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54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54화(954/965)
제954화
‘크으….’
라온이 허옇게 말라붙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얀 이를 타고 흐르는 핏물이 그대로 증발한다. 온몸을 불태울 듯한 태양의 열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라스의 말을 빌리자면 아주 지랄 맞게 뜨겁군.’
만화공을 전력으로 운용하고 있음에도 태양의 열기를 전부 다 받아들일 수가 없다. 무슨 수를 썼기에 저런 열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헌데….’
이곳의 내가 저 열기를 받아들인다고 현실까지 영향이 갈까?
검술의 경지는 육체와 상관없는 정신적인 성장이니, 이곳에서 배운 것들이 외부까지 이어지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오러나 육체의 성장이 현실까지 이어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일단은 믿는 게 맞아.’
초대 가주가 의미도 없이 이런 시험을 준비했을 리는 없다. 지금은 그를 믿고 연공에만 몰두하는 게 맞았다.
‘열기가 너무 독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군.’
고통이라면 억지로라도 참을 텐데, 아예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드니 무얼 할 수가 없었다.
만화공을 운용하지 않았다면 이미 자신의 영혼은 땡볕 아래의 아이스크림처럼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렸을 것이다.
‘초대 가주는 내 생각보다 지독한 사람이었네.’
기억 속 초대 가주는 언제나 인자하면서도 배려심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저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독종 중의 독종이었다.
‘나도 독기로는 지고 싶지 않… 크윽!’
라온이 가는 웃음을 흘리다가 어깨를 움츠렸다.
‘빌어먹을.’
열기 때문에 피부와 근육 그리고 뼈까지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니, 느낌이 아니다. 실제로 살 안쪽을 칼로 헤집는 듯한 통증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못 버텨.’
이건 집중력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영혼이 점점 지워지는 듯한 기괴한 감각이 느껴졌다.
‘글래시아를 함께 운용해볼까?’
글래시아의 서리는 열기의 상극이니,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우우우웅!
급박한 전투를 할 때처럼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끌어 올렸다.
‘이걸로도 안 되나.’
글래시아의 냉기가 마나 회로와 그 근처의 열기를 조금 줄여주기는 했지만, 그 차이는 미미했다.
금색 태양이 쏟아붓는 열기가 너무 강해서 서리가 아예 힘을 쓰질 못했다.
“커흑….”
라온의 갈라진 입술 안에서 격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일부러 낸 소리가 아니다. 너무도 강대한 열기에 영혼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발칸의 숯가마 옆에 있는 게 아니라, 숯가마 안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다.
치이이익!
피부의 감각이 사라진다. 화상의 정도가 심해진다는 뜻. 이 이상은 정말 위험했다.
‘초, 초대 가주가 이길 수 없는 시련을 주지는 않을 텐데….’
초대 가주는 고통스럽거나 힘들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시련만을 전해주었다. 분명 이 열기도 받아들일 방법이 있을 것이다.
‘어떤 수를 써야 할까? 불을 받아들이려면… 아!’
초대 가주의 의도를 생각하고 있을 때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불의 고리.’
초대 가주가 전해준 것은 만화공 만이 아니다. 연공법이지만, 또한 연공법이 아닌 불의 고리가 남아 있었다.
전투가 아니라 오러 연공을 할 때는 본래 하나의 연공법만 사용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론을 따를 때가 아니다. 만화공 하나로는 절대 저 태양의 열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가보자.’
라온이 무릎 위에 올려둔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며 불의 고리와 만화공을 동시에 운용했다.
화아아아아아!
불의 고리가 지금까지 중 가장 선명한 불길을 뿜어내며 장대하게 쏟아지는 태양의 열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홉 개의 고리가 공명하자, 만화공도 활력을 얻은 듯 더 많은 양의 열기를 받아들였다.
‘고통이 줄었어.’
열기의 통증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용광로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수준에서 불판 위에 올라간 정도로 가라앉았기에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정답은 불의 고리였군.’
초대 가주는 전투 중만이 아니라, 연공을 할 때도 항상 불의 고리와 만화공을 함께 하라는 가르침을 내리고 싶었던 것 같았다.
‘말로 좀 해주지….’
말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을 이렇게 때리면서 시킬 이유가 있나 싶다. 덕분에 앞으로 절대 까먹지 않을 것 같지만.
‘다시 시작해보자.’
열기가 스며든 숨을 내쉬며 불의 고리와 만화공의 운용에 집중했다.
아홉 개의 고리가 찰랑거리며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만화공은 열기를 오러로 전환하여 자신의 단전으로 이끌었다.
챠아아아앙!
라온은 불의 고리가 공명하는 청아한 소리를 들으며 깊고도 깊은 무아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강해졌구나.”
신비로운 청발의 아이가 라스를 보며 가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네가 바라던 삶인가.”
아이는 비웃음을 그리듯 입술을 틀어서 말아 올렸다.
“지랄 맞은 시기마저 떠올리게 만들다니….”
라스가 입술을 꾹 내리누르며 짙은 미소를 그리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본왕의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방법을 잘도 아는구나.”
저 청발의 아이는 자신의 과거이자, 또한 자신이 아닌 존재였다.
최악이자, 최약의 시기였기에 보고 있는 것만으로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달라진 척하지 말거라.”
청발의 아이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쓰레기장의 왕이여.”
아이는 도망치지 말라며 섬뜩한 눈빛을 띄웠다.
“그 호칭도 오랜만에 듣는군.”
라스가 떨리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
“그리우면서도 지랄 맞게 거북해.”
자신은 분노의 군주라 불리지만, 처음부터 지금처럼 강하지는 않았다.
마계의 가장 깊은 어둠. 온 세상의 쓰레기가 모여드는 그 지옥 같은 땅에서 태어났을 때의 자신은 누구보다도 약했다.
“거북하다고? 네놈이 만든 지옥이지 않느냐.”
청발의 아이는 왜 도망을 쳤냐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비웃음과 원망이 모두 깃든 눈빛이었다.
“본왕이 도망쳤다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네놈이 더 잘 알지 않느냐! 그 망할 전쟁의 의미를!”
라스가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며 청발의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래. 내 목을 뜯어내거라. 네 손으로 소중한 이들을 죽였듯이!”
청발의 아이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양팔을 펼쳤다.
“본왕은….”
라스가 살기가 피어나던 손끝의 힘을 풀며 팔로 청발의 아이를 끌어안았다.
“과거를 잊지 않았느니라. 그저 깊은 곳에 안고 있을 뿐이니라.”
머나먼 과거.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그 지옥 같은 순간을 떠올리며 눈을 내리감았다.
“하! 빌어먹을 놈이로다.”
청발의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매를 비틀어 올리고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이게 시험이었나.”
라스는 텅 비어버린 동굴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본왕이 분노를 터트리면 실패였고?’
상황을 보니, 자신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에 분노를 했다면 자연스럽게 자아의 방의 시험에서 탈락하게 되는 것 같았다.
‘운이 좋았군.’
거기서 라온 놈의 얼굴이 떠오를 줄이야.
거울에서 나온 자신의 과거는 깊은 복수심을 지니고 있던 라온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녀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았기에 자신 역시 들끓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분노의 군주가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서는 안 되지.’
인간들은 크게 착각하지만, 마왕들은 자신의 권능에 깊게 몰입하지만, 또한 무엇보다도 쉽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동굴의 시험은 자신이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자아의 방이라….”
라스가 청발의 아이가 걸어 나왔던 거울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검은 거울 속에는 실제와 달리 전신이 상처투성이인 어린 자신이 보였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 한번 잘 지었구나.”
거울을 굽어보며 짜증을 가득 담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무언가가 변한다는 느낌은 드는군.’
라스가 평생 햇빛을 보지 않은 듯 하얀 손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과거를 이겨내자, 자신의 영혼 속에 깃든 권능이 성장한다는 게 느껴졌다.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자아의 방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렸다.
‘물론 이곳의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느끼기로 본래 하나의 영혼만 들어와야 하는 공간에 라온과 자신이 동시에 들어오게 되며 작은 균열이 생겼다.
아마 본래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힘을 전부 가져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아쉽지만 계속 가봐야겠지.’
라스가 짧게 혀를 차고서 자신의 과거가 나왔던 거울로 들어갔다.
스으으으으.
물길을 걷는 듯한 감각을 느끼는 중에 발끝에 이불처럼 폭신한 무언가가 닿았다.
고오오오오오!
천천히 눈을 뜨자, 그 누구도 밟지 않은 듯한 새하얀 설원이 보였다.
설원의 끝에는 얼음으로 조각한 듯한 세계수가 하늘 끝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었고, 그 가지 위에는 흑발흑안의 미남자가 걸터앉아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튀어나왔구나.”
라스가 흑발흑안의 미남자를 보며 입술을 깊게 씹었다.
“전대의 군주여.”
*
*
*
후우우우우.
라온이 무겁게 가라앉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하늘에 떠 있는 아홉 개의 고리와 천공을 노니는 수많은 검들이 보였다.
‘심상의 세계인가?’
여기는 항상 똑같군.
자아의 방을 통해 심상의 세계에 들어와도 딱히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달라진 게 없지는 않지.’
천공에 있는 아홉 개의 불의 고리는 강렬하게 공명하며 태양과도 같은 형상을 이뤘고, 하늘을 부유하는 검들은 이곳에서 얻은 경험치를 토대로 확연히 성장한 검로를 그렸다.
‘내가 성장했어.’
심상의 세계를 지켜보고만 있어도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지금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장을 이뤘지만, 모든 게 끝나지는 않았다.
끝없이 타오르는 태양의 열기를 모두 자신의 것으로 바꿔야만 이 시험이 끝나게 될 것이다.
고오오오오!
라온은 공명하는 아홉 개의 불의 고리를 보며 만화공을 일으켰다.
전신의 마나 회로가 불꽃으로 가득 차오르는 이미지를 그리며 열기를 단전으로 이끌었다.
두우우웅!
고산 위에서 치는 북소리처럼 가슴이 울린다. 실제 소리가 아닌 자신의 영혼이 약동하고 있었다.
그 웅장한 울림으로 정신을 일깨우며 만화공과 불의 고리의 연공에 집중했다.
태양에서 받아들인 열기가 어느새 하단전과 중단전을 가득 채운 후 상단전으로 치솟았다.
파아아아앙!
만화공과 불의 고리를 통해 정제된 열기가 상단전에 닿자, 자신의 영혼이 하늘과 이어지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이 느껴졌다.
우우우우웅.
세 개의 단전과 마나 회로가 한층 더 넓어지고, 그 안에 차오른 적색 불꽃이 진한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태양의 열기를 모두 받아들인 만화공이 새로운 벽을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변화는 끝나지 않았다. 아홉 개의 불의 고리 위로 새로운 고리가 떠올라 겹쳐지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앙!
열 번째 고리. 금색 불꽃으로 이루어진 고리가 다른 고리들과 이어지려고 할 때 하늘 위로 푸른 균열이 돋아나며 심상의 세계가 깨져나갔다.
“허억….”
라온이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심상의 세계는 사라졌고,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금색 태양만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실패한 건가?
새로운 불의 고리 연성에 실패하여 심상의 세계에서 쫓겨난 것 같은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분명 성공하는 느낌이었는데.’
열 번째 불의 고리는 자신이 직접 끌어낸 게 아니라, 불의 고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형상이다. 그게 왜 막혔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푸른빛 균열이 고리를 막았던 것 같은데?
불의 고리가 완성되려는 찰나 갑자기 푸른 균열이 떠올라서 고리를 부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답답하네.”
라온이 눈매를 찌푸릴 때 태양이 사라지며 그 위에 자신과 닮았지만, 조금 더 나이를 먹고, 거친 삶을 살아온 듯한 남자가 내려섰다. 지그하르트의 초대 가주였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초대 가주가 신기하다는 듯 본인의 말끔한 턱을 매만졌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그의 말은 파도 소리에 막힌 것처럼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두 개의 혼… 해서 … 영향이….”
초대 가주가 재밌다는 듯 가는 웃음을 흘렸다.
“무슨 말입니까? 제대로 설명해 주십시오.”
“기다리면… 실망할 필요 없… 이게 또 다른 기회….”
그는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하는 건지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되었으니 또 볼 수 있겠지.”
초대 가주의 마지막 말은 제대로 들렸다. 그는 훗날 다시 보게 될 거라는 듯 손을 흔들고서 하얀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후우우우욱!
초대 가주가 사라지자, 금빛 태양이 가라앉고, 첫 번째 시험을 치렀던 모래 산의 정상이 보였다.
자신은 처음부터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 시험이 다 끝난 건가?”
초대 가주의 말을 해석해보면 그가 준비한 안배는 전부 다 끝난 것 같았다.
“열 번째 고리가 아깝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었어.”
제대로 된 만검의 사용법을 익혔으며, 검술의 경지도 크게 성장했다.
세 개의 단전과 마나 회로도 한층 더 커졌기에 검술의 흐름만이 아니라, 그 위력도 격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큰 게 있지만….’
라온이 단전 속에서 타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10성의 만화공.’
불의 고리와 달리 만화공의 등급이 올라갔다. 지금은 제대로 느끼기 힘들지만, 현실로 나간다면 아마 차원이 다른 불꽃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빨리 시험해보고 싶은데….”
왜 안 끝나는 거지?
초대 가주가 나중에 보자고 했는데도, 이 세계는 끝나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영혼이 두 개라고 했던가?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초대 가주는 두 개의 영혼이라는 말을 꺼냈었다.
‘하나는 나일 테고, 다른 하나는….’
설마 라스인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 거울에 라스가 비친 것을 보면 녀석이 함께 들어온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럼 저 바다가 라스의 길이겠군.’
모래 산에 오르기 전에 보았던 바다에서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라스가 지나간 길인 것 같았다.
파란 솜사탕이 꼬리를 살랑이며 저 바다를 지나갔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또 다른 기회가 된다고 했구나.”
라온이 라스의 머리카락처럼 일렁이는 푸른 바다를 보며 길게 입맛을 다셨다.
“우리 라스 삥 좀 뜯으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