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32
제832화
“웃기고 자빠졌네!”
아리스가 미간을 찌푸린 채 등이 굽은 중년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어욱!”
중년인이 엉덩이를 감싸 쥔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허리를 쭉 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등이 굽은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왜, 왜 때리십니까! 제가 죽을 위기를 이겨내며 정보를 가져왔는데….”
“그 망할 정보 때문에 고생했던 일을 벌써 잊었냐고!”
아리스는 기억 안 나냐면서 중년인의 이마를 툭툭 쳤다.
“더럽고! 춥고! 덥고! 아주 지랄 맞은 던전이었잖아!”
그녀는 던전을 다 부숴버릴까 고민했다며 말아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도련님의 소식이라면….”
라온이 시선을 내려서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설마 시프 형에 관한 겁니까?”
“맞아.”
아리스가 짧게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우리 아들놈을 찾아서 던전에 갔다고 했잖아. 그 정보를 물어온 게 요놈이거든.”
그녀가 쭈구리가 된 중년인을 보며 콧잔등을 구겼다.
“라, 라온 님이시죠? 아리스 님의 정보원 파라스라고 합니다.”
중년인은 스스로를 파라스라고 소개하며 고개를 숙였다.
“라온 지그하르트입니다.”
아리스의 정보원이라고 하기에 그의 인사를 정중히 받아주었다.
“예의 차릴 필요 없어. 도둑놈 출신이거든.”
“…도둑놈이요?”
“그래. 임무에서 만나서 정보원으로 갱생시켰지. 하던 가락이 있어서 꽤 쓸만했는데, 늙어서 예전 같지가 않네.”
아리스는 요새 일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그래서 제가 혼자 가서 다시 확인해봤습니다.”
파라스는 아리스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시선을 들어 올렸다.
“던전을?”
“예! 그런 던전에 아무것도 없는 게 너무 이상하잖습니까.”
“누가 먼저 챙겨갔겠지.”
아리스는 던전이 비어있는 건 굉장히 흔한 일이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던전에 뭐가 있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 망할 아들놈이 그곳에 갔드냐 안 갔느냐가 문제인데, 흔적 자체가 없었잖아.”
“하지만 시프 님의 동선을 생각하면 그 던전 말고는 갈 장소가 없습니다!”
파라스는 불랑 마을을 시프가 지나간 건 확실하지 않냐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그래서 다시 간 던전에서 뭘 보기라고 했어?”
아리스는 일단 들어주겠다는 듯 턱을 까딱였다.
“먼저 알게 된 게 하나 있습니다.”
파라스가 반짝이는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나흘 동안 던전에 있었는데, 밖에 나오니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시간 축이 느리게 흐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임의로 바뀐다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게 발견이냐!”
아리스가 그럴 줄 알았다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끄,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파라스가 두 손을 휘휘 저으며 턱을 떨었다.
“저도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던전 쪽으로 향하는 괴인들을 발견했습니다!”
“괴인?”
“예. 흙먼지가 가득 묻은 로브로 전신을 가린 놈들이었는데,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불길했습니다.”
그는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아올랐다며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있다 싶어서 미행을 하는데, 제 예상대로 던전으로 들어가더군요.”
“음….”
아리스가 뻗어내려던 주먹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봐.”
“아, 예!”
파라스가 심호흡을 하며 똑바로 앉았다.
“기척을 최대한 죽인 후 놈들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아리스 님도 아시다시피 그 던전은 끊임없이 변해서 길을 잃게 만드는데, 놈들은 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정확한 길을 찾아갔습니다. 던전의 끝에 도착하는데, 몇 시간도 안 걸리더군요.”
그는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 목소리를 낮춘 채 말을 이어갔다.
“놈들은 저희가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돌아갔던 던전의 끝에 붉은 보석을 내려놓고 뭔지 모를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파라스는 그 괴인들을 따라하듯 두 손을 모았다.
“귀가 따가운 고통을 참으며 시선을 내리자, 놈들의 발밑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나더니, 새까만 구멍이 열렸습니다.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었죠!”
그는 지금도 떨리는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구멍?”
아리스가 파라스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말이 안 돼. 내가 기감을 퍼뜨릴 때 아래에서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녀는 평범한 땅일 뿐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주술을 사용했다고!”
파라스는 본인이 직접 보았다며 다시 주술사들의 행동을 묘사했다.
“흐음….”
아리스는 고민이 되는 듯 눈매를 좁혔다.
-저런 엄마라면 본왕도 도망칠 것이니라! 안 찾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라스는 시프에게 이 이상의 고통을 주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모르잖아.’
시프가 정말 아리스에게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면 다행이지만, 안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 찾는 게 먼저였다.
“보석까지 있었다고 했지?”
아리스가 파라스를 보며 손가락을 펼쳤다.
“예? 예! 각자 보석 하나씩을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주술만으로는 내 기감을 속이기 힘들 거야. 하지만 그 보석이 아티팩트라면 가능성이 있지.”
그녀는 아티팩트에 주술까지 이용한 공간이라면 본인도 모를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라온이 파라스를 바라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지하로 향하는 길이 있다는 걸 몰랐죠.”
비연회주의 사무실 안에 있던 지하 서고의 문을 떠올리며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좋아. 계속해봐.”
아리스는 일단 파라스의 말을 믿기로 한 듯 턱을 까딱였다.
“고, 고맙습니다.”
파라스는 라온에게 고개를 숙이고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는 그 세 놈을 따라서 어둠으로 일렁거리는 구멍을 내려갔습니다. 흡사 마계로 향하는 길처럼 소름이 돋아올랐죠.”
-무슨 헛소리냐! 마계는 그렇게 악독한 곳이 아니야!
라스는 잘 모르면서 떠들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다.
“길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굉장히 깊게 내려왔다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더욱더 기척을 죽인 후 검은 구멍을 벗어나자 천장과 바닥 그리고 벽까지 쇳덩이로 만들어진 듯한 괴기스러운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쇠로 이루어진 공간?”
“예.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려고 할 때 쇠로 된 벽과 지하에서 사람의 신음이 들려오더군요.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이 감옥이라는 걸.”
그는 지금도 살이 떨린다며 어깨를 부여잡았다.
“벽과 천장, 바닥까지 쇠로 이루어진 감옥이라….”
리메르가 눈매를 찌푸렸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백여 년 전에 전쟁을 일으켰던 철주련이잖아.”
아리스는 철주련의 흔적 같다며 눈썹을 내렸다.
‘철주련….’
라온이 살짝 턱을 내렸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철주련은 기갑과 주술을 조화시켜서 강기를 막아낼 정도의 무기와 갑옷을 만들었던 무력 단체다.
오황오마에 비견될 정도로 강한 세력이었지만, 과한 정복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멸망했다고 들었다.
“제가 철주련의 감옥을 보지는 못했지만, 들었던 것과는 비슷했습니다.”
파라스는 가는 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그 주술사 놈들은 익숙한 걸음으로 쇠의 길을 나아갔지만, 저는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어깨를 좁힌 채로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도둑놈으로 살아온 제 감각이. 이 이상 나가면 죽는다고 경고를 해주더군요.”
파라스는 그 경고를 어겼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라며 겁에 질린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그렇겠지.’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파라스의 말대로 정말 쇠로 이루어진 감옥이 있다면 내부의 경계가 훨씬 강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무사히 돌아온 게 용했다.
“너무 위험해서 혼자 삭혀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가려는데….”
파라스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감옥 가장 안쪽에서 시, 시프 님의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시프?”
“예!”
그는 분명 시프의 목소리였다며 탁한 숨을 내뱉었다.
“개지랄….”
아리스가 파라스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시프가 그런 곳에 잡혀있을 리가 없잖아! 거기다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그녀는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표정이 심각할 정도로 굳어졌다.
“아시잖습니까. 저는 아리스 님에게 얻어맞고 나가떨어지는 시프 님의 비명을 누구보다도 많이 들었습니다.”
파라스는 시프와 함께 수련을 받았기에 잘 알고 있다며 땅을 짚고 있는 손을 떨었다.
“거기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시프 님이 그 던전에 갔던 건 확실합니다. 혼자 던전에 가셨다가 주술사들에게 잡힌 건 아닌지….”
그는 시프가 걱정된다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
라온이 파라스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동자를 떨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전쟁 중에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가, 가려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파라스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 갈라진 목소리를 볼 때 얼마 버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리스 님….”
라바윈도 어떠한 조언을 꺼내지 못한 채 입술만 씹었다.
“으으….”
아리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마구 헝클다가 결국 결정을 내린 듯 라온에게 걸어갔다.
“라온. 미안하다. 시아는 나중에 보러 가야 할 것 같아.”
그녀는 먼저 시프를 찾기로 결정한 듯 고개를 저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숙인 아리스를 향해 담담한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네가 왜….”
“잘났다는 형도 만나고 싶고, 사람들 납치한 놈들의 면상도 좀 보고 싶어서요.”
거기에 그 특이한 던전이 선조가 만든 것일 수도 있기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너는 시아를 구해야 하잖아! 가족부터 생각하라고!”
아리스는 지그하르트로 돌아가서 영혼석부터 챙겨주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그건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라온이 아리스의 떨리는 손을 잡으며 은은하게 웃었다.
“이모도 제 가족이에요.”
“웬일이래? 말 잘했어!”
“맞습니다. 매번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는 저희도 도와줘야죠.”
“이모….”
마르타, 버렌, 루난도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아리스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 * *
“흐음….”
패드릭은 시아의 검진을 마친 후 옆머리를 긁적였다.
“왜, 왜요?”
실비아가 두 손을 모은 채 넘어질 정도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시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그녀는 시아를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바칠 것처럼 절실한 눈빛을 보였다.
“성자님….”
에드가 역시 긴장이 되는 듯 퍼렇게 질린 입술로 페드릭을 불렀다.
“큰일은 아니다.”
페드릭은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시아의 영혼이 흔들리는 간격이 조금 빨라진 것 같은데,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구나.”
그는 적응하는 단계일 수도 있기에 무조건 나쁜 건 아닐 수도 있다며 눈썹을 내렸다.
“…너는 말을 좀 빨리 해라.”
글렌이 페드릭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그 역시 긴장했던 듯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나도 시아 같은 환자는 처음이라니까!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고.”
페드릭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검진하는 것만으로 지친 듯 긴 숨을 내쉬었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괜찮은 게 맞겠지?”
글렌이 마른 입술로 시아의 상태를 물었다.
“그래. 큰 의미가 있는 움직임은 아니야. 다만 전에도 말했듯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영혼석을 찾는 게 좋을 것이야.”
페드릭은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빨리 치료해야 한다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미안해….”
실비아는 시아의 손을 어루만지며 침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
에드가도 그 많던 말을 입안에 가둔 채 실비아의 어깨를 꼭 잡아주었다.
“…알겠다.”
글렌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병실 밖으로 나갔다.
“후우….”
그는 밤공기를 마시며 딸과 사위 그리고 깨어나지 못한 손녀에게 들려줄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력하군.’
뇌신이라는 이명 그리고 지그하르트라는 이름으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답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직접 움직일 수도 없었다. 혹여나 정보가 빠져나가서 자신이 없을 때 오마가 쳐들어온다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피해가 벌어질 테니까.
“갑갑하군.”
글렌이 밤하늘을 보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꽉 눌렀다.
작은 짜증을 내뱉고서 가주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멀리서 비연회주 채드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 가주님! 가주님!”
채드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꺽꺽 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글렌이 채드를 향해 손을 저었다.
“무슨 일이냐.”
“라, 라온 님께서 가주님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채드는 지금 막 도착했다며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그 섬에 도착했다는 건가.”
글렌이 가는 미소를 그리며 봉투를 받았다. 손주의 깔끔한 필체를 보며 마음이라도 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편지지를 펼쳤다.
“음…?”
하지만 글렌은 웃지 못했다. 그는 편지의 내용을 보며 턱을 부르르 떨었다.
“이거 진짜냐?”
“가, 가주님 친전이라 저는 못 봤는데….”
채드가 무슨 일이냐며 눈을 끔벅였다.
“…영혼석을 찾았다고 한다.”
글렌은 바로 등을 돌려서 페드릭 저택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아, 아버지?”
“아버님?”
실비아와 에드가가 글렌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너 뭐하냐?”
페드릭이 정신이 나갔냐며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라온이 영혼석을 찾았단다!”
글렌은 라온의 편지를 보여주며 정말 오랜만에 환한 웃음을 그렸다.
“라, 라온이요?”
“벌써…?”
“허어!”
실비아와 에드가, 페드릭 모두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라온….”
실비아도 감격한 듯 참고 있던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나도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은 몰랐다. 역시 내 손자야!”
글렌은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으며 탄성을 터트렸다.
“아니죠! 그 전에 제 아들이에요!”
실비아가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을 훔치며 싱긋 웃었다.
“내, 내 아들이기도 한… 아닙니다!”
에드가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실비아와 글렌의 눈치를 보고서 바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뭐 없나? 생명의 은인은 너무 약한데….”
패드릭이 입맛을 다시며 눈동자를 굴렸다.
시아의 병실에 오랜만에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 * *
라온은 파도를 가르는 청풍의 갑판 위에서 라스에게 손짓했다.
‘라스.’
-왜 부르느냐?
라스가 살짝 고개를 들어 올린 채 눈동자를 굴렸다.
‘축제를 기대하고 있었잖아. 왜 가만히 있냐?’
-본왕도 가족이 소중하다는 건 알고 있느니라.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본왕을 너무 냉혈인으로 보지 말거라.
‘…고맙다.’
-흥!
라스는 바다를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뭐냐?
‘러스트.’
-끼아아아악!
라스는 폼 잡던 그 상태로 축 쓰러졌다.
-어디! 어디에 있어! 그 광녀가 어디에 있는 것이냐!
‘…….’
-어? 뭐, 뭐냐! 나타난 게 아니야?
‘그냥 러스트의 이름만 부른 건데.’
라온이 헛웃음을 흘렸다. 라스가 러스트를 무서워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커허험! 그래서 뭘 물어보려는 건데.
라스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힌 채 천천히 몸을 띄웠다.
‘음, 러스트도 믿을 수 있는 마왕 맞지?’
-믿을 수 있다라….
라스가 턱을 매만졌다.
-네놈도 봤겠지만, 스토킹적인 면에서는 절대 믿을 수 없느니라. 다만 기본적인 신뢰를 묻는다면 그 녀석보다 더 믿을 수 있는 마족은 없을 것이니라.
녀석은 스토킹말고는 약속을 잘 지킬 거라며 고개를 꾸벅였다.
‘네 보증이면 믿어도 되겠네.’
라온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니라.
라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잘 판단하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러스트를 믿는 너를 믿거든.’
-으음….
녀석이 말을 하지 못한 채 눈꺼풀을 떨었다.
“멀린, 러스트. 나와.”
멀린과 러스트의 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분명 있으리라 생각하며 두 사람을 불렀다.
후우우우웅!
라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에서 분홍빛 기류가 일어나고, 이전에 보았던 해달이 배 위로 폴짝 뛰어 올라왔다.
“네가 먼저 찾다니, 별일이 다 있네!”
멀린은 기분이 좋은 듯 헤헤 웃으며 조개를 깨는 작은 돌을 흔들었다.
“흐으윽….”
러스트는 아직도 패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훌쩍이고 있었다.
-뭐, 뭐야! 이 미친 것들 아직도 따라다니고 있었어?
라스가 멀린과 러스트를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너는 왜 이것들을 부른 것이냐!
녀석은 이해를 못 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한테 부탁이 있어.”
라온이 품속에 넣어두었던 영혼석을 꺼냈다.
“이 영혼석을 지그하르트로 가져가줘.”
그 말을 하면서 영혼석을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어…?”
멀린이 놀랍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걱정하고 계실 테니, 먼저 안심시켜 드리고 싶거든.”
라온은 부탁한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이 중요한 걸 나한테 맡긴다고?”
멀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으음….”
러스트도 대략적인 사정을 알고 있는 듯 눈썹을 내렸다.
“그래. 너희를 믿으니까.”
라온은 그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안 돼! 스토커 놈들에게 그 말을 해서는 안 됐느니라!
라스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라온의 말은 흘러나왔고, 멀린과 러스트의 눈동자가 맹렬한 불꽃이 되어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