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77
제877화
‘뭐…?’
라온이 황급히 라스를 돌아보았다.
‘네가 아는 놈이라고?’
조금 전 라스는 불타는 검과 채찍을 휘두르는 몬스터를 아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평소 허튼소리를 하는 녀석이 아니기에 저 말이 정말이라면 회색 망치 길드를 습격한 몬스터는 마족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느니라.
라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다만 아직 정보가 모자라니까. 조금 더 들어보는 게 좋겠느니라.
녀석은 드워프의 입을 열어보라며 동그란 손을 까딱였다.
‘알겠어.’
기다리라고 말한 후 드워프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드워프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일단 그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내 이름은… 어?”
드워프는 자신을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혼란스럽게 흔들리던 눈을 부릅떴다.
“라온 지그하르트?”
“저를 아십니까?”
“이, 이곳에서 우리 족장과 대화를 하지 않았소.”
그는 보르고스와 거래를 할 때 있었다고 말하며 검게 그을린 턱수염을 잡았다.
“아, 늦게 알아뵈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기억이….”
라온이 미안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저렇게 수염을 꼬아 올린 드워프를 본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소개조차 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내 이름은 팔렌툰이오.”
스스로를 팔렌툰이라 소개한 드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족장이 심심하면 당신의 이야기를 주절거렸기에 지금도 잊지 않고 있었을 뿐이오.”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보르고스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건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헌데 왜 여기에 당신이….”
“보르고스 님이 제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족장이?”
“예.”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보르고스의 편지를 보여주었다.
“그, 그 편지는….”
팔렌툰은 이제 이해가 간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아시는 겁니까?”
“조, 족장이 고민하다가 보냈던 편지요! 그게 당신에게 갔다니….”
그는 편지 봉투를 본 것만으로도 감정이 격해진 듯 수염을 떨었다.
“내용은….”
라온이 가는 숨을 내쉬고서 편지의 내용을 보여주었다.
“도와다오….”
팔렌툰이 편지를 읽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족장은 모든 일을 우리의 손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오. 세이피아에서 온 편지를 보고 이것도 운명이라고 중얼거리더니,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을 줄이야….”
그는 도와달라는 글자에서 보르고스의 감정을 느낀 듯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라온은 그래야 도울 수 있다고 말하며 팔렌툰과 시선을 맞췄다.
“…알겠소.”
팔렌툰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움직임을 보니, 복부에 심한 부상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회색 망치의 공방은 화량산의 땅굴 아래에 있소. 대지의 열기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인데, 언젠가부터 그 열기가 제멋대로 움직이더군. 그래서 우리는….”
* * *
언제나처럼 시간을 잊은 채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용광로의 불길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뭐지?”
팔렌툰이 망치를 내리고, 눈쌀을 찌푸렸다.
검을 만들 때 중요한 건 강한 화력만큼이나, 일정한 불길이다.
불길이 줄어들었다가 넘쳐났다가 요동쳐서 작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밖에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팔렌툰이 두건을 벗어 던진 채 공방 밖으로 나갔다.
다른 장인들도 같은 것을 느낀 듯 그을린 망치를 든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팔렌툰 님도 용광로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요.”
족장의 수제자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그래. 불길을 조절할 수가 없더구나.”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길이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 해서 쇠의 두께를 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모두가 같은 상황이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팔렌툰이 산의 열기를 끌어내기 위해서 파놓은 땅굴을 바라보았다. 저 아래에서 평소와 다른 열기가 피어나는 것 같았다.
“으음….”
“또 몬스터들이 오는 건가?”
“이제는 좀 무서운데?”
“왜 이리 시끄럽나!”
모두가 불안함을 느끼며 땅굴 깊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 보르고스가 발을 굴렀다.
“족장. 불길이 요동치는 게 심상치가 않소.
팔렌툰이 보르고스에게 다가가서 땅굴을 가리켰다.
“또 몬스터들이 발작을 하는 모양이로군.”
보르고스는 이 불타는 산의 열기를 먹고 사는 몬스터들의 문제 같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겠지. 이 정도로 심한 건 처음이지만….”
“성벽을 보수하고, 전투 태세를 갖춰라.”
그는 곧 몬스터가 튀어나올 테니, 땅굴 앞에 세워둔 성벽을 보수하고, 무기를 정비하라고 소리쳤다.
“예!”
“알겠습니다!”
드워프와 길드의 장인들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번쩍이는 망치를 들어 올리며 산이 흔들릴 정도의 기합을 터트렸다.
성벽을 보수하고, 무기를 정비한 지 이틀이 되었을 때 보르고스의 예언처럼 땅굴 속에서 몬스터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일이었지만,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화산의 악몽이라 불리는 자이언트 라바 웜, 쇠를 녹이는 열기를 뿜어내는 레드 드래곤 터틀 같은 초대형 몬스터부터 검기에도 상처조차 입지 않는 거대 군대 개미, 사람의 살을 빨아먹는 루비 플라이 같은 중소형 몬스터들까지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말 그대로 붉은 용암이 솟아오르는 같았다.
“미친….”
“왜, 왜 이렇게 많아!”
“그냥 많은 게 아니잖아! 대형 몬스터들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고!”
“저, 저걸 다 잡을 수가 있나…?”
드워프와 장인들은 밀려오는 몬스터들에게 겁을 먹은 듯 망치와 도끼를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쿠우우웅!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성벽의 가장 높은 곳에서 거센 발 구름 소리가 들려왔다.
“겁먹지 마라! 우리의 손으로 벼린 성벽과 망치를 믿어라!”
보르고스다. 그는 자그마한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로 모두에게 싸우라 포효를 질렀다.
“내가 앞에 서겠다.”
그가 뇌전이 일렁거리는 망치를 내리치자, 금빛 벼락이 떨어지며 선두에서 달려오던 자이언트 라스 웜의 몸통을 찢겨 나갔다.
쿠구구구구!
드워프들은 보르고스의 활약에 용기를 얻은 듯 회색으로 번들거리는 화포를 세웠다.
마법포보다도 위력이 더 강하다는 철포. 공방 기술을 극대화한 드워프 최강의 무기였다.
쿠와아아아아앙!
철포가 동시다발적으로 쏘아지자, 성벽 아래에 밀려오던 몬스터들이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터져나갔다.
하지만 숫자가 워낙에 많았기에 포탄을 넘어서 성벽에 닿는 몬스터들도 있었다.
“족장을 믿고 싸워라!”
팔렌툰이 세차게 망치를 휘둘렀다. 성벽 위로 기어 올라오던 거대 군대 개미의 몸통이 박살 난 채 떨어졌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한 마리도 넘어오지 못하게 해라!”
“믿어라! 우리의 벽은 부서지지 않는다!”
다른 드워프와 길드의 전사들도 팔렌툰과 보르고스의 옆에서 피와 살이 튀기는 전투를 벌였다.
처절한 전투가 이틀 동안 이어졌다. 성벽이 무너지고, 포구가 열기에 비틀어졌지만, 다행히도 끝없이 몰려들던 몬스터의 대군은 끝이 났다.
“역시 장인을 막을 건 없다니까.”
팔렌툰은 복부에 뚫린 구멍을 움켜쥔 채 씩 웃었다.
부상은 심했지만, 성벽과 무기 덕분에 누구 하나 죽지 않은 게 기뻐서 미소가 지어졌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정리나 해라.”
보르고스는 자신 이상으로 부상을 입어서 오른팔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족장답게 모두를 살폈다.
“댁은 쉬기나 하쇼.”
팔렌툰이 콧방귀를 뀌며 보르고스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내가 네놈처럼 허약한 줄 아느냐. 한 달은 더 싸워도 문제없어.”
보르고스가 혀를 차고서 팔렌툰의 상처를 툭 찔렀다.
“끄억!”
팔렌툰이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고, 다른 드워프와 장인들이 그 모습을 낄낄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모두가 부상을 입었지만, 안색은 밝았다. 몬스터와의 전쟁이 끝났으니, 다시 쇠를 두드릴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이 담긴 미소였다.
하지만 안정은 찾아오지 않았다.
우오오오오오!
용광로의 불길은 더더욱 통제가 되지 않았고, 땅굴 깊은 곳에서 소름이 돋아오르는 울림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몬스터들은 우리를 공격해온 게 아니라….”
보르고스가 회의실에 서서 고개를 저었다.
“밑에서부터 도망쳐온 것 같다.”
그는 저 지하 아래에 무언지 모를 괴물이 있는 것 같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일을 제쳐두고 성벽부터 다시 세워야겠어.”
보르고스는 무너진 성벽부터 되살려야겠다며 긴 숨을 내쉬었다.
“알겠소. 이번에는 절대 뚫리지 않도록 다듬겠소.”
팔렌툰은 믿어달라고 외치며 가슴을 두드렸다.
“너는 배때기에 구멍을 내놓고 무슨 작업을 하겠다는 거냐.”
“족장도 마찬가지 아니오! 오른팔도 못 쓰면서!”
“나는 왼팔이라도 있다!”
보르고스가 정신을 차리라며 팔렌툰의 머리를 쳤다.
“너는 나가서 재료나 가지고 와라.”
그는 외부에 나가서 보수 재료나 챙겨오라며 턱을 까딱였다.
“헌데….”
팔렌툰이 보르고스가 가지고 있는 편지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아까부터 뭘 보고 있는 거요?”
“망할 귀쟁이 놈에게 온 편지.”
“스테린이로군.”
보르고스가 망할 귀쟁이 놈이라고 부르는 건 세이피아의 수호자 스테린 뿐이었다.
“…이것도 인연이겠지.”
그는 무언지 모를 결정을 내린 듯 편지에 짧은 글귀를 적은 후 세이피아에서 찾아온 새의 다리에 묶어서 다시 날려 보냈다.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팔렌툰 너는 어린 애들 데리고 가서 재료를 챙겨와라. 거부는 없어!”
“끄응, 알겠소. 빠르게 돌아오지.”
팔렌툰은 아직 부상이 심했음에도 최대한 빨리 성벽을 보수할 재료를 챙긴 후 다시 지하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많은 것이 늦어진 상황이었다.
심연에서 흘러나온 듯한 용암이 공방을 불태우고 있었으며, 지옥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칼과 채찍이 장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인간의 살가죽이 벗겨지고 피륙이 섬뜩하게 난도질당하며 찢어지는 비명이 지하 전체에서 메아리쳤다.
“도망쳐라! 이곳으로 돌아오지 마!”
보르고스 뒤를 돌았다. 그는 악마를 막아내던 뇌전의 망치로 땅을 내리쳤다. 지하 공방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무너지며 팔렌툰을 노리던 용암이 가라앉았다.
“크윽!”
팔렌툰이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보르고스와 함께 싸우고 싶었지만, 뒤에 있는 어린 녀석들이 마음에 걸렸다.
“나가! 어서 나가라!”
팔렌툰은 눈물을 흘리는 장인들에게 돌아가라 손짓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땅굴을 나오려고 할 때 붉은 채찍이 쇄도해왔다.
치아아아아!
1초만 늦었어도 채찍에 발목이 잡힌 채 끌려 내려갈 뻔했지만, 다행히 발을 빼낼 수 있었다.
쿠우우우웅!
팔렌툰 대신 채찍을 맞은 땅굴의 입구가 완전히 무너지며 회색 망치 길드의 거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완전히 막혔다.
지하에서는 여전히 귀곡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화량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했다.
“아아….”
팔렌툰과 어린 장인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산 위로 디알룬이 올라왔다.
* * *
“그렇게 되었소.”
팔렌툰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하고서 머리를 푹 숙였다.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한 죄책감과 괴물에 대한 두려움이 모두 어려 있었다.
“음….”
라온이 팔렌툰의 떨리는 어깨와 피가 배어 나오는 가죽 갑옷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네가 아는 놈 맞아?’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만, 그 흉폭성을 보니 대충 맞는 것 같구나.
라스는 하는 행동이 지랄 맞은 게 보인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족이겠군.’
-그렇느니라. 마족 중에서도 꽤 이름이 있는 놈들이니라.
‘누구지?’
-발록.
라스가 짤막한 한숨과 함께 발록이라는 이름을 꺼냈다.
-타고난 힘과 특성으로는 마족 중에서도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세력이니라.
‘그 정도나?’
라온이 눈매를 찌푸렸다. 라스가 저런 말을 할 정도라면 정말 강하다는 뜻이었기에 긴장이 되었다.
‘약점 같은 건 있어?’
-본왕.
라스가 콧대를 높게 세웠다.
-본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놈들에게는 약점이 되지.
녀석은 간단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요즘 잡소리가 많이 늘었어.’
-자, 잡소리라니! 감히 마계의 군주인 본왕에게….
‘어쨌든….’
라온이 팔렌툰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함정은 아닌 것 같군.’
팔렌툰이 말해준 상황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갑작스럽다.
특히 스테린이 보르고스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함정일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오마 놈들의 수작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마계와 관련이 있는 흑탑의 수작일 수도 있기에 긴장감을 풀어서는 안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팔렌툰은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일단 가시죠.”
라온이 덤덤하게 몸을 일으켰다.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가야 답이 나올 겁니다.”
“음….”
팔렌툰은 라온을 올려보며 턱을 떨었다.
“내 말을 듣고도 가겠다는 거요? 그런 위험한 놈들이 있는데?”
“그런 사정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머니와 가주님이 제 등을 후려칠 겁니다.”
라온은 당연히 가야 하는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했네.”
셰릴이 피식 웃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악마고 지랄이고 배에 칼이 안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그녀는 한번 해보자는 듯 손가락을 풀었다.
“아….”
절망으로만 가득 차 있던 팔렌툰의 눈동자에 작은 희망의 불씨가 타올랐다.
* * *
라온은 팔렌툰을 따라서 회색 망치 길드의 공방이 있는 화량산으로 향했다.
“후우, 덥네.”
마르타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열이 높은 곳인 것 같아. 여기부터 이 정도면 그 산은 얼마나 뜨거울지….”
버렌은 조금 걱정이 된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끄응….”
루난은 벌써 열기에 지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가는 신음을 흘렸다.
“본래 이 정도는 아닌데, 점점 지열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소.”
팔렌툰이 긴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놈들이 열기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그는 생각만 해도 분하다는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라온은 멀리 보이는 돌산을 바라보며 라스에게 턱짓을 했다.
‘발록이라는 게 하나의 종족이라는 거지?’
-그렇느니라. 강한 것도 강하지만 지랄맞게 사나운 놈들이니라. 마왕이 될 수 있음에도 안 된 놈도 있을 정도지.
라스는 싸우는 데 미친 놈들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마왕이 될 수 있는데 안 됐다고?’
-제 마음대로 싸우고 다니고 싶다며 옥좌를 버린 놈이 있었느니라.
녀석은 건방지다고 중얼거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면….’
라온이 짧게 혀를 찼다.
‘드워프들은 전부 죽었겠군.’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니라.
‘뭐?’
-습격당한 게 귀때기들이었다면 다 죽었겠지만, 난쟁이라서 살았을 것 같구나.
라스가 기다려보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처음 저 난쟁이 놈이 말했듯이 발록은 불타는 검과 채찍을 사용하느니라. 그 무기는 발록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것들이지만, 강화할 수도 있지.
‘그러면….’
-난쟁이들을 살려서 무기를 강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니라.
녀석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를 바라야겠네.’
라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팔렌툰을 바라보았다.
“조금 속도를 높이죠.”
“물론이오.”
팔렌툰은 부상을 입었음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라온이 선두로 나섰다. 가루누아의 바람으로 모두를 이끌며 화량산을 올랐다.
“이, 이곳이오.”
팔렌툰은 용암이 굳어버린 듯 검게 일그러진 땅을 가리키며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본래 이곳이 우리 회색 망치 길드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요.”
그는 무너진 땅을 보며 입술을 꾹 씹었다.
“이게 입구라고?”
버렌이 믿기 힘들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아예 굳어버렸군. 들어가려면 고생 좀 해야겠어.”
마르타는 화가 난다는 듯 이를 갈았다.
“싫은 곳이야….”
루난은 서리의 조각을 뿌려서 다른 사람들이 열기에 질리는 것을 막아주었다.
“나, 난 보급만 하려고 온 것 뿐인데.”
도리안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턱을 떨었다.
“너 그 검. 보르고스 님의 수제자가 만들어준 거 기억하고 있지?”
라온이 도리안의 검을 가리키며 턱을 까딱였다.
지금까지 많은 검을 얻을 수 있었지만, 도리안은 저 검이 마음에 든다며 지금까지 바꾸지 않았다.
“으윽, 알고 있어요.”
도리안은 검을 꼭 잡은 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
라온은 대지 아래를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확실히 지독하게 강한 놈들이 있군.’
이 땅 아래에서는 용암을 물처럼 휘감고 있는 괴물들이 있었다.
놈들의 기척과 열기가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너희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서 움직여.”
전투 채비를 갖추는 조장들과 도리안에게 턱을 까딱이고서 제천검에 손을 얹었다.
“그럼 시작한다.”
라온이 턱을 치켜든 채로 발을 굴렀다.
쿠우우웅!
화량산 전체가 뒤틀리는 듯한 충격파가 터지고, 땅굴 아래에서 시뻘건 불길이 솟아올랐다.
“부, 불꽃이다!”
“피해!”
디알룬과 아디스가 지원해준 무인들은 격하게 솟아오르는 불길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라온은 오히려 지독한 불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아아아악!
그의 손에서 피어나는 은빛의 서리가 솟아오르는 불꽃과 열기를 모조리 얼려버렸다. 자연의 마나를 다루는 초월자의 신기였다.
콰드드득!
라온은 얼어 붙어버린 불길을 으깨버리며 푸른 손으로 지옥의 문을 열어젖혔다.
새하얀 수증기와 함께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열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제 뒤만 따라오세요.”
라온이 냉랭한 눈빛을 드러낸 채 제천검을 뽑았다. 초월에 오른 절대자의 음성이 불길하게 출렁이는 사람들의 감정을 가라앉혔다.
“누구도 죽지 않게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