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33
제833화
“이거 청혼 맞지? 나랑 결혼하자는 맞지?”
멀린은 좋다고 외치며 방방 뛰었다. 물론 여전히 아기 해달의 모습이었다.
“알겠어. 평생 함께할게.”
러스트 역시 신뢰를 청혼으로 받아들인 듯 분홍빛 기류를 열고, 밤의 우울함을 지워버리는 듯한 절세의 미모를 드러냈다.
“어…?”
라온이 뒤로 물러서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믿는다고 했을 뿐인데, 왜 결혼하자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 멍충아! 저런 광녀들한테 해서는 안 되는 말 1순위가 바로 믿는다는 말이니라!
라스는 자신이 멸망의 씨앗을 심었다고 외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청혼이 튀어나오는 건 이상하잖아!’
-가장 중요한 물건을 맡기면서 믿는다고 했으니, 저쪽 입장에서는 청혼으로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잖느냐! 저 광녀들을 정상인으로 생각하지 말라니까!
녀석은 답답하다며 본인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 그럼 내 잘못이야? 스토킹을 당한 것도 난데?’
-그렇느니라! 다 네놈의 탓이니라!
‘어으….’
자신을 스토킹한 이들을 용서하고 믿는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게 잘못이라는 말을 들으니 헛웃음이 나왔다.
다만 멀린과 러스트의 눈빛을 보니,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만큼은 확연히 느껴졌다.
“식장은 어디로 할까? 나는 작은 곳도 좋아. 부를 친구가 아무도 없거든.”
멀린은 방긋 웃으며 친구가 없다는 말을 꺼냈다.
“나는 웅장한 곳에서 하고 싶어. 너와 나의 수하들을 전부 부르려면 그 집 전체를 식장으로 만들어야 할 거야.”
러스트는 지그하르트 전체를 예식장으로 만들 생각인 듯 분홍빛 눈동자를 번뜩였다.
“아, 있다 동물 친구들! 너도 구면이잖아!”
멀린이 동물 친구들을 부를 수 있다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아….”
라온이 멀린과 러스트의 몽롱한 표정을 보며 입술을 꾹 내리눌렀다.
‘말이 안 통해.’
지금 저 둘은 각자의 상상에 빠져서 외부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등골 사이로 오싹한 소름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일단 진정해. 내가 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니까.”
라온은 두 손을 들어 올려서 멀린과 러스트의 시야를 막았다.
“그런 뜻이 아니라고? 그럼 무슨 뜻인데?”
멀린이 자신의 손에 들린 영혼석을 바라보며 가뭄이 온 듯한 건조한 음성을 흘렸다.
“…말해봐.”
러스트 역시 따스했던 분홍빛 눈동자를 차갑게 굳힌 채 턱을 틀었다.
“음….”
라온이 멀린과 러스트의 시선을 받으며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말을 잘못하면 이 배가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차올랐다. 2사도와 싸울 때보다 더한 긴장감이 온몸을 적셨다.
‘좋아. 역으로 가자.’
머릿속으로 모의 대화를 진행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도 알겠지만, 이 영혼석은 내 목숨보다도 소중한 물건이야. 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니까.”
라온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멀린과 러스트 앞으로 영혼석을 내밀었다.
“그리고 현재 내가 이 영혼석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너희 둘뿐이지.”
멀린과 러스트를 차례로 바라보며 작게 입술을 비틀었다.
“나는 너희를 믿고 영혼석을 맡기려고 한 건데, 돌아오는 답이 참으로 실망스럽군. 어떻게 잘 운반할지를 상의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야기부터 하는 꼴을 보니, 내가 너희 둘을 잘못 본 모양이야.”
진심으로 실망했다고 말하며 고개를 가늘게 저었다.
“아니야! 미안해!”
멀린이 바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말을 꺼냈다.
“미안. 나도 그게 먼저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어….”
러스트도 실수를 했다고 말하며 눈썹을 내렸다.
“정말인가?”
라온은 라스의 어투를 따라 하며 멀린과 러스트에게 냉랭한 눈빛을 보냈다.
“응! 협력해서 꼭 할아버님께 전해줄게!”
멀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글렌에게 전해주겠다며 두 손을 모았다.
“믿어줘.”
러스트도 누가 오든 영혼석을 지키겠다며 입술을 꾹 눌렀다.
“…좋아. 그럼 한 번만 더 믿어보지.”
라온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영혼석을 꺼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것이냐….
라스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결혼하자면서 미쳐 있었는데 갑자기 왜….
‘내 신뢰를 받은 걸 굉장히 좋아하길래, 그걸 박탈하려고 하면 저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
멀린과 러스트는 일방적으로 따라다니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명확한 신뢰를 받았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물건을 맡기는 상황이니, 그 가치를 잃으면 저렇게 당황하고 사과를 할 거라 예상했다.
‘근데 누구한테 줘야 하지?’
영혼석은 하나이기에 둘 중 한 명에게 주어야 했다.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멀린이지만, 무력 면에서는 러스트가 위였기에 고민이 되었다.
거기다 한 명한테 주면 다른 한 명이 실망할 수도 있어서 더욱 머리가 아파졌다.
‘이건 어떻게 해결해야….’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고 있을 때 멀린이 조개를 깨는 돌을 내려놓고 손을 뻗었다.
“나한테 줘. 쟤는 길치라 나를 따라다니는 게 나아.”
멀린은 본인이 가져가겠다며 고개를 꾸벅였다.
“음….”
러스트는 길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반박하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길치?’
-전에 말해줬잖느냐! 저거 길을 못 찾아서 정작 중요할 때는 없다니까!
‘아, 그랬지.’
생각해 보니, 라스가 처음 러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길치 이야기를 했었다.
“길을 더럽게 못 찾아. 직진으로만 가면 되는데, 갑자기 혼자 뒤로 간다니까!”
멀린은 본인이 아니었다면 러스트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그 정도는 아닌데….”
러스트는 약한 반박을 하면서 눈동자만 굴렸다.
“그래. 그럼 멀린이 가지고, 러스트는 옆에서 호위를 해줘.”
라온이 옅게 웃으며 멀린에게 영혼석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영혼석을 운반하려고 너희 둘의 영혼을 소모할 필요는 없어. 느려도 좋으니까 안전하게만 옮겨줘.”
“응!”
“그래….”
멀린과 러스트는 자신이 걱정해준 것에 감격한 듯 고운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럼 부탁한다.”
라온이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멀린과 러스트에게 턱을 끄덕였다.
“믿어줘. 그리고….”
상큼하게 웃던 멀린이 섬뜩한 눈빛을 드러냈다.
“하다가 멈춘 말은 이번 일이 다 끝난 후에 하면 되는 거지?”
그녀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광기가 스며든 미소를 그렸다.
“영혼석을 전달한 후에 자세히. 아주 자세히 들을게.”
러스트는 안 들으면 납치라도 하려는 듯 자세히라는 말을 반복하며 서늘한 눈빛을 번뜩였다.
“…….”
두 사람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밤에 젖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파아앙!
라온은 눈앞까지 튀어 오른 파도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잊은 거 아니었어?’
-푸헤헤헤헤!
라스가 그럴 줄 알았다며 낄낄 웃었다.
-그렇게 잘난 척하다니! 그냥 시간만 뒤로 미룬 거잖아!
녀석은 잘 해결해보라고 말하며 놀리듯이 손을 휘저었다.
‘너 왜 웃냐?’
-웃기니까 웃는….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닌데? 특히 러스트는 내가 아니라, 너를 쫓는 거야.’
-어….
라스는 이제 본인도 이 상황에 끼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웃는 표정 그대로 석상이 되었다.
-어, 어쩔 거야! 이 망할 놈아!
녀석은 왜 자꾸 일을 벌이냐며 자신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미래의 일은 미래의 라온과 라스가 해결하지 않을까?’
라온은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말하며 허허 웃었다.
-그게 말이 되냐고!
라스는 지금 당장 대책을 생각하라며 주먹질을 해댔다.
‘어떻게든 될 거야. 그리고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라온은 라스의 주먹을 맞으며 뒤를 돌았다.
“왜 안 말리셨습니까?”
고요한 갑판을 바라보며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을 불렀다.
“부대주님?”
부대주라는 말을 하자, 달빛이 그려낸 돛의 그림자 속에서 리메르가 걸어 나왔다.
그는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음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중간에 끼어들 줄 알았기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의외였다.
“부대주가 대주를 어떻게 말리냐.”
리메르가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을 그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불복은 너처럼 버릇없는 녀석이나 가능한 거야.”
그는 본인은 힘없는 아저씨일 뿐이라며 웃었다.
“그렇다고 해도 멀린에게 영혼석을 맡기는 걸 지켜만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라온이 살짝 시선을 내렸다. 리메르가 나태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많이 보이지만, 중요한 일에서 만큼은 자신 이상으로 판단이 빠르다.
그런 그가 다 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건 분명 의외의 일이었다.
“네가 그 둘에게 말했듯이 나도 널 믿거든.”
리메르는 그저 그뿐이라며 웃었다.
“음….”
라온이 리메르를 보며 가늘게 입술을 씹었다.
‘달라.’
리메르는 광풍대를 믿는다는 말을 지겨울 정도로 자주 꺼냈는데, 요즘 그의 음성에는 어릴 때와 달리 진심이 어려 있었다.
“전에도 이 질문을 드린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봐요. 죽을병 걸린 거 맞죠?”
“아니라니까!”
리메르는 멀쩡하다며 본인의 가슴을 강하게 두드렸다.
-사실이니라.
라스가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 귀때기 놈 더럽게 건강해.
녀석은 리메르가 건강한 게 짜증난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세이피아로 돌아갈 생각인가요?”
“그 지겨운 곳에 왜 가! 난 지그하르트에 몸과 마음을 바쳤다고!”
리메르를 헛소리 말라며 손을 마구 저었다.
“그럼 왜 그렇게 변하신 건데요?”
“변한 게 아니라 원래 이랬다니까.”
리메르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네 할아버지를 따라서 지그하르트에 왔을 때부터 나는 이런 상태였어.”
“하지만 제가 본 부대주님은….”
“그래. 중간에 잠시 불이 꺼졌지. 나 때문이기도 하고, 지그하르트 때문이기도 하고. 하지만 다시 불을 태울 장작을 찾았어.”
그는 자신을 보며 따스한 미소를 그렸다.
“새로운 빛과 희망을 보고 그 빛과 함께 걷게 되었으니, 나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야지.”
리메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서 등을 돌린 채 선원실로 내려갔다.
-빛? 무슨 빛?
라스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치가 없네.’
라온이 한심한 표정으로 라스를 바라보았다.
‘넌 앞으로 나한테 눈치 없다는 말 하지 마.’
-서, 설마 저거 네놈한테 한 소리냐?
라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럼 누구겠어.’
-이딴 놈이 무슨 빛이고 희망이냐! 어둠이고 절망이지!
녀석은 농락과 절망의 마왕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며 소리를 질렀다.
-왜들 못 보는 것이냐! 이놈의 속은 마족보다도 꺼멓느니라! 아주 새까맣다고!
* * *
청풍은 밤낮없이 달려서 시프가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항구 마을에 도착했다.
“라바윈은 청풍에 남고, 나와 광풍대, 파라스만 간다.”
아리스는 미리 생각을 해둔 듯 배에서 내리자마자, 인원을 나눴다.
“알겠습니다.”
라바윈은 두 번째 정박이었기에 본인이 지키는 게 옳다고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자.”
아리스는 조급함을 느끼고 있는지 마을 뒤편을 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파라스가 안내를 하겠다고 선두에 섰다.
“왜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빨리 가기나 해!”
아리스가 파라스의 등을 찰싹 때렸다. 평소처럼 장난을 치는 것 같지만 안색이 어둡다.
까맣게 타들어 가는 속을 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예. 최대한 빠르게 가보겠습니다.”
파라스도 아리스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아도 돼.”
아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찾을 수 없던 공간을 만든 것을 보면 보통 놈들이 아니야. 안전이 우선이니까. 침착하게 가자.”
그녀는 아들을 걱정하고 있음에도 모두에게 본인의 목숨을 가장 먼저 생각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럼 차분히 가보자고.”
“예.”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항구 마을로 들어갔다.
어업으로 먹고사는 마을답게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얼굴에는 활기와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는 있었지만, 항구도시였기에 딱히 심하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평범한 마을이었다.
“시프 형이 이곳을 지나간 건 확실한 거죠?”
“예.”
파라스가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프 님의 인상착의를 본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워낙에 잘생기셔서. 아, 물론 라온 님 정도는 아닙니다만.”
그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잘 아네. 우리 조카가 최고지!”
아리스가 파라스의 어깨를 툭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같은 얼굴이지만,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을 거예요.”
라온이 억지로 웃는 아리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 비명을 지른 사람이 시프 형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만약 시프 형이라고 해도 오래 가둬둔 사람을 갑자기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분명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겁니다.”
“…고맙다. 다만 아직 네 위로를 받기에는 이 이모가 강해.”
아리스는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어느 쪽이든 괜찮을 거야.”
그녀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입술을 달싹였다.
‘마을에 정말 별다를 게 없군.’
작은 항구 마을이었기에 평범한 무인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그하르트 영역 내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숨기기에는 좋겠어.’
외부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장소이기에 무언가를 노리고 오거나, 보물을 숨기기에는 최적의 장소 같았다.
“지, 지금 듣고 왔는데.”
파라스가 아리스에게 다가와서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숲 쪽으로 가거나,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그는 주술사들이 아직 그 던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다른 길로 나갔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아리스가 주먹을 쥔 채 고개를 저었다.
“다 조져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녀는 사람을 가둬두는 주술사들이 좋은 놈일 리는 없다며 입술을 씹었다.
“바로 던전으로 가자.”
아리스는 이 이상 마을에 머물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바로 마을 밖으로 나갔다.
“지금부터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잘 따라와 주세요.”
파라스는 마을 밖에 나가자마자, 검은 빛살이 되어 숲으로 나아갔다.
광풍대가 간신히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속도. 놀라운 건 저게 전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평범한 도둑 출신이 아닌 것 같았다.
“중간에 휴식은 없으니까. 적절히 조절하면서 와.”
아리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서늘한 기파를 휘감은 채 파라스의 뒤를 쫓아갔다.
“저 말대로 뒤쳐지지 않도록 해. 아리스 님은 우리를 챙겨줄 여유가 없으니까.”
“예!”
광풍대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전력을 다해서 아리스와 파라스의 뒤에 따라붙었다.
라온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광풍대를 먼저 보내고 맨 뒤에서 움직였다.
반나절 이상 보법을 밟으며 달린 후에야 파라스의 걸음이 멈췄다.
길이 굉장히 험했고, 이동 중에 몬스터들도 많이 만났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을 것 같았다.
“이곳입니다.”
파라스는 거대한 나무와 바짝 마른 나무가 겹쳐 있는 땅을 가리켰다. 나무의 그림자 속에 땅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기괴한 공간이 열려 있었다.
“이런 곳을 어떻게 찾으신 겁니까?”
버렌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직접 만든 거 아니야?”
마르타도 발견한 게 신기하다며 헛바람을 흘렸다.
“숨겨진 장소를 찾는 게 제 전업이었으니까요.”
파라스는 직업상 평범한 집만 터는 게 아니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시프 님은 제 마음의 동기입니다. 악마 앞에서 고난의 세월을 함께 보냈죠. 어떻게든 찾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게 전부였다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
루난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자.”
아리스는 농담을 할 여유도 없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먼저 던전으로 들어갔다.
“…예.”
라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자신의 성격이라면 나오는 주술사들을 제압해서 정보를 빼냈겠지만, 아리스의 어두운 표정을 보니 의견을 낼 수가 없었다.
가늘게 고개를 젓고서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던전의 통로에 들어갔다.
선조의 기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그가 만든 던전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보일 수도 있지만.’
선조의 흔적을 보고 그의 기억으로 들어간 적도 있기에 감각에 집중하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던전 내부는 발광 효과가 있는 듯 빛이 없음에도 앞이 훤하게 보였다.
-마나가 뒤틀려 있는 곳이구나. 누가 이런 걸 만든 거지?
라스가 요상하다고 말하며 시선을 좌우로 돌렸다.
‘그러네.’
녀석의 말대로 내부의 마나 흐름이 외부와 달랐다. 마나가 꼭 굳어 있는 것 같았다.
“바로 밑에….”
천천히 기감을 펼치며 일행의 뒤를 따라갈 때 아리스가 걸음을 멈추고 입에 손가락을 얹었다.
“누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