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02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02화(902/915)
제902화
“가주님을 뵙습니다.”
라온이 알현실의 붉은 카펫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거라.”
글렌은 과한 인사는 할 필요 없다며 손을 저었다.
-저 영감탱이는 인사를 좋아하는 거야? 싫어하는 거야?
라스는 인사가 싫으면 처음부터 시키지를 말라며 콧잔등을 구겼다.
“…예.”
라온이 어정쩡하게 굽히던 허리를 펴고, 글렌이 앉아 있는 단상 앞으로 다가갔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글렌이 옥좌의 팔걸이에 올려두고 있던 손가락을 까딱였다.
땅에 떨어져서 망가졌던 금색 의자는 어느새 멀쩡한 상태로 고쳐져 있었다.
“로엔 님이 무언가를 찾으신 겁니까?”
살왕이라 불리는 로엔이기에 기대감을 지닌 채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아니. 계속해서 몬티로를 뒤지고 있지만, 특별한 점은 찾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글렌은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발견한 게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가요….”
라온이 가늘게 입술을 씹었다.
‘하긴 발견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사검마는 마인들의 마기와 본인이 지닌 사기가 닮아 있었기에 흑탑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로엔은 암살자지만, 정통 무학을 익히고 있기에 찾기 힘든 게 당연했다.
“다행히 연락은 이어지고 있는 것 같군요.”
로엔을 혼자 보내면서 혹시나 하는 불길함이 느껴졌는데, 다행히 그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오늘 아침에도 연락이 왔었다.”
글렌은 계속 수색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엔을 완벽하게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굴과 신분을 바꿔가며 몬티로의 모든 장소를 뒤지고 있지만, 흑탑의 통로는커녕 마인 하나 발견하기도 어렵다고 하더구나.”
그는 예상 이상으로 쉽지 않은 일 같다며 눈썹을 내렸다.
“그렇겠죠.”
라온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쉽게 발견될 거였다면 진즉에 찾아냈을 테니까.’
몬티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관광지다.
대륙의 강자들도 한 번씩은 들렸을 곳이었기에 허술하게 숨겼다면 흑탑의 본거지가 진즉에 드러났을 것이다.
“그래서 조사 인원을 늘려보려고 한다.”
글렌이 라온을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사 임무를 광풍전에 맡기시겠다는 거군요.”
“그래. 광풍대와 철전대가 가장 최근에 사기를 두른 이들과 싸웠으니, 이번 임무를 맡기에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고요하게 일렁이는 눈동자를 굽혔다.
“너희가 강하기 때문이다.”
“강하기 때문…?”
“이번 임무는 조사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흑탑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는 순간 전투가 벌어질 테니까.”
글렌은 그 싸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광풍전이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라온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겠군.’
흑탑처럼 지저분한 세력이 그저 조사만 하고 돌아가게 놔둘 리가 없다.
흑탑의 위치를 발견하고 입구를 여는 순간 놈들과 처절한 전투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사기에 익숙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광풍전의 무력과 합을 믿고 있기에 이번 임무를 맡기려는 것이다.”
글렌은 광풍전에 수색 임무를 맡기는 이유를 말해주며 주름진 손을 옥좌의 팔걸이에 내렸다.
“할 수 있겠느냐.”
“전투보다 조사 임무가 더 어려울 것 같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라온은 수색 중에 사고를 칠 것 같은 마르타와 루난, 도리안을 떠올리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살짝 눈매를 좁혔다.
“흑탑의 위치를 발견한 순간 흑탑주가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약 흑탑주가 튀어나와서 길을 막는다면 자신이 나서도 시간 벌이조차 되지 않는다.
아예 도망치지 못하고 전멸할 것이기에 대책이 필요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글렌은 흑탑주를 막을 대비는 되어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가주님이 직접…?”
라온은 글렌의 평온한 눈동자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그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직접 나선다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아니, 나 대신 가고 싶다는 녀석이 있었다. 그건….”
글렌이 살짝 눈썹을 내리며 고개를 젓자, 단상 앞의 허공이 길게 갈라지며 노란 막대사탕 하나가 튀어나왔다.
“바로 나지!”
무거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자아이가 튀어나왔다. 영화의 대마법사 체임버였다.
“라온. 오랜만이다?”
체임버가 노란 막대사탕을 입에 물며 턱을 까딱였다.
“못 본 사이에 일을 저질렀다고 들었는데….”
그녀가 자신을 살피며 눈매를 좁혔다.
“그럴만하네. 이제는 애 취급을 할 수 없겠는데?”
체임버는 자신의 격 자체가 달라졌다며 짤막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오랜만입니다. 체임버 님은… 여전하시네요.”
아이 같으면서도 말이 많은 게 이전에 보았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매력적인 여자는 언제나 한결같거든.”
체임버는 당연한 일이라며 손등으로 본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너 사검마를 잡은 것보다 더한 사고를 쳤던데?”
그녀가 갈라진 공간을 아예 뚫고 나와서 자신의 앞으로 다가왔다.
“…흑탑 말씀이십니까?”
라온이 달달한 사탕 향기를 피워내는 체임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정말 몬티로에 흑탑이 숨겨져 있다면 사검마를 잡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업적이 될 거야.”
체임버는 아주 대단한 위업이라며 턱을 주억였다.
“너무 띄워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온이 손사래를 쳤다. 우연히 얻은 정보이기에 절대 그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진심이야. 쥐새끼처럼 숨어서 힘을 쌓는 오마를 잡아낼 기회를 만든 거니까. 만약 정말 흑탑이 그곳에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줄게.”
체임버는 무엇이든 말만 하라며 본인의 가슴을 두드렸다.
“크허험….”
글렌은 체임버가 대놓고 라온을 칭찬하는 것이 기쁜 듯 슬쩍슬쩍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했다.
“아! 결혼해달라고 해도 해줄게!”
체임버는 본인이 조금 손해지만, 라온이면 해줄 의향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금은 이래도 조금만 크면….”
“체임버….”
글렌이 웃음기를 싹 지운 채 콧잔등을 구겼다.
“제발 나잇값 좀 해라….”
그는 정신을 차리라는 듯 뚝뚝 끊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나잇값이거든!”
체임버가 글렌을 향해 작은 혓바닥을 내밀었다.
“뭐, 보수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알현실이 둘로 갈라진 채 비틀어졌다. 거울의 세계 같기도 했고, 이 세계 자체가 반으로 갈라진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너희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을 거야. 흑탑주가 너희를 노리기 전에 내가 놈을 죽일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체임버는 수색 임무를 돕기는 힘들지만, 전투에서는 가장 앞에 설 거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제가 듣기로….”
라온이 체임버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체임버 님과 흑탑주의 상성은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십니까?”
“그걸 역전할 방법을 개발했으니까. 여기에 왔지. 이제는 극복했어.”
체임버는 자신이 있다는 듯 작은 주먹을 들어 올렸다.
“….”
라온이 글렌을 바라보았다. 그는 믿어도 괜찮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나 아니면 갈 사람도 없어. 근육 덩어리는 아직도 빌빌거리고 있고, 애송이 국왕은 오웬과 발카르를 다 지켜야 하고, 방구석 백수는 나오는 것 자체가 무리고, 너희 할배는….”
체임버는 글렌에 대해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흑탑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했을 때 그 길을 열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까. 내가 가는 게 맞아.”
그녀는 선택권이 없다고 말하며 본인을 믿으라 말했다.
“물론 믿고 있습니다.”
라온은 체임버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보다는 글렌 때문에 더 믿음이 갔다.
“그럼 출발은 언제입니까?”
“흑탑에 관한 교육이 필요할 테니, 사흘 뒤로 하지.”
글렌은 미리 계획을 생각해 둔 듯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그 시간에 맞춰서 준비해두겠습니다.”
라온은 광풍전 검사들에게 말할 부분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광풍전만이 아니라, 다른 무력대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다른 무력대라면….”
“흑탑이 쌓아둔 전력을 생각하면 너희로는 부족해. 최소한 무력대 2개는 더 붙어야 전투 중 희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글렌은 체임버가 데리고 온 마법사들이 있어도 흑탑의 전력에 밀릴 수 있다며 추가 인원을 붙일 거라고 말해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거라.”
그는 준비할 게 많을 테니, 어서 나가보라며 손을 저었다.
“몬티로에 도착하기 전에 보자고!”
체임버는 나중에 만나자고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예. 그럼….”
라온은 글렌과 체임버에게 고개를 숙이고서 알현실을 나섰다.
“….”
글렌은 라온이 나가자마자, 안색을 굳혔다.
“정말 괜찮겠나? 아무래도 내가 가는 게 나을 텐데?”
그는 체임버가 걱정된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괜찮다니까. 흑탑주 놈이 그 아티팩트의 힘을 전부 흡수했을 줄은 몰랐어서 당황했을 뿐이야. 다시 상대하면 이길 수 있어.”
체임버는 이번에는 막을 수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밀려도 댁과 우리 애들은 도망치게 할 수 있으니, 걱정 놓으라고.”
“너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흑탑주는 이전부터 더러운 술수를 썼으니, 걱정될 뿐이다.”
“놈을 가장 많이 상대해 본 사람이 나잖아. 어떻게 되든 내가 가는 게 맞다고.”
그녀가 사탕가루가 묻어 있는 손가락을 흔들었다.
“거기다 아저씨에게 남은 시간과 여유는 많지 않잖아….”
체임버가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린 채 이마를 찌푸렸다.
“아저씨의 힘으로 흑탑주를 꺾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놈은 끈질겨. 결국 심검까지 쓰게 될 텐데, 그러면 댁이 이 세계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 게 되어서 결국 오황이 무너지는 발판이 세워질 거야.”
그녀는 마지막 전쟁에서 쓸 힘을 아껴두라고 말하며 가늘게 웃었다.
“음….”
글렌은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듯 눈을 내리감았다.
“아저씨는 그 옥좌에서 버텨주는 것만으로 3인분 넘게 해주고 있어. 이번에는 나와 댁의 손자를 믿으셔.”
체임버는 믿고 기다리라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헌데….”
그녀가 가늘게 눈매를 좁혔다.
“같이 보낼 애들은 누구야? 무력대 두 개 이상인가?”
“하나다.”
글렌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라온과 꽤 잘 맞을 녀석이지.”
*
*
*
<상태창>
이름 : 라온 지그하르트.
칭호 : <초월자>
상태 : 없음.
특성 : <분노>, <나태>, <질투>, <폭식>, <색욕>, 불의 고리(9성), 수속성 저항력(11성), 화속성 저항력(10성) 설화의 감각(11성) 만화공(9성), 글래시아(9성), 블러딩 커스(5성), 암습(13성), 불굴의 의지(9성), 요기적응(10성), 명경지수, 독 저항력(6성), 분노의 마안(10성), 나선력(7성), 수속성 친화력(6성), 진법 해석(2성), 화속성 친화력(5성), 설화의 은막(5성),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8성), 사기 저항력(6성), 설화의 마갑(9성), 설화 흡결(4성), 설화 척창(4성), 분노 개방(2성), 죽음을 이겨내는 불꽃(5성), 죽음을 가르는 칼날(6성), 신력 저항(1성), 혈로(1성), 아스카라의 투기(4성), 비령(1성), 천살(1성), 권능 강화(1성), 광속성 저항력(1성), 사기 탐지(2성).
근력 : 1451.
민첩성 : 1483.
체력 : 1442.
기력 : 1458.
감각 : 1496.
분노 : 250.
나태 : 150.
질투 : 150.
폭식 : 100.
색욕 : 50.
라온은 눈앞으로 떠오른 상태창을 보며 작게 헛바람을 흘렸다.
‘이제는 읽기도 힘드네.’
특성과 능력치의 수치가 늘어나면서 상태창을 한 번에 보기가 힘들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느라, 목이 아플 정도였다.
-흐읍!
라스가 숨이 멈추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녀석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상태창만을 바라보았다.
‘특성에 색욕이 올라갔군.’
러스트에게 받았던 <색욕>이 상태창에 자리를 잡았고, 그 수치도 크게 상승해 있었다.
아직은 큰 효과를 느끼지 못했지만, 저 숫자가 100을 넘어선다면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헌데….’
왜 암습은 변화하지 않는 거지?
집중은 12성이 되어서 명경지수로 변했는데, 암습은 13성이 되었음에도 그대로 멈춰 있었다.
아무래도 더 높은 경험이 쌓여야 이름이 변하는 것 같았다.
‘하긴 저건 내가 전생부터 가져왔던 능력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전생의 자신은 무력이 아니라, 암살 기술로 사람을 죽였었다.
처음부터 저 능력이 뛰어났으니, 조금 더 많은 성취가 필요한 것 같았다.
‘아스카라의 투기도 늦게 얻은 것치고는 성취가 괜찮군.’
본래 지니고 있던 투기가 아스카라의 투기로 변한 것이기에 늦게 얻었음에도 벌써 4성까지 등급이 올라가 있었다.
사검마와의 전투에서 투기의 중요성을 느꼈기에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되어 줄 것 같았다.
‘사기 탐지는 2성….’
이건 조금 아깝네.
이번 흑탑 수색에 가장 큰 역할을 할 특성일 텐데, 아직 2성밖에 되지 않은 게 아쉬웠다.
가는 길에 계속 사용하여 조금이라도 성취를 올려야 할 것 같았다.
‘…능력치는 몇이 오른 거지?’
보상 메시지에, 마왕들의 권능 덕분에 마지막으로 상태창을 보았을 때보다 대략 500 이상의 수치가 상승해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이러니까 초월자한테도 육체 능력이 안 밀리지.’
산 제물을 먹어 치웠던 사검마에게도 육체 능력이 밀리지 않았던 이유가 저 말도 안 되는 수치에 있었다.
고수의 세계에 갈수록 오러와 무학의 중요성이 높아지지만, 육체 능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능력치의 효율은 줄었지만, 다른 사람과 달리 꾸준히 성장할 수 있으니,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끄아아아아악!
라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괴성을 내질렀다.
-왜 이렇게 많은 것이냐!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잖아!
‘어차피 너는 못 보잖아.’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스는 메시지의 내용은 보아도, 상태창 자체를 볼 수는 없는데 왜 난리를 치는 건지 모르겠다.
-내용은 안 보이지만, 상태창 크기는 보인다고! 하늘을 가릴 정도인데, 본왕이 모르겠느냐!
라스는 왜 상태창을 불러와서 본인을 놀리냐는 듯 이를 갈았다.
‘너를 놀리는 게 아니라, 이번 임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전에 특성들을 확인한 거야.’
특성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으면 자신조차 쓰기 힘들 때가 있다.
미리 확인하여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두었을 뿐이다.
-크르르릉!
라스는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상태창을 향해 이를 갈았다.
-본왕의 피와 땀이 전부 여기에!
녀석은 억울하다고 외치며 동그란 손으로 허공을 긁었다.
‘또 귀를 막았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대주의 사무실을 나왔다.
광풍대와 철전대는 임무 준비를 마치고, 단상 앞에 정렬해 있었다.
‘이제 좀 결이 비슷해졌군.’
라온은 철전대의 눈동자에 깃든 노란 광기에 만족하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준비는 끝났나?”
“예!”
광풍대와 철전대 검사들은 완벽하게 출정 준비를 마친 듯 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임무는 숨겨진 흑탑의 흔적을 찾아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이곳에 있는 누군가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으로 임무가 실패할 수도 있기에 자그마한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라온은 몬티로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지그하르트의 검사가 아니라, 관광객이나 여행자, 용병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턱을 내렸다.
“걱정하지 마쇼! 들키면 차라리 목숨을 끊을 테니까.”
마트라는 자신이 있다는 듯 본인의 가슴을 두드렸다.
“아니.”
라온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흑탑은 거대하면서도 유기적인 세력이다. 정체가 들킨다면 이미 흑탑에 있는 모두가 알게 되었다는 뜻이니, 스스로의 목숨을 소중히 하도록.”
데루스에게 배웠던 대로 누군가의 희생으로 임무를 완수할 생각은 없었다.
암살자 라온에서 검사 라온 지그하르트가 되었으니, 동료의 죽음을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다.
“으음!”
“전주님….”
“…알겠습니다.”
검사들은 예상과는 다른 말에 놀란 듯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이 급하니, 광풍전의 편제는 돌아오는 대로 정하도록 하고. 지금은 이전처럼 광풍대와 철절대의 이름으로 움직이겠다.”
“예!”
단상 아래의 검사들은 오히려 그게 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누구 하나의 이탈 없이 모두 이 자리에 복귀하기를 바란다.”
라온은 검사들에게 명령이자, 바람을 전하고서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광풍대와 철전대 사이를 걸어가 연무장의 문을 열었다.
파아앙.
광풍대와 철전대 검사들은 각기 칠흑 같은 제복과 핏빛 제복을 걸친 채 그의 뒤를 따랐다.
고오오오오!
라온의 패도적인 기파에 감응하듯 광풍전의 검사들은 하나의 검처럼 진중하면서도 예리한 기세를 피워내며 대로를 걸어갔다.
‘나쁘지 않군. 앞으로도 성장할 부분이…음?’
라온은 이미 하나가 된 듯한 광풍전 검사들의 기운을 느끼며 지그하르트의 정문으로 향하다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저들인가?’
글렌이 함께 보내겠다고 했던 무력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인지를 살피며 정문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늦었구나.”
카룬 지그하르트. 그의 고고한 붉은 눈동자가 라온을 향해 굽어졌다.
“광풍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