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26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26화(926/965)
제926화
파아아아앙!
흑탑주가 만들어낸 어둠의 장벽이 갈라지고, 그의 어깨가 마신주와 함께 뜯겨나갔다.
“크아아아악!”
흑탑주가 살이 잘려 나간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허리를 굽혔다. 그의 어깨에서 새빨간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결전기.”
하지만 체임버는 그 모습을 보고도 마법의 영창을 멈추지 않았다.
“그, 그만….”
그만해 달라고 애원하는 흑탑주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앞으로 뻗었다.
“공의 균열.”
“빌어먹을 년이!”
흑탑주가 마기를 끌어모아 마도의 장을 펼쳤지만, 팔이 뜯겨나갔기에 완벽한 술식을 그려낼 수가 없었다.
퍼어어어어엉!
체임버가 일으킨 공간의 파동이 마도의 장을 가르고, 흑탑주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머리를 잃은 그의 육체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하아아….”
체임버는 흑탑주가 쓰러졌음에도 손을 내리지 않고, 마법의 술식도 풀지 않았다.
‘한 번 더 해야 해….’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심장에 고리를 만들어 마나를 축적한다. 흑탑주도 그 선에서 벗어나지 않을 테니, 놈의 심장을 확실히 부숴놔야 했다.
“커헉….”
다시 마법을 사용하려는데, 입에서 검게 죽은 핏물이 튀어나왔다.
‘죽을 것 같아.’
공의 균열을 사용할 수 있는 마나는 아직 남아 있지만, 정신과 육체가 부서질 것 같았다. 머리가 아리다 못해 깨질 듯한 통증이 일어나며 눈앞이 흐려졌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자신이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흑탑주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놓아야 했다.
“결전기.”
체임버가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허물어진 흑탑주의 심장을 겨누었다.
“공의 균열.”
억지로 집중력을 유지하여 영창을 끝내자마자, 마신주가 보호하고 있는 흑탑주의 가슴이 터져나가며 검붉은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고오오오오.
흑탑주는 정말 숨이 끊어진 듯 움직이지 않았고, 그가 지니고 있던 마기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허어억….”
체임버는 흑탑주의 머리와 심장을 모두 부수고 나서야 떨리는 손을 내렸다.
‘끝난 건가.’
흑탑주가 죽기 전에 자신이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먼저 끝을 낼 수 있었다.
‘운이 좋아… 아니, 그 녀석들 덕분이겠지.’
사실 자신도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번 작전을 진행하며 라온과 다른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기백 덕분에 끝까지 참아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모두의 싸움을 먼저 보지 않았다면 이곳에 묻혔을 사람은 흑탑주가 아니라, 자신이었을 것이다.
“이제야 아픔이 느껴지네….”
체임버가 고통을 참으며 입술을 씹었다.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보이는 상처를 입었음에도 머리 안쪽과 심장이 더 아팠다. 정말 죽기 직전이었다는 뜻이었다.
‘이제 돌아가서 마계의 문을 닫고, 남은 잔당만 처리하면 되겠어.’
지금 당장 이곳에 드러누워서 쉬고 싶었지만, 흑탑의 차원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아무리 라온과 카룬이 있다고 해도 피해가 클 거야.’
묵령세계는 마족과 마물을 되살리는 주술. 마계의 문이 닫힐 때까지는 그 상태가 유지될 것이기에 최대한 빨리 돌아가서 문을 닫고,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했다.
“딱 한 호흡만 쉬고….”
체임버가 허리를 곧게 펴며 눈을 내리감았다. 마나의 호흡을 통해서 육체와 정신을 회복시키고 있을 때 갑자기 등골 사이로 오싹한 소름이 돋아올랐다.
‘잠깐만.’
다시 눈을 뜨고, 핏물에 잠긴 흑탑주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마기의 움직임이 이상해.’
마인이 죽게 되면 불에 타지 않는 쓰레기처럼 그가 지니고 있던 마기가 아주 천천히 자연의 마나 속으로 녹아들게 된다.
하지만 지금 흑탑주의 마기는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설마?’
체임버가 흑탑주의 시체 위로 불길을 일으켰다.
화아아아악!
흑탑주가 죽었어도 마신주는 제 역할을 해야 하건만, 너무도 쉽게 불길에 타오르며 녹아내렸다. 놈의 시체가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젠장!”
체임버가 이를 갈고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입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지도 못한 채 공간을 넘어섰다.
파아아아앙!
*
*
*
라온은 마계의 문을 보며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기회는 딱 한 번이야.’
마계의 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기에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는 저 문을 닫을 수 없을 것이다.
-문을 똑바로 보아라.
라스가 자신의 어깨 위로 올라가서 턱을 까딱였다.
-지닌 분노를 단번에 쏟아내야만 저 차원을 벨 수 있을 것이니라.
녀석이 통통한 손을 들어 올려 베어야 할 곳을 직접 가르쳐 주었다.
-본왕의 분노로 저 마계의 문 자체를 짓눌러서 터트린다고 생각하거라. 무식하게!
라스는 단번에 힘을 폭발시켜야 마계의 문을 닫을 수 있다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후우.”
라온이 천천히 숨을 고르며 불의 고리를 공명시켰다. 세 개의 단전을 모두 개방하며 초월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화아아아아아!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운용하자, 제천검 위로 서리와 불꽃이 타올랐다.
결이 너무도 다른 두 기운을 가루누아의 바람으로 조화시키며 제천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마물 따위는 신경 쓰지 말아라. 문을 닫는 데만 온 정신을 집중하거라.
‘알고 있어.’
자신을 노리려는 듯 검은 눈동자를 번뜩이는 마족과 마물을 무시하고, 오직 마계의 문에만 시선을 집중했다.
-지금이니라! 분노를 담아서 내리쳐라!
라스의 말을 들으며 영혼의 격을 개방했다. 마계의 마기를 받으며 성장한 마왕의 분노가 자신의 영혼을 집어삼킬 듯이 격한 파동을 일으키며 솟아올랐다.
고오오오오오오!
가뜩이나 지친 상태에서 분노까지 운용하자, 뇌리가 하얗게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었다. 불의 고리로 버티며 육체와 정신을 압박하는 분노를 제천검에 담아냈다.
찌지지지지지직!
제천검 주변의 공간이 비틀어지고, 길게 쪼개진다. 너무도 강대한 힘의 응집에 자연스럽게 차원의 균열이 벌어지고 있었다.
‘버티자.’
제천검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긴 싸움을 이어 나갔고, 검계현신을 두 번이나 사용했기에 육체와 정신이 모두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버텨. 렌시아가 보고 있을 거야….’
이대로 포기하고 싶은 욕망이 차올랐지만, 죽어가면서도 동생들을 부탁했던 렌시아의 얼굴을 떠올리며 견뎌냈다.
캬아아아악!
키아아아아!
마계의 문을 닫으려고 하는 것을 느낀 듯 주변에 있던 마물과 마족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시해야 해.’
지금 제천검에 어린 기운을 흩트렸다가는 저 문을 닫지 못한다. 몸으로 견딘다고 생각하며 마계의 문 앞으로 한 발 더 다가갔다.
하지만 흥분한 마물과 마족들이 자신을 치는 일은 없었다.
파아아아아아앙!
지상에 남아 있는 성녀 올가와 카룬이 신성력과 검격을 일으켜 자신의 주변으로 다가온 마물들을 막아주었다.
“빨리 가!”
올가는 빨리 마계의 문을 닫으라며 입에 물고 있던 연초를 뱉었다. 연초 끝에 검은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니, 그녀도 무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멈추지 말거라.”
카룬은 되살아난 흑색왕과 상위 마족들을 막으면서도 자신을 보호해주었다. 심각해 보이는 상처가 한두 곳이 아님에도 그의 안색은 덤덤했다.
‘고맙습니다.’
라온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서 제천검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마계의 문이 아니라, 검은 하늘을 베어버린다고 생각하며 제천검을 내리쳤다.
창궁검 절기.
창천염라.
고요히 떨어지던 검신 위로 하늘의 분노가 깃든다.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겠다는 듯 무시무시한 파동이 일어나며 주변에 존재하던 마물들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
불꽃과 서리를 이어주는 분노의 검격이 두터운 마기의 벽을 가르고, 마계의 문을 향해 떨어졌다.
콰드드드득!
끝없이 그 범위를 늘려가던 마계의 문이 처음으로 멈췄다. 분노를 담아낸 검격의 무게에 악마의 주둥이처럼 벌어졌던 문이 천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마계의 문이 지니고 있는 반발력은 자신의 상상 이상이었다.
얇디얇은 톱으로 거대한 느티나무를 써는 듯한 느낌. 손아귀가 뜯어지고, 팔이 뽑힐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며 계속해서 검을 내리쳤다.
찌지지지지직!
마계의 문은 꼭 살아 있는 존재처럼 발악하며 마기를 응집시켰지만, 그보다 더 큰 분노 앞에 그 목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뒤덮던 거대한 문이 길게 쪼개졌다.
‘지금이다!’
당장 쓰러지고 싶을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웠고, 손목이 부러질 것 같았지만, 지금이 문을 베어낼 순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 악 깨문 채로 제천검을 내리쳤다.
찌지지지직!
마계의 문은 어떻게든 살고 싶은지 끊임없이 마기를 뿜어냈지만, 이미 기울어진 기세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문이 조금씩 닫히며 마계에서 나오는 마물들의 크기들도 작아졌다.
“막아라! 저놈을 막아!”
“키아아아아아!”
“라온 지그하르트!”
마인과 마족들은 마계의 문이 닫히는 상황을 상상도 하지 못한 듯 괴성을 지르며 라온에게 뛰어올랐다.
“라온을 보호해!”
“절대 라온에게 닿게 해서는 안 돼!”
“목숨을 걸고 막아!”
연합군 역시 라온을 보호하기 위해서 피를 토하며 달려가 마족들의 앞을 막아섰다.
쿠구구구구구!
라온과 마계의 문의 싸움에 못지않게, 아래에서도 지독하면서도 처절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다 왔느니라!
라스는 끝까지 힘을 내라며 라온의 어깨를 내리쳤다.
“크아아아아아!”
라온이 악과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얼마 남지 않은 마계의 문을 가르려고 할 때였다.
우우우우웅!
마계의 문 옆에서 검은 장포를 두른 새까만 존재가 튀어나왔다. 체임버가 끌고 갔던 흑탑주였다.
[네놈이 끝까지 방해를!]흑탑주는 머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가슴이 뻥 뚫려 있었음에도 죽지 않고 자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아아아앙!
그의 손가락에 어린 어마어마한 마기가 자신을 죽일 듯이 쏘아져 왔다.
‘막을 수는 있어. 하지만 막는 순간 마계의 문을 닫을 힘이 사라질 거야.’
지금 자신은 모든 힘을 쏟아부어 마계의 문을 부수고 있었다. 여기서 오러가 흐트러진다면 마기를 다 가르지 못하고 검이 부러지게 될 것이다.
‘믿어야 해.’
이건 혼자서 이겨낼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니까.
흑탑주에게 저런 상처를 입힌 체임버를 믿으며 마계의 문을 베는 데 집중했다.
우우우우웅!
라온이 흑탑주가 쏘아낸 마기를 무시하고 끝까지 검을 그어 내리는 순간 우측에서 푸른 섬광과 함께 짧은 로브를 걸친 성숙한 자태의 여성이 나타났다.
파아아아앙!
적발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여성은 금빛 눈동자를 번쩍이며 흑탑주의 마기를 단숨에 지워버렸다.
“으아아아아!”
라온은 흑탑주가 다시 방해하지 못하도록 포효를 내지르며 제천검을 끝까지 내리그었다.
치아아아아앙!
제천검의 칼끝이 땅으로 내려가며 마기로 가득 찬 검은 하늘 위로 붉고 푸른 섬광이 뻗어나갔다.
“허어억….”
라온이 제천검을 든 손을 내리며 힘겹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무, 문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던 마계의 문은 반으로 갈라진 채 은빛 서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인간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아주 작은 공간은 분노를 피한 채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안 된 건가?’
오러와 분노를 모조리 쏟아부었는데도 마계의 문을 부수지 못하자, 뇌리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극심해졌다. 전부 포기하고 기절하고 싶을 정도였다.
-제대로 보아라.
라스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보라고?’
라온이 라스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치이이이익!
은색의 서리가 아주 천천히 내려오며 남아 있는 마계의 문을 얼리고 있었다. 문밖에 있는 마족들은 서리에 깃든 라스의 분노에 당황한 듯 손을 내린 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대로 지키기만 한다면 문은 결국 막히게 될 것이니라.
라스는 시간 문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놈을 막아야겠지만.
녀석의 시선이 문을 지키듯이 서 있는 흑탑주에게 돌아갔다.
다만 자신은 흑탑주가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체임버에게 먼저 시선이 갔다.
“체임버 님.”
체임버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숙한 여성의 모습이 되어 돌아왔다. 키가 커지고, 짧았던 적발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절세의 미녀였는데, 그 이상으로 마력이 강해진 것 같았다.
“괜찮으십니까?”
강함보다도 그녀가 심하게 무리한 것 같아서 걱정이 먼저 되었다.
“난 괜찮아.”
체임버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입매가 떨리는 것을 보니, 말과 다르게 힘겨운 상태인 것 같았다.
“말할 힘이 남아 있다면 저놈을 죽이는 데 집중하자.”
체임버가 손가락을 들어서 마계의 문을 잡고 있는 흑탑주를 가리켰다.
‘흑탑주….’
흑탑주는 머리를 잃고, 왼쪽 가슴에 구멍이 뚫렸음에도 쓰러지지 않고 얼마 남지 않은 마계의 문을 지키고 있었다.
인간의 급소 두 곳이 부서졌음에도 살아 있다니, 죽음조차 피하는 사신이 된 것 같았다.
‘저놈에게도 묵령세계의 효과가 적용되는 건가?’
아니, 완벽하게 먹히지는 않았어.
마계의 문이 닫히고 있기 때문일까. 흑탑주의 상처는 재생되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있으니, 저희가 유리합니다. 빠르게 끝을 내죠.”
라온이 흑탑주에게 제천검을 겨누며 턱을 끄덕였다.
“그래. 지겨운 싸움을 끝내자.”
체임버가 입술에 말라붙은 검은 핏물을 털어내며 두 손을 모았다.
“이번에는 아예 지워주겠어.”
그녀가 손가락을 모은 채 흔들리던 마력을 집중했다.
“결전기 공의 균열.”
체임버의 영창과 함께 그녀 앞의 공간이 길쭉하게 잘려 나갔다.
우우우우우우웅!
공간을 뜯어내는 마법이 마계의 문과 흑탑주 자체를 지워버리려고 할 때 그의 머리 위로 성스러운 빛이 쏟아졌다.
화아아아아아아!
신성을 담아낸 금색의 빛은 체임버의 마법을 비틀어서 흑탑주의 목숨을 구해냈다.
고오오오오.
일그러진 공간 위로 새하얀 깃털과 함께 금관을 쓰고 있는 천사가 내려왔다. 그녀가 체임버의 결전기를 막아낸 것 같았다.
“많이도 다쳤군요.”
천사가 부드럽게 손을 내리자, 흑탑주의 머리가 솟아나고, 구멍이 뚫렸던 가슴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뭐지?’
흑탑주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바로 천사인데, 왜 구해주고 치료를 해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깐만, 설마 저 천사는….’
카룬은 천사의 문에 들어가 기이한 분위기의 여성을 만났다고 했었다. 죽이자마자 다시 살아났다고 하던데 그게 저 천사인 것 같았다.
-천족? 천족 중에서도 상위 천사급의 기운이 느껴지느니라. 다만….
라스가 천사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이상하게도 본왕이 아는 천사들과는 기질이 좀 다르니라.
녀석은 지르콘을 평할 때처럼 일반적인 천사와는 다르다며 눈매를 찌푸렸다.
“후우우….”
흑탑주가 되돌아온 머리를 만지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군.”
그는 손아귀에서 흐르던 땀을 털어내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빌어먹을….”
체임버는 결전기가 막힌 것에 당황한 듯 피나도록 입술을 씹었다.
“괜찮아요.”
라온이 체임버의 옆에 서서 고개를 저었다.
“상처는 회복됐지만, 마기는 그대로예요. 이길 수 있어요.”
흑탑주의 머리와 가슴의 상처가 재생된 것은 사실이지만, 놈의 마기는 회복되지 않았다. 자신보다 더 심한 만신창이였다.
“저 천사만 막으면 됩니다.”
라온이 흑탑주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금관의 천사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
천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게 옅은 미소만 그린 채 이쪽을 바라보았다. 흑탑주를 보호해주었지만, 자신에게는 아무런 적의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저 천사는 누구지?”
체임버가 천사를 경계하는 듯 새로운 마법의 술식을 그렸다.
“탄생석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흑탑주가 다시 돋아난 오른팔로 연녹색 보석을 꺼냈다. 에메랄드와 비슷해 보이지만, 무언가 신비로운 기운이 피어나고 있었다.
“시작은 탄생석에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다. 7월의 페리도트에는 천사답지 않은 천사. 그리고 12월의 지르콘엔 악마답지 않은 악마가 잠들어 있지.”
“지르콘? 설마….”
“그래. 이게 지르콘이다.”
흑탑주가 입매를 비틀어 올리며 속이 투명한 황갈색 보석을 꺼내자, 자신에게 죽었던 검은 손의 마족이 그의 어깨 위로 솟아올랐다.
“시작의 탄생석….”
체임버는 저 탄생석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너희들의 운명을 받아들일 때다.”
“물론입니다.”
흑탑주가 시작의 탄생석을 허공에 띄우자, 7월의 페리도트라는 천사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와 하나가 되거라.”
그가 천사 페리도트의 손을 잡고, 악마 지르콘에게 시선을 돌릴 때였다. 공중에 떠 있는 시작의 탄생석 지르콘이 저절로 움직여서 라온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무, 무슨.”
“지르콘!”
라온이 당황하며 보석을 받았고, 흑탑주는 경악을 한 눈동자로 라온을 바라보았다.
후우우우웅!
황갈색 보석 속에서 12월의 지르콘이라는 악마가 솟아나 멀리 떨어진 흑탑주를 굽어보았다.
“지르콘! 무얼 하는 것이냐! 네 주인은 나다!”
“너는 자격이 없다.”
12월의 지르콘은 소리를 지르는 흑탑주를 무시한 채 라온의 앞에 섰다.
“내가 따라야 할 존재는 이분이시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라온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라온 지그하르트!”
흑탑주는 마지막 계획이 깨진 듯 눈동자에 핏줄을 세운 채로 괴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