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60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60화(960/965)
제960화
라온은 죽음에서 깨어나자마자,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드디어 막았어.’
라스의 공격을 막은 후 바로 죽었기 때문에 방어에 성공했다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하지만 라스가 전력으로 펼쳐낸 공격에서 즉사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들었다.
‘물론 반성해야 할 점도 많지만….’
자신의 무력이 조금 더 높았다면 제천검이 부러질지언정 가슴이 쪼개져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에 힘이 풀려서 녀석의 공격을 정면에서 맞게 된 게 아쉬웠다.
‘아니, 힘이 아니라 검술 경지가 조금만 더 높았어도 받아낼 수 있었을지도.’
라스의 일격을 막아내기에는 자신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려고 했다.
하지만 무학의 경지와 지닌 힘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났기에 검술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유검과 절검의 묘리가 더 높았다면 무금향으로 라스의 공격을 흘려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걸 이루지 못한 것에 가슴이 쓰려왔다.
‘헌데 그 녀석….’
라온이 라스가 쏘아낸 푸른 냉기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왜 검술을 응용한 거지?’
라스의 공격은 서리의 마법 같은 게 아니었다. 녀석은 본인이 쌓아 올린 무력에 자신의 옆에서 보았던 검술의 묘리를 응용하여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다.
‘자아의 방에 들어와서 힘도 회복했을 텐데.’
이전처럼 본신의 무력으로도 자신을 제압하는 건 간단할 텐데, 검술까지 운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설마….’
내 영향을 받은 건가?
자신이 수련할 때마다 라스는 언제나 그 옆에 있었다.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검술의 묘리가 녀석의 머리에 박혀버린 것 같았다.
‘내가 라스에게 영향을 받았듯이 라스도 내게 영향을 받은 거로군.’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솜사탕 녀석을 향한 내적 친밀감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계속 가볼까?”
라스와 진짜 친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 이대로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계속 도전을 해서 꼭 녀석의 공격을 막아보고 싶었다.
파아아아앙!
라온이 다시 라스를 만나기 위해서 태화보를 밟으며 바다를 나아갔다.
‘지금 내 경지로 라스의 공격을 완벽히 막는 건 무리야.’
같은 초월자지만, 너무도 큰 격의 차이가 존재하기에 방어만으로 라스의 공격을 막는 건 무리였다. 제천검이 부러지고 결국 자신의 목이 날아갈 것이다.
‘흘리기도 힘들어.’
라스의 검술 경지는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녀석의 무력 자체가 미친 듯이 높기에 검술을 응용하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억지로 흘리다가는 이번처럼 목이 아니라, 가슴이 잘려나가서 죽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공격을 하는 건 자살행위지.’
자신의 공격보다 라스의 공격이 몇 배는 더 빠르고, 강력하다.
검계가 개방되기도 전에 자신의 목이 날아갈 정도이니, 공격으로 막으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
라온이 관자놀이를 부여잡은 채 헛웃음을 흘렸다.
‘생각해보니까. 어처구니가 없네.’
방어도 안 되고, 흘리기도 안 되고, 공격도 안 돼.
‘그럼 어떻게 막으라는 거지?’
방어도, 흘리기도, 공격도 안 된다고 생각하니, 체한 것처럼 가슴이 꽉 막혀왔다. 답답해서 뇌리에 지끈거리는 통증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잠깐. 셋 다 안 된다고? 그럼 셋을 동시에 해보면?’
지금까지 세 자루의 검을 다 사용해보기도 하고, 신마조화결을 개방하여 쌍검을 쓰기도 했지만, 초고수 앞에서는 숙련도가 부족한 것 같아서 결국 제천검 하나만 들었다.
‘답은 제천검이 아니었어.’
라스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막으려면 제천검, 진혼검, 목륜검을 모두 사용하는 숙련도를 올려야 할 것 같았다.
‘그래.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이제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고,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만이 자신의 뇌리를 휘감았다. 50번이 아니라, 100번을 죽더라도 꼭 라스의 공격을 막아보고 싶었다.
파아아아아!
라온은 어떻게 라스의 공격을 막을지 생각하며 거침없이 바다를 달려나갔다.
‘음? 벌써 섬이 보인다고?’
얼마 달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멀리서 회색의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화보가 성장한 건가?’
이 넓은 바다를 수십 번 건넌 덕분에 태화보의 성취가 크게 상승한 것 같았다.
‘아니, 태화보만이 아니야.’
바다와 동굴의 냉기를 흡수하던 글래시아도 곧 알을 깨고 나올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멀었지만, 작은 실마리 하나만 얻는다면 10성의 벽을 부술 수 있을 것이다.
‘역시나 라스가 복덩인가?’
이번에는 라스 본인이 큰 보상을 넘겨주지는 않았지만, 전력으로 상대를 해준 덕분에 더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것 같았다.
‘녀석도 재밌어하던데.’
처음에는 자신을 죽이는 것을 꺼렸지만, 지금에 와서는 꽤 시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마지막은 아니었지만.’
바로 이전의 전투에서 라스는 본인의 공격이 막힌 것에 당황하여 입술을 떨었다.
라온은 오랜 친구의 놀란 얼굴을 즐기며 검은 거울로 들어갔다.
“후우….”
설원에 내려서자, 라스가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5살짜리 꼬맹이도 아니고, 정말 지치지를 않는구나.”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콧잔등을 구겼다. 외형은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듯한 사람이었지만, 하는 행동은 솜사탕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 멀었어.”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땅에 박고, 신화조화결을 개방했다. 두 손에 신검과 마검을 세우고, 머리 위로는 목륜검을 띄웠다.
“집중 안 된다고 하나의 검만 쓰는 거 아니었나?”
라스가 무슨 생각이냐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맞아. 복잡해서 오히려 손이 어지러워졌지. 하지만 도전하는 게 맞을 거 같아서.”
라온이 불에 타는 신검과 냉기가 피어나는 마검을 교차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려움을 이겨내야 성장할 수 있는 법이잖아.”
동수와 하수에게만 힘을 과시하다 보면 결국 뒤처지게 된다. 초고수인 라스 앞에서 세 자루의 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흥. 마음대로 하거라.”
라스가 살짝 눈매를 좁힌 채 손을 들어 올렸다. 바로 직전의 전투 때문에 녀석이 더 진지해진 것 같았다.
우우우우웅!
라스는 공격을 하겠다는 말도 꺼내지 않은 채 손가락 끝에서 서리의 빛을 일으켰다.
‘온다!’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공격하는 사람이 언제나 경고를 보내지는 않는다. 알아서 막는 게 맞았다.
‘준비했던 대로.’
라온은 바다를 건너며 생각했던 세 가지 검술을 떠올렸다. 공격과 방어, 그리고 흘리기. 세 자루의 검에 각기 다른 흐름을 담아냈다.
우우우우우웅!
신검의 불꽃으로 염주벽을 세우고, 마검의 서리로 무금향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이기어검으로 띄운 목륜검에 공허살을 담아냈다.
하지만 세 자루의 검이 하나처럼 이어지기 전에 먼저 라스의 참격이 밀어닥쳤다.
캬아아아앙!
염주벽이 깨지고, 무금향이 갈라지며, 목륜검이 튕겨 나갔다. 그리고.
촤아아아악!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자신의 목이 잘려나갔다.
“허술하구나.”
라스가 한참 부족하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세 검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하나의 검을 쓰는 것만도 못하느니라.”
녀석은 정신을 차리라는 듯 길게 혀를 찼다.
“걱정 마….”
라온은 가는 웃음을 흘렸다.
“곧 다시 올 테니까.”
그는 그 마지막 말을 남기고 모래가 되어 사라졌다.
“예전부터 강함에 대한 열망이 심했던 놈이지만….”
라스는 죽음조차 이겨내는 라온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은 과할 정도로군. 본왕에게 힘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야.”
라온이 검술에 미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그 욕망이 과할 정도로 뿜어져 나왔다.
‘과한 욕망? 설마 탐욕이….’
라스가 라온이 죽은 장소를 보며 눈매를 실처럼 가늘게 좁혔다.
‘그리드 놈. 이것을 노린 건가?’
왜 그리드가 처음부터 과할 정도의 <탐욕>을 넘겨주었나 의심스러웠는데, 라온을 본인의 입맛대로 바꾸려고 하는 것 같았다.
‘멍청한 놈이로다.’
라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족제비는 네가 건드리지 않았어도 탐욕의 왕이 될 놈이니라!’
그리드가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차원의 문이 열리고 라온이 들어왔다.
그 넓은 바다를 수십 번 넘게 지나왔기에 보법의 경지가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게 성장한 것 같았다.
“다시 시작하자.”
라온은 다음 싸움을 준비하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아니….”
라스는 이 순간이 즐겁다는 듯 미소를 그리는 라온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먼저 후회하는 건 본왕일지도….’
처음부터 그냥 도망쳤어야 했느니라!
*
*
*
차아아악.
라온이 바다를 나아가며 입맛을 다셨다.
‘쉽지 않군.’
세 자루의 검을 사용하는 것이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라스 같은 초고수와 붙어보니 하나의 검을 쓰는 것만도 못한 빈틈투성이였다.
부끄러움에 얼굴에 뜨끈한 열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재밌는 거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넓다는 뜻이니,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너무도 기뻤다.
‘조금이지만, 내가 가야 하는 길이 보이고 있어.’
세 자루의 검을 사용한 후 40번이 넘는 죽음을 겪었다. 죽고 되살아날 때마다 자기반성을 하며 도전했기에 자신의 검술이 이전과는 격이 다를 정도로 성장했다는 게 느껴졌다.
‘이전의 싸움에서 흘리기는 좋았지만, 방어 쪽이 무너졌지. 덕분에 공격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어.’
세 자루의 검에 각기 다른 영역을 부여하고 있기에 그 힘과 흐름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글래시아가 만화공에 밀리고 있기에 냉기와 열기의 균형을 맞추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계속 부딪치다 보면 결국 이룰 수 있을 거야.’
천 번을 죽어서라도 라스의 공격을 막겠다고 다짐하며 푸른 동굴에 들어갔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무언가가 달랐다.
우우우웅!
동굴의 천장과 벽이 진흙으로 바뀐 것처럼 출렁거렸고, 연한 푸른빛을 피워내던 서리의 조각들이 곧 터질 것처럼 팽창하고 있었다.
‘뭐야 이건….’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다리에 힘을 주고 빠르게 보법을 밟아서 동굴을 나아갔다.
동굴에 끝에 도착하자, 검은빛을 띤 거울이 보였다. 거울에는 못 보던 금이 거미줄처럼 그려져 있었다.
‘끝난 건가….’
라온이 미간을 찌푸린 채 거울에 손을 뻗었다. 다리가 붕 뜨는 듯한 감각과 함께 몸이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행히도 설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설원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고, 땅이 갈라져서 허무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딱 99번이니라.”
라스가 무너지는 땅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99번? 그게 무슨 말이야?”
라온이 라스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네놈이 죽은 숫자가 딱 99번이라고.”
“아….”
“아무래도 이 공간에서는 100번만 죽을 수 있는 모양이구나.”
라스는 이곳에서도 죽음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럼 이번에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 이 공간에서 쫓겨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니라.”
녀석은 자아의 방에서 억지로 나가게 될 거라면서 손을 내렸다.
“그럼 다행이네.”
라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라고?”
라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한 번 더 너와 싸울 수 있다는 뜻이니까.”
라온이 웃으며 제천검과 진혼검을 뽑아 들었다.
“본왕의 말을 못 들은 것이냐? 현실에서도 죽을 수 있다고 했지 않느냐!”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며. 나는 너를 믿어.”
라스를 신뢰하고 있기에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드가 울고 갈 정도로 미친놈이로다. 그렇기에….‘
라스가 미간을 찌푸리다가 가느다란 미소를 그렸다.
‘존경스럽기까지 하구나.’
아무리 <탐욕>이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저리 순수하게 강해지고 싶어 하는 존재는 처음 보았다.
거기다 강해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신만이 아니라, 남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기에 더더욱 놈에 대한 호의가 피어났다.
“좋다. 마지막으로 상대해주마.”
라스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앞으로 나섰다.
“마지막이라고 봐주면 안 된다?”
라온은 절대 봐주지 말라고 외치며 신마조화결을 개방했다.
“물론이니라. 본왕은 전력을 다해서 네놈을 죽이겠느니라.”
라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세웠다. 녀석의 눈빛은 진심이라는 듯 냉랭하게 번뜩였다.
“하아아….”
라온이 땅이 허물어질 것처럼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죽음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점점 더 성장해나가는 게 기뻤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즐겼지만, 이제 그 끝이 다가온 것 같았다.
‘지금의 최선을 다하자.’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이자, 잡을 수 없는 기연이다. 이 마지막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집중력을 갈고 닦은 후 눈을 떴다.
“와라.”
라온이 신검과 마검을 세우고, 목륜검을 머리 위로 띄운 채 고개를 까딱였다.
“오냐.”
라스가 입매를 비틀어 올리며 손을 뻗었다.
“마지막은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죽여주마!”
녀석의 길고 고운 손가락 끝에서 푸른빛이 일렁이는 순간 태화보를 밟고 뒤로 물러났다.
투아아아아앙!
100번의 바다를 걸으며 성장한 태화보가 공간을 초월한 것처럼 라온의 육체를 이동시켰다.
태화보로 라스의 공격이 다가오는 시간을 번 후 신검의 불꽃으로 염주벽을 세웠다.
후우우우욱!
본래 사각 형태였던 불꽃의 방패는 성벽과도 같은 곡선의 미를 갖춘 채 자신의 앞을 막아주었다.
후우우우욱!
라온은 염주벽을 펼치는 동시에 좌수의 마검으로 백영섬을 그려냈다.
검은 하늘 위로 펼쳐지는 마검의 빛이 하얀 파도가 되어 솟아올랐다.
붉은 방패와 하얀 도화지가 피어난 순간 라스의 참격이 들이닥쳤다.
쿠와아아아아앙!
불꽃의 방패는 서리의 공세를 간신히 버텨냈지만, 힘이 부족한 백영섬의 도화지는 곧 찢어질 것처럼 흔들렸다.
‘견뎌야 해.’
9성의 글래시아로 펼치는 백영섬이 부족할 거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왼손에 뜯겨나갈 것 같은 고통이 일었지만, 억지로 견뎌냈다.
‘처먹을 만큼 처먹었으면 이제는 좀 뱉어내 보라고!’
백 번의 바다를 건너고, 백 번의 동굴을 걸으며 쌓아두었던 냉기를 모조리 개방했다.
우우우웅!
반 토막 난 은색 달이 자신을 비추는 듯 청아한 빛을 일으키며 냉기를 이끌어주었다.
우우우우우웅!
글래시아의 서리가 불의 고리를 따라 급격하게 순환하며 만화공에 밀리지 않을 거대한 냉기를 일으켰다.
투우우웅!
순간 자신의 심장 안쪽에서 솟구친 냉기의 칼날이 세 개의 단전을 관통하는 듯한 충격이 일어났다.
단전이 폭주하듯 약동하며 전신의 마나 회로 속으로 어마어마한 냉기가 솟아올랐다.
10성. 10성의 글래시아가 마검의 칼날 위로 달빛보다도 진해진 서리를 일으켰다.
우우우우우웅!
곧 찢어질 것 같았던 백영섬의 도화지가 은빛 서리로 물들며 절대 갈라지지 않을 비단의 벽을 세웠다.
‘지금!’
라온은 신검의 불꽃과 마검의 서리로 라스의 공세를 막으며 바람과 벼락이 조화를 이루는 소슬바람을 펼쳐냈다.
쿠와아아아아앙!
세 개의 빛과 라스의 참격이 격돌하며 설원 자체를 지워버릴 듯한 거대한 충격파가 뻗어 나갔다.
가만히 있어도 무너질 설원의 붕괴가 가속화되며 하늘 위로 흐릿한 눈꽃이 솟아올랐다.
“커헉….”
그 푸른 눈길 아래에 서 있던 라온이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진혼검과 목륜검이 부러졌고, 복부에는 칼날을 세운 듯한 길쭉한 상처가 돋아났다.
하지만 자신은 죽지 않았고, 죽을 상처를 입지도 않았다.
찌지지직.
라온은 유일하게 부러지지 않은 제천검에 기댄 채 몸을 일으켰다.
“백 번을 죽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밀려드는 웅대한 감정에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라스를 바라보았다.
“결국 너를 막았다.”
입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고, 그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하….”
라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지. 네놈은 본왕이 본 모든 존재 중에서도 가장 미친놈이니라!”
녀석의 극찬을 마지막으로 세상이 꺼진다. 이게 마지막인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금발의 사내가 만족스럽게 웃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저게 나를 비추는 건지, 초대 가주의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후우우우우.
라온은 어둠으로 떨어지며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
*
*
“으음….”
라온이 낮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정말 오랜만에 하얀 하늘이 아니라, 거뭇한 천장과 빛을 잃은 등잔불이 보였다. 알현실에 붙어 있는 자아의 방의 입구로 돌아온 것이다.
‘다 끝난 건가?’
자아의 방에 있을 때의 감각이 현실과 똑같았기에 아직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방 안에 있는 거울을 보았는데, 이제는 평범한 거울이 된 듯 자신의 모습만 비추고 있었다.
-하아아아….
라온이 거울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을 때 얼음꽃 팔찌 속에서 라스가 튀어나왔다.
-머리가 아프구나. 피곤해 죽을 것 같으니라.
녀석은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을 것처럼 졸리다며 눈을 비볐다.
“다 기억나?”
라온이 라스에게 턱짓을 했다.
-그럼 기억이 안 나겠느냐! 이 거머리 같은 놈아!
녀석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거라며 미간을 구겼다. 자아의 방에서 벌어졌던 일은 전부 현실이었던 것 같았다.
“신기하네.”
라온이 단전 안쪽에서 흐르는 10성의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느끼며 가느다란 웃음을 흘렸다.
“정말 두 연공법 모두 10성으로 올라갔어.”
자아의 방에서만 이루어진 성장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그곳에서 이뤘던 성장이 모두 현실에 적용되고 있었다.
“너는 어때? 그곳에서 얻은 것들을 모두 가지고 나왔어?”
-본왕도 마찬가지니라.
라스는 신기한 장소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름 힘을 좀 회복했느니라. 헌데….
“헌데?”
-아니니라!
라스가 고개를 홱 돌린 채 슬쩍 라온을 돌아보았다.
‘저 망나니 놈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거침없이 본인을 죽였다고 지랄을 떨며 나딘빵을 꺼낼 줄 알았는데, 묘할 정도로 차분해서 당황스러웠다. 자아의 방에서 본 라온과 이곳의 라온이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무학은 그렇다고 치고, 오러와 육체의 성장이 현실로 이어진다는 게 신기해. 뭐 하는 곳이지?”
라온이 성장한 무력을 시험해보고 싶다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그의 눈앞으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초대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101번의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모든 능력치….] [새로운 특성….]자아의 방에서 직접 얻어낸 보상 외에도 시스템의 추가적인 보상을 보내주는 것 같았다.
-조용하더니! 이럴 줄 알았느니라! 이런 망할 놈의….
라스가 괴성을 지르려고 할 때 라온이 메시지 창을 내려버렸다.
-어…?
라스가 화를 내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밥이나 먹으러 갈까?”
라온은 먼저 배부터 채우자며 어깨를 으쓱였다.
-바, 밥? 나딘빵이 아니라?
“왜 나딘빵이 먹고 싶었어?’
-그, 그게 아니라, 본왕에게 무조건 나딘빵을 먹인다고 했잖느냐!
“너도, 나도 고생했으니까.”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가자.”
라온이 여유롭게 몸을 일으킨 후 라스에게 손짓을 했다.
‘이제는 급할 이유가 없지.’
자신은 짧은 기간 동안 말이 안 되는 성장을 이뤘다. 그 일을 도와준 라스를 괴롭힐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이 이상 강함에 욕심을 부린다면 오히려 부상을 당할 위험도 있었다. 지금은 휴식을 취할 때였다.
“뭐, 싫으면 말고.”
-아니, 가긴 가는데, 네놈이 너무 변해서 당황스러우니라.
라스가 라온의 어깨 위에 올라간 채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네놈 100번을 죽는 동안 머리가 이상해진 것 아니냐?
‘그럴지도 모르지.’
라온은 피식 웃으며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 위협을 당하고 있다면 검을 세 번 두드리거라! 본왕이 구해주겠느니라!
‘아니라고!’
라온은 결국 참지 못하고 라스의 머리통에 꿀밤을 날렸다.
-그럼 왜 그렇게 변한 건데! 자아의 방에서는 미친개처럼 날뛰지 않았더냐!
‘거기서는 꼭 얻어야 할 게 있었으니까. 이제 다 끝났으니까 평소처럼 선한 모습으로 돌아가야지.’
-무슨 헛소리냐! 네놈은 평소에도 미친놈이었느니라! 거기서 더 미쳐버렸을 뿐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하셔.’
라온과 라스가 싸우며 나간 자아의 방이 고요한 어둠으로 물들었다.
다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다 꺼진 등불에 연한 금빛의 불꽃을 띄워냈다. 꼭 두 사람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