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50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50화(950/965)
제950화
‘이럴 수가 있나…?’
라온이 거울을 보며 손끝을 떨었다.
‘분명 평범한 거울이었는데?’
자아의 방에 들어온 이후 여러 가지 실험을 했었다. 불의 고리와 만화공을 운용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던 방에서 갑자기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스으으으으.
당황하여 표정이 굳어지는 자신과 달리 거울 속 라온은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다행히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아.’
외부에서 끼어든 건 아닌 듯 거울 속 자신은 친숙하면서도 따스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에엥? 저기 있는 통통한 솜사탕은 무엇이냐?
라스는 거울에 비친 본인을 가리키며 눈매를 찌푸렸다.
-참으로 추하게 생겼구나! 살만 디룩디룩 쪄서 볼품이 없느니라!
녀석은 본인의 외모를 폄하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저거 넌데?’
라온이 라스를 돌아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헛소리냐! 저딴 덩어리가 본왕일 수는… 크허헉!
라스는 거울에 비친 솜사탕이 본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빨이 튀어 나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렸다.
-왜, 왜 본왕이 거울에 비치는 것이냐! 그리고 왜 이렇게 못생겼는데!
‘넌 원래 그렇게 생겼어.’
처음부터 솜사탕이었다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절대 아니니라! 본왕은 마계 제일의 아름다움을 지녔단 말이다!
라스는 본인이 지니고 있던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자태가 사라졌다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신과 달리 라스는 현실의 행동이 그대로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은 지금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잔잔한 웃음을 흘리고만 있었다.
“뭐가 웃긴 거지?”
라온이 눈매를 찌푸리며 질문을 던지자, 주변이 어두워지며 방 자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낡은 벽이 사라지고 일렁거리는 어둠과 자신을 비추는 거울만이 남았다.
‘다가오라는 건가?’
남은 게 눈앞의 거울뿐이니, 이제는 다가가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
“후우.”
짧은 숨을 내쉬며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웃고 있는 거울 속 라온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스으으으으.
거울의 표면이 출렁이며 자신의 손을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꼭 개울에 손을 넣은 듯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빠, 빨려 들어가지 않느냐! 어서 나가거라!
라스는 거울을 벗어나라며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아니, 괜찮을 것 같아.’
거울 속 자신은 조금의 악의도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웃고만 있었다. 이 거울이 진정한 자아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것 같았다.
우우우우웅!
라온이 거울에 몸을 맡겼다. 손에서 팔 그리고 몸 전체가 빨려 들어가며 거울 속 자신과 겹쳐지는 순간.
“이제야 왔구나.”
웃고 있던 거울 속 라온의 입이 달싹였다.
“나의….”
*
*
*
“음….
라온이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떴다.
‘잠이 든 건가?’
손을 짚고 일어나면서 바닥을 보니, 그림자와 같은 검은 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강처럼 보이지만, 밑으로 빠지지는 않았다.
‘난 분명 거울 속으로 들어갔는데?’
마지막에 거울 속 자신이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지만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헌데 여기는 어디지?’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나?’
자신이 서 있는 땅은 검은 물길이 흐르고 있었고, 전방에는 거대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다만 바다의 색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은색의 바다?’
푸른 바다 위에 은빛 설원이 깔린 듯한 겨울의 바다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수평선이 일렁이는 것을 보니, 대해인 것 같았다.
‘그럼 뒤는?’
등에 닿는 열기를 느끼며 뒤를 돌자, 해변의 모래를 쌓아 올린 듯한 거대한 모래의 산이 보였다. 이쪽은 산이 너무 높아서 정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진정한 자아의 방인가?’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그 작은 방은 이곳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입구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딘빵이 필요 없다고 하신 거였어.’
글렌이 왜 나딘빵이 필요 없다고 했는지 이제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현실이 아닌 공간에 들어가니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잠깐….’
나딘빵 이야기를 꺼냈는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평소라면 나딘빵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발작부터 해야 할 솜사탕이 보이지 않았다.
‘라스?’
빠르게 시선을 돌리며 라스를 불러보았지만,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만 들어온 건가?’
한 사람당 한 번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니, 라스는 따라오지 못하고, 튕겨 나간 것 같았다.
‘조용해서 좋기는 한데….’
조금 아쉽기도 하군.
항상 라스와 함께 했기 때문인지 녀석의 잡소리가 없다는 게 조금 심심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수련에는 이게 낫겠지. 그런데….’
어디부터 가야 하나?
은빛의 바다와 모래로 쌓아 올린 금색의 산. 둘 다 그 끝이 보이지 않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양쪽 다 친숙한 기분이 들어서 더 고르기 힘들었다.
‘그럼 일단은….’
라온이 시선을 올리며 금색의 산을 바라보았다.
‘산부터 올라갈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바다보다 정상이 존재하는 산을 먼저 오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럼 빠르게… 어?’
라온이 태화보를 밟으며 산을 오르려고 하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오러가 없어….’
언제나 자신의 단전을 가득 채우고 있던 오러가 단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단전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는 거지?’
라온이 구름에 가려진 모래 산의 정상을 올려보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그런데 어쩌나? 이 정도로는 나를 막을 수가 없을 텐데.’
*
*
*
다리가 푹푹 빠진다. 이 금색의 산의 모든 것이 모래로 이루어진 것처럼 한 걸음을 오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평범한 모래가 아니야.’
오러가 사라졌다고 해도 익힌 보법의 묘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태화보의 흐름을 이용하고 있음에도 이 모래 지옥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걷는 것만으로 체력이 다 빠지는군.’
그저 모래 산을 오르고 있을 뿐인데,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처럼 체력이 쪽쪽 빨려 나갔다.
‘오러만 없는 게 아니라, 육체 능력도 대폭 줄어들었어.’
산을 오르며 확실히 느꼈다. 인간을 초월한 육체 능력도 평범한 성인 남자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경사가 있는 모래 언덕을 오르고 있을 뿐인데, 숨이 턱 막히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거기다 너무 더워….’
초월자이면서 화속성 저항력이 있는 자신은 열기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땀으로 옷이 젖을 정도로 더웠고, 뜨거운 모래 때문에 걸을 때마다 화상을 입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설마….”
라온이 산의 정상을 올려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특성까지 사라진 건가?’
앞으로 손을 뻗으며 상태창을 불러보았다.
‘나오지 않아.’
언제나 자신의 부름에 응답하던 상태창과 메시지들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심상의 세계에서도 나오는 메시지가 사라지다니….’
상태창과 보상 메시지는 심상의 세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영혼에 연결되어있는 상태창까지 끊어진 것을 보니, 이 자아의 방은 정말 특별한 공간인 것 같았다.
“지독하네.”
짜증이 어린 속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아의 방이. 아니, 그 거울 속 남자는 자신이 고생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좋아. 얼마든지 받아주지.’
근성에는 자신 있으니까.
암살자 라온으로 살던 시절에도, 라온 지그하르트가 된 지금도 자신보다 더 지독한 악바리는 본 적이 없다. 버티는 것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끝까지 올라가 주마.”
라온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털어내며 눈앞의 모래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위로 올라갈수록 각도 때문에 다리만으로는 오르기 힘들었지만, 양손으로 모래를 파헤치며 억지로 등반을 계속했다.
‘손이 불에 타는 것 같군.’
불에 달군 쇠사슬로 양손을 감싸고 있는 기분이다. 고통 때문에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참으며 계속 모래 산을 올랐다.
‘이런 기분을 느낀 게 얼마 만이지?’
강자와 싸우며 죽을 위기를 느낀 적은 많지만, 지금처럼 자연환경에 고통을 받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너무 날로 먹기는 했어.’
업적을 이루면 능력치가 오르고, 무언가를 행하면 시스템이 그에 맞는 특성을 만들어주었다. 자신이 노력을 했다고 해도 그 이상의 보상을 받으며 성장해왔기에 귀하게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헌데 왜 오러와 특성을 지웠을까?’
자아의 방이 왜 자신의 능력을 빼앗아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각을 해보자, 이 상태의 내게 남은 건….’
정신력과 검술뿐인가?
육체 능력, 체력, 오러 그리고 상태창. 많은 것들이 사라졌지만, 자신이 계속해서 쌓아온 검술과 정신력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럼 몸이 아니라, 머리로 검술을 연마해볼까?’
생각해보니, 몸으로는 매일 같이 검을 휘둘렀지만, 머릿속으로 검을 휘두른 지는 꽤 오래 지난 것 같았다.
‘한번 해보자.’
지금의 검이 아니라, 더 성장했을 때의 미래를 그리며 그에 걸맞은 검술들을 떠올렸다.
후우우우욱!
화령의 붉은 꽃잎이 세계수의 이파리처럼 펼쳐지고, 회천의 불꽃이 태양 같은 궤적을 그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서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잠깐….’
검술을 생각하니, 열기의 고통이 줄어들었는데?
힘들다는 단어만 떠오르는 뇌리를 검술을 채우자, 뙤약볕의 열기와 달궈진 모래의 고통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게 정답이었군.’
라온이 입술을 살짝 말아 올렸다. 그는 본인의 검으로 이 모래 산을 베어버리겠다는 상상을 그리며 아주 천천히 다음 걸음을 내디뎠다.
*
*
*
‘그러네. 거기서는 광아검이 더 좋았겠어.’
머리로 검을 그리다 보니, 이제는 아쉬웠던 과거의 전투까지 떠올랐다. 나름 잘 싸웠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실수투성이였다.
‘너무 힘에만 의지했나.’
모든 검술 묘리를 다루는 만검을 익혀놓고, 힘에 의존하는 싸움만 벌였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자신의 강점을 살리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너무 한쪽에만 쏠려 있었던 것 같았다.
‘검술 자체도 문제야.’
무엇 하나 완성하지 못한 주제에 검술 개수만 늘렸어.
여러 가지 검술 묘리를 상당한 성취까지 익혔지만, 끝을 본 것은 없다. 자신이 만들어낸 검술조차 완성하지 못한 주제에 검술의 숫자만 늘린 게 후회가 되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하나의 보법 그리고 하나의 검술. 그저 발을 내디디고 검을 휘두르기만 해도 즐거웠던 훈련생 시절을 떠올리며 머릿속에서 익힌 검술을 하나씩 그려냈다.
이제는 태양의 열기도, 모래가 주는 고통도, 체력이 달리는 어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진정한 검을 벼리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라온은 스스로의 한계를 부술 수 있는 검술을 그리며 끝없이 모래의 산을 올랐다. 영혼 속에 새겨진 만검의 묘리들이 벽을 부수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할 때 자신의 발이 딱딱한 땅에 닿았다.
“음?”
검만을 그리던 눈앞으로 금색 모래가 아닌 하얀 평지가 보였다.
“다 오른 건가?”
모래는 보이지 않았고, 하얗게 굳은 땅만이 이어져 있었다. 결국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산의 정상에 오른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군.’
뒤를 돌아서 자신이 올라간 길을 되돌아보았다. 하얀 구름 때문에 땅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오러도, 능력치도, 특성도 없이 이 산의 정상에 올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저쪽이 길인가?’
산의 정상에서 이어지는 길은 연한 금빛을 띤 계단뿐이었다.
탁한 숨을 내뱉고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꽤 긴 계단을 오르자, 원형의 단상 위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저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키가 큰 금발의 남자였다. 허리춤에는 불꽃 매듭이 새겨진 검을 착용하고 있었고, 검은 코트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설마….”
라온이 대련장으로 올라가며 눈매를 좁힐 때 금발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붉은 눈과 태양을 녹인 듯한 찬란한 금발. 단상 위의 남자는 거울을 비춘 듯이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조금 달라.’
눈앞의 남자는 자아의 방에서 본 거울과 달리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였고, 훨씬 거친 삶을 살아온 듯 숨결 자체에 전장의 투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제 알겠군. 저 남자가 누구인지.’
지그하르트의 초대 가주.
정면을 본 적은 드물지만, 뒷모습을 자주 보았기에 알 수 있다. 단상 위에서 거센 투기를 뿜어내는 저 금발적안의 남자는 지그하르트를 세운 초대 가주가 분명했다.
“…….”
초대 가주는 말 한마디 없이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소리 없이 뽑힌 은빛 검날 위로 스스로를 최강이라 여기는 패도적인 기파가 피어났다.
“힘을 다 빼놓고 대련을 하자는 건 너무 치사하네요.”
라온이 제천검의 검병에 손을 얹으며 가느다란 미소를 그렸다. 여전히 오러는 없었고, 체력은 바닥에, 고통이 다 사라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꿈속에서 보았던 저 남자와 싸울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기대감 어린 웃음이 흘러나왔다.
“한 수 배워가겠습니다.”
라온이 떨리는 손길로 제천검을 뽑았다. 시리도록 번뜩이는 은빛 칼날을 세워 구시대의 절대자를 겨눴다.
“천 년 전의 최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