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66
제866화
라온이 말없이 뒤를 돌아보다가 눈을 부릅떴다. 블랙 드래곤의 시체 뒤편에서 녹색 뱀의 투구를 쓴 남자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너는….”
조금 전 누군가가 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에덴 그것도 뱀의 투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저 뱀 투구 놈. 이번이 네 번째 아니냐?
라스는 왜 자꾸 살아나냐며 미간을 찌푸렸다.
‘맞아. 매번 색은 다르지만.’
금면사, 적귀사, 청시사에 이어서 녹색 뱀이라니, 어디까지 가려는 건지 모르겠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이제는 다음 색이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더 웃긴 건….’
점점 더 강해진다는 거야.
녹색 뱀 투구를 쓴 남자의 기파는 그랜드 마스터를 벗어나 초월에 닿아 있었다. 자신보다는 수준이 낮지만, 벽을 깨고 인간의 격을 벗어난 건 분명했다.
-신기하구나. 분명 다른 인간이고, 기질도 비슷하지 않은데 같은 놈이라는 느낌이 드느니라.
라스는 존재 자체가 기이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분명 무언가가 있어.’
녀석의 말대로 이전에 뱀의 투구를 쓴 놈들은 모두 죽었고, 지금 앞에 있는 녹색 뱀 투구 역시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뱀의 투구를 쓰고 있는 놈들은 자신과 있었던 일들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놈들이 동일인물이거나, 혹은 같은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심이 피어났다.
“이번에는 녹색이냐?”
라온이 녹색 뱀 투구를 쓴 남자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바로 알아보는군.”
녹색 뱀 투구를 쓴 남자가 자신의 투구를 매만지며 가늘게 웃었다.
“너 대체 정체가 뭐냐.”
라온이 신검을 겨눈 채 턱을 틀었다.
“지금은 녹랑사라고 부르면 된다.”
녹색 뱀 투구를 쓴 남자는 스스로를 녹랑사라 칭하며 손등을 까딱였다. 이전에 보았던 놈보다 경박함이 줄어든 것 같았다.
“내가 묻는 건 네 이름이 아닌데?”
“그럼 무엇이 궁금하지?”
녹랑사는 말을 해보라는 듯 비딱하게 고개를 돌렸다.
“네 정체가 무엇인지를 묻는 거다.”
라온이 송곳처럼 매끄러운 시선을 들어 올렸다.
“조금 전 너는 볼 때마다 내가 만족스럽게 변한다고 말했다. 그 뜻은 나를 계속 마주쳤다는 의미인데, 나는 너를 처음 보거든.”
냉랭한 목소리를 흘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그 못생긴 투구는 네 번째지만 말이야.”
“전에도 한 번 물어본 질문이로군.”
녹랑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답은 간단하다. 네가 느끼는 대로 생각하면 된다. 동일인물이라고 여겨도 좋고, 아니라고 생각해도 좋으니까.”
그는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대답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보다….”
녹랑사가 블랙 드래곤의 시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고룡이 된지 얼마 안 됐다고 해도 제라 피레트가 이렇게 쉽게 죽을 줄은 몰랐어. 일 처리를 조금 더 빨리 했어야 했나?”
그는 블랙 드래곤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일처리? 드래곤과 손을 잡고 무엇을 노리는 거지?”
라온이 살기를 담은 질문을 던졌다.
“간단하지 않나? 이곳을 불 태울 뿐이다.”
녹랑사는 뻔하지 않냐는 듯 손을 털어냈다.
“세계수를?”
“너한테 막혀서 못 했던 일이니까.”
그는 홍염귀와 함께 세이피아를 습격했던 적귀사 때를 말하는 듯 입맛을 다셨다.
“정말 죽은 놈들과 정신을 공유하는 건가?”
라온이 녹랑사를 보며 눈썹을 내렸다.
“공유는 아니다. 내 정신은 온전히 나의 것이니까. 물론 다음은 다르겠지만….”
녹랑사는 담담한 어조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전 놈들과는 확실히 성격이 달랐다.
“그럼….”
라온이 녹랑사에게 말을 걸려다가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테린의 기파가 처음보다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 많이 밀리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다….’
녹랑사 저놈.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
일처리를 하고 왔다는 것을 보면 세이피아에서 무언가를 챙기거나, 심어둔 게 분명하다. 최대한 빠르게 놈을 베어버리고, 스테린을 도우러 가는 게 맞았다.
“궁금한 게 많지만, 시간이 없군.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주마.”
라온이 녹랑사를 향해 살기를 휘감은 신검을 겨눴다.
“이번에는 내가 앞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네가 위에 있을 줄은 몰랐다.”
녹랑사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세이피아의 하늘 위로 시뻘건 불꽃이 치솟으며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떠올랐다.
“마티루스에게 하나 더 보내달라고 하길 잘했어.”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2 대 1이라면 널 막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드래곤….”
라온이 천공에 떠 있는 레드 드래곤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오래 살기는 했지만, 고룡은 아니야.’
레드 드래곤의 크기와 지닌 마나를 볼 때 성룡의 끝에 닿아 있지만, 다행히 고룡 급은 아니었다.
‘물론 레드인 건 문제지만.’
레드 일족은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지금 이곳은 숲이다. 놈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싸움터였다.
-오! 도마뱀 통구이가 두 마리! 그것도 다른 맛이니라!
라스는 잘 되었다는 듯 손뼉까지 쳤다. 위험한 상황임에도 헛웃음이 나왔다.
[멍청하게 당했군.]레드 드래곤은 동족을 죽인 분노보다 인간에게 당했다는 짜증이 올라온 듯 눈매를 구긴 채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무저갱처럼 새까만 목구멍 위로 용암처럼 시뻘건 마나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복수는 해주마!]레드 드래곤이 입안에서 응축시킨 불길을 쏟아낸다. 화염의 숨결. 드래곤 최강의 브레스가 라온을 향해 벼락처럼 떨어졌다.
쿠구구구구구구!
블랙 드래곤과 달리 넓은 범위로 퍼지지는 않고, 한곳으로 압축되었기에 그 압력이 어마어마했다. 발이 저절로 땅을 파고들고, 검을 쥐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일단 막아보라고.”
녹랑귀는 힘을 뺄 생각인지 훌쩍 뒤로 물러섰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보법.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후우우우욱!
라온은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듯한 화염의 숨결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지독한 열기로군.’
화속성 저항력이 있음에도 브레스의 열기에 피부가 익어버리는 기분이다. 불의 고리가 없었다면 이 장소에 머물 수도 없었을 것 같았다.
투우우웅!
라온이 어금니를 씹으며 화염의 숨결 속으로 파고들었다. 불의 고리를 극성으로 공명시키며 은빛으로 명멸하는 서리의 마검으로 창궁검의 대연중천을 펼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대수림을 멸망시킬 듯 쏟아지던 화염의 숨결이 글래시아의 냉기에 막힌 채 허공에서 열과 냉기의 경합을 벌였다. 천지사방으로 수증기가 피어나고, 대지 위로 새하얀 설원이 깔렸다.
찌지지지직!
하늘의 웅대함을 담아낸 대연중천의 검세가 열기를 깨부수고 화염의 숨결 자체를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대수림의 땅 위로 하늘에 닿을 듯한 푸른 고드름이 솟아올랐다.
[거짓말이다!]레드 드래곤은 전력으로 뿜어낸 화염의 숨결이 막힐 줄 몰랐다는 듯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어떻게 화염의 숨결을 얼릴 수가….]“애송이는 다른 곳에 가서 놀아.”
라온이 얼어붙은 화염의 숨결을 밟고 천공으로 올라섰다. 당황한 레드 드래곤이 반응하기 전에 놈의 목을 향해 은검몽을 그었다.
콰드드드득!
뻘겋게 타오르는 신검의 칼날이 레드 드래곤의 비늘을 뚫고, 놈의 드래곤 하트를 박살 내려는 찰나 바람을 머금은 녹색의 칼날이 솟구쳤다.
쩌어어어어엉!
녹랑귀다. 땅에서 사라졌던 놈이 어느새 나타나 자신의 검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 친구까지 죽이게 놔둘 수는 없지. 여기서는 물러나 줘야겠다.”
녹랑귀가 턱을 내리자, 강렬한 바람이 불어와 라온을 밀어냈다.
“싫다면?”
라온이 초월의 의념으로 녹랑귀의 바람을 버티며 신검 위로 마검을 찍어눌렀다.
콰드드드득!
레드 드래곤의 하트를 박살 내지는 못했지만, 놈의 목에 치명적인 상처를 새겨놓은 후 뒤로 물러섰다.
[끄어어어어어!]레드 드래곤은 살점이 뜯겨나간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듯 그 거대한 육체를 꿈틀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거기서 더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녹랑귀는 무서운 성격이라고 말하며 눈매를 찌푸렸다.
“지독하군.”
그는 성격이 저돌적으로 변한 것 같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겁먹은 건 아니겠지?”
녹랑귀의 외침에 고통에 몸부림치던 레드 드래곤이 이를 갈며 몸을 돌렸다.
[전혀! 내 손으로 저 벌레를 죽여버리겠다!]레드 드래곤은 치유 마법으로 상처를 회복하면서 살기 짙은 눈빛을 드러냈다.
우우우우웅!
놈의 주변으로 고위 마법들이 연달아 생성되었는데, 레드라는 종족 덕분인지 마법의 위력은 조금 전에 죽였던 블랙 드래곤에 못지않을 것 같았다.
치이이이잉!
녹랑귀도 이제는 전력으로 가담할 생각인 듯 검 위로 녹빛의 바람을 응집시켰다.
“네 바람이 마음에 안 드네.”
라온은 녹랑귀의 검에 어려 있는 바람을 보며 눈매를 깊게 찌푸렸다.
“당장 깨부숴주마.”
* * *
“하아….”
시얀이 긴 한숨을 흘리며 손을 내렸다.
‘힘드네.’
라온이 대부분의 독기를 지워주었다고 해도 해도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독기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최상급 정령 넷을 동시에 소환하여 세이피아 전체를 보호하다 보니, 심력을 너무 소모했는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도 쉴 수는 없어.’
시얀은 천공에서 싸우는 라온과 레드 드래곤, 녹랑귀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이곳에 있으면 라온 님도 제 힘을 내지 못할 테니까.’
세이피아에는 전투를 할 수 없는 엘프와 아이들도 많다. 라온이 제 힘을 내고, 혹시 모를 상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전부 성지로 이동하세요!”
시얀이 세계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성지의 틈을 열며 마을에 남은 엘프들을 불렀다.
“하지만 저희 때문에 세계수가 위험하게 된다면….”
“괜찮아요! 세계수는 언제나 우리를 먼저 생각해주시니까요!”
그녀는 고민하는 엘프들에게 단호하게 외치며 성지로 향하는 길을 가리켰다. 라온의 앞에서 떨고 있던 때와는 아예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았다.
“아, 알겠습니다.”
“모두 성지의 길로 들어가! 일단 아이부터!”
엘프들은 시얀의 말에 힘을 얻은 듯 머뭇거리던 다리로 성지로 향하는 길로 들어갔다.
“라온 님.”
시얀은 화룡의 불꽃을 지워버리는 라온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다.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누구 하나 죽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성지로 들어갔다.
* * *
‘좋아.’
라온이 성지로 들어간 엘프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피아로 마법이나, 검격이 떨어지지 않게 조절하느라 힘들었는데, 지금부터는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딜 보는 거냐.”
녹랑귀가 눈썹을 내린 채 검을 휘둘렀다. 일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바람의 칼날 수백 개가 전신 급소를 향해 밀려들었다.
[터져나가라!]레드 드래곤은 녹랑귀가 일으킨 바람을 이용하여 폭화란이라는 불꽃의 고위 마법을 쏘아냈다. 본래 위력은 강하지만 느린 마법이 바람을 타고 빛살처럼 파고들어 왔다.
쩌어어어어엉!
라온이 염주벽과 백염섬을 동시에 펼쳐내서 바람의 칼날과 폭화란을 동시에 막아냈다. 다만 그 충격이 컸기에 뒤로 밀려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너도 2 대 1은 버거운 모양이로군.”
[이번에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녹랑사가 대기의 바람을 모조리 응집시킨 칼날을 세웠고, 레드 드래곤이 한 번 더 화염의 숨결을 응집시켰다.
“끝? 끝 좋지.”
라온은 일부러 밀려나기라도 한 것처럼 묵직하게 허공을 박차고 레드 드래곤과 녹랑사를 향해 나아갔다. 신검을 어깨 위로, 마검을 허리 뒤로 젖히며 극성의 태화보를 밟았다.
치이이이잉!
수명이 다한 별이 마지막 폭발을 일으키듯 꺼져가는 신검과 마검 위로 하늘을 뒤덮을 듯한 웅대한 불길과 서리가 치솟았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검식 제6형
신마조화결 연계기 청홍무적검.
초월에 이른 검계의 극의가 신검과 마검의 칼날을 통해 세상에 현현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본래라면 상극이 되어야 할 불꽃과 서리는 이질적인 조화를 이룬 채 뻗어 나가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와 녹랑사의 바람의 칼날을 모조리 쪼개버렸다.
후우우우우욱!
어마어마한 마나의 파동에 검게 물든 하늘이 갈라지고, 천지에서 흑색의 용오름이 치솟았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과 녹랑사 역시 전력을 다했기 때문인지 청홍무적검의 파동도 놈들을 베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그라들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인간 따위가….]레드 드래곤은 라온의 무력이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듯 지친 듯한 숨을 내뱉었다.
“손이 떨리는군.”
녹랑귀 역시 힘이 빠진 듯 검을 쥐고 있는 손을 털어냈다.
“그래도 다행이다. 저놈의 검계가 끝났으니, 이제는 아까와 같은 위력을 낼 수 없… 어?”
그가 레드 드래곤을 격려하려다가 눈을 부릅떴다.
“무슨!”
검을 쥐고 있어야 할 라온의 손이 텅 비어 있었다. 그걸 느낀 순간 우측에서 검이 날아들었다. 공간을 가르고 들어오는 이기어검이었다.
“크윽!”
녹랑귀가 다급하게 바람을 끌어모아 쇄도해오는 제천검을 쳐냈다.
쩌어어어어엉!
간신히 막을 수는 있었지만, 이기어검에 담겨 있던 힘이 너무 강해서 내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입에서 검은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끄으윽, 이쪽을 도와… 허?”
녹랑귀가 도움을 요청하려고 뒤를 보고 있는데, 레드 드래곤의 목젖에 시퍼렇게 빛나는 나뭇잎 검이 박혀 있었다.
“미친….”
라온 지그하르트는 처음부터 두 자루의 이기어검을 쏘아냈고, 드래곤은 자신과 달리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목은 헌납한 것 같았다.
[끄어어어….]드래곤에게 하트는 인간의 심장과 비슷한 급소다. 그곳이 망가진 레드 드래곤은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대지로 추락했다.
쿠우우우우웅!
레드 드래곤은 인간에게 당했다고 무시하던 제라 피레트와 함께 눈을 까뒤집은 채 숨이 끊어졌다.
“…경지는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무력 차이가 날 줄은 몰랐군.”
녹랑사는 죽어버린 레드 드래곤과 그 옆에 있는 블랙 드래곤의 시체를 보며 피에 젖은 입술을 떨었다.
“후우.”
라온이 허리를 반쯤 굽힌 채 피 내음이 섞인 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먹혔군.’
신마조화결이 꺼지는 순간 극성으로 이기어검을 일으켜서 둘을 동시에 노렸는데, 다행히 하나는 잡을 수 있었다. 녹랑귀가 죽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일단 하나라도 처리해서 다행이었다.
‘물론 나도 지쳤지만….’
전력의 싸움을 연달아 해냈고, 심상의 세계에도 다녀왔기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크게 지친 상태였다. 몸이 물 먹은 듯 무겁고, 오러 소모도 심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담담한 눈빛을 드러냈다.
“네게 유리한 상황이 끝났군.”
라온이 되돌아온 제천검과 리메르의 검을 움켜쥐고 고개를 저었다.
“긴말할 것 없이 끝을 내….”
바로 녹랑사를 공격해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쿠아아아아앙!
북쪽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세이피아의 중심에 처박혔다.
“크으윽….”
시선을 돌리니, 먼지구름 속에서 비틀거리는 스테린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녹랑귀의 옆으로 금발금안을 한 고귀한 분위기의 남성이 나타났다.
“준비는?”
금발의 남성이 녹랑귀를 향해 턱을 까딱였다.
“당연히 끝났다.”
녹랑귀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금발의 남성이 손가락을 튕기자, 세이피아가 손으로 움켜쥔 종이처럼 찌그러지더니, 강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앙!
황금빛 광채와 함께 공간이 갈라지며 세계수를 감추고 있던 성지의 결계가 열렸다.
“어…”
“뭐, 뭐야 이게!”
세계수를 지키듯이 서 있는 시얀과 엘프들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부릅떴다.
“네가 라온 지그하르트인가.”
금발의 남자, 드래곤으로 보이는 자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이 짧은 순간에 동족을 둘이나 죽이다니, 너는 필히 이곳에서 죽어줘야겠다.”
그는 고요한 눈빛 속에 살기를 일으키며 고개를 까딱였다.
“다시 불리한 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녹랑사는 비웃음을 그린 채 손에 쥐고 있는 검을 휘저었다.
“불리한 싸움이라….”
라온이 제천검과 리메르의 검을 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그딴 건 수십 번도 더 넘게 해봤어.”
제천검과 리메르의 검 위로 황금빛 불꽃을 세운 채 뇌까렸다.
“지그하르트의 검사가 어떤 이들인지를 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