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30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30화(930/965)
제930화
“후욱….”
라온은 피 내음이 섞인 숨을 내뱉으며 분홍빛 얼음 속에 갇힌 흑탑주를 바라보았다.
‘역시 안 죽었군.’
아직 묵령세계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인지 흑탑주는 몸이 네 조각으로 잘리고, 심장이 터져나갔음에도 미약한 생기를 지니고 있었다.
-네놈 말대로 지렁이 같은 놈이로구나.
라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밟아도, 밟아도 계속 꿈틀거리느니라.
녀석은 저렇게 끈질긴 마인은 마계에도 흔하지 않다며 미간을 구겼다.
‘그래서 얼려 놓은 거야.’
라온이 분홍빛 서리가 피어나는 오른손을 내리며 입술을 씹었다.
‘검을 베는 것으로는 죽일 수 없으니까.’
흑탑주는 체임버의 마법에 목과 심장이 뜯겨나갔음에도 이곳으로 돌아왔다.
급소를 찌르고, 몸을 베는 것으로는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백은의 오로라로 얼린 것이다.
-<색욕>으로 본왕의 백은의 오로라를 사용한 건 굉장히 짜증 나지만….
라스가 분홍빛 얼음 속에 갇힌 흑탑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러스트도 마왕은 마왕. 지렁이가 힘을 회복할 수단도 없으니, 저대로 갇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니라.
녀석은 분홍빛 냉기가 외부의 기운을 차단하기에 흑탑주를 봉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놈을 봉인할 생각은 없어.’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죽일 거야.’
흑탑주 본인은 저 얼음을 벗어날 수 없어도, 누군가가 외부에서 깨뜨릴 수도 있다. 놈이 풀려나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로엔은 어떻게 해서든 렌시아를 살리겠다고 말했지만, 자신은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다.
평범한 여자아이의 신체 내부에서 마기의 폭발이 일어났기에 신이나 악마의 도움이 있지 않은 이상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본인 대신 동생들을 돌봐달라는 렌시아의 마지막 말이 그리고 처음으로 진짜 웃음을 보여주었던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기에 이 모든 일의 원흉인 흑탑주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죽이고 싶었다.
“하아아….”
라온이 흑탑주를 얼리고 있는 분홍빛 얼음 위에 손을 얹었다.
만화공의 불꽃을 일으키며 가라앉은 라스의 <분노>를 불러왔다.
상단전이 망가진 것처럼 눈앞이 흐려졌지만, 혀를 씹으며 분노와 불꽃을 조화시켰다.
‘모조리 태워주마.’
라스의 서리는 적의 육체만이 아니라, 기운과 영혼까지 얼려버리는 힘이다. 얼어붙은 모든 것을 단숨에 지워버려야 했다.
후우우우욱!
바늘로 찌르는 듯이 아려오는 뇌리에서 백은의 오로라를 낱낱이 해체한 후 흑탑주를 죽일 수 있는 새로운 기예로 재조립했다.
‘네놈의 목에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사슬을 걸어주마.’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며 흔들리는 심상의 세계를 개방했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결전기.
홍련의 사슬.
나뭇가지처럼 곧게 세운 손아귀 위로 수십 줄기의 불길이 치솟아 얼어붙은 흑탑주를 휘감았다.
화염의 사슬은 찰나의 순간에 흑탑주를 에워싼 채 그의 존재 자체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흑탑주는 본인을 가두고 있던 얼음이 녹아내리자마자, 이동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은 그의 마기와 술식 조차 태워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불꽃의 사슬이 개미 새끼 하나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 되어 흑탑주의 살과 뼈를 녹인다. 홍련의 불길 속에서 놈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그, 그만!”
흑탑주는 냉기와 열기 속에서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느낀 듯 제발 살려달라고 외쳤다.
“날 꺼내만 준다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주겠다!”
그는 오마의 비밀들을 알려줄 테니, 꺼내 달라며 홍련의 사슬을 두드렸다.
“너는 살려달라고 한 사람을 단 한 번이라도 살려준 적이 있나?”
라온이 섬뜩함을 두른 눈동자로 사슬에 묶인 흑탑주를 굽어보았다.
“끄으윽….”
흑탑주는 할 말이 없는 듯 퍼렇게 질린 입술만 떨었다.
“네 정보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죽어라.”
“자, 잠….”
다시 입을 여는 흑탑주를 무시한 채 홍련의 사슬을 일으킨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퍼어어어엉!
불꽃의 사슬이 순식간에 줄어들며 그 안에 있는 흑탑주를 영혼째로 찌부러뜨렸다.
쿠와아아아아앙!
극한까지 압축된 불꽃이 폭발하며 흑탑주와 그가 지니고 있던 마기가 불씨조차 남기지 않은 채 녹아내렸다.
가늘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흑탑주의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소멸한 것 같았다.
[끝났군. 놈의 기척이 완전히 지워졌어.]지르콘은 검게 그을린 듯한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선택은 옳았구나.]그는 흑탑주가 아니라, 자신을 선택한 게 옳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왕의 대사를 네놈이 왜 뺏는 것이냐!
라스가 미간을 구긴 채 지르콘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꾸엑….]지르콘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지 1초도 지나지 않아서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였다.
-크흠!
라스는 찌그러진 지르콘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팔짱을 꼈다.
-끝났구나! 그 지렁이 놈의 기척이 완전히 지워졌느니라!
녀석은 지르콘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읊으며 턱을 끄덕였다.
‘정말 끝난 거 맞지?’
-그렇느니라. 이번에는 확실히 죽었느니라.
라스는 백은의 오로라로 놈의 영혼과 마기를 얼린 후 도망칠 수 없도록 불꽃의 사슬로 휘감은 게 주효했다며 입맛을 다셨다.
“다행이야….”
라온이 팔을 길게 늘어뜨린 채 곧 호흡이 끊어질 듯이 탁한 숨을 내뱉었다.
긴장을 풀자마자, 이기어검으로 띄우고 있던 제천검과 목륜검, 진혼검이 땅으로 떨어졌다.
‘정말 한계였는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벼랑 끝이었다. 만약 흑탑주가 자신의 마지막 공격을 버텼다면 죽는 것은 놈이 아니라, 자신이었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밖에… 음?’
라온이 눈을 감았다가 뜨자, 머리 위에 연녹색 보석이 떠올라 있었다. 에메랄드와 비슷하게 보였지만, 조금 달랐다.
[저게 페리도트다. 그 인간이 죽으면서 튀어나온 것 같군.]지르콘은 페리도트가 본래의 탄생석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라온이 팔을 올리자, 페리도트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손아귀 위로 내려앉았다.
“체임버 님.”
체임버에게 상황을 말해주기 위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두 손가락을 모은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끝났어요. 힘을 푸셔도 돼요.”
“끝….”
체임버는 끝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눈을 내리감은 채 그대로 추락했다. 지닌 힘과 정신력을 모두 쏟아부은 듯 아예 깨어나지 못했다.
“체임버 님!”
라온이 찢어질 것처럼 아려오는 단전에서 오러를 뽑아내 추락하는 체임버를 잡았다.
그녀는 땅으로 떨어지면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힘과 마나가 다 빠졌기 때문에 피부가 갈라지고, 노인 같은 주름이 생겨났다.
‘이 정도로 무리를 하셨던 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체임버는 결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만, 마지막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운석을 뜯어내고, 흑탑주의 마지막 공격을 지워주었다.
그녀가 나서지 않았다면 절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제발.’
체임버가 버틸 수 있도록 단전에 남아 있는 기운을 그녀의 몸에 밀어 넣어주었다.
쿠웅!
라온이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간신히 땅에 착지했다. 자신 역시 힘이 다 빠졌기에 바닥에 깊은 족적을 새긴 채 뒤로 넘어갔다.
“올가!”
체임버를 품에 안은 채 연합군과 함께 있는 성녀 올가의 이름을 불렀다.
“아!”
올가는 아직도 흑탑주가 죽었다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멍하니 서 있다가 다급하게 달려와 체임버를 살폈다.
“…괜찮으셔?”
체임버의 기운이 너무도 희미하여 가슴이 찌르는 듯 아려왔다. 리메르가 죽었던 상황이 떠오르며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많이 위험해. 하지만 어떻게든 해볼게.”
올가는 최소한 죽지는 않게 해보겠다며 체임버의 가슴에 금색으로 빛나는 손을 얹었다.
“너는 뒤로 물러나 있어.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고 해도 지금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그녀는 전신에 주름이 일어난 체임버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듯 턱을 저었다.
“그래….”
라온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뒤로 물러섰다. 올가의 말대로 체임버가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이제는 자신이 해줄 것도 없었다.
‘아니, 하나 남았군.’
라온이 피가 흐르는 입술을 훔치고서 체임버에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니, 우리 둘이라서 흑탑주를 잡을 수 있었어요.’
그녀가 일어나면 다시 해야겠지만, 그보다 먼저 진심이 담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다.
라온은 쓰러진 체임버를 향해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
*
“하….”
카룬은 체임버를 향해 허리를 숙인 라온을 바라보며 헛바람을 내뱉었다.
‘정말 꺾은 건가?’
라온이 흑탑주를?
사실 흑탑주가 묵령세계를 연 이후에는 불리하다고 생각했고, 체임버에게 죽지 않고 되돌아온 놈이 천사 페리도트의 힘을 얻은 후에는 질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
하지만 라온과 체임버는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 흑탑주를 쓰러뜨렸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였다.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힘들어.
자신이 라온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그처럼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육체와 영혼을 불태우며 흑탑주에게 맞서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아 올랐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게 없군.’
라온의 무력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아주 일시적인 힘. 아마 이 땅을 벗어난다면 조금이지만 자신이 더 강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도 이곳의 라온처럼 싸울 자신은 없었다. 저건 라온 지그하르트이기에 가능한 처절한 전쟁이었다.
‘다만 나도 조금은 변한 건가.’
예전의 자신이라면 라온의 활약에 질투와 질시를 했겠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저 아이가 그저 고맙고 기꺼울 뿐이었다.
‘가주….’
지그하르트의 가주가 되는 것은 자신이 평생을 바라온 염원이자, 소원이었다. 글렌이 다시 젊어진다고 해도 넘겨줄 생각이 없었고, 지금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촤아아아아악!
카룬이 더 이상 부활을 하지 않는 마족들을 베어내며 턱을 치켜들었다.
“최대한 빨리 마족들을 정리해라.”
그는 눈을 감은 채 다시 기운을 모으는 라온을 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오늘의 주역들을 맞이해야 하니까.”
*
*
*
“라온이 해냈어….”
버렌은 마계의 문을 살피는 라온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흑탑주를 꺾었다고!”
아무리 2대1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라온이 흑탑주를 지워버릴 줄은 몰랐다.
제발 이겨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그 일이 정말 벌어나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넌 라온을 안 믿었나 보네?”
마르타가 버렌의 어깨를 툭 치며 고개를 저었다.
“난 처음부터 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그녀는 라온을 바라보며 피에 젖은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나도….”
루난도 라온을 끝까지 믿고 있었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라온 대존잘이라 해낼 줄 알았어….”
그녀는 전장의 끝에서 홀로 서 있는 라온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역시 믿음을 배신하지 않으시는군.”
마크 괴튼은 처음부터 신뢰 자체가 흔들리지 않은 듯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 님!”
“전주님!”
“으아아아아아!”
도리안과 크레인을 비롯한 광풍전의 검사들이 도망치려는 마족들을 베어버리고, 라온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물기가 고여 있는 눈으로 웃음을 그리며 라온의 이름을 외쳤다.
“도련님. 이제 다 끝난 거죠?”
유아가 라온의 찢어진 옷 소매를 잡고 물었다.
“아니….”
라온이 마계의 문을 올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한 발자국 남았어.”
흑탑주는 죽였지만, 아직 마계의 문을 완벽히 닫지 못했다.
저 문을 부숴야만 오늘의 전쟁이 끝나게 될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줘.”
라온이 유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땅을 박차고 다시 천공으로 올라갔다.
파아아아앙!
단숨에 하늘의 끝자락으로 올라가 얼어붙은 마계의 문 앞에 섰다.
본래라면 라스의 냉기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문이 닫혔어야 했지만, 흑탑주의 마기 때문에 오히려 틈이 더 벌어져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야.’
이 문만 닫는다면 이 지독하고도 긴 전쟁이 끝난다. 힘이 다 빠졌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우우우우웅!
제천검 위로 얼마 남지 않은 글래시아의 냉기를 두르고, 영혼의 밑바닥에서 라스의 분노를 끌어냈다.
‘버텨야 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한계였기에 마지막 힘까지 끌어모아 제천검을 내리쳤다.
콰드드드득!
이미 문의 반 이상이 얼어붙었기에 베어야 하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마계의 문은 마지막 발악을 하듯 강렬한 마기를 뿜어내서 칼날을 막아냈다.
“그만 좀 죽어라.”
라온이 입술을 씹으며 제천검에 힘을 더했다.
콰드드드득!
마계의 문을 지키려던 마기가 겁에 질린 듯 밀려나며 문이 다시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며 남은 힘을 다 폭발시키려고 할 때 아주 조금 남아 있는 틈에서 구릿빛 팔이 튀어나왔다.
‘마족?’
문과 함께 팔도 베어내려고 했지만, 제천검의 칼날은 마족의 구릿빛 피부를 가르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뿌드드드득!
하얀 서리를 뚫고 나온 손이 얼어붙은 마계의 문을 잡고 억지로 뜯어버렸다.
쿠와아아아아!
다시 마계의 문이 개방되며 무시무시한 마기가 소용돌이친다.
금빛으로 번뜩이는 마계의 중심에서 흑발의 미청년이 외눈 안경을 들어 올렸다.
“아주 제대로 저질렀구나.”
그의 섬찍한 미소를 보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