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75
제875화
“도와달라니….”
라온은 편지에 적혀 있는 유일한 문장을 다시 읽으며 미간을 좁혔다.
‘진심이신가?’
보르고스와 깊은 인연을 쌓은 건 아니지만, 그가 이런 장난을 칠 정도로 가벼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친분이 깊지 않은 자신에게 이런 편지를 보낼 정도라면 정말 큰 위기에 처한 것 같았다.
“으음….”
비연회주 채드가 곁눈질로 편지를 살핀 후 헉 소리를 흘렸다.
“도, 도와달라는 글자만 적은 것을 보면 장난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회색 망치 길드에 관한 정보가 있습니까?”
“회색 망치라면 그 편지를 보낸 보르고스가 수장으로 있는 장인 길드군요.”
채드가 미안하다는 듯 시선을 내렸다.
“죄송합니다. 현재 비연회는 대륙 전역에서 벌어지는 오황오마의 전쟁 위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어서 회색 망치 길드에 관한 정보는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할 필요 없습니다.”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현재 비연회는 지그하르트의 영역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회색 망치 길드에 관한 정보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정보가 없는 게 다행일 수도 있어.’
이번 일이 오마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니 정보가 없는 게 더 좋은 소식일 수도 있었다.
‘그럼 암시장에 물어봐야 하는 건가?’
라온이 보르고스의 거친 필체를 다시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아니,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군.’
다른 설명도 없이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을 보면 굉장히 다급한 상황이라는 뜻. 회색 망치 길드로 가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에 들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가실 생각이시군요.”
채드가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눈동자를 작게 빛냈다.
“예. 나름의 은혜도 있고, 드워프들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의 뼈와 비늘을 가공하려면 지그하르트의 장인으로는 부족해.’
드래곤의 뼈와 이빨, 비늘로 무구를 만들 수 있는 장인은 흔하지 않다.
보르고스는 물론이고, 회색 망치 길드의 드워프들도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꼭 도와주고 싶었다.
“그럼 저는 정보를 모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채드는 바로 준비하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채드에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
“에헤이! 아닙니다! 우리 사이에!”
채드는 손을 휘휘 젓고서 비연회 쪽으로 달려갔다.
“우리 사이라….”
라온 고요한 눈으로 채드를 바라보다가 별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헌데….’
복귀한지 하루도 안 되어서 떠나는 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실비아와 에드가는 이해해주겠지만, 아직 어린 정신을 가진 시아가 어떤 반응을 할지 걱정이 되었다.
“하아….”
라온이 힘 빠진 걸음으로 별관으로 향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본왕의 뛰어난 머리로 예상하 건데….
라스가 기대가 된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얻어맞을지도?
‘헛소리라고 하고 싶다만….’
라온이 별관 앞에서 손을 흔드는 시아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진짜일지도?’
* * *
“내가 아직도 라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더구나.”
글렌이 셰릴과 로엔을 번갈아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그저 지그하르트 최고의 재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다. 대륙 제일. 아니, 고금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는 오늘 라온을 가르치며 경악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며 붉어진 뺨을 드러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아듣고, 다섯을 이해해버리더군. 내 손자지만 괴물을 보는 것 같았어.”
글렌은 라온의 무학적 재능이 점점 더 성장하고 있다며 옥좌의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격이 다르다. 그 표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야.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증명할 것들이 더 기대돼.”
글렌은 옥좌에 등을 파묻은 채 손자에 홀린 표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허허허.”
로엔이 글렌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저 역시 라온 도련님의 발전이 놀랍습니다. 보통의 무인들은 장점을 극대화하는데, 집중하지만, 라온 님은 장점을 높이면서도 단점을 극복해나가시더군요.”
그는 놀라운 재능과 노력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고 해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라온은 그 부족한 부분을 지워버리고 있어!”
글렌이 참지 못하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랜만에 옥좌의 팔걸이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안 그런가?”
그는 동의를 구하듯 눈을 끔벅이던 셰릴에게 손짓했다.
“…그렇죠! 라온 같은 아이는 어디에도 없어요!”
셰릴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뜬 채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커허험!”
글렌은 손주의 칭찬을 들은 게 기쁜 듯 이마까지 빨갛게 물들인 채 흥겨운 웃음을 흘렸다.
“로엔 님….”
셰릴이 글렌이 웃는 틈을 타 로엔의 옆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그런 반응을 해주시는 거예요? 벌써 다섯 번째 똑같은 말만 하시는데?”
글렌은 이른 새벽부터 자신과 로엔을 부른 후 녹음 마법을 돌린 것처럼 똑같은 말을 다섯 번째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이야 놀라웠지만, 계속 듣다 보니 지겨워 죽겠는데, 아무렇지 않게 반응해주는 로엔이 놀라웠다.
“천검대주께서는 자주 임무에 나가시니 모르시겠지만….”
로엔이 인자한 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다섯 번 정도 반복은 자주 있는 일입니다.”
그는 라온의 칭찬을 10번씩 반복하는 경우도 흔하다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어어….”
셰릴이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허허허.”
로엔은 아니라고는 말은 하지 못하고 그저 웃었다.
“셰릴!”
글렌이 셰릴의 이름을 부르며 눈썹을 내렸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건가?”
“물론이죠!”
셰릴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라온이 날 놀라게 한 천뢰공의 초식이 몇 번째지?”
“두 번째입니다!”
글렌의 말을 다섯 번째 듣고 있었기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답을 꺼냈다.
“틀렸어. 네 번째다.”
글렌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예? 하지만….”
“두 번째 초식에서는 경악한 거고, 많이 놀란 건 네 번째다.”
“아니, 그게 무슨 차이….”
“그 차이를 모르는 건가.”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내렸다.
“모르겠는데요….”
셰릴이 눈동자를 굴리고 있을 때 그녀를 구원해주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가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라온의 작은 음성을 듣자마자, 글렌의 구겨져 있던 표정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커허험!”
글렌이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거라.”
그는 기분이 급격히 좋아진 듯 목소리에 스며든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피곤하실 텐데, 죄송합니다. 음?”
라온이 직접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검대주님?”
로엔이야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셰릴도 함께 있을 줄은 몰랐다.
“잘 왔어. 정말로.”
셰릴은 신기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글렌은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입꼬리를 팔딱팔딱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조금 전에….”
라온은 짤막한 한숨을 내쉬고서 보르고스의 편지를 받은 일을 말해주었다.
“회색 망치 길드의 보르고스라….”
글렌이 손을 들어 턱을 매만졌다.
“종족은 다르지만, 허튼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만난 시간은 짧지만, 무게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드워프들이 드레이크를 보고 놀랄 때 보르고스는 상처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알아차렸다.
그런 진중한 사람이 도와달라고 편지를 보냈으니, 분명 큰 위기에 처해있을 것이다.
“그러면….”
“예. 가고 싶습니다.”
라온은 꼭 가야 한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광풍대도 데리고 갈 생각이냐?”
“아뇨. 검사들에게는 휴식을 줄 생각입니다. 함정일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오마의 함정일 가능성도 있기에 광풍대 전원을 데리고 가는 건 무리가 있다.
자신의 도움이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녀석들만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조장 셋과 창고. 아니, 짐꾼 하나만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라온은 네 명만 함께 할 거라면서 앞으로 손을 모았다.
“좋은 생각이구나. 나도 염두에 두어야겠어.”
글렌은 생각을 해두겠다고 말하며 느릿하게 턱을 주억거렸다.
“그러면….”
셰릴이 글렌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제가 따라갈까요?”
그녀는 어떠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겠군.”
글렌은 좋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시겠어요?”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야 좋지만, 피곤하실 텐데….”
현재 지그하르트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셰릴이다. 간신히 복귀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녀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셰릴이 옆으로 다가와서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는 게 더 피곤할 것 같거든.”
그녀는 꼭 데리고 가라는 듯 팔꿈치로 자신의 허리를 쳤다.
“그럼 천검대주까지 가는 것으로 하지. 헌데….”
글렌이 라온의 머리를 바라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네 머리는 왜 그 모양이냐?”
그는 쥐가 파먹은 듯 혹은 새가 둥지를 지은 듯 난리가 난 라온의 머리카락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아….”
라온이 삐죽거리며 올라간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내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누나가….”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서 가보라는 듯 응원을 해주었지만, 시아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싸움을 걸어왔다.
워낙에 힘이 좋아서 제대로 막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 뜯겼다.
“음….”
별관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글렌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가, 가주님. 별일 아닙니다. 싸운 것도 아니고, 그냥….”
시아도 아쉬워서 한 행동이라고 말했지만, 글렌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왜 저러시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셰릴이 옆으로 다가와서 속삭였다.
“부러우신 것 같은데?”
“예?”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럽다구요?”
머리를 뜯기는 게? 아니면 뜯는 게?
둘 다 알 수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어우….
라스가 글렌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상이 없어! 정상이!
* * *
5연무장의 옆에 세워진 광풍대의 숙소.
대부분의 검사들은 본가에 돌아갔기에 조용했지만, 유독 시끄러운 방이 하나 있었다.
“채운 건 많은데, 쓴 것도 많네.”
도리안이 배 주머니를 살피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전부 채워놔야겠는데.’
이번에 세이피아에 가서 드래곤 뼈와 비늘, 이빨을 대량으로 얻었지만, 적을 막기 위해서 상당한 양의 물자를 소모했다.
그걸 채우려면 며칠 동안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석벽이랑, 내상약, 외상약, 성수….”
도리안이 필요한 물품을 적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고 바닥에 쪽지가 하나 있었다.
“이게 뭐지?”
쪽지를 펼쳐서 읽어보니, 갈 곳이 있으니 준비를 하라는 라온의 편지였다.
“에휴, 또 갑자기 부르시네.”
도리안이 한숨을 내쉬며 쪽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시간도 없고, 날짜도 없어.’
리메르를 닮기라도 하는 듯 라온은 그저 준비하라는 쪽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더 빨리 채워야겠는데?”
라온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부족한 물건들을 채우기 위해서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도리안이 필요한 물건들을 메모한 후 일어나려고 할 때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또 뭐… 엥?”
문을 여니, 이번에는 라온이 와 있었다. 그것도 출정 준비를 마친 채로.
“대, 대주님?”
도리안은 갑작스러운 라온의 방문에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준비는 끝났지?”
라온은 어서 가자는 듯 턱을 까딱였다.
“어…? 예에?”
도리안이 눈을 부릅떴다.
“출발하자고 한지 지금 30분도 안 됐어요!”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보급품을 챙겨야 한다구요!”
그는 부족한 물건이 많다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갑자기 이렇게 부르시면….”
“미리 말했잖아.”
“30분 됐어요! 30분! 부대주님도 최소한 반나절은 줬다구요!”
도리안은 너무 심하다며 빽 소리를 질렀다.
“30분이면 충분하지.”
라온은 검사가 준비할 시간은 10분이면 충분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대주님이고! 저는 보급관이잖아요! 물건이 부족하면 팔다리가 으실으실 떨리고, 가슴이 콱 조여든다구요!”
도리안은 물건을 준비할 시간만 달라고 외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 그거면 괜찮아. 가서 챙기면 될 테니까.”
“예? 어떻게 가서 챙긴다는….”
가서 챙긴다고 하니, 이해가 안 되어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목적지가….”
라온이 도리안의 순박한 눈동자를 보며 웃었다.
“너희 집이거든.”
* * *
음울한 어둠에 물든 바닷가.
대륙에는 찬란한 태양이 내리치고 있었지만, 이 바닷가를 채우는 건 냉랭한 달빛뿐이었다.
“…….”
뒷짐을 진 채 해안을 바라보는 미청년의 가면 너머로는 하얀 달빛만이 깃들어 있었다.
그가 고요한 어둠을 즐기고 있을 때 녹색 뱀의 투구를 쓴 남자가 나타났다.
“많이 바빴던 모양이군.”
녹색 뱀 투구를 쓴 남자, 녹랑사가 날카롭게 시선을 좁혔다.
“아시다시피 제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지 않습니까. 헌데….”
미청년의 가면을 걸치고 있는 타천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또 실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타천은 안타깝다는 듯 짧게 혀를 찼다. 그의 음성은 사람을 홀릴 듯 부드러웠지만, 그 어조는 너무도 단정했다.
“음, 이번에는 라온 지그하르트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녹랑사의 탄식이 어둑한 밤바람을 흔들었다.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강해져서 나타났더군. 세상의 이치를 벗어난 놈이다.”
그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며 헛웃음을 흘렸다.
“초월에 올랐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당신과 고룡들도 상대가 안 되는 겁니까?”
타천이 느릿하게 시선을 돌려 녹랑사를 바라보았다.
“고룡과 나를 동시에 상대하고도 밀리지 않았다. 마티루스가 전력을 다했다면 잡을 수 있었겠지만, 멍청하게도 방심하다가 당했지.”
녹랑사가 이미 죽은 고룡을 향한 비웃음을 날렸다.
“경험이 쌓일수록 강해지는 놈이니, 이제는 더 위험해졌을 거다.”
“그렇겠죠. 저희 지부에 잡혀 왔을 때와는 사람 자체가 달라졌으니까요.”
타천이 공감된다는 듯 턱짓으로 답했다.
“사실 라온에게 동귀어진을 걸 기회가 있기는 했는데, 또 멀린이 방해를 해 왔다.”
녹랑사의 뱀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애석하군요.”
타천이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는 라온만이 아니라, 녹랑사가 죽지 못한 것도 아까워하는 것 같았다.
“너무 사람 목숨을 가볍게 보는군?”
녹랑사가 눈동자가 날카롭게 굽어졌다.
“당신은 죽어서 완성되지 않습니까.”
타천은 동정 어린 시선으로 녹랑사를 굽어보았다.
“기분이 좋은 것을 보니, 간 일이 잘된 건가?”
녹랑사가 타천을 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뱀답게 눈치가 빠르시군요.”
타천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생각한 최상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사실 나도 아예 잃기만 하진 않았어서.”
녹랑사가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며 작게나마 만족스러운 고갯짓을 했다.
“무슨 일인지 알겠군요.”
타천은 그저 시선만으로 녹랑사의 생각을 읽은 듯 흐릿한 웃음을 흘렸다.
“헌데 멀린. 또 멀린이라. 그녀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군요.”
그가 날카로운 턱을 매만지며 끈적한 미소를 흘렸다.
“역시나 그냥 놔둘 수는 없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