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52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52화(952/965)
제952화
후우우우욱.
라온은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검은 안개를 살피며 제천검을 쥐고 있는 손을 내렸다.
‘나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
새까만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도 초대 가주의 안배인 것 같았다.
‘그럼 첫 번째 시험은 통과했다는 뜻이겠지.’
초대 가주는 대련을 하면서 무표정으로 만화공의 검술을 반복해서 펼치기만 했다.
기계처럼 움직이던 사람이 잘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으니, 그의 첫 번째 시험을 합격한 건 확실해 보였다.
‘그래. 그동안 너무 만검에만 몰입했던 것 같아.’
만검은 분명 세상의 모든 검사를 발아래에 둘 수 있는 최상위 수련 방식이다. 하지만 만검을 펼친다고 해서 자신이 무적이 되는 건 아니었다.
‘만검을 검술이라는 요리의 재료 중 하나로만 생각했어야 하는데, 나는 요리 자체를 만검으로 만든 거야.’
검술마다 그 창시자가 정한 레시피가 있다. 새로운 재료를 약간만 넣는다면 특별한 맛을 낼 수 있겠지만, 다른 재료를 대량으로 넣는다면 아예 요리 자체가 바뀌게 되어 버린다.
‘할아버지라면 모를까. 아직 내게는 무리였어.’
자신은 진정한 만검을 수련해왔다는 자만심에 이미 완성된 검술에 대량의 묘리를 추가하여 본래 검술이 가지고 있던 색을 더럽혔다. 무학의 위력과 흐름을 모두 지워버리는 멍청한 짓이었다.
초대 가주는 자신의 그 아둔한 생각에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첫 번째 시험을 준비해둔 것 같았다.
‘초대 가주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배울 수 없었을 거야.’
세상천지에 만화공의 검술을 익힌 사람은 자신뿐이다. 초대 가주는 같은 검술을 익힌 무인답게 글렌도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버릇을 고치는데 최소 몇 달은 걸렸을 것이다.
‘헌데….’
라온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한 검은 안개를 보며 눈매를 실처럼 가늘게 좁혔다.
‘다음 시험은 뭐지?’
자신이 느끼기로 초대 가주의 시험은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분명 다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직관적인 시험이었으면 좋겠는데?’
다음 시험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시선을 위로 올릴 때 코끝으로 새까만 탄내와 음습한 혈향이 스며들었다.
후우우우우욱!
라온이 자욱한 피 냄새에 눈매를 찌푸리자마자, 무대의 장막을 걷듯이 검은 안개가 사그라들었다.
‘뭐야 이건….’
왕국으로 보이는 거대한 도시 전체가 새빨간 화마에 휩싸여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기를 잃은 채 불길에 잡아먹혔고, 그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강이 되어 대로를 적셨다.
‘전쟁터? 아니야. 이 상황은….’
학살이다.
왕국의 국민들은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한 듯 죽어서도 감지 못한 눈동자 위로 꺼뭇한 공포를 띄우고 있었다. 도망칠 새도 없이 일방적으로 죽어 나간 게 확실했다.
‘이렇게 거대한 왕국을 일방적으로 멸망시킬 수가 있나?’
죽은 사람들 중에 그랜드 마스터급 무인과 마법사들도 있는데, 이렇게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는 게 당혹스러워서 등골 사이로 소름이 돋아올랐다.
‘천 년 전의 시대….’
자신이 알기로 이런 왕국은 존재하지 않고, 이런 전쟁 또한 알지 못한다. 이건 초대 가주의 기억에 남아 있는 천 년 전의 전쟁인 것 같았다.
‘공격을 해온 건 저놈들인가?’
왕도의 건물을 부수고, 인간을 찢어버리는 몬스터들이 보인다. 오크나 트롤, 오우거처럼 자주 볼 수 있는 놈들도 보였지만, 자신이 아는 놈들과는 무언가가 달랐다.
‘투기? 투기를 쓴다고?’
투기란 몬스터가 사용하는 오러다.
왕으로 태어나거나,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나거나, 오래 산 몬스터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힘이 바로 투기인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투기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천 년 전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았기에 역사학자들은 그 당시 인간들의 무력이 약했기에 몬스터와 마룡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제 상황을 보니, 인간이 약한 게 아니라, 몬스터가 강했다.
숙련된 병사도 고블린과 코볼트 같은 최하위 몬스터조차 상대하기 쉽지 않았고,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들은 오크의 투기에 밀려서 갑옷째로 몸통이 잘려나갔다.
‘이게 마룡의 시대인가….’
너무도 오래된 일이었고, 기록도 거의 남지 않았기에 현세에는 마룡을 무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그들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에덴이 이 시대로 돌아가려는 이유를 알 것 같군.’
에덴 자체로도 누구보다 강한데, 왜 이 시절을 그리워하나 의문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럴 이유가 있었다. 몬스터들의 수준 자체가 아예 격이 달랐다.
‘잠깐….’
몬스터만 있는 건 아니야.
자세히 보니, 피를 뒤집어쓴 몬스터들 사이에 검은 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끼어 있었다. 저들이 몬스터들을 통제하여 전략적으로 왕국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지럽군.’
갑자기 천 년 전 전쟁터에 왔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텐데….’
지금 자신은 영체 상태의 라스처럼 이 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특히 이미 지나간 과거였기에 육체가 있다고 해도 이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초대 가주가 왜 자신을 이 전쟁터로 보낸 건지 모르겠다.
‘싸움을 지켜보라는 건가?’
라온이 입맛을 다시며 왕국 안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우측 전신에 화상을 입은 남자가 달려왔다. 뜨거운 것을 계속 만지고 있었는지 손등과 손아귀가 물집투성이였다.
“거, 검사님! 살려주십시오!”
그는 자신을 향해 뛰며 제발 구해달라고 외쳤다.
‘누구한테 말하는… 어? 내가 보이는 건가?’
혹시나 하여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저 화상을 입은 남자는 자신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제발!”
화상을 입은 남자가 무릎을 꿇은 순간 자신의 영체가 육체가 되어 이 지옥 같은 전쟁터에 현현했다.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감각이 사라지고, 땅을 딛고 있는 발의 묵직함이 느껴졌다.
“저 안에 제 아내와 아이들이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화상을 입은 남자가 불에 타오르고 있는 작은 집을 가리켰다. 옆 건물들이 무너지며 창문과 문이 전부 막혀버려서 안에 있는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
‘저래서 화상을 입은 건가.’
남자는 물집 잡힌 손을 들어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아내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불에 뛰어들었기에 저런 화상을 입은 게 분명해 보였다.
“…기다리세요.”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무너져가는 건물로 달려갔다. 불타는 벽을 뜯어내고 안을 보자, 열기와 연기에 질식한 듯한 두 아이와 중년 여성이 보였다.
‘아직 늦지는 않았군.’
다행히 세 사람의 호흡은 남아 있었다. 오러로 내부에 찬 독기를 빼준 후 화상을 입은 남자에게 데려다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
화상을 입은 남자는 감사하다고 외치며 머리를 땅에 박았다. 그리곤 힘이 다했는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멀리 도망치세요.”
라온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도망치라고 손짓을 해주었다.
‘아마 소용없겠지만….’
이 세계는 이미 지나간 과거다. 여기서는 자신이 저들을 구했지만, 실제 시간대에서는 아마 건물이 무너져서 저들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기분이 더럽군.’
라온이 씁쓸함에 혀를 씹고 있을 때 허공에서 보라색 로브를 입은 여성이 내려섰다.
“여기에 있었어? 하여튼 언제나 똑같다니까.”
여성은 자신이 구한 사람들을 보며 가는 웃음을 그렸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 사람은….’
처음 보는 여자가 아니다. 해저 동굴 그리고 성검련에서 보았던 초대 가주의 동료 마법사가 분명했다. 예상했던 대로 이 기억은 초대 가주의 것이었다.
“놈을 찾았어. 가자.”
보라색 로브의 여성은 따라오라고 말하며 반파된 왕궁 쪽으로 날아갔다.
‘음….’
라온이 보라색 로브의 여성을 쫓아가며 눈썹을 살짝 내렸다.
‘나를 초대 가주로 알고 있는 건가?’
보라색 로브를 입은 여성의 반응을 보니, 자신은 초대 가주의 육체를 통해서 이 세계에 현현한 것 같았다.
‘그러면….’
뒤를 돌아보았다. 기절했던 아내와 아이들을 깨워서 도망치는 남자를 보며 가는 웃음을 그렸다.
‘초대 가주도 저 사람들을 구했다는 뜻이겠군.’
아무래도 자신과 초대 가주는 꽤나 비슷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투우웅.
라온은 작은 안도를 느끼며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리는 왕성으로 들어갔다.
고오오오오!
왕성 내부도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기사와 병사들이 내부로 침입한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왕성에 있는 기사들의 실력은 뛰어났지만, 투기를 사용하는 몬스터가 너무 많다보니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안 돼. 지금은 잔챙이를 상대할 때가 아니야.”
보라색 로브의 여성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여유가 없다고 외치며 빨리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아무래도 저 알현실에 내가 싸워야 할 존재가 있는 것 같군.’
라온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마법사를 따라 왕실 내부로 들어갔다.
쿠구구구구구!
왕의 찬양하기 위해서 높게 세운 알현실의 천장은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박살 났고, 기사들의 신의를 뜻하는 금색 기둥은 마른 낙엽처럼 바스러진 채 무너져 있었다.
고오오오오!
붉은 카펫보다도 짙은 핏물 속에서 근위기사 대장으로 보이는 초월자가 죽어 있었고, 이 나라의 왕으로 보이는 중년인은 톱날 형태의 검에 찍힌 채 바닥을 기고 있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왔느냐….”
왕은 자신을 보며 옅은 웃음을 흘렸다.
“나는 괜찮으니, 다른 이들을 구해다오….”
그는 본인은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사람을 구해달라며 피에 젖은 손을 흔들었다.
‘저 사람….’
무인이 아니야.
저 왕으로 보이는 중년인은 단 한 방울의 오러도 지니지 않은 사람이다. 고통에 내성도 없을 사람이 저런 상처를 입고도 웃는다는 게 놀라웠다.
저 왕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이 왕국에 대한 감정도 없지만, 이런 지옥도를 만들어낸 놈들에게 혐오가 차올랐다.
“네 짓인가.”
라온이 우측으로 시선을 돌려 피에 젖은 옥좌를 바라보았다. 잘려나간 옥좌 위에 거만하게 앉아 있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이….’
그의 오른쪽 눈은 평범한 흑안이었지만, 왼쪽 눈은 눈동자의 흑백이 뒤바뀌어 있었다.
‘아니마….’
도검존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고, 초대 가주의 기억에 나왔던 적. 흑과 백이 뒤집힌 눈을 가진 괴인 아니마였다. 놈에게서 굉장히 위험한 냄새가 났다.
“놈의 수하 파렐이야. 더 물들기 전에 여기서 죽여야 해.”
보라색 로브의 여자는 저 아니마를 지금 죽여야 한다며 입술을 씹었다.
“놈은 누구… 어?”
라온이 보라색 로브의 마법사에게 질문을 하려고 하는데, 그녀는 석상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이 여자만이 아니다. 국왕의 상처에서 흐르던 피도 멈췄고, 밖에서 들려오든 비명과 파공음도 가라앉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저벅.
다만 파렐이라 불린 한쪽 눈의 아니마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듯 자연스럽게 걸어서 단상을 내려왔다.
‘이제 알겠군.’
라온이 파렐을 보며 짧게 입맛을 다셨다.
‘저놈을 꺾는 게 두 번째 시험이야.’
시간을 멈춰버린 것을 보니 지금까지는 과거를 보여준 것뿐이고, 저 파렐이라는 놈을 꺾는 게 두 번째 시험인 것 같았다.
“네놈들이로군.”
파렐이 가는 웃음을 그리며 국왕의 몸에 박혀 있는 톱날검을 뽑았다.
“더 이상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확실히 죽여주마.”
그는 섬찟한 미소를 그리며 땅을 박찼다.
후우우우웅!
사나운 바람이 느껴지기도 전에 먼저 파렐의 톱날검이 자신의 목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빨라.’
찰나의 순간에 들어오는 공세. 태화보의 최고 속도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쩌어어어어엉!
라온이 적섬을 그어내려 아니마가 내리치는 검을 쳐냈다.
‘밀린다고?’
자신의 육체 능력이 돌아왔는데도, 힘에서 밀리다니, 저 파렐이라는 놈은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아니마라는 놈들 자체가 인간이 아닌 건가?’
저 소름 끼치는 눈만 보아도 느꼈지만, 아니마라는 것들은 인간과는 다른 존재인가 분명해 보였다.
“저놈의 검은 너무도 가볍더군.”
아니마가 죽은 근위기사대장을 비웃으며 톱날검을 내리쳤다. 그의 검이 매서운 투로로 꺾이며 자신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적섬?’
적섬을 썼다고?
잘못 본 게 아니다. 조금 전 파렐은 자신의 적섬을 그대로 따라 했다. 아니, 그대로가 아니라 더 강하게 뻗어냈다.
“그래도 네 검은 좀 났구나. 나름 시원해.”
“입 다물어.”
라온이 한참 손에 익은 회천을 그려서 파렐의 목을 노렸다.
우우우우웅!
파렐은 입매를 말아 올리며 자신이 펼친 회천을 더 강하고, 빠르게 그려냈다.
쩌어어어어엉!
회천과 회천이 부딪치며 무너진 알현실의 천장 위로 붉은 스파크가 튀었다.
‘음….’
라온은 더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파렐의 회천을 살피며 눈매를 찌푸렸다.
‘내 무학을 더 강하게 따라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혹시나 하여 기본기가 아닌, 만화공의 절기 염해무결을 펼쳤다.
화아아아아아악!
새빨간 불꽃의 파도가 솟구쳐 파렐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건 꽤 괜찮은데?”
파렐은 마음에 든다는 듯 웃으며 톱날검의 검극으로 땅을 가리켰다. 놈의 검에서 불꽃이 이어지며 자신보다 더 큰 염해무결이 솟아올랐다.
쿠구구구구구구!
불꽃과 불꽃이 경합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알현실의 벽을 모조리 바스러뜨렸다.
‘염해무결까지 따라 한다고?’
라온이 뒤로 밀려난 채 입술을 씹었다.
‘말이 되나?’
적섬, 회천과 달리 염해무결은 만화공의 절기 중 하나다. 복잡하고 난해한 이 검술을 보자마자 더 강하게 따라 한다는 게 경악스러웠다.
“더 그려다오. 네놈의 검을!”
파렐은 흥미가 동한 듯 입술을 핥으며 턱을 까딱였다.
“오냐.”
라온이 입술을 비틀며 파레를 향해 제천검을 겨눴다.
“네놈의 용량을 초월할 때까지 베어주마.”
거울 같은 놈을 뚫어내겠다고 다짐하며 땅을 박찼다.
*
*
*
쩌어어어엉!
라온이 파렐의 검을 흘려내며 입술을 씹었다.
‘전부 다 막히다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파렐은 만화공부터 직접 만든 라온 지그하르트 류까지. 자신이 보여주는 검술을 전부 따라 했다.
‘대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지?’
파렐은 단순히 자신의 검술을 복사하는 게 아니라, 더 강한 위력과 속도로 돌려주었다. 저건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무언가의 권능 같은 게 분명했다.
‘초대 가주는 이런 놈을 상대로 이긴 건가?’
지금보다 더 미래의 시대에 멀쩡했던 것을 보면 크게 무리하지도 않고 꺾은 것 같았다. 역시나 대단한 사람이었다.
“네 검술은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군.”
파렐이 서리연을 연달아 펼치며 자신의 앞섬을 베었다. 자신의 서리연보다 더 빠르고, 날카로웠기에 막는 게 쉽지가 않았다.
“더 보여다오! 화려하고, 현란한 것으로!”
놈은 흥분한 듯 수많은 검술을 펼쳐내며 자신을 압박해왔다. 육체 능력도, 오러의 양과 질도 저쪽이 위였으며, 검술 자체도 강했기에 맞서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는 자신의 검술을 더 강하게 따라 할 수 있는 괴물. 어찌 보면 첫 번째 시험의 연장선 같았다.
‘첫 시험에서 얻은 깨달음은 비워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었지.’
초대 가주와의 대련을 통해 검술의 그릇을 넘어서는 묘리를 담으면 오히려 약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지금 시험도 그와 비슷할 게 분명했다.
“더! 더 가져와라!”
파렐은 창궁검의 초식을 연달아 펼치며 자신의 몸을 억죄는 압력을 만들어냈다. 검이 만들어내는 무게에 손끝을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저놈은 분명 나보다 강해. 하지만….’
초대 가주가 절대 못 이길 시험을 낼 리는 없어.
‘생각하자.’
라온이 불의 고리를 극성을 공명시켰다. 파렐이 펼치는 본인의 검술을 살피며 방어에 집중했다.
치이이이잉!
전신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파렐의 검술을 계속 보고 있다 보니, 무언가 자연스럽다는 게 느껴졌다.
‘내 검술을 더 강하게 펼치고 있는데 자연스럽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다시 온 정신을 집중하여 파렐이 펼치는 적섬을 보았다. 빠르면서도, 강하고, 정확한 검술에 놈이 지닌 본인만의 묘리가 스며들어 있었다.
‘채웠어.’
파렐이라는 놈은 강검과 쾌검, 정검이 어우러진 적섬에 본인만의 검술 묘리를 집어넣었다. 그것도 적섬이라는 검술 용량에 알맞은 정도로. 저건 권능이자, 감각의 영역인 것 같았다.
‘그래. 비웠으면 채우는 게 맞지.’
자신은 첫 번째 시험을 통해 너무 과한 묘리는 검술이 지닌 본연의 힘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검술이 지닌 기본 묘리만으로 펼치는 건 만검을 익힌 검사로서 손해를 보는 일이다.
어설프게 양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그 검술에 적합한 묘리만을 담아서 완성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했다.
‘적섬.’
적섬은 빠르면서 강하고, 정확한 검술. 그 세 개의 묘리 속에 지금 가장 어울리는 예검의 묘리를 담았다.
그것도 다른 묘리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아주 자연스럽게 조화시켰다.
“그걸로는 안 된다니까. 새로운 검술을 가져와라!”
파렐이 어설프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적섬을 내리쳤다.
쩌어어어어엉!
적섬과 적섬이 부딪치며 강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왕실 기둥이 완전히 박살 나고, 바닥에 새까만 균열이 돋아났다.
“거봐라. 네 검술은 이미 내게 먹힌….”
승리를 확신하던 파렐은 본인의 기운을 뚫고 들어오는 라온의 적섬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촤아아아아악!
라온의 적섬은 파렐의 검격을 부수고, 놈의 가슴에 길쭉한 상흔을 새겼다.
“이런 식이로군.”
라온이 선명한 불꽃이 타오르는 제천검을 보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이게 진정한 만검을 이용하는 방법이었어.’
만검을 익혔다고 언제나 그 모든 묘리를 담아낼 필요는 없다. 화룡점정. 용의 마지막 눈동자를 찍어서 승천을 시키듯 완성된 검술에 아주 작은 세밀함을 담아내는 게 정답이었다.
“감히!”
파렐이 자존심이 상한 듯 만화공 염해무결을 일으켰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두 줄기의 파도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처럼 쏟아져 내렸다.
“대단하군.”
검술의 위력까지 강화시키기에 그저 따라 하는 것만 본다면 불의 고리 이상의 능력이다. 아마도 저놈이 지니고 있는 권능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의미 없어.’
자신은 이 싸움을 통해 진정한 만검을 사용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이제는 파렐이 아무리 강한 검술로 돌려준다고 해도 얼마든지 받아칠 수 있었다.
만화공 천화 염해무결.
파렐이 쏘아낸 염해무결을 똑같은 방식으로 펼쳐냈다.
후우우우욱!
자신이 일으킨 염해무결은 파렐이 펼쳐낸 붉은 파도에 비해 현저히 작았다.
하지만 저 불길 속에는 상대의 검술 흐름을 절절히 끊어버리는 절검의 묘리가 숨어 있었다.
파아아아아아앙!
거대했던 파렐의 염해무결이 조각조각 잘려나가고, 경악을 드러낸 놈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치이이이잉!
라온은 초대 가주가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붙였듯이 단숨에 뛰어들어 파렐의 가슴에 제천검을 박아넣었다.
“끄으으윽!”
파렐은 고통과 당황으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피가 흘러내리는 입술을 떨었다.
“사라져라.”
라온은 파렐의 심장을 찌른 검을 비틀어서 뽑으며 턱을 까딱였다.
“너 따위에게 시간을 쓰기에는 내가 많이 바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