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59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59화(959/965)
제959화
“음….”
라온이 금빛으로 일렁이는 자아의 방의 출구 앞에서 눈을 떴다.
‘세 번째 죽음인가?’
라스는 무섭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서리를 불러와 자신의 목을 베어버렸다. 변태니, 어쩌니 해도 할 때는 확실히 하는 놈이었다.
‘이제 확실해졌군.’
라온이 단전에서 피어나는 만화공의 열기를 다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는 죽어도 아무런 손해가 없어.’
세 번이나 죽었음에도 육체와 정신에 변화가 없는 것을 보니, 이 세계에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많이 아프고, 여전히 무섭기는 하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내가 아직 라스의 공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거겠지.
라스의 공격을 세 번이나 맞았지만, 아직도 어디서 어떻게 들어오는 냉기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단 출발부터 할까.’
라온이 푸른 바다를 나아가며 짧게 입맛을 다셨다.
‘어떤 방식일까? 목으로 날아오는 칼날인 건 분명한데….’
그 투로를 모르겠어.
매번 자신의 머리통이 잘려나간 것을 보면 목을 노리고 오는 참격이라는 건 분명한데, 아예 보이질 않았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목 앞에 제천검을 세워두고 있을까?’
제천검을 목 앞에 세운 후 양쪽으로 염주벽을 운용하면 라스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해보자.’
라스가 자아의 방에 남아 있는 이상 기회는 무한할 정도로 많다. 모든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녀석의 공격을 막아보고 싶었다.
라온은 글래시아를 연공하고, 보법을 수련하며, 머릿속으로는 라스와의 싸움을 되새겼다.
상승의 세계에 진입한 것처럼 집중하며 움직이니, 어느새 라스가 있는 망가진 설원에 도착해 있었다.
“또, 또 왔느니라!”
라스는 자신을 보자마자, 귀신을 마주친 듯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네놈이 무슨 술수를 부릴지 몰라서 죽여도 기분만 더럽단 말이다!”
녀석은 제발 말이라도 해달라는 듯 이를 갈았다.
“네가 할 일은 간단해. 그냥 날 죽이기만 하면 돼.”
라온은 쌓아 올린 집중력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일단 싸우자고 손을 뻗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절대 죽이지 않을 것이니라! 아니, 본왕부터 죽어서 이 공간을 빠져나갈 것이니라!
라스는 자살을 할 거라면서 본인의 목을 조를 듯한 자세를 취했다.
“이번만큼은 나딘빵으로 협박해도 안 먹히느니라! 네놈이 무섭단 말이다!”
녀석은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으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겠다며 미간을 구겼다.
“알겠으니까. 진정해.”
라온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제천검을 들려던 손을 내렸다.
“으음….”
라스는 아직 의심스러운 듯 눈매를 가늘게 좁힌 채로 자신을 노려보았다.
“뭘 하려는 거냐고 물었지? 당연히 수련이야.”
라온이 제천검의 검집을 가볍게 두드렸다.
“수, 수련?”
라스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죽으면서 수련을 한다고?”
“그래.”
라온이 잔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알겠지만, 이곳에서는 죽어도 아무런 손해가 없어. 오러도 줄지 않고, 검술 경지가 낮아지지도 않고, 영혼의 격이 빠지지도 않아.”
가는 미소를 그리며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실전 경험을 쌓기에는 최고의 장소라는 뜻이지.”
“하….”
라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그것 때문에 죽여달라고 한 거였다고? 이런 미친놈이 있나….”
녀석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어깨를 떨었다.
“네놈의 머리통에는 대체 무엇이 든 것이냐!”
라스가 입술을 꾹 내리눌렀다.
“아무리 되살아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생명체인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어찌….”
생명을 가진 존재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건 태어날 때부터 가진 본능적인 감정. 아무리 열심히 수련해도 단련할 수 없는 부분인데, 저놈은 처음부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이해를 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거기다 죽을 때의 고통도 느끼지 않느냐! 아픔이 사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어찌 그렇게 덤비는 것이냐.”
목이 잘려도 사람은 바로 죽지 않는다. 극한의 고통과 두려움을 느낀 후 어둠 속에 잠길 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도전하는 게 경악스러웠다.
“뭐, 아프기는 하지.”
라온은 많이 고통스럽다고 말하며 세 번이나 잘려나간 목을 매만졌다. 말만 저렇지, 표정을 보면 너무 덤덤해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다시 깨어날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냐?”
라스가 깊은숨을 내뱉으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지금까지는 부활할 수 있었다고 해도 무조건 이다음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느니라. 아예 죽어버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냐고!”
라온이 두려움을 모르는 애송이 같았기에 속이 답답했다.
“당연히 있지. 솔직히 무섭기도 해.”
라온이 퍼렇게 일렁이는 라스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아. 갈라진 동아줄이라도 잡고 올라가야 한다고.”
“본왕이 말하기에는 민망하다만, 네놈은 마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느니라. 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냐!”
라스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너도 알잖아. 내겐 매여있는 게 많아.”
라온이 은은한 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먼저 데루스 로베르트가 있지.’
이번에 데루스 로베르트는 묵검존 레크로스를 압도하는 무력을 드러냈었다.
글렌이 인정할 정도의 강함을 보였으니, 지금의 자신은 놈의 머리털 하나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라면 모험을 하는 게 당연했다.
‘그 외에도 지켜야 할 약속도 많고.’
어머니, 아버지, 시아를 슬프게 만들었던 에덴을 멸망시켜야 하고, 백혈교주를 제압하여 마르타의 어머니를 구해내야 하며, 루난이 홀로 시리아를 꺾을 수 있게 도와야 했다.
거기다 버렌, 도리안, 크레인, 마크 괴튼을 비롯한 수하들이 이뤄야 할 소원도 많았다.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이루어주고 싶었다.
최연소 초월자, 고금 제일의 천재 그리고 검제라는 이명을 얻었지만, 그 명성에 빠질 틈이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강해져야 했다.
“하아아….”
라스가 연초를 피우듯이 허공을 보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매번 느끼지만, 네놈은 본왕이 본 마족과 천족 중에서도 가장 미친놈이니라.”
“난 마족도, 천족도 아닌데?”
“본왕은 이제 네놈을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겠느니라.”
녀석은 자신을 보면 인간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이해는 했지?”
라온이 가늘게 웃으며 허리춤에서 제천검을 뽑아 들었다.
“그럼 부탁할게.”
무릎을 살짝 굽힌 채 방어 자세를 취했다.
“전력을 다해서 날 죽여줘.”
사정을 모두 말한 이상 이제는 나딘빵으로 협박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진심을 말했듯이 라스로 진심으로 부딪쳐주기를 원했다.
“그 약속들을 전부 다 지켜주려고 했다니….”
라스가 믿어 지지가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멍청하디멍청한 놈이로다.”
“마왕도 약속을 지키는데, 사람인 내가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라온은 멍청한 마왕한테 배운 거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게 원하니….”
라스가 마음을 정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전력으로 죽여주마.”
녀석의 말이 끝나는 순간 눈앞으로 푸른 빛이 명멸했다. 그걸 느끼기도 전에 자신의 목이 날아갔다.
‘손끝에서 빛이 일어났어.’
라온은 마지막 순간에 보았던 빛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 서리의 투로가 좌측….’
죽음이 다가와서 세상이 흐릿해지는 순간에도 다음의 싸움을 생각하다가 눈을 감았다.
“허….”
라스가 천천히 사라지는 라온의 시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언제 보아도 정상이 아닌 놈이니라.”
죽음은 만물에 공평하다. 대천사도, 마왕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두려움을 가지는데, 라온에게는 그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꼭 한 번 죽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강해지려는 이유는 이해가 가지만.’
마르타의 어머니를 구하는 것, 에덴을 멸망시키는 것, 루난이 본인의 손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하는 것, 버렌이 카룬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돕는 것, 도리안이 상회주가 되게 하는 것 그리고 라온 본인이 지그하르트의 가주가 되는 것까지.
라온이 목표로 둔 일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일이었다. 본인의 일만이 아니었기에 이룰 수 없는 것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그 무엇 하나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어 했다.
‘강해지고 싶다라….’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 역시 라온과 비슷한 시기를 겪었기에 그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물론 저 미친놈처럼 죽음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나….’
라스가 세계수의 밑동에 걸터앉은 채 가는 웃음을 흘렸다.
‘오래 걸릴 듯하구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만드는 라온의 눈을 마주했기 때문일까. 신기하게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애닳프면서도 씁쓸한 과거를 떠올리고 있을 때 차원의 문이 열리고, 다음의 라온이 찾아왔다.
“바로 시작해줘.”
라온은 또 전력을 사용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죽여주마.”
라스가 몸을 일으킨 후 지금까지 라온의 목을 베었던 냉기의 칼날을 전력으로 일으켰다.
우우우우우웅!
라온은 아주 조금 감을 잡은 듯 제천검의 궤도를 틀었지만, 자신이 쏘아낸 냉기는 달빛 같은 유려한 투로로 흘러가 녀석의 목을 갈랐다.
“바, 방향이….”
라온은 죽어가면서도 다시 오겠다는 듯한 눈빛을 번뜩인 후 사라졌다.
“그런데 이거….”
라스가 라온을 죽일 때의 감각이 남아있는 손아귀를 매만지며 입맛을 다셨다.
“생각보다 재밌는데?”
라온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놈을 죽이는 게 무섭지 않고 오히려 시원했다. 그간 쌓인 감정이 하나씩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라스가 라온이 나올 차원문을 바라보며 길쭉하게 입술을 말아 올렸다.
‘조금 즐겨볼까?’
*
*
*
라온은 죽음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다 위로 올라갔다. 태화보를 밟고, 글래시아를 운용하며 죽기 직전의 일을 떠올렸다.
‘손끝에서 푸른 빛이 피어났어.’
자신의 목이 잘리기 전 라스의 왼손에서 은은한 푸른 빛이 돋아났다. 예상과 달리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으로 공격해온 것 같았다.
‘그래서 각도가 뒤틀렸군.’
오른쪽에서 공격이 올거라고 생각하며 방어를 준비했기에 막을 시간이 부족한 건 당연했다.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염주벽을 세우는 게 좋겠지.’
오른손잡이를 상대하는 것과 왼손잡이를 상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막아내려면 검격의 투로를 뒤트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니면 예측을 해볼까?’
반응을 하기도 전에 목이 떨어져 나가니, 아예 라스의 공격이 오기 전에 먼저 검격을 날리는 방식도 좋을 것 같았다.
‘이렇게 움직이면서 생각을 하니까 좋네.’
처음 죽었다가 깨어났을 때는 라스에게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지루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동하는 동안 이전 전투의 반성을 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은 것 같았다.
‘보법과 글래시아의 수련도 겸할 수 있고.’
바다를 건너며 글래시아와 태화보의 성취도 올리고, 머리로는 검술 수련을 할 수 있기에 일석사조나 다름이 없었다.
‘그동안 기연에만 너무 몰입했었던 것 같아.’
자신이 지금처럼 빠르게 성장한 이유는 기연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기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밤낮없이 노력한 덕분이기도 했다.
자아의 방에서 많은 기연을 얻었지만, 아직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으니, 지금 숙성의 시간을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천천히 나아가자.’
라온은 어떻게 라스의 공격을 막을지를 생각하며 다시 망가진 설원에 발을 디뎠다.
“질리지도 않고 오는구나.”
라스는 쉬지도 않냐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죽었다가 살아나면 다 멀쩡해지거든.”
라온이 은은한 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바로 시작해도 되겠구나.”
라스는 이제 망설임이 사라진 듯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며 공격 태세를 취했다.
“후우….”
라온이 제천검을 꺼내서 좌측에 가까운 중단에 세웠다.
“흥!”
라스가 건방지다는 듯 웃는 순간 녀석의 왼손에서 푸른 빛이 일렁였다.
‘역시 왼손이었어!’
푸른 빛이 강해진 순간 검극에 어린 불꽃으로 염주벽을 세우고, 적섬을 내리그었다. 방패와 칼을 동시에 뻗어내는 방어술이었다.
치아아아앙!
하지만 라스는 모든 상황을 예측하기라도 한 듯 어렵지 않게 자신의 목을 갈라버렸다.
‘괜찮아.’
라온은 목을 잃고 허물어지는 몸을 보면서도 실망하지 않고 웃었다.
‘다시 하면 되니까.’
*
*
*
염해무결로도 막지 못했다. 죽었다.
창궁무애로도 막지 못했다. 죽었다.
대선벽뢰로도 막지 못했다. 죽었다.
공허살을 펼쳤어도 막지 못했다. 죽었다.
검계를 일으켰어도 막지 못했다. 죽었다.
…
…
…
세 가지 절기를 연계했지만 막지 못했다. 죽었다.
“하아….”
라온이 자연스럽게 파도를 타고 나아가며 고개를 저었다.
‘몇 번을 죽었는지 모르겠군.’
창궁검의 절기 창궁무애까지 실패한 이후에는 죽은 숫자를 세지 않았다. 대충 계산해보니, 벌써 50번이 넘게 죽은 것 같았다.
‘그래도 조금은 느낌이 와.’
처음에는 아예 감도 못 잡았지만, 50번 넘게 죽으니 조금이지만 라스가 일으키는 흐름이 눈에 익어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알아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게 문제지.
라스의 공격은 빠르고 현란할 뿐만 아니라, 강하다. 막을 때마다 제천검이 부러져서 목이 날아가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확실해 지금의 내 검술만으로는 막을 수 없어.’
자신이 지닌 최강의 검술인 검계는 다른 검술에 비해서 발동이 늦다. 라스의 공격은 빠르기에 검계가 다 열리기 전에 자신의 목이 잘려나갔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지.’
라온이 멀리 보이는 회색의 섬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전부 다 사용하자. 내가 지금까지 쌓았던 것들을.’
검술만이 아니라, 보법, 연공술, 체술 그리고 전투 경험까지 그 모든 것을 방어에 담아내겠다고 다짐하며 푸른 빛의 동굴로 들어갔다.
‘후우.’
동굴을 걸어가면서도 계속해서 라스의 공격을 막아낼 방법만을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고 즐거웠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길이었으니까.
어느새 동굴의 끝에 도착했는지 검은 거울이 보였다.
은은하게 빛나는 거울 속에서 자신은 웃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는 것처럼.
라온은 거울에 비치는 자신보다 더 진한 미소를 그리며 거울 안으로 들어갔다.
타악.
망가진 설원에 발을 디디자, 세계수에 걸터앉아 있던 라스가 몸을 일으켰다.
“바로 시작하지.”
라스는 이제는 이 상황에 익숙해진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웃고 있는 것을 보니, 녀석도 재미있는 모양이다.
“얼마든지.”
라온이 호흡을 고르며 제천검을 뽑아 들었다.
“이번에는 잘 막아 보거라.”
라스는 절대 막지 못할 거라는 듯 코웃음을 치며 왼손을 뻗었다. 녀석의 손끝에서 푸른빛이 번뜩이는 순간 목에 따끔한 통증이 일어났다.
실제로 베인 게 아니다. 너무도 날카로운 참격의 발동에 극한까지 다듬어진 자신의 감각이 반응한 것이다.
투우우웅!
라온은 통증을 느낀 순간 태화이보를 밟았다. 극쾌의 보법으로 물러서며 라스가 일으킨 참격과 거리를 벌렸다.
우우우웅.
라스는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서리의 칼날로 자신을 추적했다. 전력으로 태화보를 밟고 있음에도 바로 따라잡혔다는 게 느껴졌다.
‘지금이다.’
라온은 라스의 서리가 자신의 목에 짓쳐 들어온 것을 느끼고 태화이보를 부드러움을 담아낸 태화삼보로 전환했다.
라스가 일으킨 서리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검극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비단처럼 풀어냈다. 만화공 무금향. 부드러움을 담아낸 방어의 검술에 절검의 묘리를 담아내고, 태화삼보의 부드러움을 이어갔다.
쩌저저저저적!
흘려내는 검술을 펼쳤음에도 제천검이 꺾이고, 자신의 몸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상이 돌지 않았다. 베인 것은 목이 아니라, 가슴 안쪽. 처음으로 라스의 공격에 즉사하지 않은 것이다.
“…그걸 비틀었다고?”
라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표정을 보니, 봐준 게 아니라, 전력으로 죽일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하아….”
라온은 부러진 제천검 위로 떨어지는 살벌한 양의 핏물을 보면서도 입술을 말아 올렸다.
‘힘이 부족했군.’
흘리기까지는 잘했지만, 라스의 검격에 담긴 힘이 너무도 강하여 자신의 방어를 뚫고 들어온 것 같았다.
‘그래도 바로 죽지는 않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처를 입었지만, 한 번은 막아냈다는 게 기뻤다. 만검의 운용이 한층 더 성장했다는 게 느껴졌다.
“라스….”
라온은 어둑해지는 시야 속에서 라스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다시 오마.”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으음….”
라스는 웃고 있던 라온을 얼굴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녀석의 진심을 알게 된 후 즐겁게 죽일 수 있었는데, 처음으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괴물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