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38
“이모….”
라온이 손끝을 바르르 떨었다. 뇌리가 하얗게 물든다. 당장 아리스에게 달려가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육체와 정신이 따로 놀듯이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
버렌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이런 시발!”
마르타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욕을 내뱉었다.
“…시프?”
루난은 석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시프!”
라온이 스스로의 뺨을 쳐서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
“너 이 새끼!”
“거기까지.”
아리스를 구하기 위해서 태화보를 밟으려고 할 때 시프가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시프는 다가오면 아리스를 죽이겠다는 듯 그녀의 가슴에 박힌 흑검을 살짝 비틀었다.
“끄으윽!”
아리스가 숨이 끊어질 듯한 신음을 흘리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너….”
라온이 평온한 시프의 눈빛을 보며 이를 갈았다.
‘제기랄!’
라스가 시프를 어디서 본 것다고 하길래 처음에는 의심의 끈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시프는 검이 아니라, 과도를 들기 힘들 정도로 몸이 굳어 있었고, 오러도 말라 붙은 상태였기에 누구를 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는 아리스와 시프의 다정한 모습이 자신과 실비아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을 놓았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그것도 아리스가 저렇게 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 시프….”
아리스가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하며 시프를 돌아보았다.
“악의는 없습니다. 어머니.”
시프가 싱긋 웃으며 아리스의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저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었다.
“대, 대체 왜. 네가 원하면 뭐든 해줬을 텐데….”
아리스는 검이 가슴에 박힌 고통보다 시프의 변화가 더 아픈 듯 검게 죽어가는 입술을 떨었다.
“내가 험하게 수련을 시켜서? 아니면 너무 늦게 구하러 와서…?”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유를 물으며 시프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수련? 확실히 힘들었죠. 남들은 내 재능이 뛰어나다고 칭찬을 퍼부었지만, 당시의 저는 강함에 그리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시프가 덤덤한 눈빛으로 턱을 저었다.
“헌데 어머니를 떠나고 나니 다르더군요.”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키득거렸다.
“제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그리고 다른 인간들이 얼마나 하찮은 버러지들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힘이라는 거, 참으로 좋더군요.”
시프는 그걸 알게 해줘서 고맙다며 아리스의 뺨을 어루만졌다.
“나, 나는 그런 걸 위해서 널 수련 시킨 게 아니야!”
“어머니께서 누구에게도 지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약자를 괴롭히고, 지배한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더군요.”
그는 아리스의 희망을 짓밟듯 입꼬리를 길쭉하게 말아 올렸다.
“하지만 네 행적은 들은 바가 없었는데….”
“멍청한 짓을 했다가는 바로 끌려갈 테니, 신분을 속였죠. 적난검 바스, 혈랑귀 단슈, 마운살 이스란. 제가 쓴 이름이 참 많답니다.”
시프는 하나 같이 살인마로 이름 높은 이명을 말하며 본인이 죽인 사람이 천이 넘는다고 말해주었다.
“전부 어머니 덕분이에요. 저의 신도 만났고, 이 지그하르트의 피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으니까.”
“피?”
라온이 미간을 좁힌 채로 마른 입술을 뗐다.
“우리의 피가 특별하다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야. 정말 다르거든.”
시프는 그것만큼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 하지만 내가 너를 막아야 하는 건 알겠구나!”
아리스가 입술을 씹으며 가슴에 튀어나온 흑검을 잡았다. 그대로 부러뜨릴 생각인 것 같았다.
“아….”
하지만 그녀는 흑검의 칼날을 깨부수지 못하고, 힘이 빠진 듯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 이모?”
라온이 아리스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뭐지?’
지친 상태에서 기습을 당했다고 해도 아리스는 수많은 고난을 이겨낸 초월자다.
시프의 힘없는 검 정도는 부숴야 하건만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너 무슨 짓을….”
아리스가 억지로 기운을 쥐어 짜내서 시프의 흑검을 뽑으려고 했지만, 그의 검은 바위처럼 흔들리지도 않았다.
“이 검은 특별합니다. 제 피와 영혼으로 갈고 닦은 검이니까.”
시프는 뽑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어머니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뽑아드릴 수 있죠. 이제 시간도 됐으니까.”
그는 싱긋 웃으며 아리스의 가슴에 박혀 있던 흑검을 뽑았다.
푸카아아악!
검이 뽑히자마자, 아리스가 쓰러지고 그녀의 구멍 난 가슴에서 살벌한 양의 피가 쏟아져 내렸다.
파아아아!
아리스의 피가 땅에 닿은 순간 공동의 천장과 벽, 바닥에 말라붙어 있던 핏덩이들이 붉은빛을 뿜어냈다.
우우우우웅!
피를 녹여낸 듯한 새빨간 빛무리는 무대의 조명이 된 것처럼 시프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혈광이 시프의 육체 위로 스며들자,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그의 상처가 지워지고, 살과 근육이 차오르며 건장한 외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쿠우웅!
라온이 머뭇거림 없이 땅을 박찼다.
‘지금 가야 해.’
이대로 놔둔다면 아리스는 무조건 죽는다.
급격히 기운이 증폭되고 있는 시프에게서 아리스를 구할 수 있는 순간은 지금 한순간뿐이었다.
치리리리링!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극쾌의 서리연을 그었다. 서리의 검과 창철의 검이 시프의 머리와 심장을 향해 동시에 내리꽂혔다.
“어머니만 챙겼어야지.”
시프가 가는 웃음을 그리며 턱을 저었다.
“욕심이 과하구나. 동생아.”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허공이 갈라지며 서리연의 두 참격을 지워버렸다. 아리스의 아들답게 공간검의 묘리가 상당했다.
쯧.
라온이 혀를 차고서 아리스에게 다가갔다.
“이모!”
아리스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전신이 마비된 듯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육체적인 고통 이상으로 정신적인 충격이 큰 것 같았다.
“젠장!”
라온이 이를 악문 채 아리스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지금도 피가 쏟아지는 상처에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후우우욱!
신성력을 전부 소모한 덕분에 아리스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라, 라온….”
아리스의 일그러진 눈동자 위로 붉은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을 눈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고, 공간검?”
파라스가 아리스에게 다가가다 말고, 시프를 보며 턱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시프 님이 공간검을….”
“그게 무슨 말이에요?”
라온이 파라스를 돌아보며 눈매를 좁혔다.
“시프 님은 공간검을 익히지 못하셨습니다. 전혀 다른 검술을 익혔는데 왜 갑자기….”
파라스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저놈….
라스가 시프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망나니의 힘을 뽑아내고 있느니라.
‘힘? 이모의 오러를 뽑아낸다는 거야?’
확실히 아리스의 기운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반대로 시프의 기파는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단순한 오러가 아니라, 힘! 저 망나니가 지닌 무력 자체가 뽑혀 나가고 있느니라!
라스는 본인도 이런 현상은 처음 본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파라스가 왜 시프의 공간검을 보고 놀랐는지 알 것 같았다.
말은 안 되지만, 놈이 아리스의 공간검을 강탈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야 저놈이 누구인지 떠올랐느니라.
녀석이 시프를 노려보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저거 강에서 널 죽이려고 했던 놈이니라.
‘날 죽이려고 했다고?’
-본왕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네놈이 죽기 직전이었다고 말했었지? 저놈이 너를 쫓아와서 죽이려고 했던 그놈이니라!
라스는 오러가 노출되니 알겠다며 입매를 비틀었다.
‘설마…?’
자신이 부왕과의 생사결에서 쓰러진 후 악양귀의 그림자에 숨어있다가 마지막에 튀어나와 칼을 찌른 놈이 있다고 들었다.
“베…오른?”
라온이 시프를 보며 뼈를 씹듯이 베오른의 이름을 불렀다.
“허?”
시프가 라온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기억하는 건가? 분명 기절해 있었는데?”
그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이제 와서 속일 필요는 없지.”
시프는 쓰러져 있는 아리스를 보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베오른이다.”
그는 소름이 끼치는 미소를 지우고, 바위처럼 굳건한 눈빛을 드러냈다.
“…시프는 죽은 건가?”
라온이 이를 갈며 물었다. 아무래도 베오른이라는 놈이 시프를 죽이고, 그의 거죽으로 연기를 했던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시프가 다시 괴이한 미소를 그렸다.
“내가 베오른이자, 시프다.”
베오른은 본인이 시프라고 말하며 턱을 까딱였다.
“뭐…?”
라온이 입술을 떨었다.
“혹시 내가 죽고 베오른이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 거야? 그거 너무 순수하잖아!”
베오른이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아….”
아리스의 신음에 시선을 내렸다. 그녀도 베오른의 말을 들은 듯 눈동자에 고여 있던 피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그놈을 보는 것 같아.’
라온이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데루스 로베르트.’
의도를 알 수 없는 순수한 악의. 모든 인간을 자신의 체스 말처럼 써먹는 데루스 로베르트를 마주했을 때처럼 더러운 기분이었다.
“너는 내가 죽인다….”
라온은 아리스에게 맹세를 하듯 그녀의 앞에 서서 제천검과 진혼검을 세웠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라. 저놈 지금….
라스가 시간이 별로 없다며 손을 휘저을 때였다.
쿠구구구구구!
베오른의 전신에서 화산이 폭발한듯한 거대한 마나의 파동이 일어나며 웅대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 던전이. 아니, 이 섬 전체를 뒤흔드는 힘. 그랜드 마스터의 벽을 부수고, 초월에 오른 자만이 드러낼 수 있는 패도적인 기파였다.
“이게….”
베오른이 본인의 손을 보며 만족스럽게 입맛을 다셨다.
“진짜 초월이로군.”
그는 이제야 닿았다며 싱긋 웃었다.
“말이 안 돼….”
라온이 마른 입술을 물어뜯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방식으로 초월에 오를 수는 없어!”
자신은 초월이 얼마나 높은 경지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타인에게서 빼앗은 힘으로 초월에 오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베오른은 초월에 오른 지금 이 순간에도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아리스의 영역에 도달할 것처럼.
“그래.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지. 하지만….”
베오른이 루비처럼 반짝이는 공동을 훑어내리며 웃었다.
“이 공동에 어려 있는 절망과 공포 그리고 우리의 몸에 흐르는 지그하르트의 피가 있다면 가능해.”
그는 아리스를 위해 천이 넘는 인간의 피를 뿌렸다며 턱을 까딱였다.
“지그하르트의 피…?”
라온이 베오른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저놈은 조금 전에도 지그하르트의 피가 특별하다고 말했었다.
“너는 왜 지그하르트의 직계만이 검계현신을 사용하는 건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나?”
베오른이 흑검을 휘돌리며 스스로를 가리켰다.
“뭐?”
“그랜드 마스터나 초월에 오른 검사들은 많지만, 검계를 사용하는 사람은 오직 지그하르트 뿐이야. 그 이유를 알고 있냐고.”
그가 가볍게 고개를 틀었다.
“모르겠지. 그저 당연하다고 여겼을 테니까.”
“…….”
“우리가 검계를 쓸 수 있는 이유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피 때문이다. 우리 선조는 인간이 아니거든.”
베오른은 다른 종족의 피가 섞였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피가 더 진하게 스며든 혈족만이 검계를 쓸 수 있는 거지.”
그는 재미있지 않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투우웅!
라온이 베오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 틈을 놓치지 않고, 태화보를 밟았다.
‘위험해.’
저놈이 이 이상 강해진다면 자신의 전력을 쏟아내도 이길 수 없다.
피에 관한 내용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 끝을 내야 했다.
단번에 검계현신 개벽을 쏟아내기 위해서 거세게 발을 구를 때였다.
-라온!
라스가 소리를 지르기 무섭게 베오른이 밟고 있는 땅이 새하얗게 빛나면서 냉막한 인상의 청년이 튀어나왔다.
“방해하지 말거라.”
청년의 손에서 성스러울 정도로 하얀빛이 뿜어나오자, 라온과 그 뒤에 있는 광풍대 검사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바르디엘. 뭐 하는 짓이냐.”
베오른이 냉막한 인상의 청년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분의 말씀을 잊었나? 아리스 지그하르트의 힘을 흡수하는 게 최우선이다.”
바르디엘은 최우선 사항을 잊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놈 정도는 식후 운동도 안 돼.”
베오른은 짜증이 난다는 듯 발을 굴렀다.
“라온 지그하르트와 다른 인간들은 내가 막겠다. 너는 네 일에만 집중해라.”
바르디엘은 베오른을 무시하고, 스스로도 하얀 빛 속으로 가라앉았다.
“인간도 아닌 놈이 걱정은 더럽게 많군.”
베오른이 혀를 차며 쓰러진 아리스에게 다가갈 때였다.
“어…?”
뒤늦게 숨겨진 방에서 나온 도리안이 베오른을 보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다행히….”
베오른이 새빨간 혓바닥으로 입맛을 다셨다.
“하나는 남겼네?”
* * *
“여긴 뭐야….”
라온이 온통 하얀 세계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냉막한 인상의 청년이 빛을 뿜어낸 순간 반항을 할 새도 없이 이 공간으로 빨려오게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못 깰 수준은 아니야.’
공간 자체의 내구성이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빨리 깨고 나가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치이이이잉!
라온이 숨을 고르며 제천검을 내리칠 때 공간이 갈라지며 자신을 이곳으로 집어넣은 냉막한 인상의 청년이 튀어나왔다.
쩌어어어엉!
청년은 자신의 검격을 막아선 채로 고요한 눈빛을 드러냈다.
“비켜.”
“미안하지만, 너희는 이곳에 머물러 줘야겠다.”
그는 나갈 수 없다며 강대한 빛의 방패를 세웠다.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거지? 그러면….”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말아쥔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눈빛이 빛을 지우는 어둠처럼 섬뜩하게 번뜩였다.
“내가 네 목을 베고 나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