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23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23화(923/965)
제923화
“강자?”
흑색왕 시겔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검은 물이 흘러내리는 입을 벌렸다.
“어떻게 네놈이 강자일 수가 있지?”
그는 착각하지 말라며 대검과 창을 비틀었다.
찌지지지지직!
마계에서 흘러나온 진정한 마기가 흑색왕 시겔의 무기에 휘감기며 신검의 불꽃과 마검의 서리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 마기 앞에서 인간의 힘 따위는 개미의 발버둥에 불과하다.”
흑색왕 시겔은 전신에 마기를 두른 채 역으로 자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놈에게서 피어나는 강렬한 기세에 손끝이 떨려왔다.
“너는 자기객관화가 안 되네.”
라온이 비웃음을 흘리며 신검과 마검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불꽃과 서리 위로 분노를 일으켜 검게 타오르는 마기를 갈랐다.
“…어떻게 인간이.”
흑색왕 시겔은 거침없이 갈라지는 마기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마계의 마기가 천지를 뒤덮고 있는데, 어떻게 인간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이냐!”
그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외치며 손에 들고 있던 창과 대검을 찔러왔다.
“내가 특이체질이거든.”
라온이 매의 발톱처럼 뚝 떨어지는 창날을 부수고, 가슴으로 파고드는 대검을 쳐냈다.
쿠우우우웅!
흑색왕 시겔이 잡고 있던 창이 하늘로 솟구쳤고, 대검은 땅을 내리치며 바닥에 있던 마물들의 시체를 터트렸다.
‘비었어.’
라온은 시겔이 무방비가 된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의 품으로 파고들어 신검으로 가슴을 찔렀다.
‘뭐지?’
손맛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살과 뼈를 뚫은 느낌이 아니다. 두꺼운 천을 찌른 듯한 허무한 감각이었다.
“너는… 음!”
라온이 시겔을 보며 눈매를 찌푸릴 때 무언가가 떨어져서 어깨에 박혔다. 시선을 돌리자, 왼쪽 어깨에 박혀 있는 검은 화살이 보였다.
파아아앙!
라온이 뒤로 물러서는데, 시겔의 등 뒤에서 솟아오른 검은 도끼와 채찍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캬아아아아앙!
라온이 마검으로 염주벽을 펼쳐서 벼락처럼 떨어지는 도끼와 채찍을 막아냈다.
다만 그 안에 담겨 있던 마기가 너무도 강하여 뒤로 밀려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또 온다.’
재정비를 하기도 전에 우측에서 화살이 떨어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몸을 좌측으로 빼는데, 화살은 눈이 달린 것처럼 자신의 등으로 따라붙었다.
‘부수는 게 낫겠어.’
라온이 적섬을 그어서 쇄도해오는 화살을 내리쳤다.
쩌어어어엉!
화살의 크기는 작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마기가 너무도 강하여 쇳덩이를 후려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후우….”
라온이 한 걸음 더 물러나서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조금 남아 있는 신성을 사용했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화살에 지혈을 막는 주술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너….”
라온이 손에 든 검은 화살을 부수며 눈매를 찌푸렸다.
“손이 두 개가 아니었군.”
처음에는 어검술 같은 무학을 이용해서 여러 무기를 조종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흑색왕 시겔은 여러 개의 손을 이용하여 저 무기들을 다루고 있었다.
“알아차리는 게 느리구나.”
흑색왕 시겔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장포 속에서 무수한 숫자의 팔이 튀어나왔다.
근육과 마기로 점철된 손들은 장검, 도, 창, 대검, 망치, 도끼, 방패, 활, 채찍, 비수로도 모자라, 건틀릿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이제 알겠나?”
흑색왕 시켈이 거만한 자세로 턱을 까딱였다.
“인간은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는 자신에 찬 어조로 승리를 확신하고서 무기들을 곧추세웠다.
후우우우웅!
처음으로 움직인 건 대검이었다. 자신의 몸통만 한 대검이 가슴을 쪼갤 것처럼 파고들었다.
캬아아아아앙!
라온이 신검으로 반원을 그려서 대검의 찌르기를 쳐냈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그 뒤에서 창과 망치가 내리꽂히고 있었으니까.
파아아아앙!
태화보를 밟아서 창과 망치의 간격을 벗어나자, 화살과 채찍이 날아들었다. 화살은 어깨를 돌려서 피한 후 채찍은 마검으로 염주벽을 세워서 막아냈다.
‘이건 위험하군.’
시겔은 저 모든 무기를 초월자 수준으로 다루고 있었다. 여러 명이 아니라, 한 명이 수십 개의 무기를 다루고 있었기에 합격술 이상으로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후우우우욱!
장검과 대검이 양쪽 어깨를 향해 떨어지고, 좌측에서는 도끼가, 우측에서는 망치가 짓쳐 든다. 등에서는 창이, 뒤에서는 화살과 채찍이 내려오고 있어서 피할 공간 자체가 없었다.
‘다 막을 수는 없어.’
라온은 방어를 포기했다. 신검과 마검을 대칭으로 세워 두 줄기의 파도를 일으켰다.
후우우우욱!
불꽃과 서리로 이루는 염해무결. 두 색의 바다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서로를 방해하지 않은 채 밀려오는 시겔의 공세만을 쳐냈다.
쿠와아아아앙!
시겔은 본인의 공격이 막힐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염해무결이 끝나는 틈을 노리고 건틀릿을 낀 주먹을 찔러넣었다. 검게 타오르는 권격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쇄도해왔다.
타아아아아앙!
신검의 검병 끝으로 시겔의 권격을 막았지만, 충격이 컸는지 뼈와 살이 울리는 충격이 느껴졌다. 주먹까지도 방심할 수 없는 놈이었다.
-왜 분노를 절반만 사용하는 것이냐?
라스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저놈은 마기로 인해 무력 자체가 월등히 강해졌느니라. 네놈이 봐주면서 상대할 수 없느니라!
녀석은 힘을 아끼지 말라는 듯 턱을 까딱였다.
‘문을 닫아야 하니까.’
라온이 짧은 숨을 내쉬고서 마계의 문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목표는 눈앞에 있는 시겔이 아니라, 저 문의 폐쇄다.
얼마나 많은 힘이 소모될지 알 수 없기에 지닌 분노를 다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제 알겠나? 인간은 날 이길 수 없다.”
시겔이 거침없이 무기들을 뻗어냈다. 조금 전의 격돌로 자신감을 찾은 듯 가뜩이나 난해한 투로가 더욱 어지럽게 변했다.
퉷.
라온이 입에 고인 핏물을 뱉으며 매섭게 떨어지는 시겔의 무기들을 쳐냈다.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군.’
수십 명의 초월자와 동시에 싸우는 기분이야.
시겔의 손에 들린 무기들은 전부 다른 사람의 손에 잡힌 것처럼 따로 움직이고 있어서 상대하기 난해했다.
‘거기다 저 장포도 문제고.’
시겔이 두르고 있는 검은 장포는 그의 무기 이상으로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저것을 깨려면 단숨에 핵을 찔러야 했다.
“그만 죽어라.”
시겔은 한번 잡은 기세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수십 개의 무기를 동시에 내리치며 도망칠 공간 자체를 지워버렸다.
쩌저저저정!
마기를 두른 무기들의 위력이 너무도 강하여 막는 것도 쉽지 않았고, 막아도 몸에 충격이 쌓였다.
어느새 어깨와 허리, 허벅지에 상처가 늘어갔다.
“…….”
라온이 대검과 망치, 도끼, 그리고 창대를 동시에 막아내며 힘겹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개미굴 같군.’
지금 이 순간에도 마계의 문을 통해 마물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강한 마족들도 섞여 있었기에 이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빨리 끝내야겠어.”
분노를 더 소모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흑색왕 시겔을 잡아내기로 결정했다.
“빨리 끝내겠다고? 좋다. 네놈의 소원을 들어주마!”
흑색왕 시겔이 입매를 비틀어 올리며 모든 무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우우우우웅!
장검, 도, 창, 대검, 망치, 도끼, 방패, 활, 채찍, 비수, 건틀릿까지 그가 지닌 모든 무기들 위로 검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천수.”
오웬의 초월자를 일격에 죽였던 흑색왕 시겔의 절기가 펼쳐진다.
그의 무기들이 지닌 각각의 결이 하나의 선으로 합쳐지며 바다와 같은 거대한 파동을 이뤘다.
검게 물든 마기의 해일이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터어어엉!
라온이 시겔에게 나아가며 양쪽 어깨 뒤로 젖혀두었던 신검과 마검을 내리그었다.
라온 지그하르트류 검식.
제6형 신마조화결 연계기 청홍무적검.
청홍무적검은 무적이라는 이름이 붙은 검식답게 강대한 패기를 일으키며 흑색왕 시겔의 마천수와 부딪쳤다.
쩌저저저저저적!
수십 명의 초월자가 동시에 절기를 쏟아낸 듯 마천수에는 어마어마한 마기가 담겨 있었다. 청홍무적의 기파로도 다 밀어내기 힘들 정도라 온몸이 찌부러지는 것 같았다.
“네가 원하던 대로 끝을 내주마.”
시겔은 마지막이라는 듯 비웃음을 그리며 더 강한 마기로 마천수에 힘을 더했다.
“…그럼 네가 죽어야지.”
라온이 떨리는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동자를 따라 허리에 매어두었던 목륜검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기어검? 우습구나. 그래 봐야 한 자루에 불과해!”
흑색왕 시겔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 비웃음을 흘리며 방패와 도끼, 망치를 들어 올려 방어를 준비했다.
“때로는….”
라온이 입술을 말아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나의 손이 수십 개의 손을 이기는 법이지.”
신념을 담아낸 말을 읊으며 목륜검을 쏘아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흑색왕 시겔은 끝까지 방심하지 않은 듯 방패를 세우고, 망치와 도끼로 이기어검을 쳐낼 준비를 마쳤다.
우우우우웅!
놈이 방어를 위해 망치와 도끼를 찍어 내린 순간 목륜검이 붉게 타오르더니, 방패 안쪽. 흑색왕 시겔의 가슴 앞에서 튀어나왔다.
“이 무슨!”
시겔은 흑탑의 부탑주답게 그 짧은 순간에 반응하여 건틀릿을 끼고 있는 손을 들어 올려 가슴을 찌르려는 목륜검을 막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무학은 그런 것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라온 지그하르트류 검식.
제8형 소슬바람.
공간을 뛰어넘은 칼날은 시겔이 두껍게 휘감고 있는 마기의 방패마저 뚫어버리고, 놈의 심장을 터트렸다.
“커헉….”
시겔은 마지막까지 끝까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던 듯 눈동자에 경악을 드러낸 채 뒤로 넘어갔다.
“어, 어떻게 장포를 뚫고….”
그는 장포의 방어를 뚫어낸 게 믿어지지 않는지 떨리는 시선을 들어 올렸다.
“공간을 두 번 넘었다.”
본래 소슬바람은 한 번의 공간을 가른 후 적을 베지만, 이번에는 시겔의 장포를 뚫어내기 위해서 두 번의 공간을 갈랐다.
무리를 한 상단전이 터질 것처럼 아려왔지만, 덕분에 저 장포를 무시하고 놈의 심장을 부술 수 있었다.
“크허억….”
시겔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격한 신음을 흘렸다.
“다, 다시 만나게 될 거다.”
그는 흑탑주의 힘으로 다시 살아날 거라고 말하고서 고개를 떨궜다.
우우우우웅!
시겔은 그 말을 지키기라도 하는 듯 숨이 끊어진 지 30초도 지나지 않아 죽음 속에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깨진 심장이 저절로 모여들고, 터져나간 핏물이 다시 채워졌다.
“그러면….”
라온이 입술을 깨물고 진각을 밟았다. 제천검으로 적섬삼십육결을 그어 재생되는 시겔의 육체를 다시 찢어버렸다.
투드드드득.
하지만 시겔의 육체는 수십 조각으로 잘려 나갔음에도 새로운 핏물과 살점이 모여들어 다시 놈의 몸을 재생시켰다.
‘생각보다 재생이 너무 빨라.’
시겔을 다시 잡을 자신은 있었지만, 시간이 끌리고 힘이 소모된다는 게 문제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시겔을 무시하고 움직이면 자신은 물론이고, 뒤에 남은 사람도 위험해진다. 너무도 어려운 선택이었다.
‘어쩔 수 없어.’
라온이 입술을 깨물고 시겔을 지나쳤다. 마계의 문을 향해 도약하려는데, 되살아난 시겔이 화살을 쏘아냈다.
쯧.
뛰어오르는 것을 멈추고 방어를 하려는데, 검은 화살은 자신의 몸에 닿기 전에 은빛 검날 앞에 바스러졌다.
“가라.”
카룬이다. 그는 재생한 시겔의 팔을 잘라버리며 턱을 까딱였다.
“하지만….”
라온이 카룬이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광풍전을 노리던 마족들을 모조리 찢어버린 후 이곳에 와서 시겔의 활을 막아준 것 같았다.
“이 마법은 완벽하지 않아. 되살아난 순간에는 무력이 반절로 줄어든다. 내가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카룬이 점점 더 커지는 마계의 문을 바라보았다.
“저 문이다. 마계에서 나오는 마인과 마물들의 무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빨리 막지 않는다면 너와 내가 감당하기 힘든 놈이 나올 것이다.”
그는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을 생각하라며 눈매를 좁혔다.
“라온. 희생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카룬은 되살아나는 시겔과 마족들을 다시 죽이고서, 습격해오는 마물들의 공세를 몸으로 버텨냈다.
“가라.”
그는 지금까지 보았던 눈빛 중 가장 따스한 열기를 담은 채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꾸욱.
라온이 어금니를 씹으며 뒤를 돌았다. 검게 물든 땅을 박차고 마계의 문을 향해 뛰어올랐다.
‘빌어먹을!’
밑에 있는 사람들의 생기가 줄어드는 게 느껴졌지만, 비명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모두가 동료를 위해서 마기를 몸으로 받으며 견디고 있다는 뜻이었다.
“으아아아아아!”
라온이 세 개의 단전을 공명시켰다. 오러를 전신의 마나 회로에 휘돌리며 마계의 문에서 내려오는 마물과 마인들을 베고 올라갔다.
터어어엉!
추락하는 시체를 밟고 계속 올라가고 있지만, 문에서 마물과 마족들이 끝없이 떨어져 내려서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도 느렸다. 상처는 늘어나고, 숨이 뚝뚝 끊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여기서 생이 다하더라도 저 문은 자신이 닫아야 한다.
후우우욱!
라온은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결국 마계의 문 앞에 닿을 수 있었다. 여기서 아껴둔 분노를 폭발시킨다면 저 문을 닫을 수 있을 것이다.
문을 향해 마지막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눈앞으로 검은 손의 마족이 떠올랐다.
마는 언제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길을 막아선다고 하던가.
중층에서 사라졌던 검은 손의 마족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이놈은 위험해.’
저 마족은 라스가 인정할 정도의 강자다. 상대하려면 시간과 힘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끌면 안 되는데….’
밑을 돌아보았다. 끝없이 부활하는 마물과 마족 때문에 연합군은 거대한 검은 원에 둘러싸인 채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안쪽에 있는 부상자들은 피를 너무 흘려서 죽기 직전인 듯 안색이 창백했다.
“비켜라.”
라온이 마족을 향해 창궁검과 천뢰공의 검격을 합쳐서 내리찍었다.
쿠와아아아아아!
붉은 벼락이 연달아 떨어졌지만, 검은 마족은 마기의 벽을 세운 것만으로 어렵지 않게 자신의 검격을 막아냈다.
‘결국 분노를 담아내야 하는 건가?’
저 문을 닫기 위해서 아껴둔 분노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저 마족을 빠르게 벨 수 없을 것 같았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라온이 분노를 일으키며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검은 마족이 마계의 문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건 길을 비켜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후우우우우웅!
마계의 문이 뒤틀리며 지금까지 중 가장 거대한 마물이 튀어나온다.
용의 몸통에 독수리의 날개를 단 괴이한 마물이었는데, 놈의 날개 사이로 강한 마기를 지닌 마족들이 함께 날아올랐다.
“하아아….”
라온은 한눈에 다 보이지도 않는 마물과 그사이에 섞여 있는 마족들을 보며 탁한 숨을 내뱉었다.
‘저 마물과 마족을 베고, 그 검은 손의 마족까지?’
벨 수야 있겠지만, 시간의 소모가 너무 컸다. 그동안 저 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키르르르르르!
마족들은 승리를 자축하는 듯 사이한 웃음을 흘렸고, 마물들은 그 웃음에 즐거워하는 듯 악의가 담긴 괴성을 질렀다.
“좋다. 뒷일 따위 생각하지 않고, 전부 베어주마.”
라온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그가 뒷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마족들을 모조리 베어버리려고 할 때였다.
뿌우우우우!
마물들의 울음소리와는 다른 청아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화아아아아아아!
나팔 소리에 이어지는 건 수백 명이 부르는 듯한 웅장한 찬송가다. 어둠에 물든 땅 위로 신을 찬양하는 노래가 내려앉았다.
“하….”
라온이 나팔 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백의를 두르고, 금관을 쓴 신관들이 어둠을 밀어내며 어둠의 땅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키아아아아아!
마물들은 신관들이 두르고 있는 성스러운 빛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인간 놈들!”
상급 마인 하나가 공간을 이동하여 신관들을 향해 마기의 칼날을 내리치려고 할 때 그의 머리 위로 하얗게 번쩍이는 주먹이 떨어졌다.
쿠와아아아아앙!
신성력이 어린 주먹 앞에 찌부러진 마족 위로 수녀복을 입은 보랏빛 머리카락의 미소녀가 내려앉았다.
“조금 늦었나?”
슈페르 신성 왕국의 성녀 올가가 보라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씩 웃었다.
“많이 늦었지요.”
올가의 옆으로 다가온 젊은 성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새롭게 슈페르의 왕위에 오른 호펜이었다.
“슈페르 신성 왕국. 광풍전주의 명을 받아 이 땅에 도착했습니다.”
호렌이 라온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은인을 위하여 나아가라.”
그가 성왕의 검을 뽑자, 찬란한 휘광이 떠올라 성기사와 신관들을 휘감았다.
“은인을 위하여!”
성기사들은 왕의 명령이 아닌, 라온에게 받은 은혜를 떠올리며 검을 세웠다.
“늦어도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되겠지.”
성녀 올가가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올리자, 연합군들의 머리 위로 금색의 빛이 떨어져 내렸다. 마물들의 접근을 막는 신성의 벽이었다.
우오오오오오!
찬양의 노래와 신성력을 두른 성기사들은 일당백의 기파를 일으키며 눈앞의 마물들을 쓸어버렸다.
키에에에에-
진정한 신성이 깃들었기 때문인지 그들의 검에 죽은 마족과 마물들은 바로 부활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재생을 두려워했다.
콰아아아아아!
검은 도화지 위로 떨어진 새하얀 물감이 천천히 그 영역을 넓혀 간다.
슈페르 신성 왕국이 만들어낸 신성의 빛이 까뭇한 어둠을 밀어내고, 지옥이 뿌리내린 땅에 새로운 희망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