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98
제798화
라온은 하얗게 젖은 로렌스의 입술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백혈교도의 하얀 피….’
백혈교의 혈귀들은 혈공을 수련할수록 피가 하얀색으로 변하게 된다.
저 정도면 사도 급. 그것도 10사도와 맞먹을 정도로 강한 혈기를 지닌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로렌스를 백혈교주와 연관 지은 건 저 피의 색깔 때문이 아니다.
‘기질.’
사람이 사람으로서 지녀야 하는 기질과 영혼의 향기. 지금 로렌스에게서 느껴지는 모든 것이 백혈교주와 닮아 있었다.
‘분명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로렌스와 매일 대련을 했기에 알 수 있다. 그는 잠이 많고, 귀찮음이 심할 뿐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서 피어나는 기운은 사이하면서도 음습했다.
언제나 진중함이 깃들어 있던 황금빛 눈동자 속에서 짙은 살기가 일렁거렸다.
“왜 갑자기 백혈교주의 이름을 꺼낸 거지? 그녀를 만나보기라도 한 건가?”
로렌스가 역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넘쳐나는 혈기를 통제하기 힘든 듯 그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예. 몇 번이나 만났죠.”
라온이 답을 하면서 제천검에 손을 얹었다. 로렌스가 제 상태가 아닐 때 검계를 열어서라도 제압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너처럼 재능으로 똘똘 뭉친 놈이 그 여자와 마주치고 살아 있다니, 신기한 일이로군.”
로렌스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정말 백혈교주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정체가 더욱더 궁금해졌다.
“후욱….”
로렌스는 점점 더 강해지는 혈기와 달리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동굴의 벽에 등을 기댔다.
“지금 백혈교주는 흑발흑안의 여성의 모습이겠지?”
“그렇습니다.”
라온이 긴장을 풀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직 시간이 남았을지도 모르겠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탈피.”
로렌스가 동굴 바닥을 보며 비틀어진 웃음을 그렸다.
“그 망할 괴물이 그 육체를 벗고, 다른 육체로 갈아탈 시간 말이다.”
“음….”
라온이 로렌스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로렌스 님이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죠?”
육체를 갈아치우는 것까지 알고 있다면 정말 백혈교의 외인이 아닐 것이다.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도록 검병을 잡은 손끝에 힘을 주었다.
“긴장하지 마라. 나는 백혈교도가 아니야.”
로렌스가 힘을 빼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 지랄 맞은 곳에 소속된 적도 없고, 혈공을 익히지도 않았어. 이런 상태로 말해봐야 믿기 어렵겠지만….”
그는 본인이 말하고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검병을 쥐고 있던 손을 내렸다.
“뭐…?”
로렌스는 본인의 말을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 눈을 부릅떴다.
“지, 지금 내 말을 믿겠다고 한 거야? 이런 상황에서?”
“예.”
로렌스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백혈교주를 만났다며! 이 하얀 피와 혈기를 보고도 왜 날 믿는 건데!”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오히려 따져 물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데는 충분했습니다.”
로렌스는 자신이 귀찮게 굴었음에도 단 한 번의 살수를 쓰지 않았고, 후유증이 남을 만큼 심한 공격을 하지도 않았다.
저 방아깨비 같은 남자는 남을 함부로 해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거기다 련주 님도 당신을 믿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렉타르는 로렌스가 외로운 사람이라며 꾸준히 찾아가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로렌스의 저 모습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너는 참으로 특이한 놈이야.”
로렌스가 라온을 올려보며 픽 웃었다.
“그 지랄맞은 성격대로 다짜고짜 검을 뽑고 덤벼들 줄 알았는데….”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닙니다. 저보다 성격이 차분한 사람은 몇 없을 텐데….”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뭣?
“어?”
라스와 로렌스가 동시에 눈을 부라렸다. 둘 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턱까지 떨었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본왕이 본 인간과 마족 중에 제일 미친 놈이거늘!
라스는 헛소리 말라며 고개를 홱 돌렸다.
“너도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놈이로군.”
로렌스가 눈썹을 깊게 내렸다.
“나는 그저 네 할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네 수련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물론 네놈의 집착에 진 것도 있지만….”
그는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라온이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잡았다. 예상대로 로렌스는 렉타르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저도 비슷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당신을 믿고 있으니, 조금 더 신뢰하는 겁니다.”
“그러냐. 윽….”
로렌스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의 전신에서 피어나는 혈기가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미리 대비를 좀 해뒀어야 했는데, 쉽지 않군….”
로렌스는 좋은 상황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그만 가라. 네 마음은 알겠지만, 외인에게 말을 해줄 정도로 가벼운 사정이 아니야.”
그는 빨리 산을 내려가라며 힘겹게 손을 내렸다.
“저는….”
“라온에게는 말해도 괜찮다.”
라온이 그게 아니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렉타르가 부드러운 웃음을 그린 채 동굴 앞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
“오늘이 보름달인 것을 보고 와봤는데, 역시나구나.”
렉타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로렌스에게 다가갔다.
“으으, 련주….”
그는 입술을 깨물고 있는 로렌스의 등에 손을 얹은 채 강맹한 오러를 일으켰다.
우우우우웅!
렉타르의 손에서 장대한 빛이 번쩍이자, 로렌스를 괴롭히던 혈기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렌스가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혈기가 가라앉고, 그의 눈빛에 어려 있던 허연 빛이 녹아내렸다.
“조금 강해졌다고 건방 떨더니, 꼴이 좋아.”
렉타르는 혈색을 되찾은 로렌스의 등에서 손을 떼며 혀를 찼다.
“이, 이게 다 련주의 손자 때문이잖소! 저놈이 내 루틴과 계획을 다 망가뜨렸다고!”
로렌스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턱을 저었다.
“잘했다.”
렉타르는 로렌스의 말을 무시한 채 라온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저놈은 정신을 좀 차려야 했어.”
“잘했다니! 댁의 손자는 마족 그 자체야! 사회에 풀어두면 안 된다고!”
로렌스는 라온을 감옥에 가둬둬야 한다며 악을 질렀다.
-마족이라니!
라스가 로렌스를 보며 빽 소리를 질렀다.
-마계에도 이딴 미친놈은 없느니라! 떠넘기지 말거라!
녀석은 인간이 데리고 가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힘이 좀 나는 모양이로군.”
렉타르는 팔짱을 낀 채로 반대편 벽에 등을 기댔다.
“덕분에 괜찮아졌소. 그런데….”
로렌스가 렉타르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라온에게는 말해도 괜찮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외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렉타르가 라온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 네가 먼저 사정을 말해보거라.”
그는 괜찮다는 듯 잔잔하게 웃어주었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한 발 나와서 렉타르와 로렌스의 앞에 섰다.
“일단 제 소개부터 다시 하겠습니다. 저는 라온 지그하르트. 현 지그하르트 가주의 손자입니다.”
“라온. 그래. 지그하르… 지그하르트?”
로렌스가 기겁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지그하르트 가주면 뇌신? 글렌 지그하르트?”
“그렇습니다.”
“아니, 댁 손주라며. 갑자기 무슨….”
그가 렉타르를 보며 입술을 떨었다.
“둘 다 맞다.”
렉타르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그하르트 가주의 손자이자, 성검련주의 손자지.”
그는 본인이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뭔 미친 소리야….”
로렌스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일단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 백혈교주를 만난 건 지그하르트의 훈련생 시절인데….”
라온은 삼왕자와 함께 처음으로 백혈교와 만났던 것부터 10사도에게 납치를 당할 뻔했던 일, 그리고 얼마 전 전쟁까지 백혈교와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해주었다.
“생각해보니 꽤 많네요. 하긴 오그람 님을 구하기 위해서 백혈교 본단에 뛰어든 적도 있었으니까.”
“듣고 보니 생각나네. 영감들이 지그하르트에 어린 괴물이 하나 있다고 했었어….”
로렌스는 이제야 라온에 대한 정보가 떠오른 듯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있는 천재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미친놈일 줄이야….”
그는 감탄과 경악을 동시에 뱉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듣고 보니, 너도 관계가 없다고 볼 수는 없군. 그 여자는 지금도 널 노리고 있을 테니까.”
로렌스는 뻔하다고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라온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전부가 아니라니?”
“이걸 말하려면 먼저 들어야 할 게 있는데….”
눈매를 좁힌 채로 로렌스를 바라보았다.
“로렌스 님. 백혈교주와 관계가 있는 게 맞죠?”
“…그래.”
로렌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보다 더 깊을 거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현 백혈교주의 육체가….”
라온이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을 이었다.
“제 동료의 어머니입니다.”
“어…?”
로렌스가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저, 정말로?”
“예. 저와 함께 왔던 흑발흑안의 아이와 닮지 않았습니까?”
“나는…현 백혈교주의 육체를 보지 못했다. 그보다 한참 전에 빠져나갔으니까.”
그는 백혈교에서 도망쳤다는 듯한 말을 하며 입술을 씹었다.
“당신은 대체….”
라온이 로렌스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말을 들을수록 그의 정체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그런 비밀까지 알았으니, 나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겠군.”
로렌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 * *
태어났을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
키와 무게가 남들의 2배는 나갔고, 세상에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사고를 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기괴하다 할 것이고, 누군가는 특별하다고 할 테지만, 어머니는 내게 실망했다.
[이것밖에는 안 되나.]달빛보다도 아름다운 여자의 눈동자는 한심함으로 얼룩져 있었다.
[역시 이쪽으로는 진전이 없군. 실험은 여기까지 해야겠어.]어머니는 관심이 없다는 듯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고, 방을 박차고 나갔다.
그녀를 따르던 젊은 남자는 뜻을 알 수 없는 고요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그 뒤로 젊은 유모가 찾아와서 나를 보살펴 주었다. 어머니는 내게 실망하셨지만, 날 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유모는 어머니께 인정받으려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여러 가지 책을 가져왔다.
어머니는 내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석과도 같았다.
그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유모가 가져온 책을 모두 읽고, 집에 남아 있던 수많은 책까지 독파했다.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은 모두 외워버렸다.
밤에는 책을 읽고, 낮에는 창문 밖에 보이는 연무장에서 수련하는 무인들을 지켜보았다.
타고난 눈 덕분인지 무인들의 움직임과 혈기의 이동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이름도 없었고, 이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거라는 생각에 그저 행복했다.
책을 읽고, 남의 무학을 구경하고, 홀로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더니 갑자기 혈기가 개화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지니고 있던 혈기가 드디어 자신에게도 생겨난 것이다. 그것도 수련으로 얻어낸 혈공이 아닌 타고난 기운으로.
남들에게는 있지만, 내게는 없던 것. 어머니를 실망시켰던 게 바로 이 혈기였기에 유모의 주의를 무시하고 바로 어머니를 찾아갔다.
인정받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께 내가 필요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사랑받고 싶었다.
자신이 있었다. 어머니가 지금까지 날 살려둔 건 이날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건 내 착각이었다.
[아직도 살아 있었나?]어머니라 생각한 여자는 내가 타고난 혈기를 조잡하다고 비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러우니 치워.]감정 하나 묻어나지 않는 차가운 외침에 나는 어머니라는 단어를 꺼내 보지도 못한 채 어둑한 감옥에 처박혔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살아남은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에 날 지켜보았던 사도의 배려였고, 유모 역시 그가 보내준 사람이었다는 것을.
절망했다. 모든 것을 저주하며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지하 감옥에서 썩어갈 때 유모가 찾아왔다. 그녀는 상처를 가득 입은 채 웃으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본인이 무사하지 못하면서 나를 먼저 걱정해주는 그녀의 모습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유모는 미리 열어둔 길을 통해서 나를 탈출 시킨 후 사도와 맞서 싸웠다.
그녀는 사도의 손에 죽어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로렌스. 네 이름이란다. 선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살아가렴.]내 어머니는 저 멀리 빛나는 달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살아 있었다.
* * *
“그 이후 여행 중이던 련주에게 발견되었다. 네 할아버지의 성격은 네가 더 잘 알 테니,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이해되겠지.”
로렌스는 그뿐이라며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랬군요….”
라온이 로렌스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생각보다….’
백혈교주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존재 자체를 무시당하다니, 최악의 가정보다 더한 삶이었다. 지옥 같았던 자신의 전생이 생각날 정도였다.
“그리 험악한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다.”
로렌스가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오래 지난 일이고. 이제는 잊었으니까.”
그 말과 달리 그의 눈빛에서는 여전히 슬픔이 흐르고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졌군. 그럼 말을 좀 돌릴까.”
로렌스가 본론을 말하자는 듯 손을 뻗었다.
“네가 궁금한 건 백혈교주의 영혼을 빼낼 방법이겠지?”
“…그렇습니다.”
“방법은….”
그가 잠시 말을 멈춘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