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64
제864화
“세계의 조율자라는 드래곤이….”
스테린은 대수림 전역에서 타오르는 불길과 독기를 보며 미간을 깊게 구겼다.
“어떻게 이런 치졸한 수를 쓸 수가 있소!”
“바로 그 조율을 위해서다.”
드래곤이 화마에 휩싸인 대수림을 보며 여유롭게 손을 저었다.
“마티루스!”
스테린이 분노를 담은 채 드래곤의 이름을 외쳤다.
“하찮은 주둥이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마라. 우리의 경고를 무시한 이상 하이엘프라고 해도 이제는 버러지에 지나지 않으니까.”
마티루스는 정말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손을 털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오!”
스테린이 매서운 눈동자로 마티루스를 노려보았다.
“조율이라는 허울 따위에 매달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주시오!”
“라온 지그하르트.”
마티루스의 입에서 라온의 이름이 끌려나왔다.
“드래곤의 적인 지그하르트를 세이피아에 받아들인 것부터가 우리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으니, 나도 이렇게 할 수밖에.”
그는 엘프들이 먼저 시작한 싸움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라온은 내 손주의 유물을 가져온 것뿐이오! 그 아이는 내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어!”
스테린은 헛소리하지 말라며 크게 손을 내리쳤다.
“…이제 와서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지그하르트는 이 대륙을 위해서 사라져야 할 집단이다.”
마티루스가 급히 말을 돌렸다. 본인에게 불리한 일은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리는 모습에 스테린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조율자? 수호자? 역시나 개소리였군.”
스테린이 불타오르는 대수림을 보며 이를 갈았다.
“라온에게 들은 대로 추잡한 협잡꾼일 뿐이야.”
그는 라온의 말을 빌리며 등에 매고 있던 활을 들었다.
“결국 인간의 더러움에 물들었구나.”
마티루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꼭 사이비 종교에 미쳐버린 신도를 보는 것 같았다.
“네놈들의 선택은 잘못됐어.”
스테린이 시위에 화살을 걸며 눈매를 좁혔다.
“네가 두려워하는 라온 지그하르트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두려운 게 아니라, 그저 더러울 뿐이다. 그리고 넌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군.”
마티루스가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뭐?”
“이곳에 온 고룡은 나 혼자가 아니다.”
그는 오늘 세이피아가 세상에서 지워질 거라고 말하며 손을 펼쳤다.
“내가 그 꼴을 보고 가만히 보고 있을 것 같으냐!”
스테린이 쥐고 있는 화살 위로 그의 신념을 두른 듯한 푸른빛이 명멸했다.
“그 낡은 육체로 할 수 있을까?”
마티루스가 손아귀 위로 황금빛 광채를 일으키며 비웃음을 그렸다.
“낡고 병든 건 내 몸이 아니라, 네놈들의 영혼이다!”
스테린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의지를 토해내며 활시위를 당겼다.
파아아아아아앙!
* * *
라온이 눈을 감은 채로 침대에서 일어섰다.
스테린과의 대련을 끝낸 후 조금이라도 잠을 자려고 했는데, 불길한 마나가 세이피아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자면서도 저 거리의 기척을 느끼다니….
라스가 길게 하품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이제는 확실히 초월에 올랐다고 해도 되겠구나.
‘역시 내가 잘못 느낀 건 아닌 모양이네.’
라온이 창밖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두 놈이 아니야. 몬스터지만, 일반적인 놈들과는 달라.’
대부분 몬스터였는데, 야생에서 볼 수 있는 개체보다 강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마스터 급도 여럿 있는 것 같았다.
라온이 벽에 기대놓았던 제천검과 리메르의 검을 들고, 숙소 밖으로 나갔다.
엘프들은 아직 외부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 여유로운 새벽을 즐기고 있었다.
“어? 대주님. 밤새 수련하고 오셨다면서 왜 벌써 나오셨어요?”
눈을 비비며 과자를 먹고 있던 도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호자님과의 수련이면 피곤하실 텐데, 더 쉬시는 게 좋을 겁니다.”
교대 근무를 준비하는 에리안도 더 자는 게 좋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오고 있습니다.”
라온이 제천검과 리메르의 나뭇잎 검을 허리춤에 넣으며 눈매를 찌푸렸다.
“예? 적이라니….”
에리안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수림에서 몬스터 대군이 움직이고 있어요.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아무래도 공간을 이동해서 나타난 것 같아요.”
“아니, 그러면 가디언들이 소식을 전해왔을 텐데….”
“이미 당한 것 같습니다. 외부에 있는 엘프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요.”
라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몬스터들 사이에서 엘프들의 기척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의 지리를 파악해서 은신해 있는 가디언을 먼저 처리한 것 같았다.
“라온 님의 말씀이 맞아요!”
시얀이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라온에게 달려왔다.
“정령들이 숲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해줬어요!”
그녀는 계속해서 몬스터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입술을 떨었다.
“그, 그런….”
에리안이 놀라서 눈을 부릅뜰 때 대수림 곳곳에서 불길과 벼락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특수 몬스터들이었다.
“준비하세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라온이 불길에 젖어가는 대수림을 보며 검병을 움켜쥐었다.
“알겠습니다!”
에리안은 비슷한 일을 겪어보았기 때문인지 당황한 안색을 지우고, 가디언들의 숙소로 달려갔다.
“저, 저도 광풍대를 불러올게요!”
도리안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광풍대가 자고 있는 숙소로 돌아갔다.
“괘, 괜찮을까요?”
시얀은 걱정이 되는 듯 이불 속에서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괜찮을 겁니다.”
라온이 시얀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자님도… 아.”
스테린에 관해서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세이피아가 아니라, 외부에서 싸우고 계신 건가?’
세이피아에 있어야 할 스테린의 기척이 북쪽 대수림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누군가와 전력으로 싸우고 있는 듯 그의 기운이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하, 할아버지가….”
이곳까지 전달되어오는 충격파에 시얀도 시테린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느낀 듯 이불을 잡은 손을 떨었다.
“괜찮으실 겁니다. 아직 건재하시니까요.”
차분히 꺼낸 말과 달리 걱정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그는 자신과 밤샘 대련을 하며 지쳤을 테니까.
‘여기는 내가 막아야 해.’
스테린을 외부로 끌어들였다고 해도 세이피아의 방어는 만만치 않다.
몬스터 외에 다른 습격이 있을 게 분명하니, 자신은 이곳에 남아서 엘프들을 지켜야 했다.
“하아….”
시얀이 걱정을 가득 담은 한숨을 내쉴 때 광풍대와 가디언들이 마을의 중심으로 모였다.
“대주님. 무슨 일입니까.”
버렌이 검은 연기로 가득 찬 하늘을 보며 눈썹을 내렸다.
“몬스터라니? 진짜로?”
마르타는 대체 대수림 어디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온 거냐며 콧잔등을 구겼다.
“으으….”
루난은 잘 자다가 깨어난 것에 화가 난 듯 드물게도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보다시피 몬스터들의 습격이다. 다만 평범한 놈들이 아니야. 훈련받은 군대처럼 전열을 갖춘 채 움직이고 있어.”
세이피아로 다가오는 몬스터들은 통일되지 않는 야생의 움직임이 아니라,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채 체계적으로 숲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힘으로만 밀어붙였다가는 빈 곳이 습격당할 수도 있었기에 움직일 방향을 정해야 했다.
“1조는 남쪽, 2조는 서쪽, 3조는 동쪽으로 이동해서 몬스터들이 이 마을에 한 발자국도 들어올 수 없도록 막도록.”
“예!”
라온의 지시에 광풍대 검사들은 불길을 날려버릴 정도로 거센 포효를 질렀다.
“안 그래도 몸이 찌뿌둥했는데, 잘됐네.”
마르타는 아침 식사 전에 준비운동으로 좋겠다며 입맛을 다셨다.
“너무 그렇게 여유를 부리지 마. 위험할 수도 있어.”
버렌은 검사들에게 주의할 점을 알려주며 긴장감과 자신감을 동시에 끌어 올려주었다.
“으으….”
루난은 잠을 자지 못한 분노를 드러내면서도 냉기의 벽을 일으켜서 세이피아로 다가오는 열기를 차단했다.
“그럼 대주님은 뭐 하세요? 설마 우리만 보내고 여기서 휴식을 취하시는 건 아니….”
“닥치고 움직여!”
마르타가 크레인의 주둥이를 후려치고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가디언을 따라갔다.
“우리도 출발한다!”
“따라와….”
버렌과 루난도 일단 가장 많은 몬스터가 몰려오는 남쪽으로 가서 나눠지려는 듯 그 뒤를 쫓았다.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요….”
시얀이 손가락을 깨물며 어깨를 떨었다.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라온이 이불에 덮여있는 시얀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다 막을 테니까요.”
* * *
쿠구구구구!
블랙 오크 무리가 철갑옷을 입은 오우거가 함께 달려온다.
본래라면 서로 싸워야 할 야생의 괴물들이 힘을 합친 채 돌격해오고 있었다.
“대주의 말대로네.”
마르타가 콧방귀를 뀌며 검을 쥐고 있는 손목을 돌렸다.
“보통 놈들이 아니야.”
이곳의 블랙 오크와 오우거는 이전에 보았던 놈들보다 몸집이 크고, 강한 투기를 지니고 있었다.
진을 갖추는 것만이 아니라, 개인의 무력으로도 야생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물론 나한테는 상관없지만! 1조 돌격!”
마르타의 외침에 1조 검사들 그녀의 뒤에 따라붙어 칼과 같은 형태를 취했다. 돌격 형태의 소광풍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소광풍진의 힘을 빌려서 내리친 마르타의 참격에 돌진해오던 블랙 오크 무리가 모조리 핏덩이가 되어 가라앉았다.
“이거 소화도 안 되겠는데?”
마르타가 콧방귀를 뀌며 좌측에서 오는 오우거를 맞이하려고 할 때였다.
화아아아!
그녀의 머리 위로 주홍빛 화염구가 떨어져 내렸다.
“키에에에!”
무리 뒤에 숨어 있던 블랙 오크 마법사의 마법이었다.
“캬아아아!”
블랙 오크 마법사가 마르타의 머리 위에서 화염구를 터트리려고 했지만, 그의 영창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촤아아아악!
어느새 나타난 루난의 서리 칼날이 블랙 오크 마법사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네 도움은 필요 없는데?”
마르타가 루난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거기다 너는 서쪽이잖아!”
그녀는 빨리 사라지라고 말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나찰녀는 솔직하지도 못해.”
루난은 혀를 낼름거리고서 고개를 저었다.
“장난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전투에만 집중해라.”
버렌은 마르타 대신 오우거를 단칼에 베어버리고서 가볍게 턱을 저었다.
“아니, 왜 다 내 먹이를 뺏는 건데!”
마르타가 분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허….”
에리안이 그 모습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라온 님만 특별한 게 아니었나?”
그는 아직 어린 광풍대의 무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제 나눠져야 하니까. 정신을….”
버렌이 서쪽으로 움직이며 마지막 잔소리를 하려고 할 때였다.
쿠구구구구!
하늘을 가리고 있던 재의 먹구름이 갈라지더니, 대수림을 덮을 듯한 거대한 블랙 드래곤이 떠올랐다.
고오오오오!
블랙 드래곤의 아가리에서 새까만 독기가 모여들더니, 세이피아를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블랙 드래곤 최강의 무기, 맹독의 숨결이었다.
맹독의 숨결이 지니고 있는 지독한 독기에 대기가 일그러지고, 세이피아를 이루고 있는 나무와 수풀이 말라붙은 채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맹독의 숨결은 범위가 굉장히 넓었기에 이미 세이피아를 벗어난 광풍대와 가디언들의 머리 위로도 떨어지고 있었다.
“미친….”
“저, 저걸 어떻게 막아!”
“끝이다….”
광풍대와 엘프들이 천재지변이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 드래곤의 브레스를 보며 절망에 빠지고 있을 때 세이피아의 중심에서 금색의 불길이 솟구쳤다.
콰아아아아아아!
하늘을 가르는 일검.
맹독을 불태워버리는 붉은 참격과 함께 라온이 천공에 올라섰다.
* * *
라온은 몬스터들의 정련된 움직임을 느끼고, 적이 둘 중 하나라고 여겼다.
‘드래곤 혹은 에덴.’
드래곤이 레어를 지키기 위해서 키우는 가디언들은 일반적인 몬스터보다 강하면서도, 군인처럼 정돈된 움직임을 보인다.
에덴 역시 몬스터를 조종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에 충분히 지금 같은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만 이번 일은 드래곤 같아.’
대수림에 들어와서 드래곤을 보았고, 에리안은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 상황으로 볼 때 세이피아와 드래곤 사이에 문제가 있는 건 확실했다.
“시얀 님. 혹시 전에 드래곤이….”
시얀에게 드래곤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할 때 먹구름 뒤편의 하늘 위에서 무시무시한 마나가 응집되는 게 느껴졌다.
‘드래곤!’
드래곤이 숨결을 내뿜기 위해서 마나를 응집시킬 때의 전형적인 현상이었다.
쿠웅!
라온이 머뭇거림 없이 제천검과 리메르의 검을 세이피아의 대지에 박아 넣었다.
검계현신 신마조화결.
드래곤의 기운이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기에 처음부터 검계를 개방하며 대지를 박찼다.
치이이이익!
태양과 달로 빚은 신검과 마검을 세운 채 천공으로 떠오르자, 구름을 녹이며 맹독의 숨결을 쏟아내는 블랙 드래곤이 보였다.
이곳에 올 때 보았던 골드 드래곤보다는 작았지만, 분명한 고룡급이었다.
-전부! 퍼져나가는 독을 모조리 지운다고 생각하며 검을 휘둘러라!
라스는 그래야만 저 독기를 막을 수 있다며 조언을 해주었다.
‘알겠어!’
라온은 공작의 날개처럼 퍼져나가는 맹독의 숨결로 몸을 밀어 넣으며 극성의 만화공을 일으켰다.
라온 지그하르트류 검식.
제7형 공허살.
시뻘겋게 달아오른 신검의 칼날이 독기가 퍼져나가는 공간을 갈랐다.
촤아아아아악!
세이피아와 대수림을 덮치려던 맹독의 숨결이 갈라진 균열의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크윽!’
갈라진 공간으로 맹독의 숨결을 밀어 넣는다고 해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압력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너무도 강대한 브레스의 파동에 어깨가 짓눌리고 살이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역시나 드래곤 최강의 무기다웠다.
하지만 여기서 검을 멈춘다면 남은 독기에 의해서 엘프와 광풍대 검사 모두가 죽게 될 것이다. 무조건 막아야 했다.
치이이이잉!
라온이 이를 악문 채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따라 끝까지 신검을 휘둘렀다.
맹독의 숨결은 결국 세이피아로 떨어지지 못하고 갈라진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간 채 불길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이게 무슨….]블랙 드래곤은 인간의 검 하나에 맹독의 숨결이 사그라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듯 거대한 주둥이를 떨었다.
‘라스. 어제 했던 말 취소할게.’
라온의 새빨간 눈동자 위로 푸른빛의 분노가 깃들었다.
‘네가 원하던 드래곤 통구이를 먹게 해주마.’
-독기가 간을 해줄 테니, 짭짤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