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55
제855화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라온이 글렌의 말을 되뇌이며 손끝에 힘을 주었다.
‘무슨 의미로 말씀하신 거지?’
카룬 지그하르트는 열등감이라는 거죽을 벗어던지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자신과는 대립할 일이 없는데 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글렌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는 별 의미 없이 말하는 것 같다가도 언제나 그 안에 중요한 뜻을 담아두었으니까.
‘일단 말씀대로 지켜보는 게 좋겠지.’
글렌의 말을 떠나서 초월자들의 대련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 불의 고리를 공명시켜서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불청객이 있군요.”
카룬이 글렌의 옆에 서 있는 라온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불청객이라는 말과 달리 그의 안색은 그리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초대했으니, 불청객은 아니다.”
글렌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네가 싫다면 보내겠지만, 만난 김에 구경이라도 하라고 불렀다.”
그는 카룬에게 결정을 넘기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카룬이 차분한 눈빛으로 턱을 저었다.
“어차피 가주님께도 제 전력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그는 글렌에게도 본 실력을 숨기려 했다며 손가락을 풀었다.
“그런가.”
글렌이 은은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바로 시작하지.”
그는 가볍게 손을 털어내고서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알겠습니다.”
카룬은 잠시 라온을 바라보다가 손을 내려 소리 없이 검을 뽑았다.
“음….”
라온이 카룬의 자세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카룬이 초월에 오른 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이전과는 격 자체가 달라진 것 같았다.
-같은데가 아니라, 확실히 강해졌느니라.
라스가 카룬을 보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정말로?’
-그렇느니라. 초월에 올랐던 당시에 난잡하게 흘러내리던 경지도 안정적으로 갈무리했고, 무언지는 모르지만 외적으로도 성장한 모양이다.
녀석은 보면 알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카룬이 귀족의 예법을 보여주듯 우아한 자태로 검을 세웠다. 검극 위로 고귀하면서도 예리한 기운이 곧게 피어올랐다.
“오냐.”
글렌이 얼마든지 오라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진천검을 뽑았다. 그는 적당히 하지 않겠다는 듯 검날에 깃든 광채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드러냈다.
쿠구구궁!
대지를 잘게 부수는 듯한 발 구름 소리가 다 울리기도 전에 글렌과 카룬이 연무장의 중심에서 격돌했다.
쩌어어어어엉!
검과 검이 부딪치며 허공에 새까만 스파크가 터지고, 검은 균열이 벌어졌다.
글렌과 카룬은 본래의 성격대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채 정면에서 검을 맞부딪쳤다.
“흠!”
글렌은 비단처럼 검신을 아주 얇게 휘감고 있는 카룬의 오러를 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이제는 초월자라고 불려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었구나.”
그는 아들의 성장이 만족스럽다는 듯 턱을 주억였다.
“조금 더 힘을 내셔도 됩니다.”
카룬은 글렌의 전신을 압박하며 날카로운 기파를 펼쳐냈다.
“가벼운 대련일 뿐이니, 그리 열 낼 필요 없다.”
글렌은 가벼운 대련이라는 말과 달리 짙은 뇌기를 일으키며 카룬을 밀어냈다.
쿠우우웅!
카룬은 글렌의 진천검에 담긴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무력 자체에서 밀렸기에 대지에 깊은 족적이 새겨졌다.
“벌써 힘이 다한 건 아니겠지?”
글렌이 도발을 하듯이 턱을 까딱였다.
“예. 이제 시작입니다.”
카룬이 구두의 앞코가 구겨질 정도로 발목을 꺾은 채 보법을 밟았다.
빠르면서도 곧은 움직임 속에 예리함이 피어난다. 잡 기술 따위 없이 자신이 쌓아 올린 검식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고귀한 검사의 의지가 느껴졌다.
촤아아아아아악!
카룬의 의지를 담아낸 검격은 글렌이 일으킨 뇌전의 방패를 뚫고, 날카로운 칼날을 안쪽으로 찔러넣었다.
“좋구나.”
글렌은 가는 미소를 흘리며 카룬의 검을 그대로 받아냈다. 초월자의 의념이 깃든 검격을 정면에서 막았음에도 진천검을 흔들리지 않았다.
“명현검입니다.”
카룬은 검술의 이름을 밝히며 손목과 팔뚝을 일자로 꺾었다. 유려하면서도 직선적인 검격이 극쾌의 염을 담아 글렌의 급소를 향해 쏘아졌다.
치이이이이잉!
빠르고, 날카로우며, 단단하고, 장중하다. 카룬은 저 네 가지 가치를 극한으로 다듬어서 초월에 올랐다.
버렌이 추구하는 이상향의 검술이 카룬의 손에 현현해 있었다.
“흥이 돋는구나!”
글렌이 진한 웃음으로 카룬의 검을 받아주었다. 힘과 속도 그리고 절묘한 검식이 연달아 부딪치며 천지사방으로 강대한 충격파가 터져나갔다.
쿠구구구구!
라온은 파괴적인 벼락을 일으키는 글렌과 고고한 물살을 펼쳐내는 카룬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초월자들의 대련인가….’
글렌과 카룬은 대련이 아니라, 생사결을 치르는 것처럼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서로를 향해 살벌한 검식을 찔러넣었다.
물론 글렌이 본신 무력의 절반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해도 카룬이 저렇게 따라붙는다는 게 놀라웠다.
“창검세.”
카룬이 허리 뒤로 젖혀 두었던 검을 내지른다. 검극에 어려 있던 장대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듯 회전하며 극강의 파동을 일으키는 일점을 그려냈다.
“뇌화무련.”
글렌이 땅끝을 긁으며 진천검을 들어 올렸다. 검신에서 타오르던 뇌전이 웅장한 싹이 되어 붉은 꽃을 피워냈다.
쿠와아아아아앙!
초월자들의 절기가 부딪치며 대련장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진동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는듯 점점 더 빠른 수준의 검격을 나눴다.
고오오오오.
라온은 글렌과 카룬의 대련 속에 직접 끼어든 것처럼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끝없이 손끝을 움직였다.
두 사람의 검술을 모조리 익혀버리겠다는 듯이.
* * *
캬아아아아앙!
30분가량 이어지던 대련이 끝난 후 글렌과 카룬이 검을 내린 채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
“후우욱.”
여전히 흔들림이 없는 글렌과 달리 카룬은 힘이 다 빠진 듯 전신에 땀을 흘린 채 탁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제 만족하느냐?”
글렌이 진천검을 검집에 넣으며 카룬에게 턱을 끄덕였다.
“…예. 속이 좀 풀리는군요.”
카룬은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물론 그의 표정은 여전히 날카롭게 가라앉아 있었다.
“라온.”
글렌이 가느다란 미소를 그리며 라온을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게 보았느냐.”
“…….”
카룬도 라온의 답이 궁금하다는 듯 이마의 땀을 털어낸 후 시선을 돌렸다.
“두 분 덕분에 초월자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라온이 글렌과 카룬을 차례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월자라고 전부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초월에 올랐다고 모든 것에 능한 만능자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이 지금까지 갈고 닦은 무기를 더욱더 날카롭게 다듬어서 싸워야 하는 게 초월자의 전투였다.
‘나 같은 경우는 만검과 감정이겠지.’
모든 검술의 묘리를 담아내는 만검과 마왕들의 권능을 녹여내고, 리메르가 깨닫게 해준 감정의 힘. 자신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건 저 두 가치였다.
“중무전주께서는 못 본 사이에 더 높은 곳으로 오르신 것 같군요. 기연이라도 얻으신 겁니까?”
라온은 카룬에게 진심을 담아서 축하다는 말을 건넸다.
“…….”
카룬이 고요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다가 턱을 내렸다.
“고룡을 잡았다.”
“예?”
“백혈교 놈들이 지그하르트에 쳐들어왔을 때 성벽을 부순 건 드래곤 놈들의 브레스였다. 복수하기 위해서 근처에 있는 드래곤의 둥지를 찾아갔지.”
그는 갑자기 본인의 일을 꺼내기 시작했다.
“죽을 뻔했다. 가주께서 도마뱀처럼 때려잡기에 우습게 봤는데, 성룡과는 차원이 달랐어. 지닌 격만으로도 초월자와 동급인데, 고룡이 되는 순간 특별한 능력도 생기더군.”
카룬은 고룡과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한 덕분에 지금의 경지에 올랐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마주친다면 조심하도록 해라.”
그는 예상과 달리 본인이 어떻게 성장했는지와 고룡에 대한 주의점까지 말해주고서 검집에 검을 넣었다.
“뭐, 너야 아리스와 함께 광룡을 잡았으니, 필요 없는 조언이었을지도 모르겠군.”
카룬은 그리 말하고서 어깨의 먼지를 털어냈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얼떨떨하게 서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물음에 대한 답은 물론이고 조언까지 해주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온.”
글렌은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드는 듯 은은한 웃음을 흘리며 라온에게 다가갔다.
“내일 별관에서 작게 파티를 연다고 했지?”
“예? 아, 네!”
라온이 글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이면 모레 저녁에 열거라.”
글렌은 그때면 본인도 갈 수 있다고 말하며 손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시아에게 두 할아버지에 관한 설명을 하는 중이었기에 차라리 내일모레 여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은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아, 모레에 손님이 올 거라서.”
글렌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며 손을 저었다.
“손님….”
라온이 옷 정리를 끝낸 카룬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나 아니다!”
카룬은 그런 파티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며 눈매를 찌푸리고서 등을 돌렸다.
“음….”
라온은 우아한 걸음으로 연무장을 나서는 카룬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네.’
라스에게 손가락을 까딱이며 카룬을 가리켰다.
‘넌 저 인간이 왜 저러는지 알아?’
-배가 고파서 미친 거 아닐까?
‘…….’
세상 사람이 다 너 같지는 않아.
* * *
이틀 후.
라온이 시아와 소꿉놀이를 하며 인생 최대의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쿵! 쿵! 쿠웅!
별관의 문을 부숴버릴 것 같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라온! 에드가!”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방을 나가니, 급하게 달려온 듯 머리카락이 뒤로 훌쩍 넘어간 렉타르가 현관에 들어와 있었다.
“시아가 일어났다며! 어디에 있느냐!”
렉타르는 일어난 시아를 보고 싶다며 주름이 진 손끝을 부르르 떨었다.
“할아버지…?”
라온이 렉타르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검련의 성지에 있는 렉타르에게 연락을 보내려면 여러 조치가 필요하기에 아직 편지를 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아, 아버님?”
“아버지가 어떻게 여기에….”
실비아와 에드가도 전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입을 떡 벌렸다.
“내가 연락했다.”
렉타르의 뒤편에서 글렌이 걸어 나왔다.
“시아를 깨우기 위해서 계속 알아보고 있었으니, 바로 편지를 보냈지.”
글렌은 렉타르와 따로 연락망을 지니고 있다며 옅게 웃었다.
“아, 맞네요. 아버님을 불러 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
실비아는 환영한다고 말하며 렉타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흐음, 조금 빨리 오신 거 같은데… 아악!”
에드가는 콧잔등을 찡그리다가 렉타르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였다.
“그래서 우리 시아는 어디에 있느냐!”
렉타르는 크게 흥분한 듯 주변을 돌아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그래. 시아를 불러오거라.”
글렌도 시아의 모습이 궁금하다는 듯 턱을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글렌과 렉타르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시아에게 글렌만이 아니라, 렉타르에 관해서도 설명해서 다행이었다. 그녀의 친화력이라면 두 할아버지를 받아들이다 못해 노예처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시아 누나.”
라온이 뒤를 돌아서 문틈에 숨어 있는 시아를 불렀다.
“이리 나와봐.”
“응!”
본인의 강한 의사로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는 시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복도로 나왔다.
“아아….”
렉타르는 시아가 일어난 것을 본 것만으로 소원이 없다는 듯 눈시울을 붉혔다.
“으음!”
글렌도 시아가 귀여워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제도 설명했지? 엄마랑 함께 계신 분이 글렌 할아버지고, 아빠랑 함께 계신 분이 렉타르 할아버지야.”
라온이 시아의 등을 살짝 밀어서 글렌과 렉타르에게 보내주었다.
“할아버지?”
시아가 큼지막한 눈동자를 굴리며 글렌과 렉타르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상큼한 눈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시아야!”
“시아….”
렉타르는 결국 눈물을 뚝 떨어뜨리며 양팔을 활짝 벌렸고, 글렌은 그보다 침착한 듯 보이지만, 바르르 떨리는 손을 감추지 못했다.
“이리 오거라!”
두 사람은 동시에 팔을 벌려서 시아에게 안기라는 표현을 보냈다. 설명이 잘 되었으니, 부담 없이 손녀를 부르는 것 같았다.
다만 이 와중에도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기 애가 몇이냐…?
라스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음….”
시아는 큼직한 눈동자로 글렌과 렉타르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누구에게 가야 할지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누나가 더 좋아하는 사람한테 가면 돼.”
라온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글렌과 렉타르에 관해 다 설명해 주었기에 그녀가 어디로 갈지 자신도 궁금해졌다.
“좋아하는 사람?”
“응.”
고개를 끄덕일 때 시아가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았다.
“그럼 난 라온이 제일 좋아.”
시아는 동생을 챙겨야 한다며 라온을 꼭 안아주었다.
“어억….”
라온이 시아의 품에 안긴 채로 황급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고오오오오!
1초 전만 해도 시아에 대한 기대감과 사랑스러움으로 반짝이던 글렌과 렉타르의 눈빛이 맹수처럼 사납게 가라앉아 있었다.
찌지지직!
더 어이가 없는 건 실비아와 에드가마저도 분노가 차오른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게 아닌, 어… 음….”
라온은 말없이 서늘함만이 감도는 별관의 분위기를 느끼며 숨을 깊게 들이켰다.
-흐헤헤헤헤헤! 지가 제 무덤을 팠느니라!
라스가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부터 네 누나를 본왕의 수하로 삼겠느니라! 보는 재미가 있느니라!
녀석은 이런 꿀잼은 오랜만에 본다며 폭소를 터트렸다.
‘너는 파티에서 나딘빵만 먹을 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