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04
제804화
[특성 의 등급이 12성을 넘어서 새로운 특성 [명경지수]로 진화합니다.]라온은 특성의 진화에 대해 적혀 있는 메시지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특성이, 진화할 수 있는 거였어?’
무학의 경지는 1성으로 시작해서 12성으로 끝나기에 특성도 12성이 되면 성장이 멈추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과 달리 특성은 12성에서 한 번 더 성장하며 새로운 특성으로 진화했다.
‘명경지수….’
흔들리는 물결에서는 얼굴을 비춰볼 수 없고, 잔잔한 물결에서만 자신의 얼굴을 비춰볼 수 있듯이 명경지수란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정신과 마음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즉, 이 가 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고조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미쳤는데.’
라온이 미소를 지은 채 라스를 돌아보았다.
‘왜 이런 걸 안 알려줬….’
-끄르르륵.
라스에게 이유를 물어보려고 할 때 녀석이 하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러어어어언! 미친 것이! 진화를 왜 시켜! 그냥 12성에서 놔뒀으면 됐잖느냐!
라스는 언제나 그렇듯 시스템을 사람처럼 여기며 삿대질과 욕을 퍼부었다.
-이제는 정말 못 참겠느니라! 당장 마계로 돌아가서 다 때려 부수겠느니라!
녀석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며 본인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맙다.’
-열이 뻗쳐서 뒈지겠으니까! 좀 닥쳐!
‘음.’
라온은 난동을 부리는 라스를 놔두고 다시 메시지를 확인했다.
[만검의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0포인트 상승합니다.] [특성 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특성 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특성 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특성 의 등급이 12성을 넘어서 새로운 특성 [명경지수]로 진화합니다.] [새로운 칭호 가 생성됩니다.]20포인트, 세 가지 특성의 등급 상승 그리고 하나의 칭호 생성.
최근 불가능한 업적을 연달아 이루며 많은 이득을 얻었기에 이번 보상이 좀 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절대 아니다.
칭호를 보고 좋아하던 라스 녀석이 명경지수를 확인하자마자, 거품을 무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 얻은 보상 중에서도 상위권인 게 분명했다.
-으으으….
라스는 훌쩍이면서 턱을 부르르 떨었다.
-강철 거머리 칭호를 받았다고 놀릴 게 아니었느니라. 저놈이 가장 많은 피를 빨아먹은 건 바로 본왕이었어….
녀석은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빨아 먹히고 있다며 코를 훌쩍였다.
‘상부상조잖아.’
라온이 웃으며 라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 상부상조? 그게 네놈의 주둥이에서 나올 소리더냐!
라스가 빽 소리를 질렀다.
-본왕의 기운을 골수까지 빨아먹고, 고작 아이스크림 몇 덩이 던져주면서 상부상조? 이 양심에 천사의 날개가 돋은 놈아!
‘칭찬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두 번 밟은 개똥이라는 뜻이니라!
녀석은 강렬한 분노를 뿜어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당장 사과하거라! 상부상조 사과해!
‘미안.’
-끄으윽! 사과하니까 더 열받느니라!
라스는 못 참겠다고 외치며 주먹을 내뻗었다.
‘어쩌라는 거야….’
라온은 라스의 주먹을 가볍게 막아낸 후 칭호를 살폈다.
달라붙은 상대의 무학이나 능력을 배울 때 이해력과 집중력이 올라가고, 상대의 호감을 얻게 된다.
‘오?’
강철 거머리라는 이름이 이상해서 걱정을 했는데,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으어억….
라스는 칭호의 효과를 살피고서 입을 떡 벌렸다.
-거, 거머리 짓을 하면서 호감을 산다고? 피를 빨아 먹히는데도 웃어야 한다는 것이냐? 이 무슨 악랄한 효과더냐!
녀석은 무섭다고 중얼거리며 포동포동한 턱살을 떨었다.
-네놈은 대체 누구 편이냐! 본왕이 이 꼴로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느니라!
라스는 시스템에게 당장 튀어나오라고 외치며 팔을 휘둘렀다.
‘귀 아퍼. 제발 그만 좀 해.’
라온이 엉겨붙는 라스를 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 대가리도 거머리 같은 놈아! 너 같으면 참을 수 있겠느냐! 매일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 나가는데 가만히 있겠냐고!
라스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라며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당겼다.
‘아, 알겠어.’
라온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보상 확인도 끝났고, 대련에서 입은 부상이 아려왔기에 빨리 쉬고 싶었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하루동안 네가 먹고 싶어하는 거 다 먹어줄게.’
라스에게 통하는 유일한 주문을 읊으며 손을 뻗었다.
-키아아아앙!
라스는 절대 안 된다는 듯 고양이처럼 이를 갈았다.
‘이틀.’
-키아아아!
‘사흘.’
-키아?
‘나흘.’
-컁! 콜이니라!
녀석은 결국 거래에 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오늘은 피곤하구나! 빨리 가서 가야겠다.
라스는 가문으로 돌아가는 날이 기대된다며 바로 얼음꽃 팔찌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라스는 꼬리를 살랑이며 사라진 라스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피곤한 건 나지.’
빠르게 옷만 갈아입고서 바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마왕과 동거를 하는 건지, 사나운 고양이를 키우는 건지 모르겠어….”
어떨 때는 글렌보다도 어른스러웠다가, 어떨 때는 땡깡 부리는 아기 고양이보다도 하찮아진다.
아직도 저 마왕님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저 밝은 별빛을 볼 날도 머지 않았군….’
라온은 별의 바다처럼 반짝이는 성검련의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돌아갈 때가 되었어.’
* * *
라온이 잠에 빠진 시간.
렉타르는 응접실에서 두 명의 손님을 맞이했다.
“아주 좋으시겠소.”
로렌스가 소파에 앉으며 굽은 등을 폈다.
“손주가 더럽게 잘났으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르겠어.”
그는 테이블에 놓여 있는 쿠키를 입에 털어넣으며 미간을 구겼다.
“배만 안 부르겠느냐.”
잘레크가 로렌스의 말을 받으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손주가 대륙 제일의 기재이니, 잠을 안 자도 상쾌하겠지.”
그는 콧방귀를 뀐 채로 소파에 걸터 앉았다.
“허허허.”
렉타르는 심통이 담겨 있어도 라온의 칭찬을 들은 게 기쁘다는 듯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큼지막한 미소를 그렸다.
“웃지만 말고 좀 말해주시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로렌스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머리를 앞으로 기울였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20대 초반에 나랑 맞먹는 괴물이 탄생한 건데!”
그는 라온 같은 놈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턱을 떨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
렉타르가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네 녀석이 봐주지 않았다면 오늘 라온은 서 있지도 못했을 거다.”
그는 고맙다고 말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일반 대련에 살기를 담을 필요가 없잖소.”
로렌스가 당연한 소리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라온. 그 건방진 놈도 내게 살의를 일으키지 않았소. 결과는 같았을 거요.”
그는 어떻게 되든 결국 무승부로 끝났을 거라며 작게 웃었다.
“그러냐.”
렉타르는 로렌스의 눈동자를 보며 잔잔한 미소를 그렸다.
“웃기도 하고. 라온하고 꽤 친해진 모양이구나.”
“치, 친해지기는 무슨! 귀찮은 놈이 곧 떠난다니 속이 편해서 그렇소!”
로렌스는 붉어진 얼굴을 긴 머리로 가린 채 고개를 마구 저었다.
“네 녀석은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구나. 다만….”
잘레크가 부끄러워하는 로렌스를 보며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어. 이것도 라온 덕분이겠지.”
그는 라온의 역할이 컸다면서 눈썹을 내렸다.
“시, 신경 끄쇼!”
로렌스는 귓불까지 빨갛게 물들인 채 얼굴을 홱 돌렸다.
“다 됐고! 어떻게 그놈을 찾았는지나 말해주시오!”
그는 궁금해서 입에 가시가 돋힌 것 같다며 손을 내렸다.
“나도 그 부분에는 흥미가 있소.”
잘레크가 로렌스의 옆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지그하르트의 직계를 손자로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거요?”
그도 라온과 렉타르의 사정이 궁금하다며 입맛을 다셨다.
“뭐, 좀 긴 이야기가 될 테지만….”
렉타르가 차로 목을 축이고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두 사람에게 말해주었다.
“…그랬군.”
잘레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어린 녀석에게서 이상할 정도의 절박함이 느껴진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그는 지금에 와서야 라온을 이해할 수 있겠다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망할 놈….”
로렌스가 긴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내 과거 이야기를 들을 때 요상하게도 공감하는 듯한 눈빛을 보였소. 그저 동정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 나만큼이나 기구한 삶을 살았어.”
그는 본인 역시 라온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련주 역시.”
로렌스가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렉타르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전에 찾아와서 본인이 죽으면 성검련을 부탁한다고 한 이유도 라온 때문이었군.”
그는 모든 게 다 이해된다며 흐트러진 백발을 쓸어 올렸다.
“그래.”
렉타르가 차분히 턱을 주억였다.
“라온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대 련주를 숭배하던 놈들도 다 처리했으니, 네가 성검련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는 로렌스를 믿었다면서 작게 웃었다.
“그럼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야지!”
로렌스가 왜 이제야 입을 열었냐며 인상을 찌푸렸다.
“미안하다.”
렉타르는 할 말이 없다며 머리를 숙였다.
“…난 자식도, 손주도 없지만 련주가 이해되는군.”
잘레크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가.”
그는 렉타르를 보며 잔잔한 미소를 그렸다.
“하아, 세상의 지랄 맞은 일은 나 혼자만 겪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
로렌스가 길게 혀를 차고서 응접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보다 더한 놈이 저리 열심히 살고 있을 줄은 몰랐소.”
그는 동굴에만 박혀 있던 세월이 부끄러운 듯 입술을 씹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렉타르가 로렌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미래는 네 손으로 바꿀 수 있지 않느냐.”
“물론 알고 있소.”
로렌스는 기다렸다는 듯 황금빛 눈동자를 번뜩였다.
“라온과 마르타가 백혈교를 칠 때 나도 함께 하겠소. 아니, 내가 앞에 설 것이오.”
그는 유모였던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다며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전에는 겁이 나서 입 밖으로 내뱉지도 못했는데, 그 미친놈 덕에 용기가 좀 생긴 모양이오.”
로렌스는 무식하게 들이받던 라온을 떠올리며 은은한 웃음을 드러냈다.
“흐음.”
잘레크가 테이블 위로 손을 뻗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때는 나도 함께 하도록 하지.”
“겁쟁이 영감이 왜? 라온에게 괴롭힘 당하다가 정이라도 든 거요?”
렉타르는 잘레크의 머리에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헛바람을 흘렸다.
“헛소리 말거라!”
잘레크가 렉타르의 손을 쳐내며 미간을 구겼다.
“말년에 받은 두 번째 제자 놈을 그냥 놔둘 수는 없잖느냐.”
그는 도리안이 눈에 밟힌다며 입맛을 다셨다.
“제자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렉타르가 픽 웃으며 손을 저었다.
“크흠, 말 장난 하지 마시오.”
잘레크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내렸다.
“도리안은 너무 선한 녀석이오. 예전의 나보다 더한 겁쟁이라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어.”
“그럼 언젠가 도리안이 자네보다 더 높이 갈 수도 있겠군.”
렉타르는 잘레크의 구겨진 표정을 보며 턱을 까딱였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잘레크는 오히려 그러면 좋겠다는 듯 가느다란 미소를 그렸다.
“그날 나도 함께 할 것 같은데, 재미있게 되었군.”
렉타르가 책장 위에 올려져 있는 고급진 술병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거 귀한 거잖아.”
로렌스가 술병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념이다. 백혈교를 치는 그날 우리 셋 모두가 모이기를 바라며 한잔하도록 하지.”
그는 로렌스와 잘레크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고서 먼저 잔을 들어 올렸다.
“내 손주의 행복을 위해서.”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서.”
“겁쟁이를 위해서.”
각자의 다짐과 함께 시작된 세 사람의 술자리는 새벽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 * *
어둑한 새벽.
도괴가 5연무장의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오늘도 온 건가?”
그는 연무장 안에 있는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서 피식 웃었다.
“하여튼 신기한 놈이라니까.”
도괴는 짧게 입맛을 다시고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연무장의 바닥을 다지고 있는 리메르였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거냐.”
도괴가 리메르에게 다가가서 눈썹을 깊게 내렸다.
“2달 동안 새벽부터 나와서 훈련 준비를 하고, 도박장에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다니, 미치기라도 한 거냐고.”
리메르는 라온이 성검련으로 떠나 있는 동안 새벽부터 연무장에 나와서 검사들의 훈련을 준비하고, 모두가 떠난 밤에는 본인의 수련에 집중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리메르와 너무 달랐기에 세상이 망할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저 엘프 녀석이 처음 지그하르트에 왔을 때를 보는 것 같았다.
“아니, 왜 나는 성실하게 살아도 욕을 먹는 거지?”
리메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슥였다.
“대주가 없으니, 부대주로서 대주 역할을 대신하는 거잖습니까.”
그는 그저 라온의 빈자리를 채울 뿐이라며 손을 까딱였다.
“웃기고 자빠졌구나!”
도괴가 의심스럽다는 듯 눈썹을 깊게 내렸다.
“대주일 때도 안 하던 짓을 이제와서 한다고?”
“내가 계속 광풍대의 대주였다면 안 했겠지.”
리메르가 잘 다져진 연무장 바닥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금 대주는 라온이잖아요. 그 녀석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는 않거든.”
그는 그것 뿐이라며 가느다란 웃음을 그렸다.
“너 진심이로군….”
도괴가 초연해진 듯한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라온을 정말 왕으로 여기고 있어.”
“계속 말했잖아요. 우리의 왕이라니까. 아직은 좀 미숙하지만.”
리메르는 앞으로 더 달라질 거라면서 잘 기억하라고 중얼거렸다.
“흥. 네놈의 왕이지, 우리의 왕은 아니다.”
도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마음까지 굴복해놓고 딴청부리긴.”
리메르가 도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댁이 이 시간에 온 것도 라온 때문이잖아.”
“허, 헛소리 마라! 나는 그저 부탁을….”
“라온이 복귀할 때마다 가져오는 술을 보면 강아지처럼 헥헥 대는 양반이 무슨.”
그는 다 알고 있다는 듯 혀를 길게 내밀었다.
“누, 누가 강아지야!”
도괴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이를 갈았다.
“뭐, 강아지고, 고양이고 상관없이 라온 녀석이 달라져서 올 테니, 우리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뿐입니다.”
리메르는 그게 전부라고 말하며 다시 연무장을 정비했다.
“하나만 묻지. 만약 라온이 가주에 생각이 없다면 어찌할 것이냐.”
도괴가 진중한 눈빛으로 리메르의 앞에 섰다. 대답 여하에 따라 리메르를 짓누를 기세였다.
“라온이 가주가 되는 게 내 소원이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이미 왕으로 모신 녀석이 어딜 가든 따르는 게 신하의 도리 아니겠어?”
리메르는 그저 그 뿐이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음….”
도괴는 예상외의 대답인 듯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그리고 나한테 관심 주지 말고, 저쪽이나 신경 써요. 이 시간이면 매번….”
리메르가 고개를 저을 때 가주전 쪽에서 거센 진동이 일어났다.
꼭 지진이 터진 것처럼 지그하르트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 영감탱이가 라온 금단현상 때문에 발을 떨어서 매일 지진을 일으키고 있으니까!”
리메르는 좌우로 흔들리는 가주전을 가리키며 악을 질렀다.
“어차피 저 인간 때문에 잠을 못잔다고!”
* * *
렉타르는 라온이 복귀하기 전에 저택의 연무장에서 작은 연회를 열었다.
지그하르트의 축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지만, 검사들이 재료부터 직접 재배한 술과 음식들이라, 색다른 맛과 향취가 스며들어 있었다.
-저거! 저것부터 먹어보거라!
‘한 번만 말해도 알아들어.’
라온은 라스가 가리킨 호박파이를 입에 넣었다.
바삭한 빵과 달짝지근한 호박 그리고 둘 사이에 스며든 땅콩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신기하구나! 건강한 맛인데, 쭉 끌리느니라!
‘그러게. 첫맛은 심심한데, 계속 당겨.’
라온이 라스의 말에 동의하며 파이 하나를 더 입에 넣었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맛은 없다만, 정성이 느껴지느니라.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라스는 마음에 든다며 길게 입맛을 다셨다.
‘하여튼 까다롭다니까.’
-본왕이 까다로운 게 아니라, 네놈이 둔한 것이니라!
녀석은 헛소리 말라고 외치고서 새로운 음식을 먹으라고 손짓했다.
‘그래. 그래.’
라온이 라스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 쪽으로 가면서 우측 시선을 돌렸다.
버렌, 마르타, 루난은 성검련의 검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매일 대련을 해왔기 때문인지 전우와 같은 친근함이 느껴졌다.
‘데려오길 잘했네.’
결국 그랜드 마스터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저 셋 모두 마스터 최상급에 올랐다.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 벽을 부술 수 있을 테니, 정말 큰 이득이었다.
‘물론 가장 큰 변화를 만든 건 저 녀석이지만.’
라온은 제집 안방처럼 연회장을 누비는 도리안을 보며 작은 미소를 그렸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성검련의 모두와 친분을 쌓은 듯 여기저기서 보급을 하며 웃음을 만들어냈다.
‘무학적인 성장 자체는 티끌 수준이지만….’
누구보다도 강해졌어.
본인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지만, 도리안이 심안을 개방한 채로 싸운다면 그보다 강한 검사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생각을 읽는다는 건 그만큼이나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물론 나도….’
라온이 웃으며 고개를 돌리다가 로렌스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는 분한 일이 있다는 듯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로렌스 님?”
라온이 로렌스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없다!”
로렌스는 신경 끄라는 듯 눈썹을 내렸다.
“…아!”
라온이 로렌스를 보다가 옅게 웃었다.
“제가 떠나서 슬퍼하시는 겁니까? 아, 역시 외로움을….”
“무, 무슨 똥 같은 소리냐! 속이 다 시원한데!”
로렌스는 미친 소리 말라며 손을 휘저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술이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네 말이 맞다.”
잘레크가 옆으로 다가와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 너 떠난다고 울었으니까.”
그는 렉타르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로렌스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며 웃었다.
“이런 영감탱이가 노망 났나! 울긴 누가 울어!”
“라온이 떠난다고 울었잖느냐. 또 혼자가 될 것 같다면서….”
“입 좀 다물어! 붙어볼래? 앙?”
로렌스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잘레크에게 악을 질렀다.
“붙는 건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며칠 동안 명상을 하면서 새로운 영감이 떠올랐는데.”
라온이 씩 웃으며 본인을 가리켰다.
“넌 좀 닥쳐!”
로렌스는 제발 입 다물라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렇게 각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성검련으로 이어지는 바위산 초입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검은 안대로 두 눈을 가린 적발의 남성은 다 뜯겨나간 용포를 어깨에 걸친 채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역시… 이곳으로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