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60
제860화
“뭐야! 방금 사라진 거 드래곤 맞지?”
마르타가 창창한 하늘을 올려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왜 세이피아에 드래곤이 있는 거야?”
그녀는 불길함을 느낀 듯 입술을 씹었다.
“드래곤….”
버렌이 사나운 살의를 드러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는 지그하르트의 성벽을 부쉈던 드래곤들에게 여전히 분노를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골드 드래곤. 그것도 성룡보다 훨씬 컸어….”
루난은 고룡급 골드 드래곤이었다고 말하며 고개를 꾸벅였다.
“그, 그럼 드래곤 로드 아니에요?”
도리안이 헉 소리를 내며 눈동자를 떨었다.
“드래곤 로드가 골드 드래곤이고, 가장 크잖아요!”
“로드는 아니야.”
라온이 시선을 내리며 턱을 저었다.
“드래곤 로드는 방금 사라진 골드 드래곤보다 몸집이 더 크니까.”
본체를 드러낸 드래곤 로드와 몇 차례 마주쳤기에 그 크기는 대충 알고 있다.
조금 전에 사라진 골드 드래곤은 고룡급이었지만, 로드는 아니었다.
-맞느니라.
라스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늙은 놈과 달리 생생해 보이는 놈이었느니라. 후릅!
‘왜 갑자기 침을 흘려?’
라온이 입주변을 닦는 라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마뱀 놈의 살이 야들야들해 보여서 본왕도 모르게 나왔느니라. 추릅!
녀석은 벌써 드래곤 통구이가 떠오른 듯 연달아 침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이미 사라졌어.’
라온이 차게 식은 눈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꿈 깨라.’
사실 드래곤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들은 많다.
왜 지그하르트의 성벽을 부쉈는지, 왜 오마에 붙었는지, 숨기고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
드래곤들을 응징해야 하고, 알아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지만, 이미 사라진 놈을 쫓아가서 싸울 여유는 없었다.
카룬의 경고처럼 자신이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고.
-본왕은 왠지 다시 먹게 될. 아니, 만나게 될 것 같으니라. 추릅.
라스는 드래곤 통구이가 그립다는 듯 몽롱한 눈동자를 끔벅였다.
‘이 식충이는 진짜….’
라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가자. 세이피아에 도착하면 사정을 알게 되겠지.”
광풍대에게 손을 까딱이고서 나무와 수풀이 열어준 길에 올라섰다.
예전 리메르와 함께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세이파이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정지.”
라온은 30분가량 숲을 나아가다가 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입니까?”
버렌이 검병에 손을 올린 채로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오고 있어.”
라온이 손을 내리며 손가락을 가볍게 풀었다.
아직 거리가 멀지만, 전방에서 아주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야생동물처럼 자연 자체를 이용할 수 있는 엘프들의 움직임이었다.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반대편의 빼곡한 수풀이 갈라지고, 활과 검을 패용한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이피아를 지키는 가디언들이었다.
언제 보아도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아름다운 외모가 숲 사이에서 은은히 떨어지는 햇살을 받아 더욱 유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은인을 뵙습니다.”
가디언을 이끄는 청발의 엘프가 라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리메르의 친구이자, 가디언의 수장을 맡고 있는 에리안이었다.
이프리트를 소환하여 세이피아를 구한 이후 그는 자신을 은인이라고 불렀다.
“은인을 뵙습니다!”
다른 가디언들도 에리안을 따라서 라온에게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내셨어요?”
도리안과 유아가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다만 부고를 알리기 위해 왔기에 두 사람의 안색은 밝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라온이 에리안과 가디언들에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대수림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오시질 않아서 먼저 들어오게 됐습니다.”
초대를 받았다고 해도, 대문을 따고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닙니다. 저희가 갔어야 했는데, 일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에리안은 리메르와 함께 왔을 때와 달리 정중한 어조로 고개를 저었다.
“일이라면 혹시 드래곤에 관련된 겁니까?”
짜증이 묻어 있는 듯한 에리안의 눈동자를 보며 물었다.
“…보신 모양이군요.”
에리안이 민망하다는 듯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맞습니다. 잠시 손님이 왔었습니다.”
그는 목격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듯 드래곤이 왔다는 것을 인정했다.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에리안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은인이라고 해도 저희의 개인적인 일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본인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미안하다고 손을 모았다.
“아닙니다. 제가 괜한 것을 물었네요.”
라온이 에리안에게 손을 저었다.
“…사정은 들었습니다.”
에리안이 라온의 허리춤에 꽂혀 있는 리메르의 검을 보며 살짝 입술을 떨었다.
“그래서 하나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리메르. 그놈이 정말 죽은 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라온이 깊게 숨을 들이킨 후 직접 리메르를 보내주었다고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역시….”
에리안의 안색이 나무의 그림자를 받은 것처럼 어두워졌고, 다른 가디언들의 분위기도 함께 무거워졌다.
‘조금 이상한데….’
라온이 급격히 가라앉은 공기를 느끼며 눈썹을 내렸다.
엘프들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하던 리메르의 말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확실히 요상하구나.
라스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그 불귀신이 튀어나와서 귀때기들이 죽었을 때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잖아.
녀석은 홍염귀의 습격 때를 말하며 눈매를 좁혔다.
‘그럼 스승님은 역시 특별한 존재셨던 건가.’
에리안과 가디언들의 눈동자를 보니, 저들 모두에게도 리메르가 특별한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세이피아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 전에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에리안이 따라오라는 듯 등을 돌리다가 멈춰 섰다.
“그놈의 마지막은 어땠습니까?”
그는 그것만큼은 듣고 싶다는 듯 뒤로 고개를 돌렸다.
“웃고 계셨습니다. 미련을 다 털어내신 것처럼.”
라온은 마지막에 보았던 리메르의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군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리안은 조금은 밝아진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앞으로 나아갔다.
‘답답하네.’
에리안의 등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엘프라는 단어로 빚은 듯한 에리안이 저런 상태니,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얀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 되었다.
하아….
라온이 리메르의 검을 잡은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승님.’
* * *
세계수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세이피아의 진짜 성지.
“안 돼요.”
태양을 두르고 있는 듯 존재 자체가 금색으로 반짝이는 엘프가 세차게 손을 내리쳤다.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그녀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시얀.”
세이피아의 수호자 스테린이 금발의 엘프를 부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세월의 끝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듯 근육이 빠지고, 얼굴 전체에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갑작스럽게 습격해온다면 지금의 우리로서는 막을 길이 없어.”
“하지만 할아버지!”
시얀이 입술을 깨문 채로 발을 굴렀다.
“그리 화를 내지만 말고, 냉정하게 생각해보거라.”
스테린이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약해지고 있고, 너도 엘라임을 부를 수가 없지 않느냐.”
“그건….”
시얀이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 전쟁에서 정령계를 안정시키지 못한 상태의 엘라임과 이프리트가 강림해주었기에 두 정령왕은 지금까지 네 부름에 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세이피아는 칼과 방패를 동시에 잃었어.”
스테린은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도움을 요청하면 되잖아요. 지그하르트라거나. 다른 오황도 있고.”
시얀이 다른 곳에 연락해보자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언제까지?”
스테린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을 지키려면 최소한 초월자는 되어야 한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 이곳에 계속 초월자를 파견해줄 수 있는 곳은 없어. 그리고 지그하르트 역시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그는 사정을 듣지 않았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얀. 자신의 나무는 자신의 손으로 지켜야 하는 법이다. 남의 손을 빌린다면 땅부터 메마르게 변할 것이야.”
스테린은 남의 힘을 빌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여러 가지 방향에서 생각을….”
그가 말을 이으려고 할 때 레이란이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다.
“수호자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라온 님이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라온 님이요?”
시얀이 깜짝 놀란 듯 벼락처럼 고개를 들어 올렸다.
“벌써 도착한 것이냐?”
“예.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실 때 에리안이 마중을 나갔습니다.”
레이란은 곧 도착할 거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스테린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그는 라온을 마중 나가자고 말하고서 세이피아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알겠어요.”
시얀은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세계수를 올려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 * *
숲을 마을로 개척한 게 아니라, 숲 자체가 마을로 변한 듯한 신비로운 광경.
라온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세이피아를 보며 옅게 웃었다.
‘여기는 여전하네.’
예전 홍염귀와의 전투에 타버린 곳이 많았지만, 자연의 힘으로 회복한 듯 본래의 세이피아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다 똑같지는 않군.’
이전과 달리 자연의 기운이 피부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온다. 자신이 초월에 닿았기에 느끼는 감각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오러가 상승하는 기분이야.’
세계수가 근처에 있기 때문인지 짙은 마나가 자연스럽게 몸속으로 녹아내린다.
전신의 마나 회로에 순수한 마나가 차오르고 있었다.
다만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이 일을 가장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지 않았으니까.
“은인을 뵙습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던 엘프들이 라온을 향해 고개를 숙여왔다. 그들 역시 에리안처럼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라온이 입매를 굳힌 채 다른 엘프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이전에 함께 왔던 도리안과 유아도 엘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그 사람이랑은 분위기가 다르네.”
“안녕… 하세요.”
버렌, 마르타, 루난도 자연에 녹아 있는 엘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광풍대는 리메르의 죽음을 전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잊지 않은 듯 고요한 기파를 휘감은 채 다른 곳으로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라온이 광풍대를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때 마을 앞에 있던 엘프들이 뒤로 물러서고, 스테린과 시얀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시얀은 슬픔을 억지로 누르고 있는 듯 눈시울을 붉힌 채 어깨를 떨었고, 스테린은 못 본 사이에 몇십 년은 더 늙은 듯 보였다.
두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려왔다.
“수호자님을 뵙습니다.”
라온이 입술을 깨문 채 광풍대와 함께 스테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일어나거라.”
스테린이 차분한 어조를 흘리며 턱을 저었다.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와주어서 고맙구나.”
그는 잘 왔다는 듯 주름이 가득한 손을 휘저었다.
“라온 님.”
시얀이 소매를 안으로 넣은 채 눈인사를 보내왔다. 그녀의 입에서 존잘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또 한 번 리메르의 죽음이 실감이 났다.
“따라오거라.”
스테린이 가볍게 손짓을 하고서 등을 돌렸다. 그의 걸음에서 힘이 빠진 게 느껴져서 심장이 꽉 조여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예.”
라온은 하고 싶은 말을 다 꺼내지 못한 채 스테린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수호자의 거처답지 않은 작은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래.”
스테린이 하늘에 닿을 듯이 곧게 솟아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사유가 제대로 적혀 있지 않더구나. 네가 많은 일을 격은 듯한데. 말해줄 수 있겠느냐.”
그는 이미 자신의 경지를 알아차린 듯 사정을 말해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처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살짝 입술을 떨었다.
이곳에 오면서 아이들을 위로해주었기 때문인지 그 일을 다시 꺼내려니 입이 떨어 지지가 않았다.
숨을 고르려고 하는데, 등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루난이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손을 짚어주고 있었다.
“괜찮아.”
루난은 천천히 하라는 듯 고개를 꾸벅였다.
“고맙다.”
라온이 작은 웃음으로 억눌린 감정을 털어냈다.
“처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전의 전쟁에서….”
시얀과 스테린이 모든 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간 있었던 일들을 전부 말해주었다.
“아….”
시얀이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 한 듯 턱을 떨었다.
“그랬군. 그럼 확실히 죽었다는 뜻인데….”
스테린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왜 그렇게 된 걸까요?”
에리안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죄송합니다.”
라온이 스테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가 조금만 더 냉정했거나, 강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떨었다.
스승의 죽음을 깨닫는 것과 그의 가족에 전하는 것은 너무도 달랐다.
심장이 칼에 찔리는 듯한 고통에 손발이 떨렸다.
“괜찮다. 너희를 지키고 죽었으니, 그놈도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니 웃으면서 갔겠지.”
스테린이 부드럽게 손을 뻗어서 자신의 어깨를 잡았다.
“거기다 전에도 들었지 않느냐. 엘프들은 죽음으로 자연과 하나가 된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는 뜻이야.”
그는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이렇게 심각한 이유는 리메르가 죽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에리안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네? 그러면….”
“엘프는 어디에서 죽더라도 이 세계수로 돌아와서 영혼이 정화된 뒤 자연으로 녹아들게 돼요. 하지만….”
시얀이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저었다.
“오빠의 영혼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래서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참으로 망할 놈이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걱정하게 만들어.”
스테린이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
라온이 인상을 구긴 사람들을 보다가 진혼검에 손을 얹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잠깐 그러면….’
이 엘프 진짜 여기에 박혀 있던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