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52
제852화
“벌써 완성됐다고?”
라온이 고양이의 몸에 깃든 멀린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2주 정도 걸린다고 했잖아.”
멀린은 시아를 깨우려면 2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그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준비를 끝냈다.
그녀의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응. 다 끝냈어!”
멀린이 기지개를 펴듯 등을 길게 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은 거야?”
라온이 무릎을 굽혀서 멀린과 시선을 마주쳤다.
‘시아에게만큼은 문제가 생겨서는 안 돼.’
리메르는 죽었고, 아리스는 재기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광풍대와 별관만이 아니라, 지그하르트 자체의 분위기가 어두운 상태에서 시아에게도 문제가 생긴다면 실비아와 글렌까지 무너질 수 있기에 최대한 철저하게 준비해야 했다.
“응. 준비는 완벽해.”
멀린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며 긴 꼬리로 자신의 발목을 부드럽게 감았다.
“빨리 끝낸 이유는 별 게 아니야. 계속 밤을 새웠거든.”
그녀는 지그하르트로 돌아온 이후 계속해서 마법 수식을 조율했다고 말하며 앞발로 땅을 꾹꾹 눌렀다.
“…일주일 넘게 밤을 새웠다고?”
“응. 모두 우울해하고 있잖아. 조금이라도 기쁜 일을 만들고 싶어서.”
멀린은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건 처음이라며 웃었다.
“아…….”
-믿어도 될 것이니라. 이전에도 말했지만, 저 광녀의 마법 재능은 네놈의 검술에 못지않으니까.
라스가 팔찌 위로 내민 얼굴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다만 저 광녀도 변해가는구나. 우울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노력했다니, 네놈을 만나기 전의 광녀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니라.
녀석은 신기한 일이라고 말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허나 이게 인간이겠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라스는 오랜만에 인간의 좋은 점을 보았다며 입맛을 다셨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어.’
지그하르트의 우울한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서 밤새 마법을 짰다니,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녀를 믿어주는 것뿐이었다.
“고마워. 멀린.”
라온이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멀린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기는! 우리 사이에 그런 소리는 할 필요 없잖아! 아가씨가 남도 아니고.”
멀린은 괜찮다고 외치며 앞발을 살랑거리며 흔들었다.
“지금은 너무 이르니까. 오늘 저녁에 시작하자.”
그녀는 모두가 있을 때 시아를 깨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며 네 다리를 쭉 폈다.
“그럼 지금은…….”
“응. 알려주려고 왔어!”
멀린은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하며 싱긋 웃었다.
“…고맙다.”
라온이 시선을 내린 채 고맙다는 말을 꺼냈다. 멀린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 말밖에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에이! 필요 없다니까!”
멀린은 괜찮다고 말하며 앞발을 저었다.
“그럼 나도 조금만 잘게. 이따가 실수하면 안 되니까.”
그녀는 눈을 붙여서 체력을 보충해야겠다며 길게 하품을 했다.
“오후 7시쯤 가주전으로 오면 될 거야.”
“알겠어.”
시간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요 아이는…….”
“어?”
라온이 멀린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오늘도 부탁이 있는 거야?”
“당연하지. 나랑 계약한 아이들은 전부 부탁을 들어주어야 해.”
멀린은 몸을 빌려준 모든 동물의 부탁을 들어주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는 미용을 좀 하고 싶다네. 고양이들은 그루밍을 할 수 있는데도 해달라는 걸 보면 강아지가 부러웠나 봐.”
그녀는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서 폴짝 뛰어서 자신의 품에 안겼다.
“그럼 아기 물개 컷으로 부탁할게. 뿅!”
멀린이 앞발을 내리자, 그녀의 영혼이 사라지고 고양이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냐아.
고양이는 어서 하라는 듯 땅에 내려선 채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물개 컷…….”
라온이 고양이를 이리저리 살피며 마른침을 삼켰다.
“물개가 되기에는 털이 너무 짧은데…….”
냐아앙!
고양이는 어떻게 해서라도 하라는 듯 세차게 앞발을 긁었다.
-보, 본왕은 모르겠느니라!
라스는 이 일에 엉키는 게 귀찮다는 듯 팔찌 안으로 들어갔다.
“아…….”
라온의 머리가 오랜만에 하얗게 물들었다.
* * *
라온은 약속 시간에 맞춰서 실비아의 방을 찾아갔다.
똑똑.
손등으로 노크를 하며 실비아를 불렀다.
“어머니. 출발할 시간이에요.”
“그래…….”
실비아는 바로 대답하는 것과 달리 한참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닥에 앉은 채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실비아의 모습이 보였다.
“부, 불안해서…….”
실비아는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며 세로줄이 보일 정도로 마른 입술을 떨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저렇게 될 정도라니,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긴장하는 것 같았다.
“부축해드릴게요.”
라온이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실비아의 팔을 잡아서 어깨에 걸쳤다.
“미안해…….”
“아니에요. 충분히 이해해요.”
죽었다고 생각했던 딸을 다시 만났고, 그 딸이 평생 잠에 빠져 있을 뻔하다가 깨어나려는 상황이니, 저렇게 긴장하는 건 당연했다.
쿠우웅!
실비아를 부축해서 현관으로 내려가는데, 계단에서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내려보니, 에드가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다리를 떨고 있었다.
“미, 미안하다. 긴장해서…….”
에드가는 본인도 긴장해서 다리를 헛디뎠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파, 팔이 잘 안 움직이는데, 나도 부축을 좀…….”
“알아서 하세요.”
라온은 손을 뻗는 에드가를 무시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너무하네! 아들 키워봐야… 뭐, 내가 안 키우기는 했다만…….”
에드가는 무겁고, 긴장되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농담을 던졌다.
“어휴, 하여튼…….”
실비아도 에드가의 장난에 조금은 긴장이 풀렸는지 굳은 팔과 다리를 풀고 본인의 힘으로 섰다.
“이거 남녀 차별. 아니, 엄마 아빠 차별인가?”
“…….”
라온은 천천히 기어서 계단을 내려오는 에드가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닮았어…….’
본인도 남들 못지않게 긴장하고 있으면서도 부드럽게 분위기를 풀어주는 에드가를 보자, 자연스럽게 리메르의 얼굴이 떠올랐다.
에드가가 말이 훨씬 많고, 리메르가 더 가볍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둘이 조금 더 함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리메르와 에드가가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가죠.”
라온은 짧게 혀를 차고서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미리 준비해둔 마차를 타고 본관으로 향했다. 가주전을 지키는 검사들의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가주전 가장 안쪽에 있는 알현실로 들어갔다.
미리 준비해두었는지 언제나 보이던 붉은 카펫은 사라졌고, 말끔한 대리석 바닥에는 여러 겹의 기형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왔구나.”
글렌이 오랜만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보다 안색이 편해 보인다. 이제는 그도 리메르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가주님을 뵙…….”
“됐다.”
라온과 실비아, 에드가가 인사를 하려고 할 때 글렌이 필요 없다는 듯 손을 저었다.
“다들 긴장한 티가 팍팍 나는구만!”
페드릭이 침상에 있는 시아를 살피다가 피식 웃었다.
“누나의 상태는…….”
“시아는 어떤가요?”
라온이 시아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할 때 실비아가 먼저 달려들었다.
“최상이야. 이 늙은 몸이 굽어지도록 일했는데, 좋을 수밖에 없지!”
페드릭은 시아의 상태는 좋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손을 흔들었다.
“하아, 감사합니다.”
실비아가 시아의 손을 잡으며 긴 숨을 내쉬었고, 에드가는 옆에서 그녀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헌데…….’
라온은 단상 아래 기둥에 서 있는 카룬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저 사람은 왜 온 거지?’
이 자리에 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카룬 때문에 무거운 긴장감이 돌았다.
데니어가 의심스럽지만, 카룬이 아예 세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으니까.
“중무전주께서도 와주신 겁니까?”
라온이 카룬의 옆으로 다가가서 고개를 숙였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지그하르트의 새로운 일원이 될 아이이니,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군요.”
카룬은 지그하르트에 미친 사람다운 대답을 하며 덤덤하게 팔짱을 꼈다. 아무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오! 모두 모였네요!”
허공에서 낭랑한 음성이 울리고, 멀린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럼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시작할게요.”
멀린은 준비가 다 끝났다고 말하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가주전 주변에 퍼져 있는 마나가 그녀의 손아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잠깐만!”
실비아가 멀린의 손목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시, 시아가 깨어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녀는 시아가 깨어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술을 떨었다.
“아가씨와 헤어졌을 때를 생각하시면 돼요. 아마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일 거예요.”
멀린은 다정한 눈빛으로 실비아의 손을 잡아주고서 마법진 앞에 섰다.
“그럼 누님을 이쪽으로 데리고 와주세요.”
“…알겠어.”
실비아와 에드가가 떨리는 손으로 시아를 안아서 마법진 위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게 마법진 바로 옆에 붙어서 두 손을 모았다.
“그럼 시작할게요.”
멀린이 품에서 영혼석을 꺼내자, 바닥에 그려져 있던 여러 겹의 마법진들이 생명을 얻은 듯 자연스럽게 떠올라 시아의 주변을 휘감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영혼석과 수십 개의 마법진이 공명하며 바다를 담아낸 듯한 에메랄드색 광채가 가주전 전체로 뿌려졌다.
“영령편개.”
멀린의 외부로 영창을 내뱉자, 만화경처럼 어지럽게 회전하던 마법진들이 하나의 면으로 이어지고, 허공에 떠올라 있던 영혼석이 푸른 빛과 함께 녹아내려 시아에게 스며들었다.
파아아아앙!
은하를 휘도는 장대한 별의 궤적처럼 찬란한 광휘의 꽃이 시아의 머리맡에서 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후우우욱.
시아는 천천히 사그라드는 마법진과 함께 대리석 바닥으로 내려왔다.
“으음….”
“시아야!”
“…….”
에드가와 실비아, 글렌이 터질 것처럼 긴장한 눈동자로 시아를 바라보았다.
모두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주전이 고요해졌다.
“어떻게 됐어?”
라온이 참지 못하고 손을 내린 멀린에게 말을 걸었다.
“후우….”
멀린이 무거운 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성공했어. 곧 깨어날 거야.”
그녀는 곧 사라질 듯이 흐릿해진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멀린이 웃으려고 하다가 힘이 빠진 듯 뒤로 쓰러졌다.
“괜찮아?”
라온이 다급하게 움직여서 넘어지려는 멀린을 잡았다.
“걱정마. 힘을 좀 많이 빼서 그래.”
멀린은 별문제 아니라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상태를 보니, 무리해서 마법을 사용한 것 같았다.
“멀린. 너는…….”
라온이 멀린에게 몸을 좀 챙기라고 말하려고 할 때였다.
“으음…….”
시아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오더니, 그녀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실비아를 꼭 닮은 붉은 눈동자가 20여 년 만에 세상을 담아냈다.
“아…….”
시아는 느릿하게 시선을 돌리다가 우측에 있는 실비아와 에드가를 보고서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엄마? 아빠?”
그녀는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목소리와 말투로 실비아와 에드가를 향해 떨리는 손을 뻗었다.
“시아야!”
실비아와 에드가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리며 달려가 시아를 꼭 끌어안았다.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으아아아앙!”
시아도 아이처럼 오열하며 실비아와 에드가를 끌어안았다.
“…드디어.”
글렌도 감격한 듯 떨리는 손으로 이마와 눈을 가린 채 길고도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아가씨는 어른의 육체에 아이의 정신이 깃든 상태잖아.”
멀린이 가늘게 고개를 들어 올린 채 힘없이 웃었다.
“본래의 나이를 찾아가려면 여러모로 힘들 것 같아서, 영혼석을 이용해서 육체에 맞게 정신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마법을 조율했어.”
그녀는 시아의 정신이 성장할 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며 손을 저었다.
“그리고 녹색의 왕이 되어 있는 동안 세뇌당해서 해왔던 악행들도 모두 지웠어. 아가씨가 밝게만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멀린은 어딘가 씁쓸한 눈빛으로 시아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본인의 일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고맙다.”
“고맙다는 말은 됐다니까! 나는 그저….”
그녀는 그런 말은 필요 없다고 말하다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정신력을 다 소모해서 기절한 것 같았다.
-흐읍!
라스가 시아와 실비아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
-스, 슬프구나. 허나 잘 되었느니라!
녀석은 파스타를 먹듯이 코를 훌쩍이며 눈동자만 굴렸다.
“…….”
라온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 듯 이어져 있는 시아와 실비아, 에드가의 손을 보다가 눈을 내리감았다.
한 사람이 가고, 한 사람이 돌아왔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리메르가 말해주었던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지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았다.
‘끝까지 가르침을 주시고 가시네요.’
라온이 별이 가득한 창밖을 바라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쓸어내렸다.
실내에 있음에도 그 사람의 청아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 * *
눈물과 기쁨 그리고 슬픔이 함께했던 시간이 끝난 후.
“그래.”
글렌이 옥좌에 등을 묻은 채 단상 아래에 있는 카룬을 굽어보았다.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게냐.”
그는 시아 덕분에 조금은 밝아진 안색으로 턱을 주억였다.
“제안을 올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카룬은 공적인 일이라고 말하며 허리를 굽혔다.
“오늘이라고 내가 모든 것을 허락해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글렌은 지금의 상황을 이용하지 말라며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럼 말해봐라.”
그는 단호한 눈빛으로 손을 까딱였다.
“라온 지그하르트와 광풍대를…….”
카룬은 글렌의 경고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고요한 시선을 들어 올렸다.
“광풍전으로 승급시켜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