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44
제844화
고요하다.
라온이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느낀 생각이다.
‘마나가 내 의지를 따르고 있어.’
마나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온 세계에 퍼져 있는 가지각색의 기운이 내 것처럼 느껴진다.
손끝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고 있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 심장에 내려놓았다.
우우우우웅!
심장 안쪽에서 아홉 개의 불의 고리가 공명한다.
만화공의 불꽃만이 아니라, 글래시아의 냉기 그리고 가루누아의 바람까지 고리와 함께 약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슴 가장 깊은 곳에는 리메르가 전해주었던 슬픔이 맺혀 있었다.
하아아.
라온이 무거운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초월의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불의 고리>가 9성에 도달했습니다.] [>만화공>이 9성에 도달했습니다.] [>글래시아>가 9성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초월급 특성….] [특성….]눈을 뜨자마자, 보상 메시지가 떠올랐다.
라온은 그 무엇도 보지 않고, 메시지를 내렸다. 저게 아니라도, 자신이 초월에 올랐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네, 네놈!
라스가 창백해진 얼굴을 들이 밀었다.
-괜찮은 것이냐? 냉기가 골수까지 차올랐는데, 어떻게….
녀석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턱을 부르르 떨었다. 파랗게 일렁거리는 눈동자에 걱정이 가득 어려 있었다.
‘미안했어.’
라온이 살짝 몸을 일으키며 라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그건 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말하거라! 죽어야 할 놈이 왜 초월에 오른 건데!
라스는 궁금해 죽겠다는 듯 손을 위아래로 휘저었다.
‘그건….’
라온이 답을 해주려고 할 때 얼음이 바스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광풍대 검사들이 달려들었다.
“라온!”
“괜찮은 거냐?”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루난, 버렌, 마르타가 자신을 붙잡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무슨 짓이라니?”
라온이 세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몸이 죽은 것처럼 하얗게 얼어붙다가 갑자기 허공에 떠오르더니, 이 공동을 가득 채울 정도로 짙은 황금빛 불꽃을 피워냈어. 꼭 네 등 뒤에 불꽃의 날개가 튀어나온 것 같았다고!”
마르타는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며 눈동자를 떨었다.
“그 불꽃이 우리를 가두고 있던 냉기의 벽을 녹여주었어. 신기하게도 뜨겁지는 않더군.”
버렌은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며 짧게 고개를 저었다.
“라온. 괜찮은 거 맞아?”
루난은 오직 자신의 상태만이 걱정되는 듯 팔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괜찮아.”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상이 낫지 않았기에 몸 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음, 너 무언가 변한 것 같은데….”
마르타가 이상하다는 듯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나도 그렇게 보여. 이 녀석 주변의 마나가 의지를 가진 것처럼 요동치고 있어.”
버렌도 신기하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라온 설마….”
루난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초월에 올랐어.”
라온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마나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초, 초월이라니….”
“어떻게? 너는 죽어가고 있었는데….”
-맞느니라! 제대로 좀 말해 보거라!
루난, 마르타, 버렌만이 아니라, 라스도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스승님이….”
라온이 잠이 든 듯 누워 있는 리메르를 보며 입술을 깊게 깨물었다.
“스승님이 가르침을 내려주셨어.”
“음….”
“그게 무슨….”
“…….”
버렌, 마르타, 루난은 리메르를 돌아보며 눈동자를 떨었다.
-설마… 심상의 세계에서 귀때기를 만난 것이냐?
‘그래.’
라온이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던 리메르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은 심상의 세계까지 찾아와서 내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어. 덕분에 초월에 오를 수 있었지.”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님에도 아직 리메르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너 초월에 오른 것만이 아니라, 뭐랄까….”
“사람이 변한 것 같아.”
마르타의 말을 루난이 이어서 붙였다.
두 사람의 말대로 지금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은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었다.
“도련님….”
전신에 붕대를 감은 도리안이 다가와서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부대주님을 구하지도 못하고, 아리스 님을 지키지도 못했어요. 다 제가 못난 탓이에요!”
도리안은 육체보다도 마음의 고통이 심한 듯 핏기 없는 얼굴을 땅에 처박았다.
“반성은 나중에 하자.”
라온이 도리안의 어깨를 잡아주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복수부터 끝내야지.”
“복수는 힘들어….”
버렌이 시선을 내린 채 고개를 저었다.
“네가 초월에 올랐다고 해도 적은 초월자가 둘이고, 이곳을 벗어난 지 3시간이 지났으니까.”
그는 이미 던전의 출구에 도착했을 거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하고 싶어. 그 씨발 새끼의 면상을 물어 뜯어버리고 싶다고!”
마르타가 울먹이며 피가 흘러내리는 주먹을 떨었다.
“하지만 던전이 무너져서 우리가 나가려면 놈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써야 할 거야….”
그녀는 진심으로 분하다는 듯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거기다 이 던전은 외부와 시간축이 다르잖아요. 놈들이 저희를 죽이지 않고 나간 이유도 밖의 시간과 너무 차이가 날까 봐 놔둔 거라고요….”
크레인은 지금 나가게 되면 몇 달이 지나있을지 알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의 시간은 빠르게만 흐르지 않아.”
라온이 뒤를 돌아서 파라스를 바라보았다.
“파라스 님.”
“예? 아, 네….”
파라스는 이번 일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10년은 더 늙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 두 번째로 왔을 때는 일주일을 머물렀는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셨죠?”
“마, 맞습니다. 한 달은 지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루밖에 흐르지 않아서 놀랐죠.”
그는 본인도 당황했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던전의 시간 축은 주술로 움직이는 거야. 빠르게도, 느리게도 만들 수 있지.”
라온이 손끝을 내리자, 길을 막고 있던 바위들이 먼지가 되어 녹아 내렸다.
“주술사가 모두 죽었으니 놈들은 불가능하지만, 나는 가능해.”
이전에는 걸려 있는 주술을 푸는 것만이 가능했지만, 초월에 오른 지금은 주술의 흐름조차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승님의 마지막 말을 전해줄게.”
라온이 광풍대를 돌아보며 가느다란 미소를 그렸다.
“‘그 망할 새끼는 무조건 죽여! 알지? 내가 이 말 안 하고 가려고 했는데! 너희까지 괴롭히는 꼴을 보니까! 못 참겠….’ 이러고 가셨어.”
리메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어주자, 광풍대 검사들 사이에서 작은 웃음을 흘러나왔다.
모두가 리메르답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자. 스승의 복수는 해야지.”
라온이 무겁게 등을 돌리자, 땅에 박혀 있던 제천검과 진혼검이 저절로 뽑혀서 그의 검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방해만 될 텐데?”
버렌과 마르타는 걱정이 된다는 듯 입술을 떨었다.
“대주님. 저는….”
도리안은 또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며 본인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 복수는 나 혼자서 할 일이 아니야.”
라온이 공동에 고여 있는 녹색 바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길은 내가 만들 테니, 따라 와.”
신뢰가 담겨 있는 그의 마지막 말에 광풍대 검사들의 눈동자에 푸른 광망이 일렁였다.
* * *
“하아.”
시프가 길을 막고 있는 바위를 부수며 긴 숨을 내뱉었다.
“공간이동 없어?”
그는 바르디엘에게 뭐라도 해보라며 손을 까딱거렸다.
“결계가 깨져서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
바르디엘은 천력을 회복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언제까지 흙먼지를 뚫고 올라가야 하는 거야 천사도 도움이 안 되네.”
시프는 바르디엘을 비웃듯 콧방귀를 뀌었다.
“베오른….”
바르디엘이 시프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너 성격이 변했군.”
“성격? 난 원래 이랬는데?”
시프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 턱을 모로 틀었다.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힘을 흡수한 부작용인가.”
“부작용은 무슨! 나는 멀쩡해! 네가 판단할 수준이 아니니까 그럴 뿐이다.”
그는 헛소리 말라며 손을 휘저었다.
“…그 여자는 어떻게 할 거지?”
바르디엘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한 듯 아리스로 화제를 돌렸다.
“이동하는 동안 남은 힘도 다 흡수했으니까….”
시프가 어깨에 걸쳐 있는 아리스를 보며 콧잔등을 구겼다.
“이제 짐덩이일 뿐이야. 버려도 상관없어.”
그는 정말 당장이라도 던져버릴 것처럼 아리스를 어깨에서 내렸다.
“아니, 아직 아니다.”
바르디엘이 고개를 저었다.
“북멸왕은 라온 지그하르트를 누구보다도 아끼고 있다. 라온의 죽음을 말하며 그를 꿰어내려면 아리스 지그하르트의 시체라도 필요할 거다.”
“그거 좋은데?”
시프는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며 다시 아리스를 들었다.
“물론 그 시체를 조작해야겠지. 뒤에서 기습한 게 드러나면 안 될 테니까.”
바르디엘은 본인이 직접 하겠다고 말하며 시선을 내렸다.
“좋아. 그쪽은 맡기… 오!”
시프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작은 구멍에서 내려오는 햇살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드디어 밖이 보이는군!”
그가 손을 뻗자, 햇볕이 내려오던 구멍이 폭발하더니,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을 만한 통로가 열렸다.
“하아, 역시 해가 좋다니까.”
시프는 던전 밖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공간이동이 안 된다고 걸어서 돌아갈 건 아니지?”
“몇 시간만 있으면 회복된다. 기다리도록.”
바르디엘은 이곳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이동하자고 말하며 나무에 등을 기댔다.
“혹시 모르니, 이 던전에 사람을 배치해두는 게 좋을 것 같군. 라온 지그하르트는 죽었을 테지만, 혹여나 다른 인간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는 던전의 입구를 바라보며 시선을 좁혔다.
“영 아깝단 말이야.”
시프가 짧게 혀를 찼다.
“라온 지그하르트. 그놈을 연구하면 마족의 힘도 뽑아낼 수 있었을….”
“늦었구나.”
그가 입맛을 다실 때 던전의 입구에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라온은 정말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차분한 안색으로 던전을 나왔다.
피에 젖은 금발과 넝마가 된 채 찢어진 흑룡포 그리고 아직도 벌어져 있는 가슴의 상처까지.
폐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의 붉은 눈동자는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허…?”
바르디엘이 라온을 보며 턱을 부르르 떨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시프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살아서. 그것도 초월에 올라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그가 키득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헌데 어떻게 온 거냐? 뒤에서 따라 오는 기척은 못 느꼈는데?”
“너와 내가 그런 말을 나눌 사이인가.”
라온은 대답을 하지 않고 두 손을 내렸다.
“그래. 확실히 그런 사이는 아니지.”
시프는 실례를 했다며 조롱하듯 턱을 까딱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만나서 기쁘구나 동생아. 네 피를 흡수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거든. 네놈의 재능까지 받아들인다면 지그하르트에서 날 막을 사람은 할아버지밖에 없을 거야.”
그는 예전에 기습해서 얻었던 피만으로 꽤 큰 소득이 있었다며 웃었다.
“베오른!”
바르디엘이 시프를 부르며 미간을 깊게 구겼다.
“집중해라! 저놈 무언가 다르다!”
그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라온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달라진 건 저놈만이 아니야. 나는 어머니의 힘을 전부 다 흡수했고, 저놈은 초월에 올랐다고 해도 죽어가고 있다고!”
시프는 걱정 말라고 외치며 라온의 목을 갈라버릴 극쾌의 공간참을 내리그었다.
“음!”
바르디엘은 시프의 공격에 맞추듯 순백의 구름을 만들어 라온을 향해 빛의 우박을 내리쳤다.
라온은 고요히 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아갔다.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공간검도, 광대한 범위에서 쏟아지는 빛의 유성우도 그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했다.
화아아아!
보법을 밟아서 피하는 게 아니라, 공간검과 우박이 그의 몸을 피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후우우우.
라온은 적의 숨결에서 피어나는 흐릿한 마나의 흐름조차 놓치지 않았다.
나무 위를 스쳐 내려오는 햇살, 웅덩이에 고여 있는 이슬, 천천히 떨어지는 낙엽까지. 대자연의 마나가 피부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게 초월의 영역인가.’
깊은 늪에 빠진 것처럼 몸이 무겁다. 천지의 흐름과 조화가 느껴지지만, 반대로 팔과 다리는 내 생각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였다.
하지만 괜찮다.
적은 나보다 더 느리고, 나보다 더 무거우며, 나보다 더 약했으니까.
“휘청거리는 주제에 잘도 피하는군.”
시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내린 채 푸른 빛에 물든 공간참을 쏘아냈다. 아리스의 힘을 다 흡수한 듯 공동에서 겪었던 것보다 더 빠르고 강대했다.
“필히 죽여야 할 놈이다….”
바르디엘 역시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듯 두 손을 모아서 하얀 빛을 응집시켰다.
우우우우우웅!
시프의 공간검과 바르디엘의 섬광이 이어지려는 순간 라온이 사라졌다.
퍼어어어억!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바르디엘의 좌측. 그 현묘하면서도 쾌속한 움직임은 두 초월자의 시선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이런!”
바르디엘은 초월자답게 찰나의 순간에 반응하여 빛을 쏘아내는 방향을 돌렸다. 칼날처럼 예리하게 갈린 섬광이 라온의 전신을 뒤덮었다.
치이이잉!
라온이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광채 속에서 제천검을 발검했다.
천화(千火)이되 천화(天火).
천 개의 불꽃이 하늘에 닿아 금색의 불길이 되어 떨어진다.
만화공 천화 만쇄천향.
콰드드드득!
금빛의 불길은 바르디엘의 빛을 불태우고, 놈의 가슴을 거칠게 뜯어버렸다.
“커허헉….”
라온이 비명을 토하는 바르디엘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 기술을 쓸 때마다 동작이 크더군.”
“라, 라온 지그하르트….”
“더러운 주둥이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마라.”
제천검을 거칠게 뽑아내며 바르디엘의 상체를 터트려버렸다.
천사는 피에 젖은 날개와 함께 땅으로 가라앉았다.
“이게 무슨….”
시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턱을 부르르 떨었다.
“한 수를 얻어서 왔다는 거냐.”
“…….”
라온은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대답 없이 제천검을 말아 쥐었다.
‘어지럽군.’
기절한 상태에서 초월에 올랐기 때문인지,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서 시야가 흐릿했다.
하지만 지금은 약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프만큼은. 스승의 복수만큼은 이뤄야 했다.
“좋아. 하지만 말했듯이 변한 건 너 혼자만이 아니다.”
시프가 흑검을 등 뒤로 젖혔다. 그의 전신에 폭발할 듯한 강대한 기운이 타오른다.
아리스에게 훔친 힘을 모조리 쏟아붓는 듯 섬 전체에 강렬한 진동이 일어났다.
“검계현신 멸화!”
공간을 가르는 흑검이 무채색으로 번뜩인다.
하늘과 땅이 사선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에 푸른빛을 뜬 균열이 돋아났다. 아리스의 검계 멸절을 그대로 본뜬 듯한 극강의 검식이었다.
라온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쇄도해오는 시프의 검계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신마조화결과 개벽을 모두 사용했기에 검계는 사용할 수 없었지만, 자신에게는 새로운 검이 남아 있었다.
스으으으.
오른손에 잡고 있던 제천검을 놓아주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칼날 위로 아리스에게 배운 공간검을 담아내고, 리메르가 남긴 가루누아의 바람을 휘감았다.
화아아아아아!
자신의 불꽃을 가장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준 사람은 언제나 리메르였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스승 대신 그가 남긴 쓸쓸한 바람이 자신의 검을 밀어주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검식.
제8형 소슬바람.
아리스와 리메르는 볼 수 없지만, 두 사람의 꿈과 바람을 담아낸 제천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불꽃을 머금은 채 나아가 시프의 검계와 정면에서 격돌했다.
콰아아아아아!
흐릿하면서도 곧게 뻗어나가는 검로. 리메르를 본뜬 듯한 청명한 불꽃은 세계를 베어내는 시프의 검계를 불태워버렸다.
퍼어어억!
검계 멸화가 얇은 유리창처럼 깨져나가고, 황금빛 불꽃을 두른 제천검이 시프의 가슴에 박혔다.
“끄어어억!”
시프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턱을 떨었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제천검을 뽑으려고 할 때 라온이 발을 구르고 포효를 터트렸다.
“광풍대!”
피가 섞여 있는 그의 외침에 던전의 입구가 터져나가고 광풍대가 돌진했다.
스승의 바람을 두른 듯 푸른빛이 되어 나아가는 검사들의 칼날에는 슬픔과 분노가 어려 있었다.
“이 씨발 새끼야!”
마르타가 악을 지르며 뛰어들어 시프의 오른팔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미친년이로구나!”
시프가 잘 걸렸다는 듯 마르타에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질 하나면 마르타의 몸이 터지겠지만 라온은 그걸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우우우웅!
시프의 가슴에 박혀 있는 제천검이 강렬한 진동을 일으키며 그의 육체를 흐르는 오러의 움직임을 멈췄다.
“커헉….”
라온이 검게 죽은 피를 토했다. 시프만이 아니라, 자신의 육체와 영혼에도 손상이 가는 방식이지만, 이 복수는 내가 아니라, 광풍대 모두의 것이었다.
“이게 무슨!”
시프가 악을 지르며 마르타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의 손아귀에서는 자그마한 오러도 흐르지 않았다.
“죽어!”
마르타는 시프가 당황한 틈을 놓치지 않고, 타이탄의 오러가 깃든 참격을 내리찍었다.
퍼어어어억!
시프의 오른팔이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구겨진 채 뜯겨 나갔다.
“끄어어억!”
시프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려고 했지만, 광풍대의 복수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시이이이이프!”
버렌이 괴성을 지르며 돌진하여 삭풍을 불러왔다. 예리하게 다듬어진 그의 칼날이 시프의 왼팔을 거칠게 베고 지나갔다.
“용서할 수 없어….”
루난은 설화에 깃든 냉기를 폭발시켜 시프의 오른쪽 다리를 깨부숴 버렸다. 다시는 서 있을 수 없도록.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도리안은 세 조장에게 뒤지지 않는 강기를 일으키며 시프의 허벅지를 내리찍었다. 그는 리메르의 고통을 느껴보라는 듯 시프의 뼈와 살을 끝없이 헤집었다.
“끄아아아아악! 이 벌레 놈들이!”
시프가 괴성을 지르며 제천검을 뽑으려고 했지만, 라온은 눈과 귀에서 검은 피를 흘리면서도 절대 놈을 놓아주지 않았다.
크레인은 눈을 뻘겋게 물들인 채 시프의 배를 찔렀고, 유아와 율리우스는 울부짖으며 놈의 어깨를 베었다.
광풍대 검사들도 시프의 사위를 둘러싼 채 놈의 살점을 향해 검을 박아 넣었다.
캬갸갸갸걍!
서른여 개의 검이 시프의 몸에 박히며 칼날이 겹치는 소리가 서글프게 울려 퍼졌다.
“내, 내가 이런 놈들한테….”
시프는 지독한 고통에 힘줄이 올라온 볼을 부르르 떨었다.
“천족이 되겠다고 했나.”
라온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시프를 굽어보았다.
“너는 천족도, 마족도 그리고 인간도 될 수 없다. 대륙의 끝. 가장 깊은 땅굴에서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도록 불태울 것이다.”
저주와 같은 말을 뇌까리며 리메르의 영혼이 깃들었던 진혼검을 뽑았다.
“너는 우리가 아니라, 부대주님에게 패배했다.”
라온은 리메르가 마지막까지 남겨놓은 허리의 상처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네놈 따위에게 죽기에 그 사람은 너무 선했어.”
“자, 잠깐만! 다 설명할게! 내가 혼자 한 일이 아니….”
시프가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도록 진혼검으로 놈의 목을 베었다.
투욱.
시프의 목이 땅에 떨어지자, 죽은 듯 쓰러져 있던 아리스가 입에서 피를 뱉고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눈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사람의 본질을 되찾으라는 스승의 말처럼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누구보다 처절하고, 서글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