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34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34화(934/965)
제934화
“권능이라….”
그리드가 라온의 손목에 걸려 있는 마왕들의 팔찌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의 눈동자가 금화처럼 얇게 펴졌다.
“그 그릇을 키워서 무얼 하려는 거지?”
그리드는 라스의 생각을 파악하겠다는 듯 일렁이는 듯 불길한 시선을 보냈다.
-무슨 헛소리야! 본왕이 하는 게 아니니라!
라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전부 이 귀신 같은 애송이에게 농락당하는 것이니라! 네놈이랑 본왕 모두가!
녀석은 제발 좀 알아달라며 소리를 질렀지만, 당연하게도 그리드에게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본왕이 마왕들의 권능으로 대륙을 멸망시키든, 신을 죽이든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니라.”
라온은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듯 거만한 자태로 턱을 저었다.
“그 말도 옳군.”
그리드가 가느다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도 네가 의심스럽다. 라스인지, 그릇이 연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는 여전히 자신을 살피고 있는 듯 고요히 빛나는 눈동자를 드러냈다.
-맞느니라! 이놈은 본왕이 아니니라! 본왕이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일 리가 없지 않느냐!
라스는 제발 알아보라며 팔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역시 그리드는 위험하군.’
라스의 권능과 영혼의 격을 빌려왔기에 그리드가 착용한 안경을 통해서도 자신이 라스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아직도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자신을 인간이라 여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호구스러운 마왕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래도 지금은 건드릴 수가 없군. 어느 쪽이든 손해가 막심할 테니까.”
그리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탐욕>의 권능이 솟아올랐다.
우우우우웅!
<탐욕>의 힘은 혜성의 꼬리처럼 유려한 궤적을 그리며 자신의 손목으로 내려왔다.
화아아아아악!
진한 황금빛이 물 흐르듯 이어지며 자신의 손목 위로 산뜻한 느낌을 주는 금색의 꽃팔찌가 피어났다.
[<탐욕>의 권능 일부가 혼과 육체에 스며듭니다.] [적응기간이 끝난 뒤 권능이 개방됩니다.]‘음?’
라온은 금색 꽃팔찌에 어려 있는 <탐욕>의 권능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뭐지? 이 양은?’
그리드는 지금까지 받았던 마왕들의 권능 중 가장 많은 양을 한 번에 넘겨주었다.
수련과 삶을 통해서 성장시킨 다른 마왕들의 권능과 비슷할 정도의 양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이 나왔다.
‘러스트보다도 더 많이 줬어.’
처음부터 호감을 지니고 있었던 러스트의 <색욕>보다도 많은 양의 <탐욕>이 넘어왔기에 그리드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드. 무슨 속셈이냐.”
라온이 그리드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그리드가 넘긴 <탐욕>에 다른 기운이 섞여 있었다면 놈의 속을 읽을 수 있겠지만, 순수한 권능이었기에 오히려 놈의 생각을 알기가 어려웠다.
“투자다.”
그리드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손을 저었다.
“투자?”
“그래. 네가 하려는 일에 살짝 발을 담가보고 싶거든.”
그는 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냄새가 난다며 입맛을 다셨다.
“본왕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면서?”
“크게 먹기 위해서는 남들이 모르는 곳에 투자하는 게 중요한 법이지. 남들도 다 아는 투자처는 이미 말라붙은 땅이니까.”
그리드는 다시 상인의 모습을 드러내며 턱을 까딱였다. 다만 그의 눈동자에 담긴 욕망은 더 크게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내 본능이 말해주고 있다. 네게 걸면 꽤 많이 남겨 먹을 수 있을 거라고. 라스든 그릇이든 상관없이 말이야.”
“…….”
라온이 서늘하게 웃는 그리드를 보며 눈썹을 내렸다.
‘아직도 의심하고 있군.’
그리드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자신이 라스가 아니라는 것을 의심하고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타인을 믿지 않는 것을 보니, 탐욕의 군주라는 이름을 잘 지은 것 같았다.
만약 라스가 그리드 같은 성격이었다면 자신은 진즉에 몸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그럼 이 꽃의 모양은?”
그리드답지 않게 굉장히 순한 느낌의 꽃이라 거북스러웠다.
“취향이다.”
그리드는 언젠가 라스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으며 고개를 저었다.
-취향 한번 거지 같구나.
라스는 본인 생각은 못 하고, 그리드를 조롱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약속대로 권능을 넘겨주었으니, 이만 가봐도 되겠지?”
그리드는 다시 마계로 돌아가겠다는 듯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딜 가려고?”
러스트는 보내주지 않겠다며 <색욕>의 권능을 담은 손끝으로 그리드의 목을 겨눴다.
“한 입만 먹고 보내면 안 돼?”
글러트니는 힘을 써서 허기가 진 듯 그리드의 머리 위로 새까맣게 일렁이는 <탐식>의 입을 열었다.
“보내주거라.”
라온이 러스트와 글러트니에게 손을 저었다.
“이젠 싸워도 의미가 없으니까.”
자신은 진짜 라스가 아니기에 그리드를 잡아서 볼 수 있는 이득보다 손해가 훨씬 컸다.
그리드가 정말 죽자고 달려들면 앞에 있는 마왕 둘과 동귀어진을 할 수도 있을 테니, 지금은 보내주는 게 옳았다.
“쯧….”
러스트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차고서 손을 내렸다.
“한 입 먹고 싶었는데….”
글러트니는 정말 그리드를 통째로 먹어버리려고 한 듯 입맛을 다시며 검은 입을 닫았다. 갑자기 그녀가 무서워졌다.
“역시 대단하군. 본능에 충실한 마왕 둘이 네 말을 들을 줄은 몰랐어.”
그리드는 지금도 놀랍다는 듯 헛바람을 흘리고서 마계의 문 앞에 섰다.
“다시 볼 날이 있겠지. 그때 투자를 한 값을 받아 가도록 하겠다.”
그가 셔츠 주머니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금화를 꺼내서 던졌다.
타악.
라온이 그 금화를 손으로 받고 살폈다. 현세의 금화가 아닌 듯 표면에는 괴이할 정도로 생생한 용이 새겨져 있었다.
“한동안 돈을 좀 벌어놔야겠군. 손해가 막심해.”
그리드는 바쁘게 움직여야겠다고 중얼거리고서 마계의 문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았을 때와는 성격이 달라 보였다.
“하아….”
라온이 탁한 숨을 내쉬고서 마계의 문에 손을 뻗었다. 글래시아의 냉기를 일으키며 라스에게 받은 분노의 권능을 쏟아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
라스의 결전기 백은의 오로라가 자신의 손을 통해 뻗어나가며 거대한 마계의 문을 단 한 순간에 얼려버렸다.
콰드드드득!
마계의 문은 지옥의 냉기에 숨 자체가 끊어진 듯 녹아내린 빙하처럼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얼어붙은 마계의 문이 천공에서 추락하자, 검게 그을린 마기가 갈라지고, 녹빛을 띈 하늘이 드러났다.
처음부터 어둑한 세계라고 생각했지만, 본래는 자신이 사는 대륙과 그리 다르지 않은 차원 같았다.
“그 백은의 오로라를 내 권능으로 써주다니, 지금도 행복해….”
러스트는 여한이 없다고 말하며 두 뺨을 붉혔다.
“다음에는 뭘 해줄 거야? 은월마장? 권능이 필요하면 더 줄게! 나를 줄 수도 있어!”
그녀는 권능 대신 본인을 던져 줄 수도 있다며 양팔을 벌렸다.
-끼아아아악!
라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저것 좀 떨어뜨리거라! 진짜 무섭다고!
녀석은 이쪽저쪽 너무 힘들다며 코를 훌쩍였다.
“아쉽다….”
글러트니는 그리드를 맛보지 못한 게 아쉽다는 듯 손가락을 빨았다. 러스트와 달리 저쪽은 구슬 아이스크림이나, 맛난 음식을 사주면 해결될 것이다.
“여기까지 와주어서 고맙다.”
라온이 러스트와 글러트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 없어서 온 거야….”
글러트니는 여전히 돈이 없어서 왔다고 말하며 손가락을 돌려서 하얀 머리카락을 휘감았다.
“내가 고맙지! 언제 불러도 좋아! 그냥 나를 생각해준 것만으로 좋아! 내 기술, 내 권능 다 가져가도 돼!”
러스트는 애정이라는 말에 정신이 나간 듯 눈동자를 분홍빛으로 물들인 채 격한 말을 연달아 내뱉었다.
-끄르르르륵….
라스는 러스트의 애정 공세에 겁을 먹은 듯 입에 거물을 물고 쓰러졌다.
“그런데 너는 왜 마계에 있었던 거지?”
라온이 러스트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멀린과 함께 있는 거 아니었나?”
“한참 전에 헤어졌어. 혼자서 너를 찾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마계더라고….”
러스트는 자신을 찾다가 마계까지 갔다며 고개를 저었다.
‘…저게 가능한 거야?’
라온이 라스를 보며 턱을 까딱였다.
-마, 말했잖느냐. 저 스토커는 차원 제일의 길치라고. 어떻게 저 두 속성이 한 몸에 있는 건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가지만….
라스는 머리로 생각해서는 러스트를 따라갈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 멀린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건가?”
평소의 멀린을 생각하면 이번 전쟁이나, 이전의 싸움에서 한 번 정도는 모습을 드러냈어야 했다.
동물의 모습으로도 나타나질 않으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서 걱정되었다.
“응. 좀 됐으니까.”
“그런가….”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매를 좁혔다.
“한 번 찾아볼까?”
러스트도 멀린이 그리운 듯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아니, 됐느니라….”
러스트가 멀린을 찾다가 천계에 갈 수도 있기에 일단 말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일단 너희는 이 차원 밖으로 나가 있도록. 본왕은 이곳을 정리한 후 따라가도록 하겠느니라.”
“끄응, 기다리고 있을게….”
러스트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자신의 말을 따르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구슬 아이스크림 사 올 거야?”
글러트니는 권능을 사용하여 배가 고프다며 손을 흔들었다.
“밖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으니, 그곳에서 러스트와 기다리고 있거라.”
“응.”
그녀는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러스트의 손을 잡고 하얀빛이 되어 사라졌다.
-어, 어이?
라스가 자신의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찔렀다.
-이제 본왕의 힘과 영혼을 돌려주는 게 어떻겠느냐? 다 끝났는데?
‘…….’
라온이 말없이 라스를 바라보았다.
-누, 눈을 왜 그렇게 뜨는 것이냐! 끝나면 준다고 했잖느냐!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며 공포에 떨었다.
‘그래. 돌려줄게.’
라온이 라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받았던 권능과 영혼의 격을 모두 돌려주었다.
후우우우우욱!
자신의 뒤를 받쳐주던 어마어마한 힘이 한순간에 사라져서 조금 허무했지만, 이 경험만으로도 자신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하군. 이렇게 바로 줄 놈이 아닌데….
라스가 오히려 의심스럽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이상할 게 뭐 있어. 빌린 걸 돌려줬을 뿐인데.’
-평소의 네놈이라면 이걸로도 협박을 할….
라스가 손가락을 겨누며 따지기 시작할 때 자신의 눈앞으로 푸른빛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륙의 역사에 남을 위업을 이뤄냈습니다.] [흑탑의 주인을 꺾었습니다.] [<탐욕>의 군주에게 인정받았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새로운 특성….] [특성….]이번 전쟁에 관한 보상들이 떠오르며 눈앞을 가득 채웠다.
-뭐, 뭐가 이렇게 많아!
라스가 메시지를 보며 악을 질렀다.
-물론 대단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너무 많잖아! 상태창도 아니고, 한눈에 안 보인다고!
녀석은 말이 안 된다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
다만 라온은 보상 메시지를 읽지도 않고 내려버렸다.
-어? 왜 그러는 것이냐?
라스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본왕에게 힘을 돌려준 것도 그렇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싸움이 끝나니, 현실감이 들었거든. 지금은 저 메시지를 볼 때가 아니야.’
라온이 피에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현실감? 아….
라스는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듯 낮은 신음을 흘렸다.
‘이제는 책임을 져야 할 때야.’
라온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서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차원의 출구로 내려갔다.
*
*
*
“음….”
카룬이 힘겹게 잡고 있던 검을 내렸다.
‘내가 무얼 본 건지 모르겠군.’
마왕의 등장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두 명의 마왕이 더 등장하여 금색의 마왕과 싸웠다.
격렬한 전투 속에서 금색의 마왕이 우위를 잡고 라온을 습격했는데, 그는 갑자기 세 마왕을 압도하는 기파를 일으켜 싸움 자체를 끝내버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상황에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이제 끝난 겁니까?”
버렌이 뒤에서 다가오며 마른침을 삼켰다.
“왜 여기에 남은 거냐.”
카룬은 후퇴를 지시했는데 왜 남아 있냐며 눈매를 찌푸렸다.
“우리 전주가 저기에 있는데 어떻게 도망쳐요!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마르타가 절대 못 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응. 한 몸….”
루난은 광풍전은 모두가 하나라는 듯 손가락을 세웠다.
“…그런가.”
본래라면 지적을 했겠지만, 전주를. 아니, 가족을 생각하는 버렌, 마르타, 루난의 눈빛으로 보며 입을 다물었다. 라온이 모든 상황을 끝냈기에 할 말도 없었다.
후우우욱.
라온은 무언가 허무한 눈빛을 드러낸 채 땅으로 내려섰다.
그는 죽은 사람들과 마족들을 살피며 이 차원의 출구로 걸어왔다.
“고생하셨습니다.”
버렌은 그저 고생했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에 그건 뭐야? 가주님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마르타는 그 압도적인 기파에 놀란 듯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오늘 초대존잘.”
루난은 그저 대단했다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모두 고생했다.”
라온은 모두의 칭찬을 들으면서도 힘이 빠진 듯한 웃음을 그렸다.
“왜 무슨 일 있어?”
마르타가 라온의 무거운 표정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니까.”
라온이 차원 밖을 보며 눈동자를 살짝 내렸다.
“끝난 게 아니라니?”
“또 다른 놈이 오는 거야?”
버렌과 마르타가 깜짝 놀란 듯 입술을 떨었다.
“음….”
“…….”
다만 카룬은 라온의 생각을 읽은 듯 입을 다물었고, 루난은 눈을 내리감았다.
“아니, 현실을 느낄 때거든.”
라온이 피에 젖은 오른손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고, 또….”
머리에 그리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꺼내려고 하니,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떨려왔다.
“렌시아가 있으니까.”
흑탑에 목줄을 잡힌 채 태어났지만, 어둠에 빠지지 않고 본인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준 아이. 저 거대한 흑탑과 흑탑주를 무너뜨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아이. 그리고 죽어가면서도 자신보다 동생들을 생각했던 아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앞으로의 삶을 돌봐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걸 이루지도 못한 채 떠난 아이가 떠올라 속이 찢어질 듯 아려왔다.
“음….”
“렌시아. 그렇지. 그 아이가 있었어.”
“…….”
버렌, 마르타, 루난도 렌시아가 떠오른 듯 시선을 내린 채 입술을 깨물었다.
-…….
라스 역시 그 부분에서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렌시아가 입은 부상은 신성력과 의술에 모두 통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고칠 수 없다.
오러를 조금이라도 익혔다면 어떻게든 버텼겠지만, 일반적인 아이들보다도 약한 상태였기에 렌시아의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렌시아.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승리는 없었을 거야.
라온이 렌시아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흑탑의 차원을 벗어났다. 나오자마자 보이는 건 렌시아와 함께 앉아 있던 분수대였다.
저곳에서 렌시아에게 앞으로 행복한 일만 남았다는 말을 해주었고, 그녀가 죽어갈 때 동생들을 챙겨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었기에 구역질이 나올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이제는 누구도 죽지 않게 하고 싶었는데.’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아.
라온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일 때였다.
“라온 님!”
분수대 뒤편에서 지금 가장 듣고 싶었던 사람의 목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