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84
제884화
“에휴, 아깝다….”
도리안이 시꺼멓게 멍든 눈자위를 만지며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주머니에 넣었던 물건들을 전부 다 챙겼으면 한동안 보급품은 걱정할 필요 없었는데!”
그는 세피아 상회에서 물건들을 다 훔쳐 오지 못한 게 아쉽다는 듯 손에 들고 있는 스푼을 흔들었다.
“그걸 다 훔칠 생각을 하다니, 미친놈이 따로 없다니까….”
마르타가 도리안을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난 너희 아빠가 그렇게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어.”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헛웃음을 흘렸다.
“응. 아저씨. 얼굴이 빨개졌어….”
루난은 아디스의 붉어진 얼굴을 떠올린 듯 턱을 주억였다.
“그럴 만도 하지. 저놈 주머니에서 나온 게 세피아 상회 건물보다 컸잖아!”
마르타는 그런 건 처음 봤다고 말하며 들고 있던 스튜 그릇을 내려놓았다.
“너희들 밥을 먹을 때는 좀 조용히 먹어! 다른 사람들한테 실례가 되잖냐!”
버렌이 손수건으로 식당 테이블을 닦으며 미간을 구겼다.
“우리한테 잔소리 말고, 저 도둑놈이나 교육하셔.”
마르타가 도리안한테 설교나 하라며 손을 저었다.
“안 그래도 돌아가면 저 도둑놈의 정신 교육부터 할 생각이다.”
버렌이 가문의 망신이었다며 이를 갈았다.
“지, 집안 물건을 훔친 건 도둑놈이 아니죠! 어차피 우리 거니까.”
도리안은 가져와서 잘 쓰면 되는 거 아니냐며 눈동자를 굴렸다.
“넌 집안 물건이 아니라, 상품을 챙겼잖아!”
셰릴이 어금니를 씹으며 도리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우엑!”
“예전에는 조용했는데, 지금은 네가 제일 정신 나간 것 같네. 그놈은 애들을 어떻게 키운 거야….”
그녀는 테이블에 코를 박은 도리안을 보며 혀를 찼다.
“흠….”
라온은 시끄러운 테이블에 신경 쓰지 않고, 다 먹은 접시를 한쪽으로 포개놓았다.
‘이 집 꽤 괜찮지 않아?’
점심을 나딘빵으로 때우려다가 부상자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주고 싶어서 작은 마을의 식당에 들어왔는데,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
-흠! 셰프의 실력이 좀 모자라지만, 요리에 대한 정성은 느껴졌느니라.
라스는 나름 괜찮았다고 중얼거리며 통통히 차오른 배를 두드렸다.
-다만 본왕은 후식에 있어서는 냉정하느니라. 잘 만들어야 할 것이야.
녀석은 셰프가 만들 후식이 기대된다며 둥실둥실한 손을 흔들었다.
‘여기 그냥 시골 식당이야. 셰프도, 후식도 없다고….’
라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에 작은 마을의 식당인지라, 요리사는 식당 주인 본인이었고, 후식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래?
라스는 타박을 들었음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었다.
-그럼 집으로 돌아가서 후식을 두 배로 먹어야겠구나!
녀석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길게 입맛을 다셨다.
-열흘 동안 먹고 싶은 것을 모두 먹을 수 있다니! 기대가 되는구나! 꽤나 즐길 수 있겠느니라!
라스는 별관의 식사만이 아니라, 지그하르트의 맛집이란 맛집은 전부 돌 거라며 키득거렸다.
‘…….’
라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콧노래를 부르는 라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뭐, 뭐냐?
라스가 입을 다문 라온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설마 이제 와서 약속을 안 지키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녀석은 불안함을 느낀 듯 푸른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아니, 당연히 약속은 지켜야지.’
라온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열흘로 정해놓고, 일주일을 먼저 던졌기에 당연히 약속은 지킬 생각이었다.
-헌데 얼굴이 왜 그따위냐?
라스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얼굴? 내 얼굴이 어떤데?’
-나딘빵을 앞에 두고 먹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개똥 같은 얼굴이니라!
녀석은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난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기분이 좀 풀린 것 같네.’
라온은 표정이 다양해진 라스를 보며 픽 웃었다.
-지갑이 녀석 집에서 먹었던 밥도 괜찮았고, 이곳에 오면서도 계속 맛난 것을 먹었으니까.
라스는 속이 좀 편해졌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접을 많이 받기는 했지.’
아디스는 마지막에 도리안을 잡아서 후려 패는 순간 빼고는 항상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
라스가 기분이 풀린 건 그가 챙겨준 최고급 식사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 이제 봐도 되겠네?’
-응? 뭘 본다는 것이냐?
‘보상.’
라온이 손가락을 까딱여서 이전에 확인하지 못했던 보상을 불러왔다.
[발록의 왕을 완벽하게 농락하셨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40포인트 상승합니다.] [특성 >투기 운용>이 >아스카라의 투기>로 전환됩니다.] [특성 >아스카라의 투기>의 등급이 두 단계 상승합니다.] [특성 >요기 적응>의 등급이 상승합니다.]모든 능력치 40포인트에, >투기 운용>이 >아스카라의 투기>로 전환되었고, 바로 2단계나 등급이 상승했다.
위대한 업적이라는 메시지답게 보상의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뭐, 뭐냐! 아스카라 따위를 조금 놀렸을 뿐인데, 왜 이렇게 많이 주는 거야!
라스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며 미간을 구겼다.
‘뻔하잖아.’
라온이 라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아스카라를 마왕급으로 인정했으니까. 많이 주는 거지.’
라스는 본인의 입으로 아스카라가 마왕의 자리를 걷어차고 나온 위험한 존재라고 말해주었다.
녀석의 인증을 받았기에 보상이 크게 돌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본왕이 언제… 흡!
라스는 본인이 말한 게 생각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아, 아무리 본왕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느냐!
녀석의 머리가 분노로 인해 빨갛게 달아올랐다.
감정에 따라 피부색이 변하다니, 이걸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바보 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빌어먹을!
‘이제 조용히 좀 해주세요.’
라온은 떼를 쓰는 라스를 뒤로 하고, >아스카라의 투기>의 설명을 불러왔다.
>아스카라의 투기>
마계의 투림을 정복한 발록의 왕이 직접 전해준 투기로 빛과 어둠 속성에 강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다.
고통과 상처에 대한 내성이 존재하여 큰 부상을 입어도 본래의 힘을 낼 수 있다.
‘허….’
라온이 >아스카라의 투기>의 내용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마왕의 권능 급은 아니지만, 장난이 아닌데?’
아스카라의 투기는 기본적으로 오러와 비슷한 기운이지만, 그 안에 고통 내성이라는 특별한 능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번에 겪었듯이 초월자라고 해도 부상을 입지 않는 건 아니기에 앞으로의 싸움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끄으읍!
라스가 분하다는 듯 둥실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스카라 놈! 본왕이 마계에 돌아가면 꽁꽁 얼려서 땅굴에 박아버릴 것이니라!
녀석은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며 이를 갈았다.
‘그러면 나 대신 싸워주는 거야? 역시 라스밖에 없다니까.’
라온은 고맙다고 말하며 라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 오,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라스가 눈을 끔벅이다가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다.
-빌어먹을! 정말 되는 일이 없느니라!
녀석은 뭘 할 수가 없다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참 보는 재미가 있다니까.’
“저기 대주님.”
라온이 바둥거리는 라스를 보며 웃고 있을 때 도리안이 옆으로 다가왔다.
“마왕님한테 마왕성 구경 좀 시켜달라고 해주시면 안 되나요? 꼭 보고 싶은데….”
도리안은 구경만 하고 싶다는 말과 달리 군침을 질질 흘렸다.
‘…그렇다는데?’
-네놈을 포함한 네 주변은 왜 죄다 미친놈뿐인데!
라스는 라온의 주변은 전부 라온이라며 악을 질렀다.
-도움이 되는 인간이 하나도 없잖느냐! 왜 여기가 천계보다 더 힘든 거냐고!
* * *
말라붙은 용암과 녹아내린 서리가 여전히 경합하고 있는 땅굴.
아스카라의 투기에 의해서 천장이 무너지고, 벽이 깎여 내린 지옥 같은 대지 위로 어둠보다도 까만 그림자가 일렁였다.
처음부터 이곳에 있던 게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듯 바위와 바위의 틈새 사이에서 검은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치이이익.
검은 그림자 속에서 피부가 삭막한 청발의 여성이 떠올랐다. 작은 동물도 제대로 서 있기 힘든 좁은 공간임에도 그녀는 연체동물처럼 자연스럽게 땅굴 속을 기어 다녔다.
“…….”
땅굴 전체를 훑던 청발의 여성은 백발의 남자가 아스카라의 불꽃에 찌부러져서 죽은 장소에서 발을 멈췄다. 그녀는 피가 타버린 듯한 검은 재와 흙은 두 손에 담으며 냉랭한 시선을 내렸다.
“마왕급 발록이 그냥 물러갔다니….”
청발의 여성은 아스카라가 사라진 땅굴의 끝을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 지그하르트에게는 더 큰 비밀이 있는 것 같군.”
그녀는 백발 남자의 피가 타버린 흙을 품에 넣은 후 무너진 공간의 틈새 속으로 사라졌다.
* * *
“오늘은 손님이 많군.”
외총관 일리운이 보르고스와 장인들을 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회색 망치 길드의 장인분들입니다. 저희 작업을 도와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라온은 지하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을 꺼내지 않고, 그저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 왔다고만 말해주었다.
“대륙 장인 보르고스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일리운은 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환영한다고만 말하며 직접 외성의 문을 열어주었다.
“환대에 감사하오.”
보르고스는 일리운의 시원시원함이 마음에 든 듯 마주 인사를 하고서 외성으로 들어갔다.
“길이 넓군. 괜히 육황. 아니, 오황의 정점이 아니야.”
그는 외성에서 내성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다만 대지에서 올라오는 열은 낮아. 북방의 땅답게.”
보르고스는 지열이 약한 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지그하르트의 장인분들이 계시는 곳의 지열은 화량산 못지않습니다. 보시면 마음에 드실 거예요.”
라온은 금방 소개해주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발칸의 공방인가? 그건 기대가 되는군.”
보르고스는 발칸과의 만남이 기대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열은 만족하실 거예요.”
발칸의 공방과 지그하르트의 내부를 설명해주다 보니, 어느새 가주전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이곳이 가주전입니다. 들어가시죠.”
“허,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한 자가 아니겠어.”
보르고스는 건물 자체에서 전해지는 기파가 경악스럽다고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을 데리고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는지 알현실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가문에 남아 있는 간부들이 기둥 앞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글렌은 보르고스를 처음으로 만나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한 위압감을 두른 채 옥좌에 앉아 있었다.
붉게 가라앉은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 등골 사이로 소름이 흘러내렸다.
“후우.”
라온이 짤막한 숨을 내쉬고서 알현실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알현실 중앙에 서서 보르고스와 다른 장인들이 따라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무릎을 꿇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버렌, 마르타, 루난, 도리안이 자신을 따라 가주전이 떠나갈 듯한 복귀 인사를 올렸다.
“…회색 망치의 보르고스가 북방의 왕을 뵙소!”
보르고스도 글렌의 존재감에 질린 듯 굳은 표정으로 먼저 허리를 굽혔다.
“부, 북방의 왕을 뵙습니다.”
다른 드워프와 장인들 역시 글렌의 존재감에 눌려 힘겹게 인사를 전했다.
“지그하르트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글렌은 언제 강렬한 기운을 드러냈냐는 듯 부드럽게 고개를 주억였다.
“화량산에서 벌어진 일은 유감이오. 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 했을 것을.”
그는 안타깝다고 말하며 짧게 혀를 찼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광풍대주와 천검대주를 보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리오.”
보르고스는 덕분에 지금 남아 있는 이들이라도 살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바로 일을 시작하겠다고 들었는데, 진심이시오?”
글렌은 괜찮겠냐는 듯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가만히 있어 봐야 머리만 복잡할 뿐이니, 일을 하고 싶소.”
보르고스는 받은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음, 대략적인 소식은 들었다만 정확한 내용을 말해 보거라.”
글렌은 왜 보르고스와 장인들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말해달라며 턱을 내렸다.
“예. 일단….”
라온이 한 발 앞으로 나와서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물론 라스의 연기를 해서 아스카라를 돌려보낸 부분은 꺼내지 않았다.
“음….”
글렌은 정말 괜찮겠냐는 듯 가라앉은 눈빛으로 보르고스를 바라보았다.
“일은 괜찮소.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소.”
보르고스가 글렌을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이곳에서 지내고 싶은데 허락해주실 수 있겠소?”
“작업을 끝낸 후에도 말이오?”
“그렇소.”
그는 지그하르트에 머물고 싶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해주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어떻게 우리를 믿고 이곳에 남겠다는 것이오?”
글렌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턱을 살짝 기울였다.
“솔직히 지그하르트를 믿는 건 아니오.”
보르고스가 느릿하게 시선을 돌려 라온을 바라보았다.
“내가 믿는 건. 아니, 우리가 믿는 건 광풍대와 라온이오.”
그는 지그하르트가 아니라, 라온을 믿고 있다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라온이 황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좋지 않은데.’
가문을 신성하게 여기는 글렌 앞에서 지그하르트보다 자신을 더 믿는다는 말이 나왔으니, 어떤 말이 돌아올지 모른다. 긴장하며 단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글렌의 반응은 자신의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흐읍….”
글렌은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쁘고 행복하다는 듯 말아 올린 입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감정 주체가 안 되는지 흔들리는 손으로 입까지 가리기 시작했다.
‘어?’
-에휴, 영감 또 시작이네….
라스가 질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