다.
‘또 같은 상황이야!’
다시 한번 멱살을 잡힐 위기였기에 검집을 잡고 있던 왼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파아아아앙!
백발 남자는 그 움직임을 예측이라도 한 듯 손을 아래에서 위로 뻗어와 자신의 왼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후우우욱!
들어 올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오러를 운용하는데,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또 뭔데!’
다만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백발 남자의 주먹이 비수처럼 파고들어 가슴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방어? 아니, 맞부딪친다!’
수없이 싸워온 감각이 방어가 아닌, 공격을 하라고 외쳤다. 전방을 향해 글래시아의 냉기가 깃든 주먹을 내뻗었다.
“짐승 같은 감각이로구나.”
백발 남자는 감탄이 어린 말을 흘리며 자신과 주먹을 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앙!
오러가 씌인 주먹과 주먹이 격돌하며 강렬한 파동이 터져 나왔다.
치이이익!
하지만 백발 남자의 공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길쭉한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자신의 앞섬을 잡아 왔다.
후우우욱!
이번에는 뭘 할 새도 없이 자신의 머리가 땅을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오러를 운용하여 목과 뒤통수를 보호하려는데, 몸에 힘이 풀린다.
꼭 저항할 수 없는 깊은 물 속에 빠진 듯한 감각이었다.
퍼어어억!
결국 반항을 하지 못하고 머리째로 땅에 처박혔다.
다만 바닥에 닿기 직전 억지로 어깨 힘으로 억지로 목을 세운 덕분에 기절하는 건 피할 수 있었다.
“이걸로 끝….”
“누가 끝인데!”
백발 남자가 자신이 기절했다고 생각한 듯 손을 뗀 순간 상체를 일으키며 주먹을 내질렀다.
파아아아아앙!
백발 남자는 당황한 와중에도 손바닥을 세워 자신의 주먹을 막아냈지만, 거센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이 뒤로 넘어갔다.
칼날처럼 세워진 콧대와 찬란히 빛나는 금색 눈동자.
기이한 행동과 달리 절세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외모였다.
“그걸 견뎠다고?”
백박 남자는 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아프기는 한데 쓰러질 정도는 아닙니다.”
라온이 주먹으로 백발 남자를 밀어내며 미간을 좁혔다.
“맷집도 짐승인가.”
백발 남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피곤해졌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그는 하늘을 올려보며 짧게 혀를 찼다.
“저는 아직 검을 뽑지도 않았습니다.”
라온이 아직 검집에 들어가 있는 제천검을 툭툭 쳤다.
“그럼 이렇게 하지.”
백발 남자가 상체를 곧게 편 채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네가 무슨 검술을 쓰든 이 자리에서 한 손으로 받아낼 테니, 그걸로 끝. 어때?”
그는 본인이 물러나거나 두 손을 쓴다면 끝까지 싸워주겠다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좋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 남자와 끝을 볼 생각은 없었으니, 오늘은 초식을 교환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스르르릉.
제천검을 뽑고 자세를 낮췄다. 백발 남자는 얼마든지 해보라는 듯 처음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다만 그의 금색 눈동자는 이전보다 더 짙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뭐가 되었든 부딪쳐 봐야 해.’
라온이 오른발과 함께 나아가며 대지에 기울여둔 제천검을 쳐올렸다.
검극 위로 타오른 불꽃이 강물처럼 이어지며 거대한 파도를 이뤄냈다. 만화공의 절기, 염해무결이었다.
화아아아아악!
뱀의 혓바닥 같은 시뻘건 불길이 폭풍이 되어 솟구칠 때 백발 남자의 오른손이 길게 펼쳐졌다.
치이이이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듯 뻗어나가는 그의 손길을 따라 붉은 파도가 가라앉고, 짙은 불길이 지워진다.
염해무결의 투로를 그리던 제천검의 흐름마저 멎어버렸다.
‘이 무슨….’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을 부릅뜨는데, 백발 남자의 손날이 어느새 자신의 목 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제 됐겠지?”
백발 남자는 가볍게 턱을 끄덕이고서 손을 탁탁 털었다.
“그럼.”
그는 미련이 없다는 듯 자신을 남겨두고서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라온이 조금 전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염해무결 자체를 지워버린 건가?’
조금 전 백발 남자는 염해무결의 오러와 검이 나아가는 투로를 죽여버렸다.
자신의 검술에 대해 알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이 상황 자체가 이해되질 않았다.
-제대로 보았느니라.
라스가 뒤를 돌아보며 픽 웃었다.
-그 대나무 같은 놈은 조금 전 네 검술의 흐름을 모두 가라앉혔느니라. 재밌는 놈이야.
녀석은 자신이 당한 게 즐겁다는 듯 낄낄 웃었다.
‘한 번 보고 검술을 파훼한다는 게 가능한 일이야?’
-네놈은 양심이 없는 것이냐? 네놈이 매번 하던 짓이지 않느냐!
라스는 적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며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아니 잠깐 그러면….’
저 백발 남자는 내가 불의 고리를 운용하듯이 다른 사람의 검술을 볼 수 있다는 건가?
뒤를 돌아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겠지. 검사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적….
‘그거 재밌겠는데?’
저 사람과 계속 대련을 한다면 자신의 빈틈을 지우고 더 강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본왕이 느끼기에…
라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놈은 그 광녀 이상의 변태이니라!
* * *
쿠웅!
성검련주의 저택 문이 열리고, 백발 남자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련주….”
백발의 남자는 렉타르가 있는 집무실에 들어가서 소파에 걸터앉았다.
“대체 뭘 데리고 온 거요?”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렉타르는 서류를 내려놓으며 턱을 까딱였다.
“다 느꼈잖소.”
백발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렉타르의 잔잔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나와 싸웠던 그 괴물은 대체 누구요?”
“그 아이는 어땠느냐?”
“아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를 아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는 이해의 범주를 벗어났다며 고개를 저었다.
“완성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멀었지.”
렉타르는 그 정도는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련주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 제자로 들일 생각이오?”
“내 제자는 무스턴 하나로 충분하다. 네가 짐승이라 부르는 아이는….”
그가 진한 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자다.”
렉타르는 신분을 속여야 한다는 말과 달리 라온의 정체를 바로 알려주었다. 백발 남자를 신뢰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
백발 남자가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 설마 에드가의….”
“맞다. 그 녀석의 아들이다.”
“아니, 이게 갑자기 뭔….”
그는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조만간 모든 사정을 알려주도록 하마.”
렉타르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며 손을 내렸다.
“련주의 손자이자, 에드가의 아들이라. 이제야 저 재능이 이해가 가는군.”
백발 남자는 조금은 알겠다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주 녀석이 특별하기는 하지.”
렉타르는 라온에 대한 칭찬이 기분 좋은 듯 입매를 말아 올렸다.
“그래도 네가 바로 역해무를 꺼내 들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그건 그냥 귀찮아서… 어? 모른 척하더니, 다 알고 있었네!”
백발의 남자가 렉타르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크흠! 그래서 내 손자와 부딪쳐 본 소감은 어때?”
렉타르는 말을 돌리듯 대련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완성도가 높은 검술을 사용하더군. 다만 역해무 속에서 새로 변화를 만드려던 게 어처구니가 없어.”
그는 그 부분이 가장 놀라웠다며 입술을 씹었다.
“하여튼 짐승 같은 놈이었소.”
그는 상대하고 싶은 계열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앞으로는 만날 일이 없을 테니.”
백발 남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손을 젓고서 저택의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보자기에 식재료를 가득 담은 후 다시 거실로 나왔다.
“련주의 손자와 놀아줬으니, 이 정도는 가져가도 되겠지?”
백발 남자는 나중에 보자는 듯 손을 까딱이고서 몸을 돌렸다.
“로렌스.”
렉타르라는 이름을 부르자 백발 남자가 우뚝 멈춰 섰다.
“내 손자 녀석의 진짜 재능은 무학이나, 검술이 아니야.”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렉타르는 할 말을 다했다는 듯 고개를 돌려 다시 서류를 살폈다.
“흥….”
로렌스는 렉타르를 잠시 바라보다가 콧방귀를 뀌고서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렉타르는 저택의 문이 닫히자마자, 입술을 말아 올렸다.
“재밌어질 것 같군.”
* * *
“이야, 잘 싸우던데? 로렌스와 처음 만나고 그렇게 버틴 놈은 처음 봐!”
흑발 노인이 예상 이상이라며 박수를 쳤다.
“그 음습한 놈의 계획에 넘어가지 않다니, 전투 센스가 대단하던데?”
적발 노인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께서는….”
라온은 길을 막고 서 있는 두 노인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백발 남자와의 대련을 복기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저 두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다.
“아, 나는 검주야. 마장검주. 그리고 이놈은….”
“내 소개는 내가 할 거야. 나는 현악검주.”
흑발의 노인과 적발의 노인은 스스로를 마장검주와 현악검주라 칭했다.
‘원로원 소속이 아니었나?’
강렬한 기파와 나이를 보고 원로원 소속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은 현역 검주였다.
다만 둘 다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련주랑 함께 온 거 맞지?”
“맞습니다.”
라온이 제천검을 검집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검련에 귀의한 거야? 같이 온 아해들은 누구야? 검은 어디까지 익힌 거지?”
적발 노인은 답을 듣기도 전에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얼굴이랑 머리색은 왜 가린 거야? 유명한 사람인가? 이름을 말해주면 안 돼?”
흑발 노인 역시 적발 노인에게 지기 싫다는 듯 질문의 폭격을 쏟아냈다.
“아, 귀의한 건 아니고….”
라온이 첫 질문부터 답을 해주려고 하는데, 뒤에서 작은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대련을 했던 백발 남자였다. 그는 처음처럼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린 채 등짐을 매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으음….”
“커흠….”
마장검주와 현악검주는 조잘거리던 입을 다물고 다른 곳을 보며 휘파람을 불고 헛기침을 했다.
“…쓸데없는 소리 마쇼.”
백발 남자는 두 노인에게 경고하듯 눈매를 찌푸리다가 라온을 힐끗 보고서 산으로 올라갔다.
다시 보니 저 남자와 한 번 더 싸워보고 싶다는 호승심이 차올랐다.
“저분은 누구입니까?”
“저분? 저거 개새끼야!”
적발 노인이 백발 남자의 등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은혜도 모르는 로렌스! 우리가 대놓고 키워줬는데, 좀 강해졌다고 폭군이 되어서 난동만 부린다고!”
흑발 노인도 공감한다며 이를 갈았다.
“이름이 로렌스군요.”
라온이 입맛을 다셨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울리는 이름이라 웃음이 나왔다.
“이름이랑 다르게 사악한 놈이야!”
“맞아. 우리가 놀고 있으면 시끄럽다고 발광을 하면서 집어던진다니까! 대련도 아니고, 말싸움만 벌여도 지랄을 해!”
적발 노인이 미친놈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먹을 때는 마왕도 안 건드리는데! 쓰레기 아니더냐!
‘마왕은 건드리면 죽잖아….’
라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우뚝 멈춰 섰다.
‘시끄럽게 굴면 던진다라….’
좋은 생각이 나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두 분은 어디서 대련을 하시죠?”
“뒷산 중턱. 저 망할 놈의 동굴이랑 가까운 곳이기는 한데, 거기만한 장소가 없어서.”
흑발 노인은 딱 대련하기 좋은 곳이라며 입맛을 다셨다.
“이제 저놈 이야기는 됐고. 나랑 대련할 생각은 없나?”
적발 노인이 한판 붙어보자며 양손을 비볐다.
“아니! 내가 먼저야!”
흑발 노인이 어디서 새치기냐며 이를 갈았다.
“…….”
라온은 으르렁거리는 두 노인을 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두 분하고 다 대련을 하겠습니다. 대신….”
뒷산을 보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제 부탁을 좀 들어주시겠어요?”
* * *
투욱.
로렌스는 본인의 거처인 동굴 안쪽에 식량이 들어 있는 보자기를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에드가의 아들이라….’
그는 조금 전 라온의 검과 부딪쳤던 손아귀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군.’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역해무를 거스르려 하다니, 그건 재능의 영역조차 벗어난 이질적인 능력이었다.
‘그런데 무학이 진짜 재능이 아니라고?’
렉타르는 손자의 진짜 재능은 무학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게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니지.’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야.
자신은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으니, 그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든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으니, 한숨 자기 위해서 나뭇가지로 만든 침대 위에 누웠다.
그대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땅이 거칠게 울리고 오러의 파동이 사방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끄응….”
로렌스가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일으켰다.
“이 노인네들. 여기서 싸우지 말라니까….”
늙어서 귀가 먹었는지, 수없이 이야기해도 들어먹질 않았다.
짜증을 내며 동굴 밖으로 튀어 나갔는데, 그곳에는 두 노인 외에 한 명이 더 추가되어 있었다.
“네가 왜….”
자신에게 놀라움을 주었던 렉타르의 손자가 현악검주와 검을 부딪치고 있었다.
“우연이네요.”
렉타르의 손자가 씩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이 기회에 한 수 더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