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86
제886화
“예?”
라온이 입맛을 다시는 발칸과 쿠베러드를 보며 눈을 끔벅였다.
“제 검을 먼저 봐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리 좋은 재료가 모였는데, 그대로 놔두는 건 아깝지 않느냐.”
발칸이 공방 주변을 가득 채운 드래곤의 뼈와 이빨을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빨과 뼈, 발톱, 비늘까지 사용해서 절대로 꺾이지 않는 검을 만들어 주마.”
그는 이 기회에 제천검을 더 단단하게 벼려주겠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가 훈련생을 갓 벗어났을 때 제천검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고칠 때도 되었잖느냐.”
발칸은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라고 말하며 기대감에 찬 눈동자를 빛냈다.
“나도 같은 의견이다.”
쿠베러드가 발칸의 옆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본래 진혼검은 전투용으로 만든 게 아니다. 네가 무기로 쓰고 있으니, 나도 조금은 다듬어 놓고 싶구나.”
그는 진혼검의 기운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벼려주고 싶다며 두꺼운 손목을 돌렸다.
“두 분께서 봐주신다면 저야 거절할 이유가 없죠.”
라온이 고맙다고 말하며 앞으로 손을 모았다.
만약 다른 대륙 장인이 저런 말을 했다면 무조건 거절했을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다른 사람이 만든 검을 새롭게 벼리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발칸은 제천검을, 쿠베러드는 진혼검을 직접 만든 장인들이다.
저 두 사람이라면 제천검과 진혼검을 지금의 자신에게 딱 맞게 고쳐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끼어도 되겠소?”
보르고스가 짧은 다리를 들어서 라온과 발칸, 쿠베러드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보르고스 님?”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보르고스를 바라보았다.
“난쟁이 놈이 어딜 끼겠다는 것이냐. 네가 만든 무기도 없잖아.”
발칸은 쉬고 있으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무기라면 있다. 은인에게 비수를 만들어줬었지.”
보르고스는 흑룡포 안쪽에 넣어둔 천살비를 말하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그럼 그 비수를 고치겠다고?”
“그 외에도 다른 게 있잖나.”
보르고스가 손가락을 들어서 오른쪽 허리춤에 차고 있는 리메르의 검을 가리켰다.
“설마….”
“나무나 키울 줄 아는 엘프들이 목륜검을 만들 수 있겠소? 당연히 우리 선조의 작품이지.”
그는 리메르의 검을 본인의 선조가 만들었다고 말하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목륜검….”
라온이 리메르의 검을 잡으며 가늘게 입술을 씹었다.
“그런 이름이었군요.”
지금까지 리메르의 검이라고 부르거나, 나뭇잎 검이라고 불렀는데, 본래의 이름은 목륜검이었던 모양이다.
검의 이름을 알려주지도 않고 떠난 것도 리메르다웠다.
“이름도 모르고 있었나?”
보르고스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래부터 제 검이 아니었으니까요.”
“아, 그래. 리메르가 가지고 떠났다고 했었지….”
그는 이제 이해가 된다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보르고스 님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 검은 제 것이 아니라, 곤란할 것 같습니다.”
라온은 스테린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을 거요. 목륜검이 세이피아에 있을 때 꾸준히 정비해 주었던 게 나니까.”
보르고스는 재료만 충분했다면 진즉에 고쳐놨을 거라며 콧김을 내뿜었다.
“스테린에게도 내가 고치겠다고 말한 적이 있소. 못 믿겠다면 지금이라도 그 녀석에게 편지를 보내겠소.”
그는 믿어달라며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믿어도 될 것이다.”
발칸이 보르고스를 보며 픽 웃었다.
“드워프는 망치질에 있어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는 한번 맡겨보라며 손가락 까딱였다.
“그래. 계속 그 검을 봐주었다면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을 게다.”
쿠베러드도 보르고스를 믿어보라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음.”
라온이 짧게 입맛을 다신 후 허리에 패용하고 있던 세 자루의 검을 모두 풀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발칸에게 제천검, 쿠베러드에게 진혼검, 마지막으로 보르고스에게 목륜검을 맡겼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네 목표를 더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검으로 벼려줄 테니까.”
발칸은 기대하라고 말하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는 진혼검 안의 원혼들이 조금 더 편히 움직일 수 있도록 조율할 생각이다. 지금의 너라면 원혼의 힘도 통제할 수 있을 테니까.”
쿠베러드는 진혼검이 꽤 많이 바뀔 거라고 말하며 고요히 눈동자를 빛냈다.
“나는 악마와도 같은 물건을 만들어 드리겠소. 그 누구라도 벨 수 있도록.”
보르고스는 발록에게 당했던 감정을 검에 담으려는 듯 입술을 꾹 내리눌렀다.
세 대륙장인의 실력은 호각으로 보였지만, 각자가 추구하는 제련 방식은 너무도 달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기나 할까?”
보르고스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누가 가장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오는지.”
그는 재밌지 않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검을 다듬는 건 다른 이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
“자신 없나?”
보르고스가 쿠베러드를 놀리듯이 눈동자를 굴렸다.
“누구에게 하는 소리냐! 내가 쿠베러드다!”
쿠베러드가 침착했던 눈빛을 지우고 호통을 쳤다. 그 역시 침착함 속에 불같은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쁘지 않군.”
발칸이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금탄도 있으니, 꽤 재밌는 결과가 나오겠어.”
그는 금탄 여섯 개를 꺼내서 2개씩 나누어주었다.
“기간은 딱 일주일이다. 괜찮겠지?”
“물론이다.”
“그 정도면 충분해.”
세 명의 대륙장인은 필요한 재료를 챙긴 후 각자 다른 공방으로 흩어져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저분들 정말 대륙장인 맞아?”
버렌은 아이처럼 유치했던 세 장인의 모습에 당황한 듯 헛바람을 흘렸다.
“즐거워 보였어….”
루난은 아이들이 함께 노는 것 같았다며 고개를 꾸벅였다.
“다 좋은데, 저러면 우리 검은 언제 만들어 주는 거야?”
마르타가 셋 다 라온의 검을 만지면 어떻게 하냐는 듯 콧잔등을 구겼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요.”
팔렌툰이 고개를 저었다.
“경쟁이 붙은 이상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할 테니까.”
그는 침착하게 기다리면 명검급 무기와 장비들이 쏟아질 거라면서 웃었다.
“금방 다시 나오실 테니, 일단 재료부터 나눠놓는 게 좋을 것 같소.”
“맞는 말씀이십니다. 빠르게 움직이죠.”
팔렌툰과 미르탄 마을의 촌장은 재료부터 나눠놓자고 말하며 장인들을 불렀다.
수장들끼리 친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까. 미르탄 마을의 장인들과 회색 망치 길드의 드워프들은 처음 만났음에도 친분이 있었던 것처럼 합심하여 재료 분류 작업을 시작했다.
“촌장님….”
루난이 드래곤의 뼈와 비늘을 옮기는 미르탄 마을의 촌장에게 다가갔다.
“아, 루난 님. 오랜만입니다.”
촌장이 인사가 늦었다고 말하며 루난에게 고개를 숙였다.
“검 고마워. 잘 쓰고 있어.”
루난은 설화를 꺼내서 보여준 후 고개를 꾸벅였다.
“다행이네요. 이제 더 좋은 검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촌장은 저 세 장인 중 하나가 더 뛰어난 명검을 만들어 줄 거라며 웃었다.
“싫어.”
루난이 고개를 저었다.
“예?”
“촌장님이 만들어줘.”
그녀는 설화를 버리고 싶지 않다며 라온의 검처럼 고쳐 달라고 말했다.
“지, 진심이십니까?”
미르탄 마을의 촌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입술을 떨었다.
“가만히 있어도 저분들이 명검을 만들어 줄 텐데? 저한테 맡기신다구요?”
“응.”
루난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생각해 보세요. 저도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지만, 저분들을 따라갈 정도는 아닙니다.”
촌장은 두 번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이게 나한테 딱 맞아. 라온과 같은 재료도 들어갔고.”
루난은 설화가 라온의 제천검과 한 쌍이기도 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 쌍이라….”
촌장이 가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료가 나뉘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그가 손에 든 드래곤의 뼈를 보며 입술을 꾹 씹었다.
“저 세 분에게 밀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미르탄 마을의 촌장은 루난에게 설화를 받으며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붉어진 눈동자에서 대륙장인들의 뒤를 쫓겠다는 열망이 느껴졌다.
“좋아. 나도….”
도리안은 루난의 결정을 보자마자, 회색 망치 길드의 장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오?”
팔렌툰은 품에 본인의 몸보다도 큰 뼈를 들어 올린 채로 시선을 올렸다.
“저분에게 부탁이 있어서요.”
도리안이 드래곤 비늘을 옮기는 보르고스의 수제자에게 다가갔다.
“저, 저 말씀이십니까?”
보르고스의 수제자가 도리안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이번에도 제 검을 만들어 주세요!”
도리안은 보르고스의 수제자 앞에 서서 바로 머리를 박았다.
“아….”
보르고스의 수제자는 도리안의 제안이 놀랍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저는 정말 실력이 부족한데….”
그는 미르탄 마을의 촌장보다도 한참 모자른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도리안이 검을 매만지며 옅게 웃었다.
“그동안 많은 검을 보고, 잡아봤지만, 이것만큼 저한테 맞는 게 없었어요.”
그는 이번에도 본인에게 맞는 검을 만들어 달라며 다시 허리를 굽혔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보르고스의 제자는 본인이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며 도리안의 검을 받아 갔다.
“나도 이 검을 고쳐볼까?”
마르타가 입맛을 다시며 본인의 검을 뽑았다.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거라서 바꾸기 싫은데.”
그녀는 데니어가 직접 준 선물을 계속 쓰고 싶다며 고개를 까딱였다.
“….”
라온은 검을 소중히 끌어안은 마르타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러고 보니 오늘 데니어가 없었지.’
데니어가 임무에 나가서 보이지 않았는데, 안심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안함이 치솟았다.
그가 아군인지 적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이런 불길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 같았다.
-얌마!
라스가 라온의 어깨를 세게 내리쳤다.
-여기서 계속 기다릴 건 아니지?
‘당연히 돌아가야지.’
라온이 불길함을 지운 채 옅은 미소를 그렸다.
‘바로 안 가면 누나한테 얻어맞을 테니까.’
* * *
라온은 검이 완성되면 연락해달라는 말을 남기고서 지그하르트로 돌아갔다.
-빌어먹을!
라스가 어둑해진 별관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 더운 마을에 다녀오느라. 저녁이 한참 지났잖느냐! 두 끼를 제대로 못 먹었느니라!
녀석은 점심과 저녁을 전부 놓쳤다고 코를 훌쩍였다.
-이제는 다 잘 시간이라 남은 음식도 없을 텐데….
라스는 나딘빵 신세는 피하고 싶다며 머리를 마구 비볐다.
‘그거 안 먹어도 될걸?’
라온이 웃으며 별관의 문을 열자, 군침이 저절로 흐르게 만드는 여러 요리의 향이 풍겨 나왔다.
“오신다는 연락을 듣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정말 딱 맞춰서 오셨네요?”
주방으로 음식을 옮기던 헬렌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라온이 왔다고?”
“아들. 시간 약속 하나는 기똥차네!”
실비아와 에드가가 식당에서 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라온!”
두 사람의 사이에서 튀어나온 시아가 자신을 끌어안았다.
“왜 이리 늦은 거야!”
그녀는 배에서 계속 천둥 소리가 들렸다며 입술을 삐죽하게 내밀었다.
“미안해.”
라온은 시아를 달래며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빨리 가자! 엄마랑 언니들이 밥을 다 차려놨어!”
시아의 손에 이끌려서 식당으로 들어가자, 김이 막 올라오는 요리들로 식탁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뭐, 뭐냐? 밤인데, 왜 이제야 저녁을….
라스는 늦은 시간에 저녁이 차려진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아한테 부탁했거든. 오늘은 좀 늦게 저녁을 준비해달라고.’
라온이 식탁 뒤편에 선 유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물론 이 정도로 성대하게 차려질 줄은 몰랐지만.’
-허어억….
라스가 그런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는 듯 눈동자를 떨었다.
-네, 네놈이 이런 준비를 할 줄이야.
“구슬 아이스크림도 사 왔어요. 식사 후에 드세요.”
헬렌은 여러 맛을 골라왔다고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구, 구슬 아이스크림까지?
‘약속했으니까.’
-크으으윽!
라스가 동그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녀석이 감격했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제는 네놈을 마족으로 받아주겠느니라!
라스는 어서 오라는 듯 팔을 뻗었다.
‘전혀 필요 없거든요….’
라온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라스는 여전히 착각이 심한 것 같았다.
* * *
사흘 뒤.
라온은 검붉은 빛이 도는 예복을 입고 별관을 나섰다.
“어디가?”
에드가와 실비아 앞에서 검을 휘두르던 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의가 있어서.”
“회의?”
“응. 높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거야.”
종종걸음처럼 보이지만, 큰 보복으로 다가온 시아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대회의지?”
“갑작스럽게 회의가 열리다니, 무슨 일인지….”
에드가와 실비아는 걱정이 된다는 듯 눈썹을 내렸다.
“저도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이틀 전 오늘 정오에 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는데, 지그하르트의 간부 전체가 모인다고 하니, 큰 안건인 것 같았다.
-쯧!
라스가 자신의 어깨에 내려앉은 채 혀를 찼다.
-한창 맛집 탐방을 하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아쉽지만 오늘은 영감의 집에서 밥을 먹어야겠구나.
녀석은 아쉽다는 말과 달리 기대가 된다는 듯 길게 입맛을 다셨다.
고급 요리부터, 길거리 간식까지 싫어하는 음식 자체가 없다. 대체 왜 폭식이 아니라, 분노의 군주가 된 건지 모르겠다.
“나도 갈까?”
시아가 본인도 가고 싶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루할 거야. 앉아만 있어야 하거든.”
“으, 그럼 싫어….”
“다녀와서 놀자.”
라온은 시아에게 놀아준다고 말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기는 걱정 말고 일에 집중하렴.”
“그래. 시아는 우리가 살피면 되니까.”
실비아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에드가는 머리를 긁적이며 허허 웃었다. 지켜만 보아도 가슴이 따스해진다. 이제는 구김 하나 없이 행복한 가정으로만 느껴졌다.
“그럼 다녀올게요.”
라온은 연한 웃음을 머금은 채 별관을 떠나서 본관으로 향했다.
가주전으로 가는 길에 많은 검사를 마주쳤는데, 하나 같이 긴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여왔다.
-흐음….
라스가 깊게 허리를 굽히는 검사들을 보며 짤막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예전에는 욕만 먹다니, 많이 컸구나. 이제야 본왕의 그릇에 어울리는 패기를 갖췄어.
녀석은 마음에 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아직도 포기 안 했어?’
라온이 진중한 표정을 짓는 라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왕은 포기를 모르느니라! 언제, 어느 때가 되었든 네놈의 육체를 잡아먹을 것이니라!
라스는 자신의 육체에 바친 능력치와 특성을 그냥 놔둘 수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치고는 요즘 나한테 시비도 안 걸고, 덤비지도 않던데?’
-시, 시끄럽느니라! 본왕은 때를 기다리는 것이니라! 치타! 그래. 치타처럼 뒤에서 달려도 따라잡는….
‘네. 그러시군요.’
라온은 라스를 놀리며 가주전으로 들어갔다.
고오오오.
보기만 해도 긴장되는 알현실의 철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쪽에서는 간부들이 열을 맞춰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회의답게 평소에 보기 힘든 간부들과 원로원의 노검사들도 자리를 채우고 있어서 거대한 알현실이 꽉 차게 느껴졌다.
“어이! 조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있던 발데르가 호통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
카룬은 관심 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쪽으로 와라!”
발데르는 본인의 옆에 서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죄송하지만, 아직 제가 갈 자리가 아닌지라.”
라온은 전주의 자리에는 갈 수가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흠, 이제는 아닐 텐데?”
발데르는 미리 좀 와도 괜찮을 거라며 입맛을 다셨다.
“아직 멀었습니다.”
부드럽게 거절하고서 평소의 자리에 서서 글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임무에 나가 있던 검사들을 제외한 모든 간부들이 알현실에 들어왔을 때 안쪽의 방이 열리고 글렌과 로엔, 셰릴이 나왔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카룬의 인사에 맞춰 알현실에 있는 간부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글렌은 평소와 달리 일어서라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묵직한 걸음으로 단상에 올라갔다.
그는 옥좌에 앉지 않고, 단상의 끝자리에 서서 턱을 까딱였다.
“일어나라.”
“예!”
일어나라는 고요한 음성이 들리고 나서야 알현실에 선 간부들이 고개를 들고, 허리를 폈다.
그들의 얼굴에는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고오오오오.
글렌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패기를 뿌리며 지그하르트의 간부들을 굽어보았다. 20여 년 전 그저 냉혹함만을 뿌리던 시기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번 대회의의 안건은….”
글렌의 건조한 시선이 우측에 선 라온에게 향했다.
“광풍대의 승급이다.”
그는 그게 이번 대회의의 가장 중요한 안건이라며 턱을 내렸다.
“예…?”
라온이 글렌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중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자신에 관한 일일 거라고는 아예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후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글렌의 아래에 선 비연회주 채드가 고개를 숙였다.
“광풍대주는 초월에 오른 후 데루스 로베르트의 계략을 부수었고, 아리스 지그하르트를 구해냈으며, 세이피아에서 고룡들의 습격을 막아내….”
채드는 그동안 라온과 광풍대가 이루었던 업적들을 하나씩 읊어주었다.
“…따라서 비연회는 광풍대가 광풍전으로 승급하는데 충분한 실적을 쌓았음을 인정합니다.”
그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적이라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나 반대 의견이 있으신 분은 거수해 주십시오.”
채드는 반대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며 말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흐음.”
“조금 빠른 것 같지만….”
“반대할 이유는 없지.”
“실적으로 보면 오히려 늦은 감이 있어.”
간부 중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대부분은 올 게 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반대가 없으시니, 이대로….”
“반대다.”
냉랭한 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우측 끝으로 향했다. 단상에 가장 가까운 기둥에 선 카룬의 손이 올라가 있었다.
“카룬…?”
글렌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깊게 내렸다.
“드디어 미치셨소? 댁이 이 회의 열자고 했잖아!”
발데르가 카룬의 이마에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이마를 깊게 구겼다.
“그새 치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