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14
제814화
라온이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이기어검?’
정말 이기어검이야?
다르칸이 건네준 낡은 책자에는 이기어검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것도 단순한 설명이나 묘리가 아니라, 이기어검을 익힐 수 있는 구결과 운용법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었다.
‘저 인간….’
라온이 책자 아래로 다르칸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제정신인가?’
자신이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하지만, 그건 다르칸 역시 마찬가지다.
다르칸이 앞에 나가서 러스트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계획을 짜기도 전에 잡혀서 마계로 끌려갔을 수도 있다.
아니,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다르칸은 이곳에 있던 사람을 모두 죽일 수 있음에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주었다.
많은 보상을 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오히려 이런 희귀한 무학서를 건네준다는 게 이해되질 않았다.
“무슨 생각이지?”
라온이 다르칸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나한테 이걸 왜 주는 건데.”
지금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왔다.
“라온?”
“왜? 무슨 일인데!”
루난과 마르타가 당장 뛰어들 것처럼 자세를 낮췄다.
“정말 그 책에서 검이라도 튀어나온 거냐?”
로렌스도 걱정이 되는 듯 수도를 세웠다.
“이 책자에….”
라온이 무학서를 가리키며 눈썹을 내렸다.
“이기어검술의 운용법이 적혀 있어요.”
“허?”
잘레크가 다르칸을 돌아보며 눈을 부릅떴다.
“이, 이기어검이라고?”
버렌 역시 깜짝 놀란 듯 숨을 크게 들이켰다.
“…….”
렉타르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한 듯 고요한 눈으로 다르칸을 바라보았다.
“이제 나한테는 필요 없어서.”
다르칸이 손을 위아래로 휘휘 저었다.
“필요 없다고?”
“그래. 그 책자의 내용은 꿈에서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을 수 있도록 달달 외워놨거든.”
그는 본인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며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해도… 음?”
라온이 다시 무학서를 보다가 눈매를 찌푸렸다.
‘잠깐만. 이 검술, 다르칸의 이기어검이 아니야.’
처음에는 이기어검술의 무학서라는 것에 놀랐지만, 제대로 확인해보니 다르칸의 이기어검과는 운용 방식이 조금 달랐다.
‘이건 오히려….’
구결과 운용법을 읽을수록 다르칸의 이기어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기어검이 떠올랐다.
‘지그하르트 선조의 이기어검!’
조금 전 꿈에서 보았던 지그하르트 선조의 검. 하늘에 별자리를 그려서 결계를 이루던 그의 이기어검이 뇌리에 그려졌다.
“다르칸.”
라온이 책자를 빠르게 살핀 후 다시 다르칸을 불렀다.
“이 책을 어디서 얻었지?”
“역시 관련이 있었나.”
다르칸이 라온을 보며 턱을 살짝 기울였다.
“네 이기어검을 보았을 때 느낌이 왔다.”
그가 진혼검의 칼자루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내 이기어검, 그리고 그 무학서의 이기어검이 섞였다는 것을.”
다르칸의 손가락에서 검은 기류로 이루어진 검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물론 구결이나 운용법은 많이 허술 하지만, 흐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는 그림이 같다고 해야 할까?”
그는 라온의 검에서 이 무학서에 적힌 이기어검이 느껴졌다며 웃었다.
“이번에는 내가 묻지. 너는 어디서 그 이기어검을 본 거지?”
다르칸이 궁금증을 가득 빚어낸 눈빛을 들이밀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음에도 검에 관한 흥미는 지울 수 없는 것 같았다.
“…꿈에서.”
라온은 사실이자, 사실이 아닌 답을 하며 눈동자를 내렸다. 자신도 알 수 없는 게 많기에 지금 해줄 수 있는 말은 저게 전부였다.
“꿈이라….”
다르칸은 자신을 눈을 보며 잔잔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하는 눈빛도 아니지만, 그 말이 맞을 수밖에 없겠지. 그 책은 천 년도 더 된 물건이니까.”
그는 보존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았다면 진즉에 먼지가 되었을 책이라며 웃었다.
“천년….”
라온이 무학서를 두 손으로 잡은 채 입술을 내리눌렀다.
‘처음 이곳에 올 때 했던 예상이 맞았군.’
동굴 속에서 지그하르트 선조의 등을 보고, 그와 성검련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 무학서와 그가 심은 꽃을 보니 그게 정말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어디서 구한 거지?”
라온이 무학서를 덮고서 다르칸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다르칸이 가볍게 고개를 까딱했다.
“이곳은 본래부터 성검련에 내려오는 땅으로 적당히 관리만 하고 찾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씩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성검련주가 된 이후 전부 뒤져보았지. 그리고 그 책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르칸이 무학서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나는 이기어검을 익히고, 이 세상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그는 아주 큰 기연이었다며 진한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당신의 이기어검은 이 책의 이기어검과 다르잖아.”
라온이 무학서를 가볍게 두드렸다. 다르칸의 이기어검과 선조의 이기어검은 비슷해 보이지만, 색이 다르다.
각자 장단점이 있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선조의 이기어검이 더 뛰어나 보였다.
“다르지. 내 것보다 그 무학서의 이기어검이 완성도가 더 뛰어날 거다.”
다르칸은 본인 검술에 대한 부족함을 말하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것을 똑같이 재현하는 건 재미없잖아.”
그는 더 약해지더라도 본인만의 검을 그리고 싶다며 웃었다.
“하….”
라온이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다르칸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역시 정상이 아니야.’
보통은 완성되어 있는 검을 익히고 싶어 하는데, 다르칸은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자신만의 검을 완성시키고 싶어 했다.
일반적인 사람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랐다.
“헌데 지그하르트 직계인 네 꿈에서 그 책의 이기어검이 나왔다는 건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하군.”
다르칸이 라온을 살피며 턱을 매만졌다.
“지그하르트와 성검련 사이에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큰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는 재밌는 일이라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성검련과 지그하르트가?”
버렌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는 지그하르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에 절대 아니라며 사나운 눈동자를 부라렸다.
“아아, 그럴 수도 있다는 거다.”
다르칸이 차분히 손을 내렸다.
“어차피 나는 성검련을 떠난 몸이니, 관계도 없고.”
그는 그저 호기심일 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라온이 이기어검이 적힌 책자를 들어 올리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이 책을 내게 주는 건가?”
“설마 나를 주었던 물건을 다시 뺏어가는 놈으로 만들고 싶은 건 아니지?”
다르칸이 정신을 차리라며 본인의 이마를 두드렸다.
“음….”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나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르칸이 워낙에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었기에 무학서를 받았는데도, 기쁘지 않고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이해가 안 된다면 이해할 필요 없다.”
다르칸이 라온의 굳은 표정을 보며 픽 웃었다.
“너는 그저 나와 한 약속대로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검술의 경지를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건 알고 있어.”
“내가 글렌을 찾아갔을 때 네 모습이 지금과 달라지지 않았다면 너를 먼저 죽여주지.”
그는 죽인다는 말에 자그마한 살기도 싣지 않은 채 등을 돌렸다.
“약속대로 몸 상태가 회복되면 바로 떠나겠다.”
다르칸은 멀리 떨어져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산으로 올라갔다.
“부담스러워 할 필요 없다.”
렉타르가 라온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부터 저런 인간이었으니까. 이미 네게 책을 주었다는 것도 잊었을 게다.”
그는 다르칸을 일반적인 잣대로 생각할 필요 없다며 웃었다.
“그렇게 보이네요.”
다르칸이 조금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면 저 자는 처음부터 더 뛰어난 검술을 보고, 익히고, 배우고 싶어 하는 검광일 뿐이었다.
-본왕의 생각도 같으니라.
라스가 다르칸의 등을 보며 눈동자를 좁혔다.
-저놈은 마계에도 몇 없는 광인이니라. 그저 검만 생각하는 미친놈이야.
녀석도 다르칸의 신념은 인정할 밖에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여기는 어떻게 정리하지?”
마장검주가 난장판이 된 성검련을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루 이틀로 될 일이 아니로군.”
현악검주도 한동안 피곤하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 함께 하면 금방 복구하겠지.”
잘레크는 먼저 몸을 움직이자고 말하며 건물 잔해를 길 옆으로 밀어냈다.
그는 누구도 죽지 않고 끝난 게 다행이라는 듯 잔잔한 미소를 그렸다.
“모여서 사니까 이렇게 되지.”
로렌스가 가볍게 혀를 찼다.
“나처럼 멀리 떨어져서 살면 이런 일이 없잖아.”
그는 동굴에 사는 본인이 최후의 승자라며 웃었다.
“저기 그 동굴에….”
라온이 손가락을 들어서 로렌스가 머무는 동굴 쪽을 가리켰다.
“새로운 주인이 정해진 모양인데요?”
산을 오른 다르칸은 당연하다는 듯 로렌스의 동굴로 들어갔다.
머뭇거림 없는 당당한 걸음을 보니, 처음부터 저곳에서 머물려고 했던 것 같았다.
“흐어어억!”
로렌스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저, 저 미친 인간이 왜 내 동굴에!”
그는 이런 상황을 상상도 못한 듯 턱을 부르르 떨었다.
순식간에 집이 무너진 사람들보다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왜긴 왜겠어. 여기가 다 망가졌으니까 그렇지”
“역시 전대 련주야. 현명해.”
현악검주와 마장검주가 난장판이 된 성검련을 보며 키득거렸다.
“그러게….”
라온은 비명을 지르는 로렌스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함께 사시지 그랬어요.”
“닥쳐!”
* * *
라온은 사흘 동안 성검련의 복구를 도와준 후 지그하르트로 떠날 준비를 마치고 저택을 나섰다.
어느 정도 복구가 된 성검련의 출구 쪽에 렉타르와 지금까지 대련을 해왔던 검사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왜 이리 늦어! 다 너만 기다렸다고!”
마르타가 기다리느라 지쳤다며 콧잔등을 좁혔다.
“아까 방에 없던데 어디 갔었어?”
루난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산에.”
라온이 뒤에 있는 산을 가리켰다. 마지막으로 다르칸을 보려고 했는데, 그는 이미 이곳을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도 가보았는데, 없더구나.”
렉타르도 다르칸을 보지 못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요.”
다르칸에게 조금 더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바로 사라졌다는 게 아쉬웠다.
전대 성검련주답게 약속도 칼처럼 지키는 것 같았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라온이 두 손을 모은 채 렉타르와 성검련의 검사들의 앞에 섰다.
“귀찮으셨을 텐데, 그동안 상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을 담아서 검사들에게 검례를 취했다.
“우리도 즐거웠다!”
“그래. 너처럼 상대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검사는 처음이었어!”
마장검주와 현악검주는 본인들이 더 재미있었다며 웃었다.
“이제야 가는군. 내가 태어나서 본 인간 중 최고의 거머리가.”
로렌스는 이제야 속이 시원하겠다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거머리가 떠나는데 왜 슬퍼 보이느냐?”
잘레크가 로렌스의 긴 머리카락을 들추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군.”
“누, 누가 울어!”
로렌스가 이를 갈며 고개를 저었다.
“운다고 안 했는데, 정말 우는 게냐?”
“아니라고! 3일 동안 노숙해서 몸이 안 좋은 거라고!”
그는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잘레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걱정 마세요. 또 놀러올 테니까.”
라온은 로렌스와 잘레크의 투닥임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절대 오지 마! 쫓아낼 거니까!”
로렌스는 눈꼬리의 물기를 닦아내며 절대 오지 말라고 손을 흔들었다.
오지 말라고 하고는 있지만, 외출할 때 강아지가 빨리 돌아오라고 꼬리를 흔드는 것 같았다.
“그동안 수고했다.”
렉타르는 라온과 버렌, 마르타, 루난, 도리안의 어깨를 차례로 잡아주며 대견함이 깃든 미소를 드러냈다.
“너희가 이곳에서 보여준 열정과 노력을 유지한다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게다.”
그는 모두를 믿고 있겠다며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감사합니다!”
라온 일행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렉타르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마르타.”
로렌스가 훌쩍임을 억지로 누르고서 연하게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를 드러냈다.
“이전에 했던 맹세는 내가 살아있는 한 지키겠다. 그날이 되면 꼭 부르도록.”
“당연하죠. 열심히 힘이나 키우고 계세요.”
마르타는 좋은 노동력을 놔두지 않겠다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우울해 보였던 그녀도 이곳에 온 덕분에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 같았다.
“도리안. 심안을 통해서 볼 수 있다고 전부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걸 기억하거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다면 연락하고.”
잘레크도 도리안에게 마지막 조언을 해주며 직접 손질한 검을 건네주었다.
“네에, 스승님….”
도리안이 훌쩍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든 듯 그의 눈동자에서 눈송이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럼 돌아가 볼게요.”
라온은 모두가 인사를 끝낸 후 렉타르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무 무리하지 말거라.”
렉타르는 조심하라고 말하며 자신을 안아주었다.
“예. 할아버지도요.”
라온이 렉타르를 마주 안아주며 작게 웃었다.
“나도….”
맹하니 허공을 보고 있던 루난이 갑자기 다가와 라온과 렉타르를 한 번에 껴안았다.
“허….”
“너도 진짜.”
라온과 렉타르가 눈을 꼭 감고 있는 루난을 보며 웃을 때 뒤에서 거센 파공음이 울렸다.
산 쪽에서 검은 불길에 휘감긴 검이 날아오고 있었다.
쩌어어어엉!
라온이 다급히 제천검을 뽑아서 뒤통수를 노리던 검을 쳐냈다. 검은빛에 휘감긴 검은 멀리 튕겨 나가지 않고 바로 앞에서 강렬한 검명을 터트렸다.
우우우웅!
다르칸의 검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그가 자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왔다. 전대 성검련주다운 인사였다.
“걱정 마. 약속은 지킬 테니까.”
라온은 허공에 떠오르는 검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우우우웅!
검은 만족스럽다는 듯 짧게 검날을 튕기고서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
“젠장! 아직도 안 떠난 거야?”
또 노숙을 하게 생긴 로렌스가 이를 악물었다.
“그럼 정말 가보겠습니다.”
라온은 렉타르와 모두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서 성검련의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어둑한 동굴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천 년 전의 이곳과 지금의 성검련을 비교하여 떠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선조가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고,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는 모른다.
하나 확실한 건 자신은 직접 정한 길을 걸어갈 뿐이라는 점이었다.
-본왕이 원하는 길은 민트초코 로드이니라!
라스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민트초코의 길을 걷겠다고 외쳤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산더미 같은 민트초코를 내놓거라!
‘제발 좀!’
라온이 민트초코를 달라고 외치는 라스를 밀어버리고 다시 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다만….’
언젠가 이곳에는 다시 올 것 같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국 이 장소에 다시 올 게 될 것 같았다.
“…….”
라온은 마지막으로 성검련의 전경을 살핀 후 출구로 들어갔다.
* * *
칠흑 같은 장포를 걸친 데루스 로베르트가 다리를 꼰 채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석상이 된 듯 바다 위로 비치는 태양만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며 태양이 가라앉고, 어두워진 수면 위로 노을이 떠올랐을 때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쿠와아아아아아!
강렬하게 뿜어지는 물보라 위로 노을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붉은 머리카락의 남성이 떠올랐다.
여성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곱상한 얼굴을 한 남자는 서늘한 눈동자를 번뜩이며 고개를 틀어 올렸다.
“그릇이 한층 더 단단해졌군.”
데루스는 남성의 모습이 만족스럽다는 듯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들어 박수를 보냈다.
“역시 너는 그 모습이 잘 어울리는구나. 베오른.”
그는 여성스러운 외모의 남자를 바라보며 베오른이라는 이름을 불렀다.
“아니, 이제는 그 전의 이름으로 불러야….”
“됐습니다.”
베오른이 건조한 눈동자로 고개를 저었다.
“날 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둘뿐이니까.”
“그런가.”
데루스는 어찌 되든 좋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마음의 준비는 끝났겠지?”
“물론입니다.”
베오른이 격하게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손으로 그 힘을 쟁취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