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09
제809화
쿠우우우웅!
성검련을 비추는 어둑한 밤하늘이 깨질 것처럼 출렁인다. 어찌나 진동이 강한지 땅에서도 지진이 일어나는 듯했다.
“저, 저건 뭐예요?”
라온과 다르칸의 검술 대결이 끝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도리안이 하늘을 올려보며 입술을 떨었다.
“축하를 하기도 전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데!”
그는 여기가 지옥이냐고 외치며 본인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해를 벗어난 상황에 당황한 것 같았다.
“하,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데…?”
“달도 흔들리네. 내가 죽을 때가 됐나?”
마장검주와 현악검주가 하늘을 훑으며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잘레크가 하늘을 살피며 긴 눈썹을 들어 올렸다.
“말도 안 되는 괴물이 저 뒤에 있는 것 같구나.”
그는 지독할 정도로 강한 힘이 느껴진다며 수염을 파르르 떨었다.
“…결계가 깨지는 건 시간 문제겠어.”
로렌스가 허리를 세우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파도를 맞은 듯 흔들리고 있었다.
“하필 왜 지금인지 모르겠군.”
로렌스는 내상을 입고 검은 피를 흘리는 다르칸과 아직 기운을 회복하지 못한 렉타르를 보며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아무래도 좋은 손님은 아닌 모양이네.”
버렌이 마른침을 삼키며 허리춤의 검병을 꽉 움켜쥐었다.
“하아, 저 미친 인간만으로도 짜증 나는데, 이번에는 또 뭐야!”
마르타가 미간을 깊게 좁힌 채로 어금니를 씹었다.
“왜 맨날 사건이 터지는 건데!”
그녀는 본인들에게만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며 거세게 발을 굴렀다.
“라온. 괜찮아?”
루난은 무너져 가는 하늘에도 관심이 없다는 듯 비틀거리는 라온을 먼저 부축해주었다.
“그래. 버틸 만해.”
라온이 가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르칸과의 결투 때문에 내상이 심했지만, 불의 고리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헌데….’
피 내음이 섞인 숨을 내쉬며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저건 정말 뭐지?’
얼마나 강한 힘으로 결계를 두드리는지 하늘이 쪼개질 것처럼 흔들렸고, 별자리가 뒤틀어졌다.
달까지 일그러지는 것을 보면 아무리 낮게 보아도 초월자였다.
‘그것도 그냥 초월자가 아니야.’
성검련을 지키는 결계를 만든 건 초대 지그하르트의 가주와 그의 동료 마법사다.
저 결계를 부술 정도라면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전대 성검련주에게도 밀리지 않을 무력을 지니고 있을 것 같았다.
‘넌 누구인지 알고 있지?’
라온이 눈매를 가늘게 좁힌 채로 라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녀석은 분노를 지우라고 외쳤고, 미친 스토커가 쫓아왔다고도 말했다.
결계를 부수려는 놈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으으….
라스는 두려움을 느끼는 듯 하늘을 보며 턱을 떨었다.
‘라스!’
-끄윽! 본왕이 말했지 않느냐! 마계에도 그 광녀 같은 스토커가 있다고!
라스는 멀린과 동급으로 미친 마족이 있다며 악을 질렀다.
‘그럼 그 스토커가 너를 쫓아서 여기에 온 거야?’
-저 무식한 기운과 행동을 보면 확실하느니라!
녀석은 결계를 힘으로 때려 부수는 걸 보면 뻔하다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럼 저게 프라이드….’
-무슨 헛소리냐! 러스트지!
‘어?’
결계를 때려 부순다고 해서 당연히 힘에 자신이 있을 오만의 군주라고 생각했는데, 되돌아온 답변은 색욕의 군주였다.
‘새, 색욕의 군주가 힘으로 결계를 부순다고? 주술이나 마법이 아니라?’
예상과는 너무 다른 대답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미쳤다고 하는 것이잖느냐!
라스는 저래서 정상이 아니라는 거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원래부터 퍼렇던 녀석이 더 푸르뎅뎅해진 것 같았다.
-끄으윽! 마계에서도 힘들었는데, 여기까지 쫓아올 줄이야.
라스는 과거를 떠올리다가 괴로워진 듯 탁한 신음을 흘렸다.
-저 망할 것이 찾아오는 곳마다 모조리 망가지느니라! 본왕의 성도…끄흑!
녀석은 여기도 망할 거라며 울먹였다.
‘음,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색욕의 군주와는 다른 느낌인데….’
라스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색욕의 군주와 저 밖에 있는 마왕은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네가 이 정도로 겁먹다니, 강한 모양이지?’
라스는 마왕 중 최강이라 여겨지는 오만의 군주 프라이드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색욕의 군주 러스트에게는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았다.
-강한 건 맞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니라….
라스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며 토실토실한 손을 꼭 끌어 모았다.
-저거 안 죽는다고!
‘어?’
-저 망할 스토커는 분명 마계에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왜 여기에….
녀석은 이해가 안 된다고 중얼거리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스토커면 널 따라온 거 아니야?’
-어…?
라스가 라온을 보며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그, 그런가? 젠장! 그럴 가능성이 높느니라!
라스는 그런 것 같다며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정말 러스트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것 같네.’
혹시 몰라서 라스의 얼음꽃 팔찌 보이지 않도록 소매를 아래까지 내렸다.
“흐음….”
다르칸이 턱까지 흘러내린 검은 핏물을 훔치며 고개를 까딱였다.
“사라져 준다고 말한 직후라 조금 민망하지만, 잠시 남아 있어도 되겠지?”
그가 라온을 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재밌는 일이 있을 것 같거든.”
다르칸은 결계를 부수는 인물이 궁금하다는 듯 밤하늘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래.”
라온이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훨씬 낫지.’
다르칸은 현재 자신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다.
통제 불가능한 인물이지만 위험한 상황에 써먹을 수 있는 패가 될 것이다.
“라온….”
렉타르가 힘겹게 일어나서 라온에게 다가갔다.
“미안하구나.”
그는 지켜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는 듯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괜찮아요.”
라온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가 먼저 싸워주신 덕분에 전대 성검련주의 검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그게 아니었으면 결국 저도 죽었을 겁니다.”
렉타르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가 다르칸의 전투 방식을 보여준 덕분에 놈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손주 하나는 잘 두었군. 성검련주.”
다르칸이 렉타르를 보며 픽 웃었다. 그는 정말 성검련에 미련이 없다는 듯 렉타르를 계속 성검련주라 불렀다.
“그렇지. 내게는 과분할 정도요.”
렉타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동자에서 어떻게 해서든 라온을 지키겠다는 불길이 피어났다. 투지와는 다른 신념이었다.
“과분하면 넘기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뱉은 말이 있어서 어쩔 수 없군. 그럼 손자를 잘 지키라고….”
다르칸이 비틀어진 미소를 그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저 괴물한테서.”
그의 검지가 하늘을 향한 순간 만월이 쪼개지고, 뱀의 눈동자 같은 균열이 돋아났다.
콰아아아아아!
초대 지그하르트 가주와 그의 동료가 만들었던 결계가 바스러지고, 하늘 위에 보랏빛 구멍이 뚫렸다.
-오, 온다! 와! 그 미친 것이 온다고! 끼아아아악!
라스의 눈동자가 막대사탕처럼 팽팽 돌기 시작했다. 요 녀석과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지만, 이렇게 난리를 치는 건 처음이었다.
‘러스트라….’
대체 어떤 마왕이길래 라스가 이렇게 무서워하는 거지?
라온은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안은 채 갈라진 하늘을 향해 기감을 집중했다.
후우우우욱!
보랏빛으로 갈라진 균열의 틈 속에서 검은 로브를 입은 인영이 튀어나왔다.
후드를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키는 크지 않았고, 체형도 호리호리했다.
생각했던 외형과는 많이 달랐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색욕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라스가 언제나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고, 슬로스가 잠에서 깨자마자 나태의 감정을 퍼뜨리는 것과 달리 러스트는 색욕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았다.
강대한 기파에서 전해지는 무력은 경악스러웠지만, 마왕 같지 않았다.
극한까지 무학을 단련한 인간을 보는 기분이었다.
‘저게 정말 러스트가 맞아?’
라온이 천천히 땅으로 내려서는 로브의 인영을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냥 무인 같은데?’
로브의 허리춤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면 검을 쓰는 검사 같았다.
-저, 저건 저 미치광이의 본 모습이 아니니라.
라스가 동그란 손으로 본인의 눈을 가린 채 어깨를 떨었다.
-지금 내숭을 떨고 있는 거라고!
녀석은 다른 마왕들과 달리 아예 본인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저 미친 것의 머리카락이 분홍빛으로 변하면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말거라! 네놈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야!
라스는 러스트가 본 모습을 드러내면 바로 도망치라며 눈을 꾹 내리감았다.
‘일단 기억해둘게.’
라온이 다가오는 러스트의 후드 안쪽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은 하늘색 머리카락인 것 같았다.
또각.
러스트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구두 소리를 내며 무너진 집터 위로 올라갔다.
고오오오오!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강대한 기파에 성검련의 검사들은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수, 숨도 쉬지 말거라! 본왕의 분노가 빠져나갈 수도 있으니라!
라스는 가만히만 있으면 모를 거라며 절대 분노를 일으키지 말라고 외쳤다.
“분명….”
러스트의 검은 로브 안쪽에서 바다처럼 푸른 안광이 번쩍였다.
“이곳에서 느껴졌어.”
끈적한 포도주 같은 음성이 고요히 가라앉은 성검련을 울렸다.
-끄흡!
라스가 동그란 손을 들어서 본인의 코와 입을 막았다. 숨조차 쉬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뭐가 느껴졌다는 거지?”
다르칸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러스트의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라스.”
러스트의 붉은 입술에서 라스의 이름이 눅진하게 흘러나왔다.
“여기 있잖아.”
그녀는 다 알고 있다는 듯 확신에 찬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끼아아아악!
라스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
그 순간 러스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뚝 떨어졌다. 우연이겠지만, 섬뜩했다.
후우우욱.
옷이 모조리 벗겨지고 속살이 비치는 듯한 기분. 왜 공포스럽다는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망할! 들켰느니라!
라스는 정확한 위치는 숨겼지만, 이 장소에 있었다는 게 들켰다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헌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느니라. 저 미치광이는 이곳에 올 수가 없을 텐데!
녀석은 러스트가 이 장소에 나타난 게 이상하다며 눈매를 찌푸렸다.
‘마왕이니까 인간계 정도는 올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런 게 아니니라! 저거!
라스가 다른 사람들을 살피는 러스트를 가리키며 입술을 떨었다.
-길치이니라!
‘어…?’
라온이 눈을 끔벅였다.
‘기, 길치라고? 색욕의 군주가?’
-그렇느니라! 스토커 주제에 길치야!
라스는 뭘 알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본왕의 성에 찾아온 것도 그리드를 노리다가 잘못 온 거라고!
‘아….’
라온이 러스트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그럼 여기는 어떻게 온 건데?’
-본왕이 저 불나방을 심상의 세계로 끌어들일 때 사용한 분노를 감지했을 것이니라.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으니까! 이곳의 입구가 아니라, 결계를 때려 부순 것만 보아도 알잖느냐! 아예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니라!
라스는 러스트가 본인을 추적해서 이곳까지 온 건 절대 아닐 거라며 콧잔등을 구겼다.
‘그럼 우연히 이 근처에 있다가?’
-그렇다고!
녀석은 운도 더럽게 없다며 팔을 휘저었다.
“음….”
라온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러스트가 미치광이라고 하니, 그녀의 행동 방식이 예측되질 않았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러스트의 시선이 한곳에서 뚝 멈췄다.
“너….”
다만 러스트의 눈동자가 향한 건 자신이 아니라, 다르칸이었다.
“너한테서 라스의 냄새가 가장 진하게 나.”
러스트는 이미 선택을 마친 듯 다르칸을 향해 서늘한 눈빛을 드러냈다.
‘음….’
라온이 다르칸을 보며 낮은 숨을 내뱉었다.
‘라스의 심상에 들어갔었기 때문인가.’
다르칸은 라스의 심상 속에서 분노에 직격을 당해 영혼의 상처를 입었다.
자신의 개벽과 이기어검에도 분노가 스며들어 있었기에 이곳에서 가장 짙은 분노가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돼, 됐다! 됐느니라!
라스가 팔을 번쩍 들었다.
-저 미치광이의 시선이 돌아갔어! 어서 빠져나가라!
녀석은 모두를 데리고 튀라며 빠르게 손을 흔들었다.
“라스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르칸이 러스트를 올려보며 길게 입맛을 다셨다.
“너한테서 검사의 냄새가 나는군.”
그는 러스트의 허리춤을 보며 눈동자를 가늘게 말아 올렸다.
“라스와 만났을 텐데?”
“무슨 검술을 익히고 있지?”
“라스는 어디에 있지?”
“경지는 초월인데, 검술도 그러한가?”
“라스가 있는 곳을 말해.”
“검도 특이하군. 곡도는 오랜만이야.”
“라스는?”
“검을 꺼내 봐라.”
“라스.”
“검.”
러스트와 다르칸은 서로를 바라본 채로 평행선 같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인간이 아닌가? 말이 통하질 않는군.”
러스트가 허리춤의 로브를 걷었다. 그녀는 끝이 말려 올라간 검집에서 길쭉한 곡도를 뽑아 들었다.
“크으, 검향이 날카롭구나!”
다르칸은 새로운 검술을 맛볼 생각에 입이 찢어질 듯한 웃음을 그렸다.
쿠구구구구구!
라스에 미친 마왕과 검술에 미친 무인. 어이없게도 두 괴짜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와아.”
라온의 눈동자가 멍하니 풀렸다.
“가슴이 웅장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