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00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00화(900/915)
제900화
처어어억!
라온과 광풍대 검사들은 지그하르트 무력대가 열어준 길을 따라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평소에 지니고 있던 장난기 어린 눈빛을 완벽하게 지우고, 한 자루의 검이 된 듯한 날카로운 기파를 뿜어내며 단상 앞에 섰다.
고오오오오!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던 관중들은 광풍대 검사들에게서 피어나는 엄숙하면서도 묵직한 자태에 손을 내리고 숨을 죽였다.
검례를 취하던 검사들 역시 그 기세에 놀란 듯 마른침을 삼켰다.
단상 앞에 정렬한 채 검병에 손을 올린 광풍대에게서 흘러내리는 진중한 기파는 위기의 전장을 구해내는 영웅의 기백을 보는 듯했다.
시끄럽고 번잡했던 연무장을 일시에 침묵시키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
라온은 광풍대의 선두에 서서 채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서를 진행해도 된다는 의미였다.
“으음….”
채드는 라온의 눈빛을 받은 것만으로 숨이 막혀온 듯 낮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원 바로.”
그의 지시에 검례를 취하던 검사들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고, 관중들도 자리에 앉은 채 낮은 숨을 내쉬었다.
잠시 광풍대의 기세를 마주했을 뿐인데, 모두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후우….”
채드가 탁한 숨을 내쉬고서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광풍대는 남북맹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고, 세이피아를 습격한 드래곤들을 막아 엘프와의 동맹을 공고히 했으며, 마족들에게서 회색 망치 길드를 구해내어 지그하르트의 검사 전원이 드래곤의 뼈로 만든 무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무게감이 담겨 있는 어조로 광풍대가 지금까지 이룬 업적을 하나씩 읊어주었다.
“거기다 마지막 임무에서는 광풍대주가 철전대를 위협하던 사검마를 베어 지그하르트의 이름이 오황오마보다도 더 높은 곳에서 빛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업적을 이루고, 명성을 떨친바. 가주님을 포함한 모든 간부들의 동의하에 광풍대를 광풍전으로 승급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채드는 떨리는 손 때문에 살짝 구겨진 서류를 뒤로 넘겼다.
“먼저 가주님의 격려 말씀이 있겠습니다.”
그는 옥좌에 앉아 있는 글렌에게 눈빛을 보낸 후 다시 뒤로 물러섰다.
“흐흠.”
글렌이 가는 헛기침을 하고서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붉은 뇌광이 번지는 눈동자로 라온과 광풍대를 고요히 굽어보았다.
“으음….”
“크윽.”
광풍대와 연무장에 서 있는 검사들은 글렌의 눈빛을 받는 것만으로 숨이 막혀오는 듯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광풍대의 첫 시작은 미약했다. 단주는 부상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한물 간 검사였고, 간신히 서른이 넘어가는 단원들은 이제 막 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애송이들이었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어.”
글렌은 처음의 광풍단을 떠올린 듯 옅은 웃음을 그렸다.
“허나 비연회주의 말대로 광풍대는 광풍단 시절부터 많은 공을 세워서 가라앉아 있던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대륙 전역에 퍼뜨렸다. 최근 암시장의 조사에 의하면 대륙의 검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에 광풍대주가 뽑혔고,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 1위에도 광풍대주가 뽑혔고, 가장 잘생긴 인물 1위에도 광풍대주가….”
그는 패도적인 기파를 뿜어내는 것과 달리 라온이 인기 순위에서 전부 1위에 뽑혔다고 말하며 천천히 입꼬리를 말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검사 1위에도 광풍대주가 올라갔고, 훗날 오황오마의 균형을 깰 인물에도 당연히 1위에….”
그는 어디서, 어떻게 조사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계속 라온이 1위 한 부문만을 나열했다.
“가, 가주님?”
채드가 마른 입술을 떨며 아주 작은 소리로 글렌을 불렀다.
“지금은 격려의 말씀을 하셔야 합니다….”
“아….”
글렌은 이제야 사람들의 멍한 시선을 느낀 듯 헛기침을 하고서 말려 올라가던 입꼬리를 내렸다.
“전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느냐?”
그가 다시 건조해진 눈동자를 돌려서 광풍대를 바라보았다.
“전각 혹은 궁궐이라는 뜻입니다.”
버렌이 머뭇거림 없이 바로 전에 대한 답을 꺼냈다.
“옳다. 전각이나, 궁궐이라는 의미지. 다만 그 안에는 다른 뜻도 있다.”
글렌이 버렌의 눈동자를 보며 가느다란 웃음을 그렸다.
“전각이나 궁궐이라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모든 것…?”
“집, 옷, 음식, 무구 그리고 사람이다.”
그가 손가락을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물어보마. 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글렌이 짧게 고개를 저으며 라온을 바라보았다.
“가문…. 작은 가문입니까?”
라온이 글렌과 그의 뒤편에 앉아 있는 관객들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렇다. 전은 지그하르트 무력대 중에서도 독립적인 위치에 있다. 가주전의 통제를 벗어나서 스스로의 판단하에 의사를 결정하는 일이 많지. 네 말대로 작은 가문을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글렌이 천천히 시선을 돌려서 관객석에 앉아 있는 카룬, 데니어, 발데르를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전주에게 붙는 다른 이름은 후계자 후보다. 전이라는 작은 가문을 운영하여 훗날 이 거대한 지그하르트를 손에 쥘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지.”
그는 전주가 되는 것은 지그하르트를 물려받을 후계자 후보가 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가주 자리에 욕심이 있다면 앞으로 저들에게 지지 않는 실적을 쌓아야 할 것이다.”
글렌은 지금부터 더 힘든 시간이 다가올 거라고 말하며 은은한 웃음을 그렸다.
“광풍대 역시 마찬가지다. 전주가 가장이라면 너희는 가솔이다. 가솔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가장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되니, 지금보다 더 언행에 주의해야 한다.”
그는 라온의 뒤편에 서 있는 광풍대를 보며 짧게 손을 내렸다.
“예!”
광풍대 검사들은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듯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연무장이 뒤흔들릴 정도의 대답을 쏟아냈다.
“이상.”
글렌은 본인이 할 말을 다 끝냈다는 듯 뒤로 물러섰다.
“그럼 다음으로 광풍전의 증표를 수여하겠습니다. 광풍대주부터 한 명씩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채드는 글렌의 위엄이 손상되지 않도록 빠르게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예.”
라온이 채드에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단상 위로 올라가 글렌의 앞에 섰다.
“네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가주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지. 앞으로 더 기대하겠다.”
글렌은 언제 웃었냐는 듯 냉랭한 눈빛으로 금색의 패를 건네주었다.
자주 받았던 금패와 비슷한 형태였지만, 그 중앙에는 불타는 검 대신 녹색 바람이 피어나는 검이 새겨져 있었다.
리메르를 기억하기 위해서 자신과 광풍대 전체가 원했던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진혼검을 한번 쓸어내린 후 광풍전의 패를 받았다. 작은 패였지만, 글렌이 했던 말이 있기 때문인지 쇳덩이를 받는 것 이상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너를 믿는다.”
글렌은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믿는다는 말을 해주었다.
“실망 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구나.”
그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해주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글렌에게 고개를 숙이고서 단상의 끝자리로 물러났다.
손아귀에 올려놓은 광풍전의 패를 보자, 리메르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 가주에 관심 없냐?] [가주가 되면 누구보다 잘할 것 같은데?] [한번 생각해 봐. 부담 없이. 응! 부담 없이! 부담을 가지지 말고, 그냥 생각만. 아니, 부담 주는 게 아니라….]리메르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가주에 오를 생각이 없냐는 말을 꺼냈었다.
아마 자신이 조금이나마 가주 자리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그 사람의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걸 보셨다면 좋아하셨을 텐데.’
리메르는 자신의 승진이나, 성장을 누구보다 좋아하던 사람이기에 오늘 가족 이상으로 기뻐했을 것 같았다.
-그랬을 것이니라.
라스가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귀때기 놈은 너희들을 어린 동생처럼 여기고 있었으니까.
녀석은 스승과 제자라기보다는 가족처럼 보였다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라온이 씁쓸한 미소를 그리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우웅!
진혼검이 지금 자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청아한 검명을 울리며 녹색의 바람을 일으켰다.
뭐랄까. 이미 떠난 리메르가 자신의 옆에 서서 광풍전의 승급을 함께 축하해 주는 느낌이었다.
“1조 조장 마르타 지그하르트. 앞으로.”
채드의 말에 마르타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네 용기와 돌진성은 언제나 광풍대에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마.”
글렌은 마르타에게 조언을 해주며 광풍전의 패를 건네주었다.
“예! 걱정하지 마세요!”
마르타는 언제나처럼 당차게 인사를 하며 바람이 새겨진 패를 받았다.
“버렌. 네 가장 큰 무기는 정교하면서도 날카로운 검술만이 아니라, 그 침착한 성격이다. 지금처럼 잘 가꿔나가도록 하거라.”
글렌은 턱을 주억이며 버렌의 장점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절대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버렌은 글렌의 조언을 들은 게 감격스러운 듯 떨리는 손으로 광풍전의 패를 소중히 끌어안았다.
“루난. 언제나 네가 뒤를 받쳐준 덕분에 광풍대 전체가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을 맡아주어서 고맙다.”
글렌은 본인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챙기는 루난의 마음이 기꺼운 듯 진한 미소를 그렸다.
“넹.”
루난은 다행히 반말하지 않았지만, 아주 짧은 단답을 하며 광풍전의 패를 손에 잡았다.
“어….”
글렌은 당황했지만, 루난의 맹한 표정을 보자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보냈다.
“도리안. 언제나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은 검사에게 좋은 태도가 아니지만, 너는 다른 방식으로 모두에게 용기를 주었지. 앞으로도 기대가 되는구나.”
“커헙, 흐헙….”
도리안은 심장이 사라진 사람처럼 헐떡이며 광풍전의 패를 잡았다.
안색이 퍼레진 것을 보니, 조금만 더 긴장했다면 저대로 쓰러졌을 것 같았다.
‘정말 잘 보셨군.’
글렌은 광풍대 전체를 보고 있었던 것처럼 검사들 모두에게 칭찬과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터질 것처럼 크게 뛰었다.
짜악.
글렌은 광풍대 검사 모두에게 광풍전의 패를 전해준 후 가볍게 손뼉을 쳤다.
“광풍대에게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경의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무장에 있는 검사들과 관중석에 있는 검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아 들었다.
치리리리링!
수백. 아니, 천여 자루가 넘는 검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듯 거꾸로 돌아가 은빛의 광채를 뿜어냈다.
“광풍전에 경의를!”
두 번째 검례. 첫 번째보다 더 깊은 경외심을 담아낸 지그하르트 검사들만의 인사가 광풍대를 향해 쏟아졌다.
웅장함과 엄숙함의 인사 앞에 선 광풍대 검사들은 주먹을 꾹 말아쥔 채 감격에서 밀려오는 눈물을 참았다.
“광풍전주는 대표로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채드는 마지막 순서라고 말하며 다시 라온을 앞으로 불렀다.
“음….”
라온이 글렌처럼 단상의 끝에 서서 지그하르트의 검사들과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숨을 내쉰 후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처음에는 지그하르트에 큰 감정이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호의보다는 악의였고, 그건 지그하르트가 제게 남긴 인상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좋은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 말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혔던 직계와 간부들이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런 제게 가문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 사람이 있습니다.”
라온은 두 손을 모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실비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 사람 덕분에 인연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동료에서 전우가 되고, 남보다도 차가웠던 가족이 조금씩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위해서 뻗었던 손이 훗날 저를 도와주는 손이 되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참으로 신기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물을 떨어뜨리는 실비아에게서 시선을 돌려 지그하르트의 검사들을 바라보았다.
“덕분에 무엇이 가문을 위한 길이고, 아닌지도 알게 되었고, 가문에서 이루고 싶은 작은 꿈이 생겼습니다. 그 꿈을 위해서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온이 검사들과 눈을 마주한 채 제천검을 뽑았다. 은빛의 날을 거꾸로 세워서 저들이 자신에게 보여준 경외의 감정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음?’
자신의 인사에 감격한 듯한 검사들을 보며 작은 미소를 그리고 있을 때 뒤편에서 작은 진동이 일어났다.
“흐흡….”
뒤를 돌아보니, 글렌이 자신의 등에 얼굴을 가린 채 대놓고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계속 보고 있으면 자신도 긴장이 풀릴 것 같아서 바로 시선을 돌렸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기뻐하시는군.’
실비아와 에드가는 대놓고 눈물바다를 채우고 있었고, 시아는 자신이 주목받는 게 기분이 좋은 듯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
“라온!”
아리스도 시아와 같은 정신 연령이 된 것처럼 난간을 부여잡은 채 손을 휘저었다.
“흠….”
“조카아아아아!”
카룬은 나름 괜찮았다는 듯 눈썹을 내린 채 한쪽 눈만 떴고, 발데르는 본인을 보라는 듯 큼지막한 팔을 휘저었다.
‘저 사람들도 많이 변했…아?’
라온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검례를 끝내려고 할 때였다.
‘저 사람….’
데니어가 웃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웃음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던 악행을 성취한 것 같은 비틀어진 웃음.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로 아주 끈적하면서도 기괴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