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51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51화(951/965)
제951화
고오오오오!
무저갱을 녹여낸 듯한 어둠에서 푸른 마왕이 일어섰다.
아름다우면서도, 공포스럽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면서도, 새까만 어둠이 깃든 이질적인 존재였다.
라스. 분노의 군주라 불리는 마계의 절대자가 잃어버린 육체 속에서 푸른 눈동자를 번뜩였다.
“여기는….”
라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그 거울 속인가?”
라온이 특이한 거울 안으로 들어간 부분까지는 생각나지만, 그 이후의 일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본왕의 몸이로군.”
라스가 피아노를 치듯이 가늘고 긴 손가락을 까딱이며 짧게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래! 이 아름다운 모습이 본왕의 진짜 몸이라고! 그런 솜사탕 따위는… 음?”
푸른 솜사탕은 절대 본왕의 본모습이 아니라고 외치려고 할 때 손끝에서 아주 작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쯧.
라스가 짧게 혀를 찼다.
‘아쉽게도 이곳은 현실이 아니로군.’
자신은 긴 시간 동안 영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본래의 육체에 돌아간다고 해도 조금의 적응 시간은 필요한데, 지금처럼 몸이 바로 반응하는 걸 보면 이곳은 누군가가 만든 심상의 세계 같았다.
‘어떻게 이런 곳을 만든 거지?’
자아의 방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듣고 비웃었는데, 직접 들어와 보니 그 이상이다. 어떻게 이런 현실감 넘치는 세계를 그 작은 거울 속에 구현했는지 모르겠다.
‘그 초대 가주라는 놈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것 같군.’
아무리 초월자라고 해도 평범한 인간이 마왕의 영혼을 버틸 수 있는 심상을 만들 수는 없다. 그것도 마룡 때문에 혼잡했던 천 년 전에.
‘라온 놈이 괜히 그런 정신력은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군.’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라온 놈의 집안은 선조부터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라온 놈은 어디에 있지?’
기감을 펼쳐보았지만, 라온의 기척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라온 대신 희미하게 보이는 금빛의 산에서 아주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너무 멀어서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도 밀리지 않는 괴물인 것 같았다.
‘저곳으로 가볼까? 아니….’
저 산은 본왕이 걸어야 할 길이 아닌 것 같군.
마계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강한 무력이 느껴졌지만, 저자를 만나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본왕의 영혼이 끌리는 곳은….’
라스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검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 바다.’
자신의 운명이 느껴지는 장소는 뒤편의 산이 아니라, 눈 앞에 펼쳐진 흑빛의 바다였다.
‘아마 저 산은 라온 놈의 길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산 위에 있는 존재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다만….’
무언가가 많이 비틀려 있군.
자신이 느끼기에 이 세계는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나의 영혼이 딱 한 번에 한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고 했었지.’
본왕이 라온 놈과 함께 들어가면서 무언가가 꼬여버린 건가?
“뭐가 어찌 됐든….”
라스가 검은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발을 내디뎠다.
“지금은 나아가는 게 정답이겠지.”
자신의 발이 바다에 닿은 순간 흑색의 물이 정화되듯 서릿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음.”
라스가 검은 바다를 바꾸는 본인의 발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이 고통은….’
검은 바다에 닿은 발 안쪽으로 칼을 쑤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또 적응을 하라는 건가? 재미있군.”
라스는 고통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더 넓은 보폭으로 검은 바다를 나아갔다.
살을 톱으로 써는 듯한 통증을 웃음으로 견디면서 검은 바다를 자신만의 색으로 바꾸었다.
“네놈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푸른 빛으로 물들어가는 바다에 서서 점점 희미해지는 금빛의 산을 돌아보았다.
“끝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라스는 신뢰가 어린 웃음을 그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나아갔다.
*
*
*
후우우욱.
라온이 단전에 차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느끼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오러가 돌아왔어.’
많은 양은 아니다. 기본적인 검술을 펼쳐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오러 정도만 회복되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검술만으로 상대하라는 뜻이로군.’
현실에 가지고 있는 장대한 오러와 인간을 초월한 육체 능력이 아닌, 검술만으로 초대 가주를 상대하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내가 원하던 일이군.’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이미 가지고 있는 힘으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더 강해지기 위해서 자아의 방에 들어왔으니, 검술만으로 초대 가주를 상대하는 건 자신이 바라던 일이었다.
‘다행히….’
라온이 초대 가주의 검 위로 타오르는 열기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쪽도 강한 오러를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군.’
초대 가주의 오러를 보니, 그 역시 힘이나, 육체 능력으로 밀어붙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초대 가주는 어떤 검술을 사용할까?’
자신이 예상하기로 불의 고리와 만화공은 초대 가주가 직접 만든 무학이다.
최상승이라는 표현으로도 한참 부족한 무학을 만든 검사가 어떤 방식으로 검을 휘두를지 궁금해졌다.
스으으으으!
초대 가주가 머리 위로 들어 올린 검을 내리긋는다. 그의 검날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호선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만화공 회천?’
초대 가주의 첫 번째 검술은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만화공의 검술이었다.
‘헌데….’
라온이 초대 가주의 회천을 보며 눈썹을 내렸다.
‘딱히 특별하지는 않군.’
만화공의 창시자가 펼치는 검술이라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특별한 강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같은 회천으로 막아볼까?’
평소라면 다른 검술로 파훼를 했겠지만, 초대 가주의 회천이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기에 같은 기술로 상대해보고 싶었다.
우우우웅!
라온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만검의 묘리를 가득 담은 채 만화공 회천을 그어 내렸다.
‘이러다가 처음부터 이기는 거 아니야?’
무학서의 내용을 그대로 꺼내 온 듯한 초대 가주의 회천과 달리 자신의 회천은 아지랑이가 피어날 정도로 강대한 화력을 뿜어냈다. 시작부터 승리를 할 것 같은 기대감에 자신도 모르게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쩌어어어어어엉!
자신의 회천과 초대 가주의 회천이 정면에서 부딪치며 사방으로 자욱한 열기가 퍼져나갔다.
‘밀어낸다!’
검에 담긴 오러는 동일했지만, 그 열기를 다루는 묘리는 자신이 훨씬 많았다.
초대 가주의 검격을 뚫어버릴 각오로 회천을 더 강하게 내리쳤다.
‘이대로 밀어붙이면… 어?’
뭐지? 왜 내가 밀리는 거지?
자신의 회천에 담긴 검술 묘리가 더 많았는데, 어이가 없게도 초대 가주의 검격이 더 강한 힘으로 밀고 들어왔다.
캬아아앙!
라온이 초대 가주의 사나운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후우우우욱!
초대 가주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듯 어깨를 살짝 돌리며 회천을 극쾌를 담은 검격으로 변화시켰다.
‘적섬….’
적섬은 빠르면서도, 예리하게 적을 정확히 베는 검술이다. 가장 많이 펼친 만화공의 검술이 적섬이었기에 이번에는 자신 있었다.
쿠웅!
왼발로 진각을 밟았다. 상체를 기울이며 초대 가주의 적섬을 향해 자신만의 적섬을 내리쳤다.
화아아아아악!
라온은 적섬의 기본 묘리에 적을 짓밟아버리는 중검과 열기를 강화하는 풍검을 담아냈다.
후우우우욱!
묵직한 바람을 두른 채 떨어지는 적섬이 용암처럼 솟아오르는 초대 가주의 적섬과 격돌했다.
쩌어어어어엉!
검과 검 사이로 강대한 마나의 파동이 번지며 시뻘건 불길이 천지로 뿜어져 나왔다.
‘이건 또 뭐야….’
라온은 자신의 적섬을 지워버리며 치솟는 초대 가주의 적섬을 보며 어금니를 씹었다.
‘왜 이렇게 강한 거지?’
중검과 풍검의 묘리를 추가로 담은 자신이 적섬이 이렇게 허무하게 밀릴 줄은 몰랐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캬아아아앙!
결국 자신은 초대 가주의 적섬에 밀려나 제천검으로 바닥을 긁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치이이이잉!
초대 가주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별다른 반응 없이 자신을 향해 검을 뻗었다.
화아아아아아!
그의 검날 위로 작은 나뭇가지가 떠오르며 금색 꽃잎을 피워냈다. 만화공 화령이었다.
‘여기서 끊어야 해.’
회천, 적섬 그리고 화령은 자신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만화공의 기본기다.
회천, 적섬에 이어서 화령까지 밀릴 수는 없었다.
‘확실한 화령으로.’
라온이 밀려오는 초대 가주의 화령을 향해 제천검을 내질렀다.
화아아아아아!
새하얀 검신 위로 작은 나무가 피어나 수많은 화염의 꽃잎을 일으켰다.
환검과 변검, 유검의 묘리를 지닌 화령에 예검과 폭검을 담아내어 날카롭고 위력적인 검술을 만들어냈다.
후우우우우욱!
초대 가주의 화령과 자신의 화령이 격돌한다. 자신이 일으킨 불꽃 조각들이 두 배가량 많았기에 이번에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기대는 또 무너져내렸다.
쿠구구구구구!
초대 가주의 화령이 자신의 불꽃을 잡아먹으며 쇄도해오고 있었다.
‘어떻게….’
불꽃 조각이 두 배는 많았고, 예리함과 폭발력까지 담았는데 밀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촤아아아아!
초대 가주의 불꽃은 자신의 화령을 모조리 먹어 치운 뒤 화염 폭풍이 되어 짓쳐 들었다.
치이이이익!
피하고 싶었지만, 육체의 반응이 느려져서 전부 흘려낼 수는 없었다. 팔이 검게 그을리며 피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후우우욱.
초대 가주는 아직 멀었다는 듯 곧바로 만화공 염풍의 자세를 취했다.
“하….”
라온이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계속 이런 식이라는 거지?’
아무래도 초대 가주의 검술이 꺾여야 이 싸움이 끝나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데?’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강해지기 위해서다. 계속 반복 수련을 시켜준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포기하고 싶으시면 먼저 말씀하십시오.”
라온이 초대 가주를 향해 나아가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저는 죽어서도 멈출 생각이 없으니까.”
*
*
*
트드드드득!
라온이 대련장에 무거운 족적을 새기며 뒤로 밀려났다.
‘무엇 하나 이길 수가 없군.’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초대 가주와 검을 부딪쳤지만, 단 한 번의 승리도 이루지 못했다.
‘무학의 경지나, 오러의 양 때문에 지는 게 아니야.’
초대 가주는 현재 자신에 맞는 수준의 검술을 펼치고 있었다. 힘이나 경지에서 밀리는 게 아니었기에 계속 지는 게 당황스러웠다.
‘내가 왜 지는 걸까?’
똑같은 검술을 더 강하게 성장시켰는데, 초대 가주의 검을 뚫지 못하는 게 당황스러웠다.
‘무슨 차이가 나는 거지?’
답답했지만, 초대 가주는 아무런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평온한 눈빛으로 다음 검술을 준비할 뿐이었다.
‘낙일인가.’
이번에 초대 가주가 펼치는 검술은 낙일이다. 저녁 해가 떨어지듯 뚝 하고 내려오는 검격.
초대 가주와 같은 낙일을 펼치며 그 안에 중검의 묘리와 쾌검의 묘리를 담아냈다.
쩌어어어어엉!
라온은 초대 가주와 검을 부딪치자마자, 거칠게 뒤로 튕겨 나갔다.
‘스무 번째. 아니 그 이상인가?’
낙일로 밀린 것만 세도 벌써 스무 번이 넘은 것 같았다. 초대 가주가 마음만 먹었다면 이미 자신은 죽었을 것 같았다.
‘다음은 적섬….’
라온이 적섬을 내리치려는 초대 가주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그 어떤 조합을 이뤄도 막지를 못했어.’
초대 가주와 적섬을 부딪친 숫자는 낙일보다도 훨씬 많다. 이제는 검술 묘리의 조합도 전부 사용한 것 같았다.
‘어떻게 해도 방법이 없다면….’
따라 해볼까?
초대 가주를 막기 어려우니, 일단 그를 따라 해서 움직임을 파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우우우우우웅!
불의 고리를 극성으로 공명시키며 본래 적섬이 지닌 묘리만을 극대화했다.
치이이이이잉!
초대 가주와 자신의 적섬이 갈라진 연무장의 중심에서 격돌하자, 모래 산이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렸다.
“어…?”
라온이 초대 가주의 적섬과 호각으로 경합하는 제천검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뭐지?’
왜 밀리지 않는 거지?
다른 묘리를 마구 담을 때와 달리 자신의 적섬은 초대 가주의 검격에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꽉 채울 때는 안 되고, 평범하게 펼칠 때는 되는… 아!’
라온이 검극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꽉 채우는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었어.’
만검을 익히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검술에 모든 묘리를 담을 수는 없다.
검술마다 묘리를 담을 수 있는 무학적 묘리의 총량이 존재할 텐데, 자신은 매번 너무 과한 무리를 써버린 것 같았다.
‘그릇이 넘친 거야.’
손바닥 크기의 접시에 피자 한 판을 남아냈으니, 옆으로 흘러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도 무조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지 않으셨지.’
글렌은 창궁검에 천뢰공을 담을 수 있으면서 창궁천뢰라는 검술을 새로 만들었다.
각기 검술마다 다른 색을 지니고 있으니, 한 번에 너무 많은 묘리를 담아서 검술의 고유한 색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분명했다.
후우우우웅!
초대 가주가 회천을 일으킨다. 그의 검날 위로 타오르는 불꽃이 물레바퀴처럼 회전하며 자신의 목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도 해보자.’
라온은 초대 가주의 회천을 따라서 회전력과 속도, 강함만을 담은 회천을 일으켰다.
쿠와아아아아앙!
강맹하게 회전하는 검과 검 사이의 불꽃이 사납게 경합하며 연무장의 모래를 달궜다.
‘역시….’
라온은 초대 가주의 회천에 밀리지 않는 본인의 검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맞았어.’
자신은 이미 완성에 가까운 검술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서 오히려 그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광아검이나, 설풍검결처럼 빈 곳이 많은 감각검은 많은 묘리를 담아도 괜찮지만, 완성된 검술에 너무 많은 것을 넣으면 오히려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
처음으로 초대 가주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그려졌다. 그가 그게 정답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금빛으로 가득 찬 모래 산이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