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37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37화(937/965)
제937화
파아아아앙!
먼저 선택을 강요한 건 천사가 일으킨 빛이었다. 그의 손아귀 위에서 피어난 빛은 섬광처럼 쏘아지지 않고, 쓰러진 레크로스 국왕의 가슴 앞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촤아아아아악!
글렌이 머뭇거림 없이 왼발을 내디뎠다. 그는 찰나의 순간에 레크로스 국왕의 옆으로 이동하여 터지는 빛을 반으로 베어버렸다.
“그럴 줄 알았다.”
데루스 로베르트는 글렌의 선택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안개처럼 흐려지는 손을 아래로 까딱였다.
“역시 지금의 글렌 지그하르트는 북멸왕이라 불리던 냉혈한이 아니로군.”
그는 글렌을 조롱하듯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라온과 카룬이 죽었다는 내 목소리가 계속 머릿속을 울리고 있지? 놈들의 죽음은 대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파발일 뿐이다.”
데루스가 검게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이제 둘이 내려왔으니,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그는 우측에 서서 눈을 감고 있는 천사를 바라보며 길게 입맛을 다셨다.
“다음에 볼 때는 내가 당신의 목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글렌이 곧 사라질 듯이 희미해지는 데루스 로베르트에게 검을 겨누었다.
“찌르려고? 묵검존을 죽도로 놔두면서 나를 찌를 자신이 있나?”
데루스는 이 상황 자체를 읽고 있다는 듯 여유롭게 턱을 까딱였다.
“너는 오웬의 왕을 너무 우습게 봤다.”
글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검존 레크로스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일으켰다. 그는 가슴이 터져나간 상처를 안고 있음에도 수도를 세워 대지를 주저앉히는 듯한 무거운 검격을 내리쳤다.
쿠구구구구구!
적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초월의 검. 레크로스는 천사에게 몸이 잡혀 있을 때부터 지금의 검격을 준비했는지 손짓 한 번으로 적의 살과 뼈를 터트릴 수 있는 강대한 압력을 일으켰다.
쿠우우우우웅!
곧 사라질 것처럼 흐릿해지던 데루스와 천사의 육체가 다시 빛을 되찾고 이 세계로 떨어졌다. 강대한 중력을 일으킨 레크로스의 검에 이동마법이 깨진 것 같았다.
“크헉….”
레크로스는 본인의 역할을 다했다는 듯 입에서 피를 토하며 뒤로 넘어갔다.
스으으으으!
글렌이 다시 땅에 떨어진 데루스 로베르트와 천족을 향해 진천검을 겨누었다. 검날 위를 적시던 붉은 뇌전이 가라앉고, 노검사가 쌓아 올린 심상이 백리화의 고상한 향기와 함께 피어났다.
“으음….”
데루스 로베르트는 본인을 겨누고 있는 글렌의 검극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위험해.’
글렌은 본인의 영혼을 벼려서 적의 영혼을 베어낼 수 있는 절대의 검을 세웠다.
아직 자신도 닿지 못한 전대미문의 경지. 심검이 일으키는 고고한 살의에 심장이 콱 조여드는 것 같았다.
‘저, 정말 베려는 건가?’
글렌이 완성된 심검을 사용하는 순간 이 세계를 떠나게 되기에 그는 라온의 안전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절대 심검을 사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글렌은 진심으로 자신의 영혼을 베어버리려는 것 같았다.
“라구엘!”
데루스가 옆에 선 천사의 어깨를 잡고, 이곳에서 떠나야 한다고 외쳤다.
“규율에 어긋나지만….”
라구엘이라 불린 천사가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바다를 담은 듯한 푸른 눈동자가 명멸하자, 그와 데루스의 육체가 하얀빛을 머금은 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보내주지는 않겠다.”
글렌이 눈을 내리감은 채 진천검을 그어 내렸다. 바람을 베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느릿한 검격이 하얀 빛에 휘감긴 데루스와 라구엘을 스쳐 지나갔다.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칼날이 닿지 않았지만, 진천검이 가르는 건 적의 피와 살이 아니다.
육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영혼과 정신,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베어냈다.
“크헉!”
데루스는 글렌의 검이 떨어지자마자, 허리를 굽힌 채 검게 죽은 피를 토했다.
“이건….”
그는 눈동자에 시뻘건 핏발을 세운 채 입술을 떨었다.
“인간의 검이 어떻게!”
라구엘 역시 백색 날개를 떨어뜨린 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 위로 노검사에 대한 경악이 드러났다.
스으으으으!
글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다시 진천검을 세워 데루스와 라구엘의 목을 향해 찔러넣었다.
“규율의 천칭!”
라구엘이 입술을 깨물며 손을 뻗자, 하늘 위에서 천사의 깃털로 이루어진 듯한 아름다운 형상 천칭이 내려왔다.
천칭의 저울이 파도를 맞은 듯 흔들리더니, 데루스와 라구엘이 세상에서 지워지듯 사라졌다.
“음….”
글렌은 결국 검을 다 찌르지 못하고, 손을 내렸다.
그는 고작 한 번의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도, 심적으로 크게 지친 듯 전신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레크로스 국왕은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고개만 들어서 상황을 물었다.
“위험하니, 말하지 말게.”
글렌이 레크로스 국왕에게 다가가 가슴과 어깨의 상처에서 흘러내오는 핏물을 막아주었다.
“…놈들은 죽은 겁니까?”
“아니, 전부 베지 못했어.”
진천검을 검집에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이곳을 떠날 수 없었네.’
심검을 완성했기에 적이 누구든 죽일 수 있었지만, 그 검을 사용하는 순간 자신의 영혼은 이 대륙에 머물지 못하고 더 높은 곳으로 떠나게 될 것이다.
평생 바라던 승천이었지만, 라온과 다른 아이들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금은 이 대륙을 떠날 수 없었다.
아니, 그걸 떠나서 아직 라온과 카룬에게 가르치지 못한 게 많았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이 땅에 머물고 싶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완성되지 않은 심검을 사용하여 데루스의 영혼을 절반만 갈라냈다.
이것만으로도 자신의 영혼이 흩어질 것처럼 흔들렸지만, 놈의 시간을 뺏을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이해합니다….”
레크로스 국왕은 자신의 말에 담긴 뜻을 읽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라구엘이 만들어낸 결계가 사라지자, 오웬의 기사들이 레크로스 국왕에게 달려왔다.
“폐하?”
“사, 상처가 너무 심한….”
“어서 폐하를 옮겨라! 빨리!”
기사들은 가슴에 구멍이 뚫린 레크로스 국왕을 보자마자, 깊은 신음을 흘리며 그를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어, 어서….”
레크로스 국왕이 기사들을 멈춘 후 글렌에게 손을 저었다.
“가보십시오.”
그는 본인 생각은 말고, 다른 곳으로 가보라며 힘겹게 웃었다.
“고맙네.”
글렌이 고개를 끄덕이자, 레크로스 국왕은 마음에 편해진 듯 기사들에게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마탑주.”
글렌의 부름에 허공이 샘물처럼 찰랑이더니, 로브를 벗은 마탑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네.]마탑주는 평소의 흐릿하고 늘어지는 목소리가 아닌, 똑부러지는 음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자체가 바뀐 듯한 모습이었다.
“다른 곳의 상황은?”
[예상과 달리 저희나, 발카르, 야수연맹 쪽 모두 습격이 없습니다.]그녀는 습격받은 건 오직 오웬 뿐이라며 눈매를 좁혔다.
“음….”
글렌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모든 곳을 찌를 줄 알았는데, 오웬만 공격했다는 게 너무도 이상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데루스의 의도를 읽을 수가 없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다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짧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몬티로 쪽과 연락은 닿았나?”
[계속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암시장 쪽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고, 차원문도 닫혀 있습니다.]오황의 통신망 자체가 끊어진 것 같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몬티로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나를 이동시켜주게.”
글렌이 떨리는 가슴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직접 가봐야 이 떨림이 멈출 것 같으니까.”
*
*
*
화아아악!
작은 등불 하나만 띄워져 있는 어둑한 서재에 성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커흐윽….”
하얀빛의 구체 속에서 튀어나온 데루스 로베르트가 고급스러운 카펫 위에 주저앉은 채 검은 피를 토했다.
“으음….”
라구엘 역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책장을 넘어뜨리며 뒤로 쓰러졌다. 깃털로 만들어진 천칭을 잡은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데루스 님?”
서재에서 대기하고 있던 쿠바라가 눈을 부릅뜬 채 데루스에게 다가갔다.
“대체 무슨 일이….”
그녀는 당황한 와중에도 검은 알약을 꺼내서 데루스의 입에 넣어주었다.
“크윽….”
데루스는 약을 먹고 나서야 고통이 줄어든 듯 간신히 상체를 들어 올린 채 피 내음이 섞인 숨을 내뱉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설마 글렌 지그하르트가….”
“그래. 심검이다.”
데루스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 자체가 잘려나갈 뻔했어.”
그는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다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게 정말 인간의 검인가….”
라구엘이 입에서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헛바람을 흘렸다.
“인간 따위에게 허락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힘이다. 규율에 그리고 정의에 맞지 않아.”
전장에서도 평온히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진심으로 분노한 듯 푸른 눈동자 위로 섬뜩한 살의를 일으켰다.
“그 검이 완성되었다면 나와 너 모두 죽었을 것이다. 필히 제거해야 할 힘이다.”
라구엘은 심검이 인간에게 주어져서는 안 되는 힘이라며 천칭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니….”
데루스가 라구엘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완성되지 않은 게 아니라, 일부러 조절한 거다.”
그는 글렌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콧잔등을 찌푸렸다.
“네 말대로 그 힘은 인과율에 어긋나 있어. 완성된 심검을 사용하여 초월을 넘어서면 이 대륙에 머물 수 없기에 스스로 한계를 세운 것이다.”
데루스는 이미 글렌의 경지가 초월을 벗어나 있다고 말하며 헛바람을 흘렸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어처구니가 없는 힘이지만….”
영혼의 상처는 육체의 상처처럼 누군가가 치료해 줄 수 없다.
오직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처와 통증을 줄여야 해야 하는데, 글렌의 검이 이전보다 더 깊게 들어가서 회복하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여러모로 규율에 어긋나 있는 인간이다. 이대로 놔두어서는 안 돼.”
라구엘은 글렌이라는 인간 자체를 죽이는 게 옳다며 눈썹을 내렸다. 평온했던 모습이 아니라, 지금처럼 화를 내는 게 그의 본성처럼 보였다.
“아니, 괜찮아.”
데루스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가 인간을 벗어날 정도로 강한 건 사실이지만, 덕분에 확실한 약점을 알았으니까.”
“약점이라면….”
쿠바라가 데루스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 영감. 이전에 느낀 것 이상으로 가족에 대한 정이 커졌다. 이건 확실하게 이용해 먹을 수 있는 비수가 될 거야.”
데루스가 손등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보며 키득거렸다. 그는 손등의 핏물을 혀로 핥으며 입술이 찢어진 듯이 길쭉한 미소를 그렸다.
“라온 지그하르트. 아니, 라온.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
*
*
“일단 진정하시고 다시 말씀해주세요.”
라온이 손을 올려서 흥분한 제이나를 가라앉혔다.
“오황에 문제가 생겼다는 게 어떤 뜻이죠? 오마가 습격을 해왔다는 겁니까?”
“후우….”
제이나가 숨을 내쉬면서 본인의 생각을 정리했다.
“무조건 문제가 생긴 건 아니고, 두 가지 상황 같아요. 흑탑의 차원에서 흘러나온 마기 때문에 통신망에 장애가 생겼거나, 오마가 오황을 습격하면서 통신을 차단했거나. 혹은 둘 다일 수도 있고.”
그녀는 어느 쪽이든 오마가 끼어든 건 분명한 것 같다며 눈썹을 내렸다.
“오마….”
라온이 아직도 마기가 흘러내리는 하늘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지금의 나는 큰 도움이 안 될 거야.’
현재 자신은 육체와 영혼의 힘을 끝까지 쥐어짜서 싸웠기에 기절하기 직전의 상태였다.
마왕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기에 다른 곳에 가서 싸우는 건 무리였다.
‘아니, 나만이 아니라 전부.’
광풍전, 중무전 그리고 오웬과 발카르, 슈페르 신성 왕국의 연합군 역시 모든 힘을 쏟아냈기에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통신이 끊겼으면 차원문도 이용할 수 없는 건가요?”
“네. 지금은 올 수도 갈 수도 없어요. 따로 이동마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체임버 님 정도가 아니면 장거리 이동은 불가능에 가까워서….”
“그렇군요.”
라온이 시선을 내리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자신이 아는 데루스 로베르트라면 이곳에 지원을 오기보다 오황을 치러 갈 가능성이 컸다.
여러 대비를 해놓기는 했지만, 이곳의 싸움이 험난했기에 다른 곳도 걱정이 되었다.
-뭘 망설이는 것이냐.
라스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매장 안에 있는 러스트와 글러트니를 가리켰다.
-저기 네놈이 구워삶은 호구가 있잖느냐! 쓸 때는 쓰라고!
‘어쩔 수 없이 또 부탁해야 하나.’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었다.
“후우.”
라온이 짧게 한숨을 내쉬고 아이스크림 매장으로 들어갔다.
“먼저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린 러스트와 철통을 씹어먹고 있는 글러트니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기는 뭘! 얼마든지 부탁해도 돼!”
“돈 때문이라니까….”
러스트와 글러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말하기에는 민망하지만, 부탁 하나만 더 해도 될까?”
라온이 두 사람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응! 뭐든!”
“아이스크림이나, 돈을 주면….”
러스트와 글러트니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일단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라온이 두 마왕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준비를 끝낸 후에 다시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줘.”
몸 상태가 괜찮은 이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서 아이스크림 매장을 나왔다.
쿠와아아앙!
임시 치료소로 이동을 하려고 할 때 중앙 분수대 쪽에서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뭐지?”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굉음이 터진 분수대 쪽으로 달려갔다.
고오오오오.
얼마나 거칠게 움직였는지 대지에서 하얀 먼지가 치솟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서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가, 가주님?”
지그하르트에 머물며 다른 곳의 습격을 대비하고 있어야 할 글렌이 망가진 분수대 위에 선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온….”
글렌이 자신을 보며 가슴이 막힌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굉장히 지친 듯한 눈빛을 가라앉히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네가 해냈을 줄 알았다. 그리고….”
글렌은 물기가 섞인 음성을 흘리며 떨리는 두 팔로 라온을 꼭 안아주었다.
“정말 다행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