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36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36화(936/965)
제936화
글렌은 여유를 잃지 않는 데루스 로베르트를 살피며 눈매를 찌푸렸다.
‘강해졌군.’
데루스에게서 피어나는 기파에 손끝이 떨려온다. 초월자라는 틀을 뛰어넘은 무력. 묵검존이라는 이명을 지닌 레크로스 국왕이 저리 무너진 게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보다….’
자신에게 충격을 주는 건 놈의 무력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곳. 데루스 로베르트라는 인간이 지니고 있던 영혼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된 듯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오랜만이야.”
데루스 로베르트가 천천히 몸을 돌려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글렌 지그하르트.”
그는 인질로 삼을 셈인지 레크로스 국왕을 앞에 세운 채 턱을 치켜들었다.
“이렇게 빨리 도착한 것을 보면 지그하르트에서 대기하고 있었나 보군.”
데루스는 의외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흑탑이 있는 몬티로에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문에 남아 있었다니, 손자와 아들이 죽어도 상관없나 봐?”
그는 흑탑 습격 작전에 대해 전부 알고 있다는 듯 카룬과 라온의 이름을 꺼냈다.
“그 아이들은 강하다. 흑탑 따위에는 쓰러지지 않아.”
글렌은 라온과 카룬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며 담담하게 턱을 저었다.
“그래? 내가 아는 정보와는 좀 다른데?”
데루스는 글렌을 자극하려는 듯 레크로스 국왕의 어깨를 찌르고 있는 검을 살짝 비틀었다.
“…….”
레크로스 국왕은 살과 뼈가 뜯겨나가는 고통을 느꼈음에도 자그마한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
“가주.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저를 신경 쓰지 마시고, 이 악귀를 베어주십시오.”
그는 본인을 상관하지 말고, 데루스를 죽여달라며 굳건한 시선을 들어 올렸다.
“괜히 한 나라의 왕을 해 먹는 건 아니군.”
데루스 로베르트가 대단하다고 중얼거리며 헛바람을 흘렸다.
“좀 닥쳐줘야겠어.”
그가 검지와 중지를 모아서 레크로스 국왕의 등을 찔렀다.
“음!”
레크로스 국왕은 오러의 흐름이 모조리 막힌 듯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
글렌은 눈동자도 돌리지 못하는 레크로스 국왕을 바라보다가 데루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흑탑을 노리고 있다는 걸 언제 알아차린 거지?”
“흑탑보다는 조금 더 빨리 알았지.”
데루스는 습격 전에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기습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글렌이 데루스를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하러?”
데루스가 왜 막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흑탑이 마지막 전쟁터가 되는 건 내가 바라는 길이 아니야.”
그는 지금은 진정한 전쟁의 때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모든 시선이 흑탑에 향해 있는 틈을 이용하여 내 실력을 확인하고, 이 무능한 왕을 죽이는 게 이득이지.”
데루스는 동료를 구하는 것보다, 적 하나를 줄이는 게 낫다며 입매를 비틀었다.
“안 그래?”
그는 흥이 동한 듯 손가락을 까딱여 레크로스 국왕의 상처를 짓눌렀다.
“…….”
레크로스 국왕은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데루스를 죽이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기다리고 있게나.”
글렌은 레크로스 국왕의 눈빛을 가슴으로 받아들인 후 진천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정말 해보려고? 당신이 움직이는 순간 이 나라는 어버이를 잃을 텐데?”
데루스는 자신에게 그리 밀리지 않는 기파를 지니고 있음에도 인질을 잡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해를 벗어난 행동 방식이었다.
‘거기다….’
저 상처도 기습으로 입힌 거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레크로스 국왕이 입은 상처는 정면에서 찔린 게 아니라, 뒤에서 기습으로 당한 것이다.
저런 무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암살자와 같은 싸움 방식을 사용했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천검성 데루스 로베르트가 연기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다를 줄이야.’
데루스는 흑탑주를 구할 기회를 버리고, 오웬에 침투해서 레크로스 국왕을 노렸다.
아군을 충분히 구해낼 여력이 되었음에도 적을 죽이겠다는 전략을 사용하다니, 아직 자신의 기억에 천검성 데루스 로베르트가 남아 있기에 그를 파악하기 더 힘든 것 같았다.
‘어렵군.’
저놈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어.
지금까지 많은 경험을 쌓았기에 누군가의 사회적 위치와 언행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어느정도 예측이 되었다.
하지만 저 데루스 로베트르만큼은 달랐다.
오황오마의 초월자를 압도하는 무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기습을 하고, 인질을 잡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다니,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신기하군.”
데루스 로베르트가 글렌을 살피다가 가늘게 턱을 내렸다.
“당신은 고작 인간일 뿐이고, 그 뒤에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데 어찌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거지?”
그는 오히려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물론 인간일 뿐이기에 인과율을 벗어날 수 없지만.”
데루스는 글렌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듯 픽 웃었다.
“그만 숨고 나와.”
그가 손을 올리자, 뒤편의 기둥에서 새하얀 날개를 펼친 금발의 청년이 걸어 나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부동심을 깨부수는 아찔한 외모. 인간이 아닌, 천족이었다.
“부탁하지.”
데루스는 인질로 잡고 있던 레크로스 국왕을 천족에게 넘겨주었다. 말하는 투를 보니, 상하 관계가 아닌 것 같았다.
“…….”
글렌은 그 모습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보통 천사가 아니로군.’
우리엘의 강림을 보았기에 데루스가 천계와 연이 닿아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설픈 천사라면 검격 한 번으로 기회를 잡을 수 있겠지만, 저 천사는 무언가가 달랐다. 제대로 상대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위험해질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데루스 로베르트가 레크로스 국왕의 피가 흘러내리는 검을 세워 자신의 심장을 겨눴다.
“당신과 나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는데 잘 됐군.”
그는 한번 싸워보자는 듯 턱을 까딱였다.
고오오오오!
데루스 로베르트가 검을 세우자, 발밑에 얼음 가시가 돋아난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졌다.
“후배 된 도리로 먼저 들어가지.”
그는 왼발을 구르며 푸른 빛을 머금은 검을 내뻗었다.
치이이이잉!
아직 데루스의 검이 닿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칼날에 꿰뚫린 듯한 통증이 피어났다.
심상에서 쌓은 검을 현실에 투영하는 구현하는 경지. 예상했던 대로 데루스 로베르트는 여타 초월자들과는 다른 경지에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글렌이 진천검을 사선으로 비틀어 공간을 뚫고 들어오는 데루스의 검격을 쳐냈다.
쩌어어어어엉!
검과 검이 부딪쳤을 뿐인데, 거대한 오러의 폭풍이 솟아오르며 왕궁 전체가 뜯겨나갔다. 천장이 날아가고, 벽이 무너지며 푸른 하늘과 꺼먼 대지가 드러났다.
“그걸 그렇게 간단하게 막나?”
데루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보기는 평범한 찌르기처럼 보이지만, 조금 전 자신은 극성의 절기를 운용했다.
글렌만이 아니라, 그 뒤의 땅까지 쪼개버리려고 했는데, 저리 간단하게 막힐 줄은 몰랐다.
“이번에는 내 차례군.”
글렌이 들어 올린 진천검 위로 붉디붉은 뇌전이 타올랐다. 장대한 광채와 함께 그의 검이 데루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르르르르릉!
천공의 우레를 담아낸 듯한 글렌의 검격 속에는 적을 분쇄해버리겠다는 의념이 담겨 있었다.
“멋지군!”
오황오마의 초월자라고 해도 팔다리가 뜯겨나갈 위력이었지만, 데루스는 그걸 보고도 오히려 앞으로 돌진해왔다.
파아아아앙!
그의 검에서 바다와 같은 푸른 빛이 피어나 뇌전을 폭발시키려던 자신의 검격을 중간에서 끊어버렸다.
검술이 본래의 위력을 갖추기 전에 흐름을 잘라내 버리는 절검이었다.
‘예상대로군.’
글렌은 뇌전이 남아 있는 검을 털어내는 데루스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저놈은 이미 다른 오황오마와 격이 달라졌어.’
현시점에서 데루스 로베르트는 천마와 자신을 제외한 오황오마의 수장을 모두 꺾을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놈이 사라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런 무력을 갖추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간은 보았으니, 이제 제대로 시작해볼까?”
데루스가 사이한 미소를 그리며 손목을 휘돌렸다. 그의 검을 휘감고 있던 푸른빛이 불길할 정도로 새까만 어둠으로 물들었다.
‘죽음의 기운….’
죽음의 기운은 사기를 한 번 더 정제하고 다듬어서 쌓아 올린 힘. 당연하게도 훨씬 위험하고 지독한 기운이기에 닿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
치이이이이잉!
데루스의 검격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온다. 대지가 갈라지며 검은 불꽃이 피어난다. 이 세계에 지옥을 불러오는 것 같았다.
우우우우웅!
글렌은 데루스의 검술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현상을 눈으로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진천검 위로 더 짙은 벼락의 기운을 불러오며 짓쳐 들어오는 어둠을 길게 베었다.
쿠와아아아아아!
예로부터 벼락은 마를 부수는 파마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죽음의 기운은 붉은 뇌전에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그라들었다.
“뇌신다운 기세로군.”
데루스는 본인의 검격이 녹아내렸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더 짙은 죽음의 기운이 담긴 검격을 쏟아냈다. 그의 주변으로 태양을 지우는 어둠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쿠와아아아아앙!
죽음의 기운과 붉은 뇌전이 격렬히 부딪치며 하늘과 땅에 검붉은 균열이 튀어나왔다.
왕성을 지켜보고 있던 오웬의 국민들은 인세의 종말이 왔다고 중얼거리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시간이 너무 끌리는군.’
빨리 끝을 내야겠어.
글렌이 데루스가 일으킨 어둠을 갈라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등 뒤에서 섬찟한 감각이 느껴졌다.
스으으으.
데루스 로베르트. 그는 레크로스에게 행했듯이 어둠 속에 숨어서 자신에게 암습을 가해왔다.
죽음이 기운이 안개처럼 흩뿌려져 있기에 그가 다가오기 전에는 기습을 한다는 것도 느끼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는 뇌리의 상상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 가능한 상태였다. 검례를 취하듯 진천검을 아래로 굽혀 기괴하게 꺾여 들어오는 데루스의 검을 쳐냈다.
쩌어어어어엉!
데루스는 뒤로 밀려난 채로 깊은 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다르군.”
그가 떨리는 손을 내리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아.”
*
*
*
레크로스는 자신의 뒤를 잡은 천족을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빈틈이 없군.’
저 천사의 기파를 볼 때 자신이 부상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전에 라온이 잡았다는 천족과는 달리 이름이 있는 고위 천사인 것 같았다.
‘그럼 기회를 봐야겠지.’
어설프게 움직이다가는 오히려 싸움에 방해가 된다. 글렌과 데루스의 전투를 보면서 기회를 노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데루스가 저렇게 강해졌을 줄이야.’
자신을 이긴 것을 떠나서 저 글렌의 검에 밀리지 않는 것을 보니, 데루스는 이미 다른 오황오마의 수장과는 격이 다른 위치에 오른 게 분명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데루스는 글렌과 비슷할 정도의 무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기습을 하고, 바위와 모래를 던지는 더러운 수를 사용했다.
정식으로 싸워도 크게 밀리지 않는데, 저런 추잡한 방법을 쓴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이렇든 저렇든 의미는 없지만.’
글렌은 데루스가 정당한 검술을 펼쳐오든, 기습을 하든 상관없이 그의 모든 공세를 막아냈다. 정말 검의 신이 강림한 것처럼 움직임 하나하나가 완벽에 가까웠다.
‘저분을 믿고, 기회를 기다리자.’
레크로스는 몸을 조여오는 데루스의 죽음의 기운을 천천히 밀어내며 두 사람의 전투에 집중했다.
*
*
*
치이이잉!
글렌은 발밑에서 찔러오는 데루스의 기습을 흘려낸 후 놈의 심장을 향해 진천검을 찔러넣었다.
파아아아아앙!
검붉은 기류가 터지고 데루스 로베르트의 어깨가 깊게 찢겨 나갔다. 그의 몸에서 섬뜩할 정도로 빨간 핏물이 흘러내렸다.
“흠.”
데루스는 상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다시 일어나 오싹할 정도로 예리한 참격을 내질렀다.
그의 검극에서 피어나는 죽음의 기운이 사신의 낫과 같은 형태가 되어 뻗어 나왔다.
‘이건 위험하군.’
초월의 무란 자신의 상상을 현실에 담아내는 경지. 데루스가 저 낫을 사신이라 여겼다면 닿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었다.
후우.
글렌이 짧게 숨을 내쉬고서 진천검 위로 진정한 벼락을 담아냈다.
천뢰공 절기 혼뢰경.
스스로의 영혼을 벼려내서 현현한 벼락이 붉은 섬광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앙!
사신의 낫과 천신의 벼락이 격돌하며 눈앞에 존재하던 모든 것을 무로 만들었다.
오러가 증발하며 검붉은 기류가 하늘 끝까지 솟아올랐고, 그 아래에 있던 모든 것은 검게 지워져 있었다.
고오오오.
글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처음 그 자리에 서서 진천검을 기울이고 있었다. 전투 자체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데루스 로베르트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입술 밑으로 검은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으음….”
그는 검을 타고 올라가 육체와 영혼에도 영향을 미치는 글렌의 뇌기를 밀어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호각을 다투던 전투에서 처음으로 상하가 갈렸다.
“이건 꽤 위험….”
데루스가 헛바람을 흘릴 때 글렌의 검이 다시 솟아올랐다. 혜성의 꼬리처럼 장대하게 휘어지는 검격이 데루스와 천족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크윽!”
데루스가 입매를 비틀며 흔들리던 검에 죽음의 기운을 쏟아냈다. 새롭게 타오르는 검은 불꽃이 장미 덩굴처럼 솟아올라 그의 검 전체를 휘감았다.
쿠와아아아아앙!
글렌의 검격은 이번에도 데루스가 일으킨 죽음의 기운을 거침없이 갈라내 버리고, 그의 육체에 새빨간 상흔을 새겼다.
“크윽….”
데루스는 속절없이 밀려나며 검게 죽은 피를 토했다.
“미쳤군. 이게 극에 오른 검인가….”
기운 자체는 크게 밀리지 않았지만, 검술의 경지에서 벌어진 격의 차이가 너무도 컸다. 상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역시나 아직은 안 되나.”
데루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언제 내상을 입었냐는 듯 몸의 흔들림을 지우고 입가에 흘러내린 핏물을 닦았다.
“다만 수확은 있어.”
데루스가 고요히 서 있는 글렌을 바라보며 턱을 까딱였다.
“지금 그게 당신의 전력이로군. 심검을 사용하지 않은.”
그는 예상한 범위 안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다음에 볼 때는 그 위치에 닿을 수 있겠지.”
“누가 보내준다고 했나?”
글렌이 진천검을 세워서 데루스와 레크로스를 잡고 있는 천사를 동시에 겨눴다.
“정말 날 죽일 수 있나? 네 동료까지 함께?”
데루스는 레크로스 국왕의 옆에 선 채로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죽일 수 있다.”
글렌은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은 채 데루스를 바라보았다.
“죽이고자 한다면 그 누구라도.”
이전과 달리 심검의 칼날을 완벽히 벼렸다. 지금이라면 상대가 누구든 놓치지 않고, 그 영혼을 베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다만 저 천사가 걸리는군.’
우리엘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저 천사의 존재가 껄끄러웠다. 만약 자신이 데루스의 영혼을 벤다고 해도 저 천사가 무슨 짓을 해서 살리게 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으니까.
‘거기다….’
내가 준비가 되었는지 모르겠군.
심검이 완벽해진 만큼 그 반동 역시 컸다. 데루스를 죽이더라도 자신도 바로 이 세계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남아 있는 이들이 괜찮을지 걱정이 되어 손끝의 감각이 굳어지는 기분이었다.
“…….”
글렌은 데루스와 레크로스 국왕을 보며 가늘게 입술을 깨물었다.
“진심인 것 같군. 그럼 선택권을 주지.”
데루스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우고, 손을 까딱였다.
퍼어어어억!
천사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들어 레크로스 국왕의 가슴을 뚫어버렸다.
“커허억….”
레크로스 국왕은 가슴에서 분수 같은 핏물을 쏟아내며 그대로 허물어졌다.
투욱.
천사는 피를 토하며 쓰러진 레크로스 국왕의 목덜미를 잡고 우측으로 던져버린 후 손아귀 위로 금색 섬광을 일으켰다.
“당신이 선택해.”
데루스가 손가락을 내리자, 그와 천사의 몸이 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나를 죽일지 아니면 이 나라의 아버지를 살릴지.”
데루스는 검을 휘두르지 않으면 이대로 사라질 생각이라며 입매를 비틀었다.
“아니, 하나 더 있군. 나를 죽이면 당신도 사라지겠지. 흑탑이 사라진다고 해도 남아 있는 놈들이 버틸 수 있을까?”
그는 어떻게 할 거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저, 저를 신경 쓰지 마시고! 놈을 죽이십시오!”
레크로스 국왕은 피를 토하면서도 데루스를 죽이라고 외쳤다.
“…….”
글렌은 진천검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준 채로 고요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