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97
제797화
라온은 구겨진 얼굴을 드러낸 로렌스를 보며 입술을 살짝 말아 올렸다.
‘화가 단단히 났네.’
하긴 더 시끄러웠을 테니까.
로렌스가 아니라, 마스터 정도만 되어도 오러로 청각을 막거나, 기막을 쳐서 소음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막는다고 해도 진동까지 막을 수는 없다.
마장검주와 쾌검을 부딪치며 바람으로 진동을 일으켰기에 로렌스가 당연히 튀어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대체 어떻게 일어난 것이냐!”
로렌스가 턱을 내리며 라온을 노려보았다.
“한동안 요양을 해야 할 정도로 강하게 쳤는데 왜!”
“몸이 조금 튼튼한 편이에요.”
라온이 주먹으로 본인의 가슴을 두드리며 싱긋 웃었다.
‘물론 아프기는 했지만.’
조금 전 로렌스는 확실히 기절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은 채 자신의 명치를 후려쳤다.
그랜드 마스터라도 쓰러질 수밖에 없는 위력이었지만, 초월자에 맞먹는 육체 능력과 설화의 마갑으로 충격을 완화시켜서 기절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다.
-이놈은 그냥 거머리도 아니고, 무쇠 거머리이니라.
라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럽게 단단한데, 떨어지지도 않아! 말라붙을 때까지 피를 빨아 먹을 것이니라!
녀석은 걸리지 말았어야 했다며 이를 갈았다.
“조, 조금 튼튼?”
“우리라면 황천길 직전까지 갔을 텐데….”
현악검주와 마장검주가 어처구니가 없다며 헛바람을 흘렸다.
“네놈은 양심이라는 게 없는 것이냐!”
로렌스가 라온에게 다가오며 입술을 꾹 내리눌렀다.
“대련이라는 핑계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도 되냐는 말이다!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
그는 제발 꺼지라면서 악을 질렀다.
“음, 그건 그렇네요.”
라온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며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사과를 해야겠네요.”
“사과 따위는 필요없으니까! 내 눈앞에서 사라져!”
로렌스는 입 다물고 산을 내려가라며 손을 뻗었다.
“그래도 사과는 해야죠.”
“필요 없….”
“아뇨. 로렌스 님 말고, 저 친구들한테.”
라온은 로렌스가 아니라, 그가 나온 동굴 옆 느티나무를 가리켰다.
다람쥐 가족이 구멍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동굴 내부를 노리고 진동을 쏘아냈기에 다람쥐들은 딱히 충격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저 녀석들이 구멍 밖으로 나온 건 진동이 아니라, 로렌스의 고함 때문일 것이다.
“이 산의 주인이죠? 미안해요. 그래도 곧 끝날 테니까 조금만 참아줘요.”
라온이 다람쥐들에게 두 손을 모은 채 허리를 굽혔다.
스스스.
다람쥐들은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다시 나무의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갔다.
-아, 악랄하느리라….
라스가 두툼한 턱을 부르르 떨었다.
-본왕이 긴 세월을 살아왔지만, 남을 놀리기 위해서 다람쥐한테 인사를 하는 미친놈은 처음 보느니라!
녀석은 진정 차원 제일의 또라이는 다르다며 헛바람을 흘렸다.
“끄으으윽….”
로렌스도 이성을 잃은 듯 입에서 침을 질질 흘렸다. 초월자의 정신력으로도 견딜 수 없는 것 같았다.
“허어!”
“아, 아니. 이건 좀….”
라온의 활약에 즐거워하던 마장검주와 현악검주도 어이가 없다는 듯 눈동자를 끔벅였다.
“오냐! 네가 원하던 대로 당장 상대해 주마!”
로렌스가 이를 바드득 씹으며 다가왔다.
“다만 이번에는 절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눈동자에 분노가 깃든 듯 더 진한 황금빛이 타올랐다.
“차례를 무시하다니, 질서를 모르시는 분이네요.”
라온이 마장검주에게 양보를 해달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차례? 질서? 그게 네놈의 입에서 나올 소리냐!”
로렌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악을 질렀다.
“입심으로는 당해낼 수가 없어. 누구를 닮았는지 알 것 같구나!”
그가 혀를 차자마자, 눈앞에서 사라졌다. 기척 자체를 지워버리는 허깨비 같은 보법이었다.
‘눈을 믿어서는 안 돼. 기감도 마찬가지고.’
로렌스의 보법은 눈과 감각에 착각을 만들어 낸다. 찾아야 하는 건 분노를 품고 있는 그의 감정이었다.
‘왼쪽이 아니라… 뒤!’
라온은 좌측에서 느껴지는 로렌스의 존재감에 농락당하지 않고, 분노가 비치는 기척을 찾아서 등을 돌렸다.
후우우우욱!
고개를 돌리자마자, 로렌스가 나뭇가지처럼 길게 펼쳐진 손아귀를 뻗어오는 게 보였다.
스르르릉!
라온은 기다렸다는 듯 무릎을 굽히며 가슴 앞에 두고 있던 제천검을 내질렀다.
만화공 천화.
적섬삼십육결.
일검에 서른여섯 방위를 찌르는 절세의 검학에 극쾌의 묘리를 담아냈다.
이전과 달리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검격. 서른여섯 개의 붉은 빛살이 로렌스의 전신 급소를 향해 쏘아졌다.
“음!”
로렌스는 기습이 막혔다는 것을 깨닫고, 펼치고 있던 오른손으로 수도를 세웠다.
그의 눈동자에서 번뜩이던 황금빛이 손날에서 타오르자, 직선으로 나아가던 서른여섯 개의 검격이 잔불처럼 가라앉았다.
‘속도를 높이고, 바람을 담아도 안 되나? 그렇다면….’
라온은 흐름이 멎어가는 제천검 위로 회천의 불길을 일으키며, 왼손으로 진혼검을 뽑아 들었다.
후우우우욱!
회천의 불길이 로렌스의 수도를 막아내는 동안 진혼검의 위로 극성의 만화공을 일으켰다.
검극 위로 솟구친 화룡이 웅대한 불꽃의 숨결을 토해냈다. 위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염룡결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
산 전체를 불태울 듯한 장대한 불길이 뻗어나갔지만, 로렌스의 수도는 절대의 벽을 세운 것처럼 염룡결의 화염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 뒤로 남은 것은 바닥으로 가라앉은 자그마한 불똥뿐이었다.
‘저건….’
라온은 지워지는 불길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단순한 무학이 아니야.’
불의 고리를 운용하고 있음에도 바로 따라 할 수 있다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 파훼술은 무학이자, 하나의 현상인 것 같았다.
‘더 보고 싶어….’
라온이 끝까지 싸우기 위해서 아래로 기울여둔 제천검을 들어 올리려고 할 때였다.
후우우욱!
로렌스가 더욱 빠르고 현묘한 보법을 밟으며 좌측으로 다가왔다.
‘검을 뻗을 공간이 안 나와.’
반응이 늦었기에 제천검을 찌를 간격이 없었다.
진혼검에 서리의 기운을 담은 채 아래로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아!
로렌스는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 먹은 듯 서리를 가볍게 지워버리고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번에는 정말 아플 거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가슴 위로 강렬한 충격이 폭발했다.
퍼어어어어엉!
라온이 발길에 차인 공처럼 튕겨 나가 대지에 처박혔다.
어찌나 강하게 맞았는지 주변의 땅이 깊게 파여나갈 정도였다.
“후우….”
로렌스가 가늘게 떨리는 손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사이에 또 성장했어.’
일반적인 검사들은 자신의 검술이 허무하게 깨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성검련에서도 자신에게 대련을 신청하는 검사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저 어린놈은 본인의 검술이 깨지는 것을 즐기는 듯 매번 전력으로 부딪쳐 왔다.
검사로서 지녀야 할 자존심이나, 공포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괴물 같은 놈이었다.
“이, 이건 너무 과하지 않느냐!”
마장검주가 로렌스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어린 녀석인데!”
현악검주도 심했다고 말하며 입술을 씹었다.
“봐서 알지 않소. 징한 놈이라, 이 정도는 해야 일어나지 못해.”
로렌스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털어냈다. 렉타르의 손자였기에 죽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손을 썼다. 이번에는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일어나면 인정해주마. 하지만….”
“정말요?”
그를 놀리듯 라온이 번쩍 눈을 떴다.
“끼아아악!”
“허어억!”
라온을 걱정하던 마장검주와 현악검주가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저 둘 반응이 참으로 재밌었다. 왜 멀린이 매번 동물의 모습으로 튀어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너, 너 어떻게….”
로렌스는 불가사의를 마주한 듯 황금색 눈동자를 바들바들 떨었다.
“이번에는 조금. 아니, 꽤 아프네요.”
라온이 왼쪽 가슴을 매만지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못 참을 정도는 아니라서….”
“으아아아아악!”
로렌스가 본인의 머리카락을 헝클며 괴성을 질렀다.
“좀비야 뭐야! 심장 어림을 오러로 쳤는데, 왜 기절도 안 하는 거냐고!”
“맞는 데는 이골이 나 있어서요.”
라온이 옅게 웃으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이번에는 정말 충격이 컸기에 바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왜 이렇게 날 괴롭히는 건데! 왜!”
로렌스는 제발 살려달라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괴롭히는 게 아니라, 대련을 하자는 것뿐이에요. 노는 거죠.”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놀고 싶다고! 날 좀 놔두란 말이다!”
-좀비가 아니라, 거머리라니까. 안 떨어진다고.
라스는 물린 순간 다 끝난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절 인정해주신다고 하셨으니, 이렇게 하죠.”
라온이 로렌스를 향해 검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뭐, 뭘 말이냐?”
“하루에 한 번 무조건 대련을 해주세요.”
로렌스와 세 번을 부딪치며 느꼈다. 저자의 파훼술은 지금 당장 깰 수 없는 특별한 힘이다.
이대로 계속 부딪쳐도 의미가 없기에 대련을 통해 검술 성취를 키운 후 하루에 한 번씩 도전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하, 한 번?”
“네. 하루에 한 번.”
라온이 그거면 된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끄응….”
로렌스가 고민이 되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내, 내게는 루틴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루틴이 깨지면 굉장히 힘든 시간이….”
“싫으시면 지금처럼 할게요. 제가 또 체력이 좋아서 밤낮없이 싸울 수 있는데, 몇 명이나 불러와야 하려나.”
“아, 알겠다! 알겠다고!”
그는 결국 라온에게 굴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 확정이네요.”
라온이 웃으며 허공에 손도장을 찍었다.
-계약 맞아? 협박 아니냐고.
‘비폭력으로 답을 얻었으니, 계약 맞아. 오히려 내가 맞았잖아.’
-아무리 봐도 저 방아깨비가 죽어가는데….
라스는 어이가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제 내려가라.”
로렌스는 힘이 다 빠진 듯 어깨를 축 내린 채 손을 휘저었다. 그 사이에 10년은 늙은 듯한 얼굴이 된 것 같았다.
“그러죠. 아!”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전의 대련은 저희가 계약을 맺은 이후니까 오늘 밤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 말을 하며 씩 웃었다.
“아니, 그… 으으윽!”
로렌스는 다시 분노가 차오른 듯 턱을 떨다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내렸다.
“그럼.”
라온은 로렌스에게 허리를 굽히고서 가벼운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오….”
“오오!”
마장검주와 현악검주는 귀인을 본 듯한 감탄을 흘리다가 라온의 뒤를 따라갔다.
“끄윽….”
로렌스는 떠나가는 라온의 뒤통수를 보며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게 맞나? 정말 이게 최선인가? 다른 방법은 없었나?’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저놈과 마을에서 마주친 순간 도망쳤어야 했다.
“으아아아악!”
로렌스는 처음 대련을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며 산이 떠내려갈 정도의 비명을 질렀다.
* * *
“크으….”
마르타가 맞은편에 선 중년의 여검사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강해. 그것도 단련된 강함이야.’
저 검사는 검술이 강한 것만이 아니라, 익힌 검술에 대한 자부심까지 지니고 있었다. 신념을 세우고 있는 진짜 검사였다.
‘싸울 맛이 나네.’
외부의 검사 중에도 강자는 많지만, 검술에 대한 신념을 지닌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왜 이곳을 성검련이라 칭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 둘 다 지쳤으니, 이번에 끝내는 게 어때?”
중년 여성이 전력으로 덤벼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성격도 마음에 드네요.”
마르타가 시원하게 웃고서 검을 세웠다.
터어어엉!
두 검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가 동시에 땅을 박찼다.
우우우우웅!
마르타는 타이탄 오러에 광풍류의 바람을 담아 극강의 검격을 펼쳐냈다. 그녀의 검신에서 공간을 찢어버리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강함은 좋지. 하지만….”
중년 여성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손에 쥔 검을 내뻗었다.
그녀의 검신에서 작지만 진중한 빛이 돋아난다. 곧고 정확하다. 오직 그 일념만을 쌓은 듯한 고아한 검격이 마르타의 검과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아앙!
강한 힘을 담아낸 것은 누가 보아도 마르타의 참격이었다.
하지만 그 격돌 끝에 서 있는 사람은 중년의 여검사였다.
“으….”
마르타가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강하기만 한 바람을 견디는 건 어렵지 않아.”
중년 여성이 작게 웃었다.
“나에게 정확히 쏟아지는 벼락을 피하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지.”
그녀는 검을 내리고 넘어진 마르타에게 손을 뻗었다.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마르타가 중년 여성의 손을 잡고 일어나며 턱을 까딱였다.
“제이라.”
중년 여성은 스스로의 이름을 밝히며 옅게 웃었다.
“기다리고 계세요. 곧 가볍게 꺾어드릴 테니까.”
마르타는 살벌한 말과 달리 상큼한 웃음을 그렸다.
“기다리고 있을게.”
제이라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떠나갔다.
“괜찮아?”
먼저 대련을 끝내고 지켜보고 있던 버렌이 옆으로 다가왔다.
“나찰녀. 아파…?”
루난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나찰녀라고 부르지 말라고!”
“싫어.”
“이익!”
마르타가 루난의 머리를 후려쳤고, 루난은 미끄러지듯 보법을 밟으며 물러났다.
“상태를 보니 괜찮나 보네.”
버렌이 마르타를 살피며 픽 웃었다.
“괜찮긴 해. 몸은.”
마르타가 머리를 숙인 채 이를 갈았다.
‘이길 수 있었는데….’
제이라가 자신보다 강하기는 했지만, 그리 큰 차이는 아니었다.
마지막에 승패를 가른 건 집중력과 지금까지 쌓아 올린 신념의 크기였다.
‘마지막까지 나를 믿었어야 했는데, 결국 힘의 부족이야.’
“마지막에 집중력이 풀렸네.”
마르타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고개를 돌리니, 흙먼지로 화장을 한 듯한 라온이 다가와 있었다. 앞섬과 입 주변을 보니, 피까지 토한 것 같았다.
“너 뭐야!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마르타가 라온을 돌아보며 턱을 떨었다.
“재밌는 일이 있었지.”
라온은 엉망이 된 얼굴로 신이 난다는 듯 웃었다.
“많이 맞은 것 같은데 재밌는 일 맞아?”
버렌이 라온의 의복을 살피며 눈매를 찌푸렸다.
“먼지로 목욕을 했어….”
루난 역시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는 어떻게 됐어.”
라온은 본인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며 버렌과 루난에게 턱을 까딱였다.
“간신히 이겼어. 상성이 내 쪽이 유리했지.”
버렌이 겨우 이길 수 있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졌어….”
루난이 무겁게 고개를 꾸벅였다.
“루난의 상대는 마스터 최상급이었어. 접전이었으니 잘한 거지.”
버렌은 루난의 싸움이 꽤 대단했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난 봤지? 개처럼 쳐발렸어.”
마르타는 더 이상 묻지 말라며 미간을 좁혔다.
“도리안은?”
“몰라.”
“어딘가 끌려간 것 같던데….”
마르타와 버렌이 찬찬히 고개를 저었다.
“도리안 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스턴이 다가와서 허리를 굽혔다.
“대련을 하기도 전에 검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고 심성부터 키워야겠다며 잘레크 님이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는 잘레크가 성검련의 장로이자, 렉타르 님의 심복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그럼 믿을 수 있겠네요.”
성검련의 장로는 몰라도, 렉타르의 심복은 충분히 신뢰할만했다.
‘그래도 나중에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라온은 생각을 정리하고서 다시 버렌, 마르타, 루난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계속 질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거야.”
“지다니! 절대 싫어!”
마르타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이유가 있어?”
“성검련 검사들은 검술에 본인의 신념을 담아내고 있어. 이긴다가 아니라, 그 마음가짐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대련을 치러야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을 거야.”
라온은 스스로 깨달았던 점을 말해주며 진중한 눈빛을 드러냈다.
“나 역시 이곳에서 천 번을 패배할 각오를 하고 있어.”
그 말을 하며 로렌스가 있는 산을 올려보았다.
‘아니, 그 이상 진다고 해도 이겨내야지.’
* * *
라온은 마장검주, 현악검주와 대련까지 끝낸 후 렉타르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렉타르는 업무를 끝낸 후 모두가 먹을 저녁을 직접 준비해놓았다.
그 역시 자신의 일을 직접 하는 성검련의 검사였다.
“도리안은 어디에 있느냐?”
“잘레크 님이 데리고 가셨습니다. 한동안 그쪽에서 머문다고 하더군요.”
무스턴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또 버릇이 도졌군.”
렉타르는 익숙하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그래. 대련은 어떠했느냐.”
그는 먼저 라온을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저는 로렌스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라온은 로렌스와 벌였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크하하하하!”
렉타르가 참지 못하고 식탁을 치며 폭소를 터트렸다.
“역시 그랬군. 그 녀석 꼴이 아주 볼 만했겠어.”
그는 그 광경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너, 너무한 거 아니야?”
버렌이 기겁하며 헛바람을 흘렸다.
“그거 층간소음이라고! 이 악마 같은 놈아!”
마르타 역시 턱을 부르르 떨었다.
“다람쥐 보고 싶어….”
루난은 다 관심 없고 다람쥐 가족을 구경하고 싶다며 입맛을 다셨다.
“아니다.”
렉타르가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계속 가거라. 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가.”
그는 잘했다고 말하며 라온의 어깨를 두드렸다.
“외로운 녀석이니 계속 놀아주거라.”
렉타르는 라온이 기특하다는 듯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맞아?
라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트레스로 탈모가 올 것 같던데…?
* * *
라온이 성검련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하루 내내 다른 검사들과 대련을 치르다가 밤이 되면 로렌스를 찾아가 한 수의 결투를 벌였다.
당연하게도 이긴 적은 없었고, 매일 머리와 가슴을 얻어맞은 채 하산했다.
다만 그동안 알아낸 게 있었다. 로렌스는 생활 루틴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고, 낮에 잠을 잔다.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은데, 어떻게 그런 생활 태도로 초월에 올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신기한 점은 무학이지.’
로렌스의 무학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검술들과 궤를 달리한다.
일반적인 검술이 적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면 로렌스의 검술은 적의 무학을 깨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았다.
“후우….”
라온이 동굴을 오르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무조건 뚫는다.’
오늘은 열 명의 검사와 싸우며 검술의 경지를 끌어 올렸기에 조금이지만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조금 일찍 왔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달이 뜨고 있었기에 로렌스가 자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로렌스 님!”
라온이 항상 싸우는 숲의 공터에 서서 로렌스의 이름을 불렀다.
쿠웅!
동굴 안에서 짜증이 가득한 발구름 소리가 울리고 로렌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눈 밑이 숯을 칠한 듯 검게 물들어 있었다.
“제발 시간 좀 맞춰서 와라! 왜 맨날 시간이 변하는 건데!”
“대련에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잖아요. 저는 그냥 끝나자마자 오는 거예요.”
라온이 로렌스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너란 놈은….”
로렌스가 이를 갈며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오다가 우뚝 멈춰 섰다.
그는 하늘을 걸어 올라가는 완연한 보름달을 보고서 입술을 씹었다.
“잠깐 오늘이 며칠. 크으윽!”
로렌스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에게서 지금까지 느낀 것과 다른 힘과 기질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로렌스 님?”
“오지 마!”
로렌스가 동굴 바로 앞에서 손을 휘저었다.
“네놈 때문에 루틴이 깨져서 시간을 착각했다! 오늘 대련은 없어! 내일 다시 와라!”
그는 물러나라고 외치며 떨리는 팔로 기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깐 저건….”
라온이 입술을 질겅 씹다가 공터를 박차고 올라가서 동굴 앞에 섰다.
“오지 말라니까!”
“당신….”
로렌스의 외침을 무시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입에서 흐르는 하얀 피를 보며 제천검에 손을 얹었다.
“백혈교주와 무슨 관계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