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48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48화(948/965)
제948화
캬아아아앙!
라온이 카룬과 검을 부딪치며 무릎을 살짝 굽혔다. 언제,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자세를 취하며 눈매를 좁혔다.
‘역시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검술이야.’
카룬의 검술은 오케스트라를 보고 있는 것처럼 우아하면서도 장대한 기질을 담고 있었다.
귀족들이 예절 삼아 배우는 검무처럼 실전성이 떨어져 있었지만, 카룬이 초월에 오르며 그 부분이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되었다.
치이이이잉!
고풍스러운 비단을 풀어내는 것처럼 유려하게 떨어지는 검로 속에서 심장을 옥죄이는 듯한 날카로운 검극이 튀어나온다. 너무 날카로워서 제천검 자체가 잘려 나갈 것 같았다.
캬아아아아앙!
라온은 섬찟한 기파를 두른 채 떨어진 카룬의 검을 쳐내며 입술을 가늘게 씹었다.
‘지난 전쟁을 통해 성장한 건 나만이 아니었군.’
카룬은 끝없는 전투를 치르며 성장한 듯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검술을 펼쳐내고 있었다.
그의 무력을 전부 다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큰 착각이었다.
자신처럼 육체 능력과 오러가 대놓고 강해진 건 아니지만, 카룬 또한 정신적으로나, 무학적으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
‘재밌군.’
라온이 짧게 입맛을 다시며 용의 비늘처럼 제천검을 세웠다. 빨갛게 달아오른 검날 위로 세계수를 본뜬 듯한 거대한 나무가 솟아올랐다.
만화공 천화.
화령.
나무 위로 새빨간 불꽃이 깃든 수천 장의 꽃잎이 피어나 카룬을 휘감는 화염의 폭풍을 일으켰다.
‘여기서 더 들어가야 해.’
카룬이라면 화령의 불꽃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가르고 나올 수 있을 테니, 지금 강렬한 검술을 찔러넣어야 이 대련을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쿠웅!
라온이 진각을 밟으며 글래시아를 극성으로 운용했다. 차갑게 식어가는 검극 위로 은빛 구체가 돋아났다.
라온 지그하르트류 검식.
제2형 중천포.
서리가 응집된 구체가 강대한 폭발을 일으키려는 찰나 카룬이 화령으로 일으킨 폭풍을 가볍게 짓누르며 걸어 나왔다.
‘전력으로 펼쳐낸 화령을 이렇게 쉽게 깬다고?’
카룬이 화령을 빠져나갈 거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부술 줄은 몰랐다. 불꽃 자체를 찢어버리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검격이었다.
‘그래도 계속 가야 해.’
이미 제천검의 검극에는 강대한 오러가 응집되어 있었다. 카룬이 막을 수 있다고 해도 중천포를 터트려야 했다.
촤아아아악!
중천포를 폭발시키려고 할 때 카룬의 검이 짙푸른 선을 그려냈다. 그 선에 닿은 중천포의 기운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쿠와아아아앙!
중천포는 카룬의 앞이 아니라, 허공에서 폭발하며 연무장에 거대한 진동을 일으켰다.
‘중천포까지 이렇게 쉽게 베어낸다고?’
중천포를 이루는 은빛 구슬에 한 마을을 통째로 얼리고도 남을 정도의 냉기를 담았었다. 그 거대한 기운을 단숨에 갈라낸 카룬에게 헛웃음이 나왔다.
“내게 네게 대련을 신청한 이유는 두 가지다.”
카룬이 멈춰선 채로 손가락을 세웠다.
“첫 번째는 너를 알기 위해. 그리고 두 번째는 내 실력을 보이기 위해서.”
그는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는 듯 손을 저었다.
“네가 발전하듯이 나 또한 성장하고 있다.”
카룬은 전력으로 덤비라는 듯 검을 쥔 손을 까딱였다.
“하긴 알 거 다 아는 사이에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죠.”
라온이 입술을 말아 올리며 제천검과 진혼검을 갈라진 연무장에 박아넣었다.
검계현신 신마조화결.
연무장을 비추는 태양 위로 황금빛 태양이 겹쳐지고, 그 옆으로 은빛의 달이 고고하게 떠올랐다.
우우우우웅!
라온은 태양과 달을 깎아서 만든 신검과 마검을 잡고 턱을 치켜들었다.
“원하시는 대로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
*
*
쩌어어어어엉!
카룬은 불꽃으로 날을 세운 신검을 막아내며 눈썹을 구겼다.
‘다르군.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바뀐 것 같아.’
충분히 베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라온의 검격이 자신의 방어를 뚫고 거침없이 밀려 들어온다.
라온이 아니라, 자신보다 급이 높은 초월자를 상대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인정하자. 힘과 속도, 감각 그리고 오러의 양은 라온이 위야.’
라온의 육체는 환골탈태를 이룬 자신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강하면서도 민첩했다.
육체 능력과 오러만으로 싸운다면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
라온의 검술에 힘과 속도가 더해진 정도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만, 지금 그의 검은 한층 더 높은 묘리를 담아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부터가 라온 지그하르트의 진정한 검인 것 같았다.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지.’
라온의 진정한 무력을 이겨보고 싶었기에 대련을 신청했다. 오히려 저 정도가 아니라면 이쪽이 곤란했다.
쩌어어어엉!
카룬이 오러를 극성으로 끌어올리며 급류처럼 떨어지는 라온의 신검과 마검을 동시에 막아냈다.
쿠와아아아아!
모든 것을 태우는 불꽃과 모든 것을 베어내는 검격이 부딪치며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연무장이 거미줄 형태로 갈라지며 새까만 균열을 돋아났다.
찌지지지직!
라온과 카룬은 연무장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서로의 목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치아아아아앙!
푸른 검격이 타오르는 불길을 가라앉히고, 은빛 서리가 또 푸른 검격을 밀어낸다.
검격이 먹고 먹히는 싸움이 끝없이 이어졌다. 호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전투였다.
‘확실히 까다롭군.’
카룬이 급격하게 변하는 라온의 검로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저 만검이라는 건.’
라온의 검술은 속을 알 수 없는 바다처럼 끊임없이 그 색을 바꿨다.
언제는 빠르고, 언제는 느리며, 언제는 가볍고, 또 언제는 무거웠다. 그 모든 묘리를 하나의 검에 담을 때도 있어서 동시에 수십 명의 검사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다만….’
모든 검술이 완성되지는 않았어.
만검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검술 묘리를 익히는 검로. 당연하게도 라온이 익힌 검술 묘리가 전부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 부분을 노려야겠군.’
카룬은 신검과 마검이 일으키는 압력을 보법으로 풀어내며 검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파지지지직!
극쾌를 담은 채 떨어지던 라온의 검이 자신의 방어를 뚫으려는 듯 적색 뇌전을 피워냈다. 상대의 육체를 잠시나마 마비시키는 뇌검이었다.
‘지금!’
라온의 뇌검은 분명 위력적이었지만, 다른 검술만큼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 충분히 빈틈을 찌를 만했다.
쿠웅!
카룬이 대지를 부수며 나아갔다. 기습적으로 라온의 품으로 뛰어들며 날카롭게 세운 검을 찔러넣었다.
촤아아아악!
만물을 베어버린다는 창예검술의 절기를 운용하여 라온이 그어 내린 뇌검을 가르고, 그의 가슴을 향해 검극을 찔러넣었다.
“역시 오셨군요.”
라온이 입술을 말아 올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제 빈틈을 향해.”
카룬은 우아한 검술을 펼치는 것과 달리 야생동물처럼 아주 민감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설픈 함정이 아니라, 실제로 부족한 검로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함정이었나?’
카룬은 눈매를 찌푸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라온이 함정을 팠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몸이 기울어졌다. 지금은 들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우우우우웅!
좌측으로 튕겨 나간 라온의 신검 위로 장대한 기파와 번뜩이는 뇌기가 치솟았다. 창궁천뢰의 백영. 글렌에게 전수 받은 무학이 새롭게 날개를 펼쳤다.
쿠와아아아앙!
카룬이 그린 창예검과 라온이 일으킨 창궁천뢰가 격돌하며 푸른 광채와 붉은 뇌전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치이이이익!
카룬이 창궁천뢰의 강대한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그는 얼굴을 들어 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노리고 있었던 건가?”
“아뇨. 그저 중무전주님이라면 들어오실 거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라온은 카룬을 믿고 있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나오면 어쩔 수 없겠지.”
카룬이 라온과 비슷한 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아의 방에 들어가지 못해도 원망하지 말도록!”
그는 확실히 짓눌러주겠다고 말하며 라온에게 돌진했다.
쿠와아아아앙!
푸른 섬광과 붉은 화염이 연달아 부딪치며 연무장에 거대한 진동이 일었다.
아니, 연무장만이 아니라, 지그하르트 전체가 뒤흔들리고 있었다.
*
*
*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군….”
발데르는 빛과 불꽃, 냉기가 난무하는 연무장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초월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게 맞아?”
그는 갑자기 너무 큰 차이가 벌어졌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안 맞지.”
아리스가 정상적인 건 아니라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카룬은 그랜드 마스터의 극에 오른 이후 쌓아둔 경험들이 폭발해서 저렇게 강해진 거고, 라온은 너도 알다시피 재능의 격이 다르니까.”
그녀는 저 두 사람이 특이한 거라며 웃었다.
“강물 뒤편이 빠르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아리스는 본인이 누워 있는 동안 너무 많이 뒤처졌다며 혀를 찼다.
“아버지는 어떻게 보세요? 누가 이길 것 같아요?”
그녀가 연무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글렌에게 다가갔다.
“글쎄….”
글렌이 손바닥에 흐른 땀을 털어내며 눈매를 좁혔다.
“흑탑과의 전쟁을 치르기 전에는 확실히 카룬이 위였다만, 지금은 호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그는 라온과 카룬의 경지가 비슷해졌다며 입맛을 다셨다.
“거기다 저 둘은 이 대련을 통해서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지.”
카룬과 라온은 서로의 호흡을 읽으며 각자가 지닌 무학적 성취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라온이 조금 발전하면 카룬이 그걸 따라가고, 카룬의 검이 더 날카로워지면 라온의 검이 굳건하게 길을 막았다. 말 그대로 호각이었다.
“형님은 검계를 사용하지 않았잖아. 그거 쓰면 이길 것 같은데.”
발데르는 검계를 아낀 카룬의 승리를 점치며 입맛을 다셨다.
“라온도 이기어검을 사용하지 않았어. 거기다 저 검계는 한 번 사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야.”
아리스는 라온에게도 중요한 무기가 남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이 아니지.’
글렌은 발데르와 아리스의 말을 들으며 살짝 턱을 내렸다.
‘라온은 아직 가진 힘을 전부 사용하지 않았어.’
라온의 영혼 속에는 오직 그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잠들어 있었다.
그 기운을 끌어올린다면 카룬을 제압할 수 있겠지만, 그는 본인의 무력만으로 이 대련을 이겨낼 생각인 것 같았다.
‘보기 좋군.’
글렌은 살벌하게 검을 휘두르는 라온과 카룬을 살피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저런 모습은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들과 손자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대련을 벌이다니. 자식 농사에 실패한 자신은 절대 보지 못할 광경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여기서 이뤄질 줄은 몰랐다.
‘전부 네 덕분이다.’
글렌이 햇볕처럼 따스한 눈동자로 라온을 바라보았다.
‘고맙구나. 라온.’
*
*
*
치아아아앙!
라온이 신검으로 카룬을 밀어붙이며 가는 미소를 그렸다.
‘이제는 보이는군.’
긴 대련을 치르며 카룬의 검술을 눈과 몸으로 익혔다. 이제는 그의 예리한 검술에도 베이지 않을 만검의 흐름을 만들 수 있었다.
“후우….”
카룬이 거칠게 뒤로 밀려나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성장 속도는 따라갈 수가 없군. 힘과 속도에서 밀리는 건 덤이고.”
그는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라며 어금니를 씹었다.
“아직 여력이 있으시잖아요.”
라온이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너는 이기어검도 사용하지 않았잖느냐.”
카룬은 다 알고 있다고 말하며 턱을 까딱였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중무전주님이 더하죠. 아직 검계를 열지도 않으셨잖습니까.”
라온은 엄살은 그만 부리라고 말하며 카룬에게 신검을 겨눴다.
“후우….”
카룬이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리며 눈을 내리감았다가 떴다.
“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끝을 볼 때가 되었지.”
그는 여기서 승부를 보자며 서늘한 안광을 일으켰다.
“동감입니다.”
라온이 신검을 어깨 뒤로 젖히고, 마검을 허리 뒤편으로 기울였다. 또한 목륜검을 이기어검으로 띄우며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죽지 말거라.”
카룬이 두 손으로 잡은 검을 내리긋는다. 평범한 세로 베기처럼 보이지만, 그의 검에는 이 대륙을 부수고도 남을 듯한 거대한 기파가 어려 있었다.
“검계현신 제왕.”
카룬의 고요한 목소리가 세상을 바꾸는 축이 되며 그가 내리치는 검이 지평선을 갈라버린 듯이 웅대한 파동을 일으켰다.
‘검이 커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니, 정말 커지는 건가?
카룬의 얇디얇은 검이 점점 부풀더니, 어느새 이 대련장을 꽉 채울 만큼 거대해져 있었다.
몸이. 아니, 영혼이 카룬의 검에 짓눌리는 것 같았다.
‘제왕이라고 했었지.’
자신의 영혼과 육체 그리고 검술까지 모든 게 굽혀지는 듯한 기분이다. 제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힘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어.
라온이 입술을 꾹 내리누르며 카룬에게 나아갔다.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제왕의 검을 향해 신검과 마검에 남아 있는 기운을 모조리 폭발키셨다.
라온 지그하르트류 검식.
제6형 신마조화결 연계기 청홍무적검.
신검과 마검이 터질 것처럼 장대한 빛을 뿜어내며 거대한 검을 막아서는 두 줄기의 섬광이 그렸다.
‘여기서 하나 더!’
라온이 목륜검 위로 천뢰공의 뇌전과 가루누아의 바람을 담아냈다. 두 기운이 물을 뿌린 물감처럼 조화를 이루며 적색의 벼락을 일으켰다. 창궁천뢰의 절기 전황결이었다.
우우우우우!
신검과 마검이 세운 기둥 위로 벼락과 바람을 담아낸 검이 쏘아진다. 네 속성을 담아낸 만검이 천지를 부수는 제왕의 검과 격돌했다.
쿠와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힘이 경합하며 대지가 무너지고, 연무장 자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쨍쨍했던 하늘도 경악한 듯 새까맣게 굳어졌다.
찌지지지직!
라온은 청홍무적에 전황결을 쓰고도 밀어내지 못하는 카룬의 제왕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미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밀리는 것 같군.’
카룬의 검은 제왕이라는 이름답게 굳건하면서도, 웅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왜 이렇게 강한지 알겠군.’
카룬의 목표는 오직 하나, 지그하르트의 가주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제왕이라는 의념이 그의 검계를 통해 이 세상에 현현하고 있었다.
의념을 쌓아 올린 기간과 그 절실함이 달랐기에 그의 검계가 청홍무적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꺾일 수는 없어.
이 세상에 빈틈없는 검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점점 더 무게와 기운을 더해가는 카룬의 검계를 살피며 흔들리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저쪽에서 짓누른다면 이번에는 내가 베어주지.’
라온은 카룬이 자신에게 했듯이 청홍무적검과 전황결에 극한의 예검을 담아서 카룬의 제왕검을 향해 쏟아냈다.
찌지지지직!
끝없이 힘을 더해가는 카룬의 제왕과 공간조차 베어버릴 예기를 두른 라온의 검격들이 격돌하며 세상의 색이 바뀐다.
형형색색 찬란했던 연무장이 흑백으로 물들며 모든 것을 지울 듯한 거대한 힘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라온과 카룬이 그 섬뜩한 공간 속에서 끝까지 검을 그어 내리고 있을 때 갈라진 하늘 위에서 붉은 벼락이 떨어졌다.
쿠와아아아아아앙!
신룡을 보는 듯 거대한 벼락은 라온과 카룬이 만들어낸 기운을 집어삼켰다.
빠지지지직!
벼락이 지나가고 남은 것은 잔향처럼 퍼져 있는 붉은 뇌기뿐이었다.
“거기까지.”
글렌이 진천검을 들어 올린 채 카룬과 라온의 앞으로 나왔다.
“그대로 계속 싸웠다면 둘 다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연무장도 완전히 망가졌을 테고.”
그는 서로 얻을 것은 얻었으니, 여기서 멈추는 게 좋을 거라며 진천검을 검집에 넣었다.
“…알겠습니다.”
카룬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지만, 검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라온이 짧은 한숨을 내쉬고서 제천검과 진혼검, 목륜검을 검집에 넣었다.
‘역시나 쉽지 않군.’
-본왕의 <분노>를 함께 사용했다면 이길 수 있었을 텐데?
라스가 <분노>를 까먹었냐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내 힘만으로 싸워보고 싶었거든.’
라스의 말대로 마왕들의 권능을 운용했다면 처음부터 카룬을 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그하르트 검사끼리의 싸움이었기에 자신만의 힘으로 이기고 싶었다.
‘조금 아쉽네.’
마지막에 꺼져가는 청홍무적검이 아니라, 개벽을 사용했다면 카룬이 내리친 제왕의 검을 베어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걸 시험해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어쨌든 이제는 닿는군.’
전쟁 전에는 카룬이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마왕의 권능을 이용하지 않아도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아의 방에 다녀온 후 자신이 얼마나 달라질지 기대가 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라온이 먼저 카룬에게 고개를 숙였다.
“승부는 네가 자아의 방에서 나온 후 다시 겨뤄야 하겠군.”
카룬은 나중에 보자고 말하고서 머뭇거림 없이 연무장을 떠났다.
“덤덤한 척하기는! 깜짝 놀랐으면서!”
발데르는 잘했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진짜 많이도 달라졌다. 이거 참….”
아리스는 어떻게 거기까지 갔냐며 헛웃음을 흘렸다.
“운이 좋았어요.”
라온은 좋은 기회가 많았을 뿐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라온.”
글렌이 손을 털어내며 라온에게 다가갔다.
“네가 원하는 대로 자아의 방을 열어놓았다.”
그는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약속한 날 오도록 해라.”
“예.”
라온은 기대감이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가게 되는군.’
-결국 올 게 온 건가….
라스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눈시울을 붉혔다.
-빌어먹을 나딘빵!
*
*
*
“그럼 다녀올게요.”
라온이 정원에 나와 있는 실비아와 에드가, 시아, 올가 그리고 시녀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조심해.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실비아는 적당히 하고 나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이 욕심은 있어야지!”
에드가는 반대로 최대한 많은 것을 얻고 나오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녀와!”
시아는 며칠간 놀아주었기 때문인지 불만 없이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확실히 점점 성숙해지고 있었다.
“야. 빨리 다녀와. 혼자 있기 힘드니까.”
올가는 별관에 혼자 있는 게 어색하다며 눈동자를 돌렸다.
“아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시간 축이 다르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며 올가의 어깨를 탁 쳤다.
“그럼!”
라온은 모두에게 다시 인사를 해주고서 별관을 떠났다. 기대했던 자아의 방에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인지 신기할 정도로 몸이 가벼웠다.
-젠장….
반면 라스는 한동안 나딘빵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이를 갈고 있었다.
라온은 훌쩍이는 라스를 산책하기 싫어하는 강아지처럼 질질 끌고 가주전으로 들어갔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라온은 알현실의 중앙에 서서 글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시간보다 빨리 왔군. 참을 수 없었던 건가?”
글렌은 라온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가느다란 미소를 그렸다.
“예. 초월에 오르기 전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곳이라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라온은 지금도 심장이 좀 뛰는 것 같다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바로 들어가는 게 좋겠군.”
글렌은 시간을 끌 필요 없다고 말하며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예. 그럼….”
라온이 다시 알현실을 나가려고 할 때 글렌이 손을 들어 올렸다.
“나갈 필요 없다.”
글렌이 고개를 저은 채 손가락으로 알현실 바닥을 가리켰다.
“자아의 방은 이곳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