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50
제850화
“아….”
아리스는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갈색 천장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내가 살아있다고?’
다시는 이 세상에서 눈을 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신은 분명히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여기는….’
눈동자를 돌리니, 고급스러운 장식과 벽지가 보였고, 우측 테이블에는 약과 피 묻은 붕대가 올려져 있었다.
고급 저택을 병실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페드릭 아저씨의 저택인가.’
페드릭이 지그하르트의 저택 중 하나를 치료실로 사용하던데, 그 병실 중 하나인 것으로 보였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서 창밖을 올려보니, 별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확실했다. 이곳은 지그하르트였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자신은 던전 가장 깊은 곳에서 시프에게 붙잡혔다. 어떻게 지그하르트로 돌아오게 된 건지 떠오르지 않았다.
‘공동에서 내가 찔린 후에… 아!’
천천히 정신이 돌아오자, 남아 있는 기억 중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리, 리메르….”
시프의 흑검이 리메르의 가슴을 뚫고, 라온이 그 모습을 보게 되는 장면. 악몽이라고 해도 믿기지 않을 그 기억이 스멀스멀 뇌리에 그려졌다.
“아아악….”
아리스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성대가 뜯겨나가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아니! 아니야! 내, 내가 이곳에 있다면 리메르도 괜찮은 거 아닐까?’
자신이 살아서 지그하르트로 돌아왔으니, 리메르도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희망을 잡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인으로서의 감각이 말해준다. 리메르가 당했던 상처는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었다고.
‘시프. 너는 대체 왜….’
자신이 아는 시프는 정의롭지는 않아도 선하면서 여린 성격이었다.
그를 강하게 키운 이유도 여린 마음이 꺾이거나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대비였는데, 사람이 그 정도로 달라질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라온은 괜찮을까?’
시프는 자신의 피를 흡수하여 초월의 벽을 부쉈다.
그가 라온을 어떻게 했을지, 광풍대 아이들은 무사할지에 대한 걱정도 물밀듯이 찾아왔다.
“으으윽….”
아리스가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뇌에 빠져 있을 때 병실의 문이 열리고, 페드릭과 라바윈이 들어왔다.
“…아리스. 일어났구나.”
페드릭은 아리스의 일그러진 눈동자를 보며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아리스 님!”
라바윈은 손에 들고 있던 붕대와 물수건을 떨어뜨린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아리스에게 달려갔다.
“모,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는 아리스의 여윈 뺨을 보며 떨리는 입술을 꾹 내리 눌렀다.
“라바윈.”
아리스가 답답할 정도로 느릿하게 말라붙은 입술을 뗐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니, 리메르와 시프는 어떻게 됐어!”
그녀는 다른 사람보다도 그 둘에 대해서 먼저 물었다.
“그건….”
“라바윈. 너는 사람들을 불러오거라.”
페드릭이 낮은 숨을 내쉬고서 라바윈에게 고갯짓했다.
“아, 알겠습니다….”
라바윈이 아리스의 떨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힘 빠진 걸음으로 병실을 나갔다.
“아저씨. 라바윈을 왜 보낸 거예요. 말해주세요. 답답해서 다시 죽을 것 같아요….”
아리스는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가슴을 매만지며 입에서 피를 토했다. 감정이 격해져서 가라앉은 내상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도, 라바윈도 아니다.”
페드릭이 테이블 위에 있는 천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원하는 답을 가진 녀석이 올 테니, 기다리고 있거라.”
그는 아리스가 원하는 말을 해줄 생각이 없다는 듯 그녀의 입에서 흘러내린 피만 닦아주었다.
“답을 가진 녀석이라는 게….”
아리스가 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피를 삼키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라온인가요?”
“그래.”
페드릭은 그건 말해줘도 되겠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아….”
아리스가 떨리던 두 손을 모은 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라온의 상태도 걱정되었는데, 그가 이곳에 온다고 하니 조금이지만 안심이 되었다. 최소한 라온은 무사하다는 뜻이었으니까.
“다행이에요. 정말….”
조금이지만, 리메르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진 채 라온을 기다리고 있을 때 병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가늘게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병실 문을 열고 라온과 글렌이 들어왔다.
“아….”
라온의 눈을 본 순간 처음으로 꺼내려던 질문을 입안으로 가둬버렸다.
밝은 빛으로 세상을 알아가던 조카의 눈동자에는 성숙한 어둠이 걸려 있었다.
투욱.
아리스는 가늘게 움켜쥐고 있던 희망이 끊어진 것을 깨닫고, 가슴 앞에 모으고 있던 손을 떨어뜨렸다.
‘리메르….’
* * *
라온은 덜덜 떨고 있는 아리스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모가 이렇게 약해 보일 줄이야.’
어떤 의미에서는 아리스를 글렌보다도 강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한 무인. 여자와 남자를 떠나서 본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아리스는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
모든 희망이 깨져나간 채 절망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이모….’
사실 리메르가 죽은 후 스스로를 탓하다가 원망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도 했었다.
그 중 가장 큰 원망을 겨눴던 사람은 아리스였다.
왜 시프를 찾았고, 왜 감정에 빠져서 시프의 기습을 막지 못했냐는 어이없는 원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메르를 떠나보내고 난 후 깨달았다. 원망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시프를 망가뜨리고, 리메르를 죽인 사람은 데루스 로베르트다. 원망해야 할 사람도, 죽여야 할 사람도 오직 그놈뿐이었다.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모야….’
간신히 찾은 아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그 아들이 친구처럼 대하던 리메르를 죽였으며, 결국 조카의 손에 죽었으니까.
저게 모두 자신의 일이었다면 두 번째 삶을 살며 정신력이 강해졌다고 해도 미쳐 버렸을지 모른다.
“후….”
라온은 작은 한숨으로 응어리져 있던 감정을 날려버린 후 아리스에게 다가갔다.
“몸은 괜찮으세요?”
“…….”
아리스는 라온의 가라앉은 시선을 보며 마른 입술을 물어뜯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래?”
그녀는 결과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자신의 답을 원하고 있었다.
“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아리스의 침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모가 시프에게 찔린 이후에….”
이런 일은 속여서는 좋지 않다. 아리스의 정신력을 믿고, 모든 것을 다 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되어서 던전 밖으로 시프와 바르디엘을 쫓아갔습니다.”
라온이 잠시 말을 멈추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건드리면 터질 듯 부푼 아리스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마지막 말을 꺼냈다.
“그 후 제 손으로 그 둘을 죽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시프를 죽였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
아리스는 말을 하지 않고 눈을 내리감았다. 그녀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뚝 떨어져 피가 묻어 있는 베개를 적셨다.
“미안하다.”
아리스가 다시 눈을 뜨고 허우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넘어지듯 침상에서 내려와서 억지로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전부 내 탓이야.”
아리스가 쇠를 긁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숙였다.
“내가 시프를 찾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내가 감정적으로 되어서 힘을 빼지 않았다면, 내가 시프에게 방심하지 않았다면! 내가! 내가! 내가아아!”
그녀는 본인의 탓을 하며 주먹으로 아직 다 아물지 않은 가슴의 상처를 쳤다. 하얀 붕대가 피에 젖고,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이모의 탓이 아닙니다.”
라온이 피로 범벅이 된 아리스의 주먹을 잡은 채 고개를 저었다.
“원망할 사람은 이모가 아니라, 데루스 로베르트에요.”
“아니! 전부 나 때문이야! 내가….”
아리스는 자신의 주먹을 뿌리칠 힘도 없는지 주저앉은 채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모….”
라온은 힘이 다 빠져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아리스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리메르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가슴이 아려 왔다. 뭐라고 해주고 싶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모. 저는….”
“라온.”
위로의 말을 하려고 할 때 글렌이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리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 같았다.
-네놈도 처음부터 안정된 게 아니잖느냐.
라스가 아리스를 보며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저 망나니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니라.
‘그래. 그렇지.’
라스의 말대로 지금 아리스의 모습은 처음 깨어났을 때 자신의 상태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으아아악….”
아리스는 가슴이 답답한지 숨을 헐떡이다가 그대로 눈을 감고, 쓰러졌다.
“이모!”
라온이 아리스의 어깨와 팔을 잡고 몸을 흔들었지만,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다.
“비켜 보거라.”
페드릭이 긴 숨을 내쉬고 아리스의 상태를 살폈다.
“정신적으로 지쳐서 기절한 것뿐이다. 아직 심각한 건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는 괜찮을 거라면서 말하고서 아리스를 다시 침상 위에 올렸다.
“아리스 님….”
라바윈은 아리스의 심정이 이해되는 듯 입을 막은 채 흐느꼈다.
“대련은 나중으로 미뤄야겠구나.”
글렌은 대련은 다음에 하자고 말하며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글렌의 눈빛을 보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의 얼굴도 말이 아니야.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느라 깨닫지 못했지만, 글렌의 눈빛도 검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 당연하겠지.’
가장 친한 수하였던 리메르를 떠나보냈고, 손자가 손자를 죽였으며, 딸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폐해진 상태였으니, 지금 가장 힘든 건 글렌일 것이다.
다만 그는 지그하르트의 가주답게 그 누구에게도 본인의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챙겨주었다.
스스로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게 존경스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나는 여기에 있으마. 너는 다른 아이들에게 아리스가 깨어났다고 알려 주거라.”
“알겠습니다….”
깊게 고개를 숙인 후 페드릭의 저택을 나섰다.
“…….”
라온은 사람 속도 모르고, 쨍쨍한 하늘을 바라보며 탁한 숨을 내뱉었다.
“사람의 관계란… 정말로 어렵구나.”
* * *
“이게 그 흑검이라는 건가.”
발칸이 검은 자수정을 이어 붙인 듯한 시프의 흑검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더럽게 특이한 형태로군. 만든 게 아니라, 보석을 깎아낸 것 같아.”
그는 이런 검은 처음 본다며 턱을 매만졌다.
“라온 님이 처음 볼 때부터 이런 형태였다고 하시더군요.”
로엔이 흑검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검에는 악마가 씌여 있어. 그것도 지독한 저주의 악마가. 어찌 이렇게 살기와 악의가 짙을 수 있을까.”
발칸은 아리스의 힘을 강탈한 게 이해가 된다고 중얼거리며 헛바람을 흘렸다.
“아직 직접 만지시면 안 됩니다.”
로엔이 흑검을 잡으려는 발칸의 손을 막았다.
“말씀대로 저주가 걸려 있어서 주인이 아니라면 거절하더군요. 현재 잠이 든 상태인데도, 마스터가 아니면 잡는 순간 기절할 겁니다.”
그는 최소 마스터는 되어야 이 검을 쥘 수 있다고 말하며 눈썹을 내렸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발칸은 잡지도 못하는데, 뭘 어떻게 하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야수연맹의 주술사께서 와 주셨습니다. 저분이 주술을 억제해주신다면 볼 수 있을 겁니다.”
로엔이 고개를 숙이자,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회색 수염의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파시론이오.”
야수연맹의 주술사는 스스로를 파시론이라 소개한 후 매와 같은 눈으로 흑검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지독한 저주가 깃들어 있군. 최소 천 명 이상의 피를 먹은 것 같소.”
파시론은 이 정도로 강한 저주가 깃든 물건은 오랜만에 본다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이 칼날은 압축한 피를 저주의 주술로 응고시켜서 만든 것이오. 강철. 아니, 그 어떤 금속보다도 단단하겠지.”
그는 구역질이 나온다는 듯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다만 지금은 저주가 잠들어 있소. 아무래도 다른 조건들이 갖춰져야 깨어나는 것 같군.”
“그 말씀대로입니다.”
로엔이 파시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광풍대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공동의 깃든 피의 저주도 함께 이용했다고 하더군요.”
“그쪽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었겠군. 다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소.”
파시론이 흑검의 날에 손을 올리며 알 수 없는 주술을 외웠다.
“그게 아니라니?”
발칸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약. 무학이나, 마법도 그렇겠지만, 주술은 제약을 건다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소.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만 칼을 쓴다든가, 어떤 장소에서만 살인을 한다든가 하는 제약을 걸면 주어지는 힘이 더 강해지지.”
파시론은 그게 주술의 기본이라며 미간을 좁혔다.
“…….”
로엔은 그 이상은 말하지 않고 입은 다물었다.
“이 정도 주술을 운용할 수 있는 세력은 백혈교와 에덴뿐이오. 물론 데루스 로베르트. 그 악귀가 숨겨둔 세력이 있다면 또 다르겠지만.”
파시론은 조금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짤막한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 검에 실려 있는 저주를 풀 수는 있소?”
발칸은 그게 되어야 검을 자세히 볼 수 있다며 기대 어린 눈빛을 드러냈다.
“…….”
파시론은 대답 없이 검을 살핀 후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풀 수는 있지만,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오. 말했듯이 천 이상의 피가 쌓였기에 주술사 수십은 죽어야 될 거요.”
그는 흑검의 저주를 풀려면 많은 희생이 필요할 것 같다며 눈을 내리감았다.
“하아, 더럽구만.”
발칸은 어이가 없다며 입술을 씹었다.
“그럼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응접실의 문을 열고 데니어가 들어왔다. 그는 흑검을 한번 살펴보고 싶다며 연한 웃음을 그렸다.
“아, 그러고 보니 현무전주께서는 이쪽도 공부하셨었죠.”
로엔이 생각났다는 듯 작게 손뼉을 쳤다.
“그래. 나도 잡식이라는 별명이 기억나네.”
발칸도 데니어의 소문을 들어보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잡식이 아니라, 잡지식이 많은 겁니다.”
데니어가 헛웃음을 흘리며 테이블에 놓여 있는 흑검을 잡았다.
“주술이 전문은 아니지만, 저주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습니다. 이건…음?”
그가 테이블에서 흑검을 들어 올리려고 할 때 푸른 바람과 함께 나타난 손이 검을 채갔다.
“죄송하지만….”
라온이다. 벼락처럼 모습을 드러낸 그가 흑검을 손에 쥔 채 서늘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주께서는 이 검을 만지실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