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10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10화(910/915)
제910화
라온이 느릿하게 눈을 내리감았다.
‘천천히 퍼지기 시작하는군.’
렌시아가 착용한 목걸이에서 피어나온 체임버의 기운이 오망성을 이루는 아티팩트를 향해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음….”
렌시아가 본인의 몸을 살핀 후 녹색 눈동자를 끔벅였다.
“통증이 심하지는 않은데요? 견딜 만해요!”
그녀는 허리에 튀어나온 검은 심장을 만지며 웃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곧 심해질 거야.”
라온이 씁쓸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마나가 퍼지는 중이라 괜찮지만, 오망성이 이어지는 순간 렌시아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괜찮아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요! 함께니까.”
렌시아는 자신의 손을 꼭 잡으며 연한 미소를 그렸다. 동생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굳게 다지는 것 같았다.
“렌시아….”
루난이 렌시아의 말을 듣고서 입술을 꾹 내리눌렀다.
“저 꼬맹이가 눈물 나오게 만드네.”
마르타가 렌시아를 보며 눈썹을 깊게 내렸다.
-본왕은 앞으로 저 꼬맹이를 애늙은이라고 칭하겠느니라!
라스는 렌시아의 별명을 애늙은이로 정했다며 입맛을 다셨다.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본인이 싫어할 거야.’
라온은 별로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흥. 본왕이 정했으면 그걸로 끝이니라.
라스는 이미 결정이 났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헌데 마나의 움직임이 상당히 빠르구나.
라스는 예상보다 마나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눈동자를 굴렸다.
-급히 만든 것치고는 격이 높은 마법이니라.
‘대마법사와 그녀의 제자들이 밤을 지새우며 만든 마법이니까.’
몬티로는 관광지답게 규모가 큰 도시다.
이 넓은 땅과 바다를 마법진으로 최대한 빠르게 휘감기 위해서 체임버와 발카르의 마법사들은 잠도 자지 않고 마법을 개발했다.
-기대되는군.
라스가 허공을 올려보며 짧게 입맛을 다셨다.
-마기를 모욕하는 추한 것들이 무너지는 꼴이 말이야.
녀석은 아직 흑탑에 대한 분노를 지니고 있는 듯 푸른 안광을 번뜩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라온이 담담한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전부 부숴버리고 싶어.’
남북맹의 부왕이나, 성검련의 할아버지처럼 오마에서도 신의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흑탑과 데루스 로베르트만큼은 예외다.
저 두 세력은 인간을 포기하고, 마라는 글자에 물들어 버린 악귀들이었다.
누구 하나 살려둘 필요 없이 전부 제거하는 게 옳았다.
-네놈의 분노도 이제는 무르익은 것 같구나.
라스는 마음에 드는 분노라고 말하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내 분노는 처음부터….’
라온이 데루스의 이름을 꺼내려다 말고, 시선을 우측으로 돌렸다.
‘이제 모서리에 닿았군.’
몬티로의 중심에서 흘러 나간 체임버의 마나가 오망성을 이루는 아티팩트에 닿은 게 느껴졌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으….”
렌시아는 이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는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만 참아.”
라온이 렌시아에게 글래시아의 서리를 전해주었다. 냉기를 이용하여 그녀의 고통을 반감시켜주면서 검은 심장을 압박했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군.’
마법진의 핵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렌시아까지 돌봐야 하기에 자신은 이 분수 앞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누군가가 건드리는 순간 피를 토하고 쓰러지게 될 것이다.
-정말 괜찮겠느냐?
라스가 걱정이 된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그래.’
라온은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루난과 마르타를 보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소녀와 소고기 소녀가 지켜줄 테니까.’
*
*
*
“렌시아….”
마르타는 지독할 정도의 고통을 견디는 렌시아를 보며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저 아이를 볼 때마다 어릴 때가 생각나.’
백혈교에게 마을이 몰살당하고, 엄마가 납치되었을 때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자신은 어리고 약했기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입에 칼을 물면서까지 최하위 혈귀들을 죽여나갔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쯤 자신은 혈귀가 되었거나, 혈귀의 먹이가 되어 죽었을 것이다.
‘아니, 렌시아가 나보다 심해.’
자신은 렌시아보다 어린 나이에 구원받아서 지그하르트에 들어왔다. 엄마를 걱정하느라, 마음을 졸였을지언정 삶 자체는 윤택하고 편안했다.
하지만 렌시아는 지금까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고통만을 지닌 채 살아왔다.
피도 이어지지 않은 동생들을 돌보며 억지로 웃었을 그녀의 삶을 떠올리자,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려왔다.
“야.”
마르타가 분수 옆 벤치에 앉으며 루난에게 턱을 까딱였다.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아마….”
루난이 전신을 파르르 떠는 렌시아를 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감한 아이야….’
나보다 훨씬.
자신은 시리아의 손아귀에 잡혀서 10년 넘게 날아오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새장 안에 갇혀 있었다.
라온이라는 구원자가 나타나 새장의 문을 열고 자신을 하늘 위로 날려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새장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렌시아도 자신과 비슷하게 태어났을 때부터 흑탑의 마수에 걸려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동생들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다정한 성격을 잃지 않았다.
다 포기하고 갇혀 있기만 했던 자신보다 훨씬 용감한 아이였다.
‘지킬 거야.’
렌시아가 거짓된 웃음이 아니라, 저 나이에 맞는 천진난만한 소녀의 미소를 짓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물론 자신도 아직 웃는 게 어색했지만.
“해보자.”
루난이 라온과 렌시아를 뒤로하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어떻게 해서든.”
“당연하지.”
마르타는 말할 걸 말하라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투욱.
루난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마르타의 주먹을 향해 보자기를 뻗었다.
“내가 이김….”
“이 자식아!”
*
*
*
스으으.
라온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
‘순조롭군.’
렌시아라는 핵을 중심으로 오망성의 마법진이 운용되며 몬티로의 마나 흐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마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는구나.
라스는 드디어 몬티로에서 마기가 피어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기도 움직이고 있어.’
지금까지 몬티로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기가 땅 밑에서 피어나오고 있었다.
몬티로와 흑탑을 잇는 마법진에 균열이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시선을 돌려서 렌시아의 목걸이를 보자, 투명한 보석의 삼분의 일이 불꽃으로 차올라 있었다.
이제 40분만 지나면 이곳에 흑탑으로 이어지는 차원의 문이 열릴 것이다.
“흐윽….”
렌시아는 고통이 더 심해진 듯 입술을 깊게 깨물고 있었다.
‘힘들겠지만, 버텨야 해.’
체임버가 심하게 아프다고 할 정도니, 수련을 받지도 않은 아이가 견디기에는 버거운 고통일 것이다.
글래시아의 냉기에 가루누아의 바람까지 더해서 렌시아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주었다.
“하아….”
렌시아는 조금 통증이 줄어들었는지 낮은 숨을 내쉬며 허리를 굽혔다.
“잘 참았어. 이제… 음?”
렌시아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다가 급히 시선을 돌렸다.
-움직이는구나.
‘벌써….’
아직 26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몬티로 곳곳에서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감각이 뛰어나거나, 강한 마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러면 우리의 예측보다 놈들이 더 강하다는 뜻이겠군.’
체임버는 흑탑의 마인들이 마법진에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하는 시기가 30분 정도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그보다 4분 빨리 알아차린 것을 보면 자신들의 생각보다 놈들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게 옳았다.
‘그럼 흑탑에 연락을 해보고,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가 28분 정도. 전투 자체는 30분에 시작되겠군.’
쿠와아아아아앙!
퍼어어어엉!
렌시아가 착용한 목걸이의 불꽃이 절반가량 차올랐을 때 몬티로 이곳저곳에서 충격파와 폭발이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전투. 아니, 전쟁의 시작이었다.
스으으으.
마르타와 루난도 그걸 느꼈는지 아공간에서 검을 꺼낸 후 자신과 렌시아의 앞과 뒤에 섰다.
“으어어억!”
“뭐, 뭐야!”
“전쟁인가?”
“갑자기 무슨 일인데!”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눈동자만 굴렸다.
“여길 떠나는 게 좋을 거야.”
“산으로 가….”
마르타와 루난은 손가락을 들어서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 장소를 알려주었다.
라온은 루난과 마르타가 다른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눈매를 찌푸렸다.
‘붙었군.’
오망성을 지키는 무인들과 흑탑의 마인들이 싸우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하나 같이 마스터 이상의 강자였고, 그랜드 마스터급으로 보이는 마인들도 있었다.
‘다행히 이쪽으로는 안 오는군.’
마법진이 발동된 후 핵보다 오망성을 이루는 아티팩트의 기운이 더 강하기에 마인들은 전부 오망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 것 같았다.
‘예상보다는 빠르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이네.’
광풍전과 중무전의 검사들도 관광객 사이에 낀 채로 마인들을 기습하는 게 느껴졌다.
흑탑의 마인들이 예측보다 빠르게 움직인 건 맞지만, 미리 준비를 잘해둔 덕분에 소규모 전투 자체는 이쪽이 압도하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만 끌면….’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 같구나.
라스가 콧방귀를 뀌며 손을 들어 올렸다.
스으으으.
녀석이 가리킨 방향에서 어깨에 대검을 걸치고 있는 백발의 남성과 긴 창을 땅에 짚고 있는 장신의 남성이 걸어왔다.
“이곳이. 아니, 렌시아가 핵이었군.”
몬티로의 영웅 중 한 명인 대검의 칼롭이 피식 웃었다.
“언니가 마기에 녹아서 죽는 꼴을 보고도 이런 일을 벌이다니, 어리석군요.”
칼롭과 같은 영웅이자, 사람들에게 검은 심장을 이식한 펠릭스가 렌시아를 굽어보며 턱을 저었다.
“으으….”
렌시아는 칼롭과 펠릭스에게 겁을 먹은 듯 작은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괜찮아.”
라온은 렌시아의 떨리는 손을 더 꽉 잡아주며 고개를 저었다.
“예쁜 언니들을 믿자고.”
*
*
*
마르타는 천천히 접근해 오는 펠릭스와 칼롭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듣던 대로 강하군.’
암시장의 정보를 통해서 저 두 사람의 무력을 확인했다. 마스터 최상급.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올라 있는 강자였다.
다만 그건 겉으로만 볼 수 있는 실력에 불과했다. 실제로 저놈들이 얼마나 큰 힘을 숨기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으니까.
“평소대로 해….”
루난은 흔들리지 말고, 본인의 싸움을 하라는 듯 고개를 꾸벅여 주었다.
“알거든!”
마르타가 루난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평소에는 답답하지만, 뒤에 서면 저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뻔히 보이는데 긴말은 필요 없겠지. 죽여라.”
칼롭이 대검을 겨누자, 그의 등 뒤에서 그림자처럼 새까만 마물들이 튀어나왔다.
치이이잉!
마물들은 루비처럼 붉은 안광을 번쩍이며 라온과 렌시아를 향해 쇄도했다.
투우우웅!
마물들의 노란 이빨이 라온을 향해 뻗어나가는 순간 분수 근처에 퍼져 있던 관광객들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촤아아아아악!
광풍 1조의 검사들이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와 라온과 렌시아를 노리던 마물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마스터들의 강기 앞에서 마물들은 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지그하르트의 광풍전인가? 준비를 아주 단단히 하셨군.”
칼롭은 검사들의 검에 새겨진 문양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너희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나? 흑탑을. 아니, 마계를 이곳에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제 무덤을 파고 있다며 코웃음을 흘렸다.
“칼롭.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라.”
펠릭스가 창대로 바닥을 긁으며 고개를 저었다.
“렌시아 님. 저는 당신이 은혜를 아는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개돼지만도 못하셨군요.”
그는 고통을 참느라 실눈을 뜨고 있는 렌시아를 보며 매서운 시선을 쏘아냈다.
“언니와 같은 길을 가고 싶으시다니, 어쩔 수가 없군요. 똑같이 마기 속에서 뼈와 살을 녹여드리겠습니다.”
펠릭스는 렌시아에게 겁을 주어서 마법의 발동을 멈추려고 하는 듯 섬뜩한 살의를 일으켰다.
“흐으으….”
렌시아는 언니가 죽었을 때가 생각난 듯 전보다 더 큰 떨림을 일으키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괜찮아.”
라온이 렌시아의 손을 더 꽉 잡아주며 웃어주었다.
“울지마! 이 언니들이 저 멀대 새끼를 짓밟아 줄 테니까.”
마르타가 대지를 부수며 치고 나가 펠릭스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타이탄 오러가 지닌 굳건함이 칼날 위에 깃들며 하늘 같은 무거움이 피어났다.
쿠와아아앙!
마르타의 검격이 얼마나 강했는지, 펠릭스는 방어에 성공하고도 발목이 땅에 박히는 것을 막지 못했다.
“칼롭 님.”
펠릭스는 창대를 쥐고 있는 손을 떨며 칼롭의 이름을 불렀다.
“알아!”
칼롭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분수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대검이 렌시아의 머리 위로 떨어지려고 할 때 얼음의 벽이 솟구쳤다.
쩌어어어어엉!
칼롭의 검은 은빛 설벽을 깨부수지 못하고 중간에 박힌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저 아이를 노리다간, 네 머리가 깨질 거야….”
루난이 발을 구르자, 대지가 은빛으로 물들며 칼롭의 하체를 얼리기 시작했다.
“지그하르트의 나찰녀와 청월검이로군.”
칼롭은 이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는 힘든데? 얘들 마스터 최상급이야.”
그는 펠릭스를 향해 손짓했다.
“동감합니다. 들었던 것 이상의 무위로군요….”
펠릭스가 마르타의 검격에 밀려나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마기를 개방하십시오.”
“진즉에 그래야지!”
마기를 개방하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펠릭스의 등 뒤로 검은 날개가 돋아나고, 칼롭의 이마 위로 검은 뿔이 치솟았다.
날개와 뿔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두 사람의 기운이 급격히 증폭되며 주변에 흐르는 마나를 검게 불태워 버렸다. 그랜드 마스터급의 기파였다.
쿠구구구구구!
마르타가 펠릭스의 창대에 밀려 튕겨 나갔고, 칼롭을 압박하고 있던 은빛 서리가 마른 낙엽처럼 바스러졌다.
“귀찮으니, 빠르게 끝을 내자고.”
칼롭이 내지르는 대검의 끝에서 마기가 응집되더니, 거대한 구체를 일으켰다. 그랜드 마스터의 증거 강환이었다.
“음….”
루난은 얼음의 벽으로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강환의 파괴력에 밀려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콰드드드드득!
펠릭스 역시 창대에 마기로 이루어진 흑염을 휘감으며 마르타를 압박했다.
“칫!”
마르타는 공격이 아닌 방어에 집중하며 밀려오는 흑염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
“안 일어나는 겁니까?”
펠릭스가 라온을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내가 왜?”
라온이 느릿하게 눈을 뜬 채로 비웃음을 그렸다.
“그대로 있다가는 아끼는 수하들이 죽게 될 텐데요?”
펠릭스는 마르타의 허리를 가늘게 베어내며 눈썹을 내렸다.
“아니, 절대 죽지 않아.”
라온은 미래를 보고 있기라도 한 듯 단호하게 말을 끝맺었다.
“아, 못 일어나는 거군요.”
펠릭스는 이제 알아차렸다는 듯 길게 입맛을 다셨다.
“초월자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찾아오다니.”
그는 섬뜩한 눈동자를 드러낸 채 더 짙은 흑염을 뻗어냈다.
“내가 일어날 수 있어도 이 싸움은 저 둘에게 맡겼을 거야.”
라온은 여전히 여유를 지닌 채 턱을 저었다.
“너희 따위에게 당하기에는 저 녀석들이 쌓은 경험이 아깝거든.”
그는 마르타와 루난의 등을 보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목숨을 걸 정도로 믿는다고? 저 계집들을?”
칼롭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믿는 게 아니다.”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게 사실일 뿐이야.”
“하여튼 말 하나는 기똥차게 한다니까!”
신뢰 그 이상의 믿음을 담아낸 라온의 말에 감격한 듯 마르타가 힘으로 펠릭스의 창대를 밀어냈다.
“가슴이 울려….”
루난 역시 냉기를 팔각으로 휘감아 칼롭의 강환을 버틸 수 있는 방패를 세웠다.
고오오오.
마르타와 루난의 눈빛은 강자의 앞에서도 꺾이지 않은 채 점점 더 고요한 빛을 피워냈다.
화아아아아!
이기고 싶다는 주인의 마음을 느낀 듯 두 사람이 쥐고 있는 검 위로 선명한 광휘가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