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62
제862화
“에이 진짜!”
시얀이 분하다는 듯 주먹으로 허공을 치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 대신 짜증과 당황이 박혀 있었다.
“왜 송충이처럼 안 떨어지는 건데! 이 바보 오빠야!”
시얀이 제발 나오라며 정령력을 이용하여 진혼검을 두드렸지만, 리메르는 절대 나오지 않겠다는 듯 영혼의 머리카락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허….”
스테린이 강하게 진동하는 진혼검을 바라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성실했던 놈이 망나니가 되어서 돌아왔어….”
그는 리메르의 성격이 망가졌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원래도 정상은 아니었죠.”
에리안이 짧게 혀를 찼다.
“가디언의 수장이 되어야 하는 놈이 인간을 따라 숲을 나간 걸 보면 처음부터 미친놈이었습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며 미간을 구겼다.
“다만 저는 리메르의 저런 고집이 나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스테린이 은은한 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그하르트에 간 덕분에 내 손자 녀석이 어떤 남자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그는 리메르를 믿고 있다고 말하며 뒷짐을 졌다.
“두 분 다 웃을 때가 아니에요!”
시얀이 스테린과 에리안을 향해 발을 굴렀다.
“으음….”
“죄, 죄송합니다.”
스테린과 에리안은 화를 내는 시얀에게 당황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스승님이 검에 남아 있으면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겁니까?”
라온이 진혼검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본인의 의지로 남아계시려는 거라면 일단 놔두는 게 어떨지.”
“일반적인 검이라면 상관없어요. 하지만….”
시얀이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가 진혼검에 남아 있는 건 좋지 않아요.”
그녀가 푸른빛이 사그라드는 세계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진혼검이 요검이라 그런 겁니까?”
“맞아요.”
“그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시얀 님도 느꼈듯이 진혼검의 영혼들은 사악하지 않습니다.”
라온이 진혼검을 매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불쌍한 이들이지.’
진혼검의 영혼들은 백혈교에게 죽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원혼이 되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고 자신을 여러 번 도와주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리메르의 영혼을 받아들여서 심상의 세계까지 보내준 것을 보면 그를 해할 리가 없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시얀은 손바닥 위로 투명한 물방울을 일으켰다.
“그럼 왜….”
“착하고 선하더라도 원혼이기 때문이에요.”
그녀의 손아귀에서 떠오른 물방울이 밤송이처럼 수십 개의 가시를 세웠다.
“원혼이란 원한이 남아 이 세계를 떠나지 못한 불쌍한 영혼들이죠.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기운을 지니고 있기에 스스로가 원하지 않더라도 다른 영혼에 해를 끼치게 돼요.”
시얀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물로 이루어진 칼을 움켜쥐었다.
“속성을 가진 초대형 몬스터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아….”
시얀의 말을 듣자, 발칸에게 제천검을 받을 때 대지의 기운을 먹어 치우던 레드 드래곤 터틀이 떠올랐다.
“반면 오빠의 영혼은 순수해요. 라온 님의 말씀대로 미련이 하나도 없기에 이대로 나오기만 한다면 세계수의 축복을 받아 마나로 돌아갈 수 있어요.”
그녀가 두 손을 모은 채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오빠가 원혼들을 위로해주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이 시간이 계속된다면 본인의 영혼에 문제가 생길 거예요.”
시얀은 그게 걱정된다고 말하며 손끝을 떨었다.
“스승님도 그걸 알고 있을까요?”
라온이 마른침을 삼키며 상체를 앞으로 굽혔다.
“맞아! 망할 부대주한테 이야기를 해봐요! 영혼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나오라고!”
마르타가 가만히 있지 말고 말이라도 전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맞습니다. 부대주님이 의외로 엄살이 심해서 위험하다고 말하면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버렌도 부탁한다고 말하며 손을 허리를 굽혔다.
“빨리!”
루난도 다급한 얼굴로 시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맹한 눈동자가 걱정으로 인해 격동했다.
“그, 그게 안 돼요….”
시얀이 붉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로서도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으니까요.”
그녀는 정령력을 이용해서 리메르의 영혼을 빼내려고 했을 뿐 주술사나, 신관처럼 대화를 나누는 건 무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오빠도 모를 수가 없을 거예요. 하얀 도화지에 검은 물감이 떨어지듯 영혼이 변하는 게 느껴질 테니까.”
시얀은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라온이 눈살을 찌푸린 채로 진혼검을 내려다보았다.
‘왜지?’
왜 진혼검에 남아 있는 거야?
리메르는 미련을 모두 던지고 그저 행복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갔기에 지금 그의 모습이 이해되질 않았다.
‘진혼검의 원혼들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싶어서?’
지금으로서는 그것밖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리메르라는 사람은 보기보다 정이 많고, 본인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으니까.
“시얀 님. 스승님이 왜 그 검에 남아 있는지는 알고 계십니까?”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예측을 해보자면 첫 번째는… 그냥 재밌어서?”
시얀은 본인이 말하고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가능성 있어.”
마르타는 굉장히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는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원혼들을 위로해주려는 이유 같아요.”
시얀이 진혼검을 매만지며 입맛을 다셨다.
“저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부대주님은 정이 많으셔서….”
도리안은 저 이유밖에 없다고 말하며 코를 훌쩍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시얀이 라온과 광풍대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광풍대와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서….”
그녀는 이게 가장 클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으음….”
“그런….”
“부대주님….”
광풍대 검사들은 이마를 부여잡거나, 탁한 한숨을 내쉬며 서글픈 눈빛을 드러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라온이 훌쩍이는 유아의 어깨를 잡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것만은 아닐 거야.’
리메르는 미련 없이 광풍대를 떠나려고 했고, 자신에게 회자정리라는 말도 해주었다.
그런 그가 광풍대와 함께 있고 싶어서 자연의 순리를 무시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혹시 벌써 영혼에 문제가….’
-그건 아닐 것이니라.
라스가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귀때기의 영혼은 그 정신만큼이나 굳건하느니라. 한동안은 괜찮을 것이야.
‘그럼 왜 저러는 거지?’
-저 귀때기 동생의 말대로 네놈들과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을 수도 있고. 혹은….
녀석이 검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영혼만 볼 수 있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을 수도 있겠지.
‘영혼만 볼 수 있는?’
-그렇느니라. 영혼은 또 다른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
라스는 리메르가 자신들과 다른 것을 보고 진혼검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오늘은 돌아가도록 하지.”
스테린이 하늘로 올라서는 태양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세계수의 기운이 가라앉았으니, 다음에 하자는 것 같았다.
“음. 알겠습니다.….”
라온이 입맛을 다시며 진혼검을 잡았다.
검집에 넣고 성지를 나가려고 하는데, 진혼검이 들어가기 싫다는 듯 세찬 검명과 진동을 일으켰다.
‘설마 이곳에 남고 싶다는 건가?’
그것 말고는 갑자기 검명을 울릴 이유가 없었다.
“저기….”
라온이 밖으로 나가려는 스테린과 시얀을 불렀다.
“진혼검을 잠시 이곳에 둬도 될까요? 혹시 모르니 저도 함께 있겠습니다.”
리메르가 세계수 곁에 남아 있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음, 그러거라. 시얀 네가 옆에 남아 주고.”
“네? 아, 네!”
시얀은 갑작스러운 지시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익!”
그녀는 라온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부끄러움이 되살아난 듯 머리로 얼굴을 가렸다.
“그럼 나중에 보자꾸나.”
스테린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서 광풍대와 함께 성지 밖으로 나갔다.
“잠시 쉬죠.”
라온이 옅게 웃으며 세계수에 등을 기댔다.
“아, 아, 네….”
시얀은 태양을 녹인 듯한 선명한 금발로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세이피아에 와서 보았던 부끄럼쟁이로 돌아간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저, 저기 라온 님. 하나만 여쭈어봐도 될까요?”
“예. 말씀하세요.”
라온이 시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빛이 진지한 것을 보니, 리메르에 관해서 중요한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뭔가 조금 더 애틋해지네.’
자신에게도 시아라는 누나가 생겼기 때문일까. 오빠를 잃은 시얀을 더 잘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답을 해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시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영혼석을 구하기 위해서 2사도를 일검에 가를 때 어떤 검술을 사용하셨나요?”
시얀은 부끄러움을 타다 말고 갑자기 2사도를 베었던 일을 꺼냈다.
“예? 아, 일검에 베지는 못했어요. 간단하게 잡은 듯이 말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틀어졌어도 제가 당할 수 있는….”
“일검에 베셨잖아요! 어떤 검술이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일검!”
“어….”
라온이 턱을 떨었다. 시얀의 머릿속에는 이미 자신이 2사도를 일검에 벤 것으로 결정이 나 있는 것 같았다. 엔시아가 참으로 잘 가르쳐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럼 적섬으로….”
시얀이 이미 결정은 나 있고, 넌 대답만 해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검술을 꺼냈다.
“뺨과 손등에 피가 묻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적섬을 사용하신 거죠? …아아!”
시얀은 좋다고 이야기하며 책에 새롭게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
시아를 보는 듯 다정했던 라온의 눈빛이 짜게 식어갔다.
-정말이지….
라스가 시얀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 주변에는 정상인 여자가 없다니까.
녀석은 저 부끄럼쟁이가 책을 쓸 때는 저렇게 바뀔 줄 몰랐다며 고개를 헛웃음을 흘렸다.
“에휴, 모르겠다.”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앉았다. 우울해하던 시얀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진 모습을 보이자, 속이 좀 편해졌다.
타악.
손으로 머리를 기대기 위해서 쥐고 있던 진혼검을 세계수의 뿌리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가만히 있는군.’
진혼검은 세계수를 떠나지 않는 것에 만족한 듯 검명과 떨림을 모두 멈춘 채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헌데 왜 여기에 있으려고 하는 거지?’
이유를 고민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진혼검의 붉은 칼날이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보이는 게 아니야.’
세계수가 떨어뜨리는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있어.
작은 그릇으로 빗물을 받아내듯 세계수에 흐르는 자연의 기운이 진혼검에 떨어져 깃들고 있었다.
“시얀 님!”
라온이 미친 듯이 집필을 하고 있는 시얀을 불렀다.
“네? 아, 네! 또 하실 말씀이 있나요?”
시얀이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세계수의 마나가 진혼검에 깃들어 있는 원혼들의 부정적인 기운을 가라앉혀 줄 수 있습니까?”
“네? 어 그건….”
그녀가 자신의 손가락을 따라 진혼검으로 시선을 내렸다.
“가, 가능해요. 아니, 그런 것 같은데요?”
시얀이 들고 있던 펜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혼은 그저 남을 해하기만 하는 영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달라요.”
“그러면요?”
“평범한 영혼이 죽어서 원한을 지닌다고 강한 힘을 낼 수는 없어요. 자신의 존재마저 죽여서 힘을 내기에 원혼인 거죠.”
그녀는 진혼검에 깃든 영혼은 지금도 계속해서 지독한 고통을 겪고 있을 거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스승님은….”
“네. 오빠는 원혼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서 검에 남아서 세계수 근처에 있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시얀은 그게 분명하다고 말하며 두 손을 떨었다.
“오빠….”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글자로 가득한 책 위로 푸른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귀때기 놈. 살아서도 안 하던 멋진 짓거리를 하는구나.
라스가 대견하다는 듯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라온은 리메르가 일으킨 듯한 세계수의 바람을 느끼며 옅게 웃었다.
‘왜 떠났는데 더 멋있는 건지 모르겠어.’
* * *
라온은 진혼검을 세계수 옆에 놓아둔 후 스테린을 찾아갔다.
그에게 리메르가 왜 진혼검에 남아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런가….”
스테린이 이마 아래로 내려온 백발을 쓸어 올렸다.
“오지랖이 넓은 게 딱 그놈답구나. 죽어서도 똑같아.”
그는 퉁명스러운 말과 달리 손주가 자랑스러운 듯 진한 웃음을 그렸다.
“그렇죠.”
라온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 스승님다운 일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리메르는 5 연무장에서 정식 수련생이 되지 못한 검사들도 찾아가서 위로를 해주고 나갈 길을 봐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정이 많은 사람이었으니, 지금도 원혼들의 고통을 줄여주려는 것 같았다.
“원혼들의 상처가 조금 아물면 알아서 나오실 것 같습니다.”
“그럼 조금 기다려야겠구나.”
스테린은 그게 좋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경황이 없어서 늦었네요.”
라온이 허리에 있던 리메르의 검을 풀어서 스테린에게 내밀었다.
“스승님의 검이 세이피아의 신물이라고 들어서 반납을 위해 가져왔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음….”
스테린은 리메르의 검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진혼검이 세이피아의 성지에 있으니, 그 검은 잠시 네가 맡아두거라. 그리고….”
그가 느릿하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반대로 내가 네게 주고 싶은 게 있구나.”
스테린이 따라오라는 듯 문밖으로 나갔다.
‘주고 싶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