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01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01화(901/915)
제901화
‘저건….’
라온이 데니어의 일렁이는 눈동자를 보며 입술을 떨었다.
‘어떤 의미의 웃음이지?’
데니어가 보인 웃음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생각해 보아도 본 적 없는 색깔이었다.
이제야 때가 왔다는 듯 기대감이 차오른 느낌이기도 했고, 비웃음을 짓는 것 같기도 했으며, 인간의 감정을 연기하는 인형처럼 공허한 느낌까지 전해져왔다.
“광풍전주님?”
입술을 질겅질겅 씹고 있을 때 비연회주 채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라온이 황급히 눈동자를 돌려 채드를 바라보았다.
“이제 아래로 내려가셔야 합니다.”
그의 손을 따라 시선을 내리자, 자신의 옆에 있던 광풍대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단상 위에 남은 사람은 자신과 글렌뿐이었다.
“…죄송합니다.”
라온은 글렌과 채드에게 고개를 숙인 후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대주님도 멍을 때리실 때가 다 있네요? 옛일이라도 생각하신 거예요?”
도리안은 놀릴 게 생겨서 기쁘다는 듯 히죽였다.
“멍때리기 최고야….”
루난은 잘했다고 말하며 팔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이제는 대주가 아니라, 전주다. 지금부터 바꿔서 말하는 게 좋아.”
버렌은 라온을 향해 호칭을 높이라고 말하며 턱을 끄덕였다.
“….”
라온이 도리안, 루난, 버렌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다들 못 본 건가.’
광풍대 검사 모두가 웃고 있는 것을 보니, 데니어의 기괴한 표정을 본 사람은 자신뿐인 것 같았다.
‘라스.’
라온이 눈동자만 돌려서 라스를 불렀다.
-당연히 보았느니라.
라스는 자신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욕망과 안도 그리고 허무가 뒤섞여 있었느니라. 본왕도 저 인간의 정체를 모르겠느니라.
녀석은 데니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로 머리가 아프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너와 나만 본 건가?’
-그 미소를 지은 시간 자체가 극히 짧기도 했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이 네놈의 검례를 보고 있었기에 저놈의 표정을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니라.
라스는 못 보는 게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
자신이 전주가 된 소감을 말하고, 검례를 취한 순간이었기에 데니어를 보고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었을 것이다.
“그럼 이것으로 승급식을 종료하겠다.”
글렌은 직접 승급식을 마무리하고서 등을 돌렸다.
우와아아아아아!
광풍전! 광풍전!
라온! 라온! 라온!
지그하르트 검사들과 관객들은 라온과 광풍대를 향해 다시 한번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광풍전주.”
글렌은 환호 소리가 가라앉을 때쯤 손짓을 하여 라온을 불렀다.
“광풍대가 광풍전이 되었으니, 그에 걸맞은 건물과 연무장을 만들어야겠지. 생각해 둔 게 있느냐?”
그는 비어 있는 곳은 어디를 써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럼 5연무장에서 북망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개발해도 되겠습니까?”
5연무장에서 북망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넓기에 그곳을 개발하면 새로운 건물과 연무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5연무장을 허물고 만든다는 건가?”
“아뇨. 5연무장은 그대로 놔뒀으면 합니다.”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쓰든 쓰지 않든 놔두고 싶어.’
리메르는 금고의 암호를 5연무장으로 할 정도로 그 장소와 추억을 아꼈다.
지그하르트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5연무장을 지키고 싶었다.
“비연회주. 할 수 있겠나?”
글렌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채드를 불렀다.
“광풍전주께서 저리 말씀하실 것 같아서 미리 조사를 해두었는데, 전과 새로운 연무장을 올리기에는 충분해 보입니다.”
채드는 공간이 꽤 나온다고 말하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미리 조사를 하셨다구요?”
“예. 전주께서는 추억을 소중히 여기시니까요.”
그는 예상이 갔다고 말하며 살짝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라온도 채드를 보며 마주 인사를 해주었다.
“아닙니다. 이 또한 저희가 할 일이니까요.”
채드가 담담한 안색으로 손을 저었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설계도를 받아야 할 곳이 많아서.”
그는 최고의 건물을 만들어 보이겠다고 다짐하고서 두 사람의 곁을 떠났다.
“조금 가볍기는 하지만, 일 처리만큼은 믿을만하다. 전대 비연회주가 믿고 은퇴한 이유가 있어.”
글렌은 젊은 사람들끼리 친분을 쌓으면 좋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느꼈습니다.”
라온이 채드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카룬의 세작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지.’
채드의 언행이 너무 친절하고 조심스러워서 처음에는 자신의 정보를 빼내려고 하는 카룬의 세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카룬의 편이 아닌, 완전한 중립이었고, 의심한 게 미안할 정도로 비연회주로서 최선의 일 처리를 해왔다. 조만간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축하한다.”
글렌은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하고서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글렌에게 허리를 굽히고서 몸을 돌렸다.
쩝.
글렌의 아쉬운 음성이 들려와서 다시 몸을 돌리려고 할 때 앞에서 거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라온!”
“아들!”
“조카!”
실비아와 에드가가 양팔을 넓게 벌린 채 자신에게 달려왔고, 아리스는 정말 오랜만에 인상을 활짝 편 채로 조카라고 외쳤다.
“동생!”
시아는 아리스의 조카라는 말을 따라 하는 듯 동생이라 부르며 양손을 흔들었다.
“하, 한 명씩…윽!”
한 명씩 오라고 했지만, 네 사람은 범인을 포위하듯 동시에 자신을 끌어안았다.
“도련님!”
“축하드려요.”
“해내실 줄 알았어요!”
헬렌과 주디엘을 비롯한 시녀들도 축하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고맙습니다. 모두가 도와준 덕분이에요.”
라온은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도록 어린 시절부터 돌봐준 가족과 시녀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네가 잘한 거야.”
“맞아요. 저희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실비아와 헬렌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라온은 인사를 거두지 않았다.
“유아랑 율리우스도 잘했어.”
실비아는 라온의 뒤에 붙어 있는 유아와 율리우스를 안아주며 코를 훌쩍였다.
“맞아. 별관의 일을 하면서 수련하기 힘들었을 텐데….”
“정말 고생 많았어.”
시녀들도 유아와 율리우스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모두 도와주셔서 할 수 있었어요.”
율리우스는 코를 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저었다.
“네! 제가 좀 대단해요!”
반면 유아는 당차게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턱을 틀어 올렸다.
두 아이의 상반된 모습에 별관 사람들의 입가에 큼지막한 웃음이 피어났다.
-역시 파인애플 소녀이니라!
라스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왕의 수하라면 저렇게 당찬 모습이 있어야지! 네놈처럼 겸손만 떨면 재미가 없느니라!
녀석은 유아가 본인의 마음에 든 이유가 있다며 히죽였다.
‘보기 좋네.’
라온은 유아를 본인이 키웠다고 중얼거리는 라스를 밀어버리고, 다른 광풍대 검사들을 살펴보았다.
“나 이제 전의 조장이야…!”
루난은 본인이 이제 광풍전의 조장이 되었다며 큼지막하게 고개를 꾸벅였다.
“대, 대의 조장에서 전의 조장이 된 거면 승진이 누락 된 건데….”
루난의 아버지이자, 슬리온 가문의 가주인 로칸은 그게 정말 맞냐며 눈썹을 내렸다.
“그냥 잘 됐다고 하세요!”
루난의 어머니인 클라라가 로칸의 등을 후려쳤다.
“….”
“….”
카룬과 버렌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광풍대가 전이 되었으니, 아마 네가 부전주가 될 테지.”
카룬이 눈매를 좁힌 채 먼저 입술을 뗐다.
“예? 제, 제가 부전주를요?”
버렌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네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너밖에 없다.”
카룬이 손을 들어 마르타와 루난을 가리켰다.
“아….”
버렌은 맹한 루난과 사나운 마르타를 한번 보고서 마른침을 삼켰다.
“부전주는 전주의 뒤에서 농땡이를 부리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전주 대신 귀찮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야 할 때가 많을 테니,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네….”
그는 대답은 했지만,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콧잔등을 찌푸렸다.
“따라오거라. 가르쳐주지는 않을 테니, 네가 직접 보고 깨닫도록.”
카룬은 짧게 혀를 차고서 등을 돌렸다.
“아, 예!”
버렌은 전으로 승급할 때 이상으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카룬의 뒤를 따라갔다.
“이제 너도 대주의 자리를 얻겠구나.”
술을 한잔 걸친 듯 얼굴이 빨개진 도괴가 마크 괴튼을 보며 손을 까딱였다.
“만약 그리된다면 거절할 생각입니다.”
마크 괴튼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거절한다고?”
“예. 저는 누군가를 이끌어 본 적이 없습니다. 광풍대에서도 조에 속해 있지 않았으니, 차라리 호법이 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지금처럼 독립적인 위치에서 싸우고 싶다며 주먹을 쥐었다.
“뭐, 나쁘지는 않겠군. 다만 호법은 대주와 단주 이상으로 무력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겠지?”
도괴가 짧게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렸다.
“예. 그래서 한동안 수련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마크 괴튼은 당연히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이 더 좋아졌군. 좋다. 따라오거라. 광풍전의 호법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실력을 쌓게 해줄 테니까.”
“어르신….”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쳐낼 테니, 각오나 단단히 하거라.”
도괴는 마크 괴튼에게 술병을 맡기고서 5연무장을 떠났다.
“물론입니다.”
마크 괴튼은 술병을 소중하게 안아 든 채로 그 뒤를 쫓아갔다.
“아이고 감사!”
“선물? 이거 남부의 보급품이잖아?”
“에이, 난 한 거 없지! 우리 대주님이 다 했어!”
도리안은 마당발답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선물과 축하 인사를 받고 있었다.
저들 외에도 광풍대 검사들 대부분은 가족 혹은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쪽….’
라온은 그중에서 가장 따스한 웃음을 그리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앞으로는 저한테 대주라고 부르세요! 아버지 딸도 이제 대주라구요!”
마르타는 데니어의 앞에서 당차게 턱을 치켜들었다.
“그럼! 그냥 대주도 아니고, 대주님이라고 불러드려야지!”
데니어는 존칭까지 사용해 주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우리 현무전에 들어오기를 바랐다만, 이제는 네 선택이 옳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겠어.”
그는 아쉬움을 지우고, 그저 기쁨만을 두른 눈빛으로 미소를 그렸다.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날도 많았는데, 광풍대 애들이랑 아버지가 있어서 가능했어요. 고마워요.”
마르타는 언제나처럼 거친 모습이 아니라, 조금 여린 눈빛을 드러낸 채 고개를 숙였다.
“아니, 나도 네 덕분에 항상 행복했단다.”
데니어는 부드럽게 손을 뻗어서 마르타를 안아주었다.
그가 마르타를 향해 은은한 웃음을 지어주었는데, 그 웃음은 자신에게 보여주었을 때와 달리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축하한다.”
데니어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작은 목소리로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분명 평온한 음성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등골 사이로 오싹한 소름이 돋아올랐다.
-이, 이제 좀 무서운데….
라스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모르겠어.’
암살자 라온으로 살아온 삶으로도, 라온 지그하르트로 살아온 삶으로도 데니어의 의도와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분명 무언가가 있는 것 같지만, 대놓고 의심을 하거나 추궁할 수 없어서 더 답답했다.
‘실제로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들킨 적이 없으니까.’
데니어는 무능을 드러낸 적은 있어도,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글렌이 직접 치렀던 감사에서도 벗어났으며, 자신 이상으로 민심이 좋은 간부이기에 대놓고 의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후우우웅.
입술을 깨물고 있을 때 진혼검에서 청아한 바람이 흘러나와 자신을 휘감았다. 꼭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그렇죠.’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는 스승님 같은 일이 나오지 않게 해야죠.’
라온은 누구 하나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
*
*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음에도 번잡한 카멜룬 뒷골목의 주점.
대륙 전역에서 벌어진 수많은 소문으로 북적거리는 주점의 끝자리에서 라온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 이야기 들었냐?”
눈썹이 애벌레처럼 두꺼운 흑발의 중년인이 맥주잔을 내리며 턱을 까딱였다.
“무슨 이야기? 카멜룬에서 도는 이야기가 한두 개야?”
미역 같은 적발을 풀어헤친 근육질의 중년인이 눈매를 찌푸렸다.
“그딴 잡소문들 말고! 라온 지그하르트 말이야!”
흑발의 중년인이 세차게 맥주잔을 내리쳤다. 그가 라온이라는 이름을 꺼내자, 주점의 소음이 잠시 조용해졌다.
“아, 사검마를 잡았다는 거? 듣기는 했는데 믿음이 가야 말이지….”
적발의 중년인이 땅콩을 하나 집어먹으며 고개를 저었다.
“찬탈자 라온 지그하르트가 강하다는 거야 모두가 다 알지만, 사검마는 다르잖아. 수십 년 동안 깨지지 않는 벽이었다고. 그걸 아직 서른도 안 된 애송이가 잡았다는 걸 믿으라고?”
그는 이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곧 사검마가 튀어나와서 아니라고 호통을 칠걸?”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지.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흑발의 중년인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 관한 증거가 하나씩 나오고 있어.”
“증거?”
“그래. 가문으로 복귀한 라온 지그하르트가 대주에서 전주로 승급했거든. 북멸왕 같이 냉정한 사람이 거짓 업적에 전주라는 보상을 줄 리가 없잖아.”
그는 글렌의 성격을 잘 알지 않냐며 눈썹을 내렸다.
“음, 그건 그렇지….”
적발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 있어. 사검마가 수장으로 있는 사흑련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는 것. 세금조차 받질 않는 상태라고 하더군.”
“저, 정말?”
“그래. 조금씩 외부 활동을 준비하던 놈들이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질 않고 있다고 하더군. 수장이 죽은 게 아니라면 그럴 이유가 없잖아.”
“으음….”
그는 흑발 중년인의 말에 홀린 듯 눈을 끔벅였다.
“마지막 이유는 사검마와 사흑련이야.”
“사검마와 사흑련?”
“그래. 오황오마 신주오령 사이에서도 사검마와 사흑련은 본인들의 소문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신경 쓰고 있지.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목을 베는 경우도 많았잖아. 하지만….”
흑발의 중년인이 식은 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물고서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에는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고 있어. 본인의 명성이 땅끝까지 추락하고 있음에도 가만히 있는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사실이니까?”
“그래! 사검마가 정말 라온 지그하르트에게 죽었으니, 대응할 수가 없는 거라고!”
그는 라온이 사검마를 벤 건 확실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나는 라온 지그하르트와 사검마의 전투에 관한 것도 들었어.”
“그, 그걸 어떻게?”
적발의 중년인이 눈을 부릅떴다.
“이번에 내가 물건을 구해온 게 지그하르트 영역이잖아. 그쪽에서는 이미 소문이 다 퍼져있더라고.”
흑발의 중년인이 길게 입맛을 다셨다.
“그 일이 어떻게 된 거냐면….”
그가 라온과 사검마의 전투를 말하려다가 눈동자를 돌렸다.
시장통처럼 시끄러웠던 주점이 도서관이 된 것처럼 침묵이 퍼져있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크흠! 목이 좀 마르네.”
흑발의 중년인이 헛기침하며 빈 맥주잔을 살짝 흔들었다.
그는 수다와 소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금이 크게 얻어먹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인장!”
“저기에 맥주 두 잔!”
“나도 두 잔 더!”
“안주도 가져다줘! 내 이름으로 달아놓고!”
“돈 줄 테니까! 어서 시작하라고!”
주점의 술꾼들은 흑발 중년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본인의 돈으로 술과 안주를 주문해 주었다. 아예 돈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허험!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흑발의 중년인은 새로 가져온 맥주를 한 번에 들이키고서 씩 웃었다.
“그래. 궁금하니까. 빨리 좀 말해봐!”
적발의 중년인은 궁금증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듯 다리를 달달 떨었다.
“사실 사검마는 잃은 팔과 사기를 강화하기 위해서 본인의 수하들을….”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기에 주점 내부에서는 개미가 지나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다만 이런 상황은 이 주점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로엔이 남부로 이동하면서 풀었던 이야기들이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며 자연스럽게 온 대륙에 라온의 이야기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
*
*
[당신이 이뤄낸 위업에 대륙 전체가 경악하였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포인트 상승합니다.] [특성 <죽음을 이겨내는 불꽃>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특성 <죽음을 가르는 칼날>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특성 <사기 탐지>의 등급이 상승합니다.]‘어?’
라온이 검을 내리치다 말고 멍하니 눈을 떴다.
‘이게 뭐야?’
연무장에서 수련하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보상 메시지가 솟아올랐다.
-이, 이게 무엇이냐!
후식으로 구슬 아이스크림을 먹고 기분 좋게 낮잠을 자던 라스가 벌떡 일어났다.
-왜 갑자기 보상이 튀어나온 것이냐!
라스는 이해를 할 수 없다며 턱을 바르르 떨었다.
‘내가 이룬 업적에 대륙이 경악했다라….’
라온이 첫 번째 메시지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사검마를 잡은 소문이 대륙 전체에 퍼져서 얻은 보상 같은데?’
사실 자신도 아직 믿음이 가지 않기에 대륙 전체가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이런 보상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끄아아악!
라스가 본인의 머리를 부여잡은 채 신음을 터트렸다.
-이 망할 시스템! 어떻게 해야 본왕을 괴롭힐지만 생각하는 것 같으니라!
녀석은 화딱지가 나서 돌아버리겠다며 머리를 흔들었다.
“흠….”
라온은 잠시 보상을 살펴본 후 다시 제천검을 잡고서 천뢰공의 검술을 펼쳤다.
-엥?
라스가 그런 라온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기쁘지 않은 것이냐?
‘기쁘지.’
꽁으로 저런 보상을 얻었는데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저런 보상이 있어도 결국 나 스스로가 강해져야 해.’
시스템의 보상으로 인해서 강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자신의 무력이 멈춰 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앞으로의 싸움에서 모두를 지키려면 최소한 신주오령의 누가 와도 맞설 수 있는 무력을 키워놓아야 했다.
-하여튼 마음에 들었다가, 안 들었다가 한다니까.
라스가 팔짱을 낀 채로 콧방귀를 뀌었다. 입술을 삐죽하게 내밀었지만, 눈동자에서는 기껍다는 감정이 드러났다.
‘그게 맞으니까.’
사검마를 꺾기는 했지만, 아직 자신은 많이 부족하다. 희극제를 포함한 다른 신주오령에게 이긴다는 보장이 없기에 지금은 수련에 집중할 때였다.
치리리링!
라온이 천뢰공의 뇌기를 운용하여 검술을 펼쳐내고 있을 때 연무장의 문이 열리고 비연회주 채드가 들어왔다.
“광풍전주님.”
채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호칭을 부르며 자신에게 허리를 굽혔다.
“비연회주님.”
라온이 뇌기가 흐르는 제천검을 내리고 채드에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가주님께서 전주님을 호출하셨습니다.”
채드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흑탑에 관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