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31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31화(931/965)
제931화
그저 잘생긴 상인처럼 보이지만, 저 남자는 초월자들도 지닐 수 없는 절대적인 기운을 두르고 있었다.
본인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금안을 마주하자,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공포와 긴장감이 밀려왔다.
‘탐욕의 군주 그리드….’
라온은 흑발금안의 미청년을 보며 입술을 꾹 내리눌렀다.
‘왜 이놈이 여기에?’
부유한 상인으로 보이는 저 남자는 슈페르 신성 왕국에 강림했던 탐욕의 군주 그리드였다.
상대의 근본을 비춰준다는 외눈 안경과 깔끔하게 다린 셔츠를 보자, 그가 당시에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무력이 떠올랐다.
‘이건 위험해.’
그리드는 라스가 호적수라고 인정하는 마왕이다. 마계의 군주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존재였기에 자신과 체임버의 상태가 정상이었어도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고, 체임버는 죽기 직전까지 마법을 사용하여 성녀 올가에게 치료를 받는 중이다.
카룬 역시 혼자서 흑색왕 시겔과 상위 마인들을 막아내느라, 힘이 다 빠진 상태. 싸움으로는 아예 이길 가능성이 없었다.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건만….
라스가 그리드를 보며 눈매를 깊게 찌푸렸다.
-역시 저 금붙이 놈은 이 탑과 연결되어 있었군.
‘그게 무슨 소리야?’
라온이 눈동자만 돌려서 라스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이 탑의 소속이라는 놈이 나와서 너와 본왕의 수하들을 죽이려고 한 적이 있지 않느냐. 본왕을 직접 나서게 만들었던.
‘창염마군 오르고스?’
-이름은 모르겠고. 어쨌든 그놈과 싸울 때 그리드의 악취가 풍겼느니라. 이곳에 들어왔을 때도 돈 냄새가 나길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어.
라스는 그리드가 흑탑을 성장시킨 것 같다며 짧게 혀를 찼다.
‘…기억이 안 나.’
라온이 눈썹을 깊게 내렸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기절해 있는 동안 했던 말인 것 같았다.
‘아니, 뭐가 됐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미 그리드가 모습을 드러낸 이상 이곳이 그의 세력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여기서 벗어날 방법만을 생각해야 했다.
콰드드드득!
그리드는 본신의 힘으로 얼어붙은 마계의 문을 뜯어버리고, 차원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눈을 마주하자, 목 밑까지 죽음이 찾아온 듯 오싹한 소름이 돋아 올랐다. 너무도 압도적인 존재감에 자신의 영혼 자체가 일그러지는 기분이었다.
‘하필 이놈이라니….’
차라리 엔비가 나왔다면 속일 방법이라도 있었겠지만, 그리드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저 안경이 있으니까.’
그리드가 쓰고 있는 저 외눈 안경은 존재의 본질을 보여주는 특별한 아티팩트다.
놈은 다른 마왕들과 달리 저 외눈 안경을 통해서 자신이 라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연기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또 너인가.”
그리드가 외눈 안경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라스의 그릇.”
그는 분노의 군주로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자신을 라스라 생각하지 않고, 그릇이라 칭했다.
심기가 불편한 듯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바늘로 찌르는 듯 아려왔다.
-아무리 네놈이라고 해도 저 금붙이를 속이는 건 무리니라.
라스가 자신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저 외눈 안경도 그렇지만, 본왕이 그 지렁이 따위에게 지금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니까.
녀석은 이번만큼은 연기가 안 통할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거기다 본왕을 강림시켜도 저놈을 밀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니라.
라스가 좋지 않다는 듯 눈썹을 내렸다.
-지금 네놈의 정신과 육체가 모두 망가져서 본왕이 강림해도 제힘을 내기 힘드니라. 물론 본왕의 무력 자체도 정상은 아니지만….
녀석은 상황 자체가 최악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오히려 잘 됐어.’
-뭐?
라스가 무슨 말이냐는 듯 푸른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릇으로 받아들였으면 그릇으로서 행동하면 돼. 놈이 너를 약하게 평가하는 게 아니니까.’
그리드가 지금의 자신을 라스라고 받아들였다면 그게 더 문제다. 라스가 약해졌다는 것을 들키게 되니, 지금처럼 그릇으로 평가해주는 게 훨씬 나았다.
‘오늘은 네가 나오지 않고, 그리드를 몰아내는 게 가장 좋아.’
현재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망가져 있기에 라스가 강림하게 되면 녀석의 영혼이 감당해야 할 충격이 훨씬 커진다.
이전의 상처도 다 회복되지 않았으니, 이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름의 계획은 있지만, 잘 될지는 모르겠군.’
그리드를 몰아낼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걸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시도를 해서 원하는 상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말 위험해질 것이다.
‘일단 시간을 끌어야겠군.’
라온이 탈출을 위한 사전 작업을 시작하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역시 이곳은 네 세력이었던 모양이로군.”
떨려오는 심장을 불의 고리의 힘으로 내리누르며 그리드의 눈을 마주 보았다.
“역시? 알고 있었나?”
그리드가 의외라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분노의 군주께서는 예전부터 이 땅에 네 악취가 흐른다고 말씀하셨다. 더러운 돈 냄새가 풍긴다며 인상을 찌푸리셨지.”
라스가 했던 말을 아주 약간 각색하여 그리드에게 들려주었다.
-엥?
라스는 자신의 말에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네, 네놈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녀석은 당황한 듯 턱을 파르르 떨었다.
“전에 봤을 때는 라스의 연기를 하더니, 이제는 포기한 건가?”
그리드는 자신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 상태로는 녀석을 불러올 수 없는 모양이지?”
“그럴 리가.”
라온이 평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느끼고 계신다. 겁먹은 너를 상대할 가치가 없을 뿐이다.”
한껏 라스를 높여주며 우아한 자태로 손을 내렸다.
-가, 갑자기 본왕을 왜 띄워주는 것이냐! 무슨 짓을 하려는 건데! 불안해! 불안하다고!
라스는 펄쩍 뛰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괴물 앞에서도 떨지 않다니! 역시 내 주인이다!]지르콘이 감탄했다는 듯 크게 턱을 끄덕였다.
-너는 닥치고 있어!
라스는 못마땅하다는 듯 지르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꾸엑….]지르콘은 이제는 혹이 난 듯한 뒤통수를 문지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역시….’
라온이 속으로 깊은숨을 내쉬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리드는 라스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리드가 정말 거리낄 게 없었다면 저 문을 나오기도 전에 자신의 목이 잘려나가거나, 몸 전체가 터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저놈은 먼저 말을 걸어서 자신의 상황을 살피려고 했다. 즉,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라스를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상대로야. 이대로 놈의 심리를 압박하면 밀어낼 수 있겠어.’
그리드는 탐욕의 군주답게 상인과도 같은 심리를 지닌 것 같았다.
라스와 싸워서 손해가 날 거라는 점을 인지시켜준다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이 높았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느낀다? 그 무식한 놈이?”
그리드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모든 것에 통달하셨을 뿐이다. 술식 같은 것도, 주문도 필요 없지. 그분이 가시는 게 곧 길이니까.”
라스는 평소에도 주문이나, 주술을 잘 모른다며 본능적으로 힘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걸 존경을 담은 채 풀어서 그리드의 심리를 한 번 더 자극했다.
“음….”
그리드는 자신의 말을 통해서 라스의 존재를 느낀 듯 눈매를 찌푸렸다.
-네놈의 칭찬을 들으니까 손발이 오그라드느니라! 진심이 하나도 안 담겨 있잖아!
라스는 저런 말을 할 거라면 진심을 한 방울이라도 담아달라며 팔을 휘둘렀다.
‘너한테 하는 말이 아니니까. 신경 꺼.’
라스와 달리 그리드에게는 제대로 먹힌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아니, 본왕을 칭찬해놓고! 본왕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게 무슨 개소리야!
라스는 이해가 안 된다며 이를 갈았지만, 집중력이 풀릴까 봐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흑탑주는 네가 키운 그릇인가?”
라온이 흑탑주의 황금빛 눈동자를 보며 손을 까딱였다.
“키워? 그릇?”
그리드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 그저 동업자 중 하나일 뿐이다.”
그는 흑탑주가 본인의 그릇도 아니고, 키운 것도 아니라며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인간을 키운 건 ‘그놈’이겠지….”
그리드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매를 찌푸렸다. 자신에게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그놈?”
“모르나? 다 안다는 너희 주인이 말을 해주지 않은 모양이로군.”
그는 자신이 했던 말을 비꼬듯 입술을 말아 올렸다.
“분노의 군주는 사사로운 일에 신경 쓰지 않으신다.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일 뿐이지.”
라온은 그리드의 금색 눈동자를 정면에서 바라보며 허리를 곧게 폈다.
“불만이 있다면 덤비도록. 분노의 군주께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나오겠다고 하시니까.”
턱을 치켜든 채로 도박수를 던졌다.
“흐음…….”
그리드는 자신의 생각을 읽으려는 듯 고요한 눈동자를 띄웠다.
*
*
*
“저게 뭐야….”
카룬은 마계의 문 앞에 서 있는 흑발금안의 청년을 보며 턱을 파르르 떨었다.
‘어떻게 저런 괴물이….’
흑탑주의 마기도 경악스러웠지만, 저 위에 있는 존재는 그를 뛰어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히고, 영혼이 짓눌린다. 이 세계 자체가 저 남자의 손아귀 위에 잡혀 있는 것 같았다.
“으으윽….”
“끄으으으….”
“아아악!”
흑발금안의 청년이 뿜어내는 절대적인 기파에 광풍전과 중무전의 검사들이 숨을 헐떡이며 무릎을 꿇었다. 너무도 압도적인 격의 차이 때문에 정신을 잃는 이들도 많았다.
“저 새끼는 또 뭐야!”
“젠장. 숨이 막혀….”
“으으….”
마르타, 버렌, 루난을 비롯한 그랜드 마스터들은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었지만, 그들도 그리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았다.
‘마족이라는 건 확실해.’
그것도 마왕급.
대부분의 사람은 마기의 상극이 신성력이라고 생각지만, 실제로는 마기가 신성 상극인 경우도 있다.
성기사들이 아예 버티지 못하고 바로 기절한 것을 보면 저 남자는 최소 마왕급 마족이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성녀 올가가 기절하지 않고, 체임버를 치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까지 기절했다면 여러 가지가 위험했을 텐데,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안심? 다행?’
그게 맞나?
체임버는 기절했고, 자신과 라온은 본신 무력의 절반도 낼 수 없는 상태다. 저 마족을 막을 방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멀쩡했어도 무리야.’
저 급은 글렌이 오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잊고 있던 절망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그려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음?’
아이들이라도 살리고 싶어서 시선을 돌리다가 라온을 보았다. 그는 저 강대한 마족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땅에서도 저 마족의 기파 때문에 손이 떨리는데, 저렇게 지친 상태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게 경악스러웠다.
‘설마 시간을 벌어주는 건가?’
라온은 대화를 하는 동안 이곳을 빠져나가라는 듯 마족의 시선을 본인에게 끌고 있는 것 같았다.
“성녀.”
카룬은 떨고 있는 올가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십시오.”
그녀에게 체임버를 맡기고 다른 수하들에게도 최대한 빨리 밖으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라온….’
카룬은 흔들림 없이 서 있는 라온을 바라보며 검을 쥔 손을 세웠다.
‘최소한 너 혼자 죽지는 않게 해주마.’
*
*
*
“흐음.”
그리드는 자신을 바라보며 짧게 입맛을 다셨다.
“…….”
라온은 그리드의 노골적인 시선을 받으며 손끝을 세웠다.
‘나를 판단하고 있군.’
아니, 내가 아니라 라스를 견제하는 것이겠지.
이전의 그리드는 자신을 무시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라스에게 당해서 많은 손해를 보았다.
수억이 넘는 금화를 소모하고, 본인 역시 큰 부상을 당했으니 이전과 달리 조심스러운 것 같았다.
‘계속해서 라스가 건재하다는 점을 알려야 해.’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자신의 몸과 정신이 모두 망가진 상태였기에 마왕강림 자체가 불가능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리드는 그걸 모른다. 그 정보의 차이를 이용하여 놈이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지금 라스는 무얼 하고 있지?”
그리드가 턱을 모로 튼 채 눈동자를 굴렸다.
“그 느끼한 얼굴을 짓뭉개버리고 싶다고 하시는군.”
라온은 정말 라스를 한번 흘낏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본왕이 언제! 하지만 그 말은 잘했느니라! 면상이 너무 구려!
라스는 마음에 드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괜찮겠느냐?
녀석이 짧게 입맛을 다셨다.
‘뭐가?’
-네 녀석은 그리드를 상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실제로도 상인스러운 행동을 보이지만, 놈의 근본은 마족. 그것도 마계에서 가장 욕심이 많은 마족이니라.
라스는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가는 위험할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리드가 무너진 흑탑과 그 밑에 죽어 있는 마족들을 바라보며 길게 입맛을 다셨다.
“전쟁이 끝난 이상 그리고 네 뒤에 라스가 있는 이상 여기서 싸움을 거는 건 좋은 판단이 아니지. 라스를 피해서 너희를 죽여도 무너진 흐름이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
그는 라스의 말과 달리 상인다운 판단을 내리며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드의 눈빛이 밤하늘을 밝히는 우레처럼 번뜩였다.
“너에게 욕심이 나는군.”
“뭐?”
“슈페르에서 보았을 때와 몇 년 차이가 나지도 않는데, 그 수준까지 올라가다니 라스의 그릇이라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성장력이다.”
그의 금색 눈동자 위로 욕망이라는 두 글자가 타올랐다.
“라스의 분노를 받는다고 해도 제대로 투자해보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군.”
그리드는 괴기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손을 뻗었다.
-숙이거라!
‘아….’
라스가 몸을 숙이라고 말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지만, 그리드의 손짓에는 몸 상태가 정상이었어도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흐름이 담겨 있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움직여도 저 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자신의 영혼이 그리드의 손아귀에 잡힌 기분이었다.
-이 답답한!
라스가 이를 갈며 앞으로 나서려고 할 때 꽃처럼 향긋하면서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향기가 바람을 타고 스며들었다.
그 향기에 정신이 멍해지는 찰나 과즙이 뿌려진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향이 이어져 들어왔다.
콰아아아아아앙!
어느새 자신의 눈앞으로 분홍빛 머리카락의 여성과 백발의 여자아이가 솟아나 그리드의 손을 쳐내 주었다.
“너희들은….”
그리드는 라온을 지키듯이 선 두 여성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나를 기억해줬구나.”
분홍빛 머리카락의 여성이 그리드를 무시한 채 몸을 돌렸다. 연하게 일렁이는 분홍빛 눈동자. 러스트였다.
“네 기술에 내 권능을 넣어주다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러스트는 너무도 행복했다며 자신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미소를 그렸다.
“돈….”
백발의 여자 아이가 손가락을 입에 넣은 채 자신의 소매를 잡았다. 폭식의 군주 글러트니였다.
“다 떨어졌어….”
글러트니는 다시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돈이 필요하다며 붉은 빛을 띈 눈을 끔벅였다.
-끼아아아아악!
라스는 러스트를 보자마자, 그리드를 막으려고 했던 것을 잊고 뒤로 물러서며 비명을 질렀다.
‘둘 다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라온은 글러트니와 러스트를 번갈아 보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이렇게 되면….’
그리드의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