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68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68화(968/990)
제968화
지그하르트의 대장장이들이 살고 있는 미르탄 마을.
해가 가라앉았지만, 장인들은 오히려 활기를 얻은 듯 더 격한 불꽃을 일으키고, 온 힘을 다해서 망치를 두드렸다.
쩌어어어엉!
발칸은 천둥 같은 망치 소리를 들으며 연초 연기처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빌어먹을 검이야.”
그는 피가 응고된 듯 검붉은 빛을 띤 흑검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금탄 세 개의 열기까지 견디면 어떻게 하라는 건데!”
발칸이 솥뚜껑처럼 두꺼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답이 없구나. 답이 없어!”
금탄은 양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온 정성을 다해서 숯 백 개를 만들면 그중 하나가 금탄이 될까 말까 한데, 세 개나 넣었음에도 겉면조차 녹이지 못했다.
“그냥 이대로 부숴버리는 게 낫겠어!”
발칸은 진심이라는 듯 벽면에 걸쳐두었던 거대한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 그만두시오!”
흑검의 저주를 풀기 위해 야수연맹에서 파견된 주술사 파시론이 벌떡 일어났다.
“아예 그대로인 건 아니지 않소!”
파시론은 멈추라고 말하며 천천히 두 손을 저었다.
“금탄으로 열기를 일으켜주신 덕분에 흑검에 깃든 저주를 조금이나마 지워낼 수 있었소. 피의 저주라는 두꺼운 성벽에 큼지막한 흠집을 새긴 것이나 다름없소!”
그는 방법은 알았으니, 같은 수를 사용하면 언젠가 흑검의 저주를 깰 수 있을 거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게 쉽지 않다니까!”
발칸이 흑검을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금탄은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오. 거기다 해주를 진행하던 주술사들도 모조리 앓아누웠잖소!”
파시론과 야수연맹의 주술사들은 금탄의 열기에 자극받은 흑검 위로 해주의 술법을 운용했다.
처음에는 잘 되는 듯 보였지만, 흑검이 지닌 지독할 정도의 혈기에 오히려 주술사들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내상을 입기는 했지만, 심각한 상처까지는 아니오. 조금만 회복하면 다시 주술을 운용할 수 있을 거요.”
파시론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후우….”
발칸은 침착한 파시론의 모습에 안정을 찾은 듯 짧게 숨을 골랐다.
“지금 저주가 얼마나 남은 거요?”
발칸이 손목을 위아래로 돌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9할…. 우리가 해제한 건 1할 정도에 불과하오.”
파시론은 본인이 말하고도 민망하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오! 작지만 저주에 균열을 일으켰으니, 다음에는 아예 벽을 부술 수도 있을 것이오!”
그는 믿어달라며 앞으로 손을 모았다.
“그냥 이대로 부수면 안 되나?”
발칸이 입술을 씹으며 다시 망치를 잡았다.
“그, 그러지 마시오!”
파시론이 다급하게 양손을 펼쳤다.
“지금 그 검은 잠에 빠진 상태요. 혹여나 자극해서 깨어나게 된다면 피바람이 불게 될 것이오!”
그는 절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답답하구만! 답답해!”
발칸이 들고 있던 망치를 뒤로 던져버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느 세월에 금탄을 만들고, 어느 세월에 그 녀석을 회복시킬지….”
그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미, 미안하오.”
파시론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당신한테 화가 나는 게 아니오. 아리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짜증이 날 뿐이지.”
발칸은 파시론이 사과할 이유는 전혀 없다며 손을 저었다.
“아리스는 흑검의 해주를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힘을 회복할 준비를 마쳤다더군.”
그가 지그하르트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우리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알아서 움직인 것을 보면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지. 그 망나니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서 그저 답답한 거요.”
발칸은 아리스의 우울했던 눈빛을 떠올리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이해하오….”
파시론은 발칸이 어떤 기분인지 알겠다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맹주님도 아직 본신의 무력을 회복하지 못하셨소. 본인은 괜찮다며 웃고 있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오.”
그는 누구보다도 상실감이 클 텐데, 모두에게 웃어주는 오그람을 떠올리며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으음….”
발칸은 파시론의 이야기에 공감한 듯 느릿하게 눈을 내리감았다가 떴다.
“어쩔 수 없지. 다시 금탄을 만들어 보겠소. 조금 오래 걸리겠지만….”
그는 결국 이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다며 입맛을 다셨다.
“고맙소.”
파시론이 믿어줘서 고맙다며 허리를 굽혔다.
“고맙기는! 여기까지 와서 도와주는 댁들이 더 고맙지!”
발칸은 속풀이를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대신 오늘은 술이라도 함께 하는 게 어떻겠소?”
“좋소. 이번에는 내가 이겨보겠소.”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옅게 웃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우우웅!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흑검이 사이한 검명을 흘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이게 무슨….”
발칸과 파시론은 강렬한 진동을 일으키는 흑검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금탄의 열기를 가하고, 주술을 휘감았을 때도 저런 모습은 보인 적이 없었다.
“물러나시오!”
파시론이 두 손을 모았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회색 연기가 솟아 나와 흑검을 휘감았다. 적의 기운을 옥죄이는 절성의 주술이었다.
파아아아앙!
하지만 흑검은 파시론의 주술에 걸린 상태에서도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며 사방으로 검붉은 혈기를 뿜어냈다.
“거, 검이 깨어났소! 당장 나가시오!”
파시론이 공방에서 나가라고 외치며 발을 굴렀다.
“파시론!”
“나는 괜찮소! 당신이 먼저 나가야 나도 나갈 수 있소!”
그는 본인은 괜찮으니, 먼저 문으로 나가라고 외쳤다.
“젠장!”
발칸이 이를 악물고 공방의 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흑검이 일으킨 검붉은 기운 때문에 문과 벽에 다가갈 수가 없었다.
“망할 놈의 검이!”
발칸이 혈기가 타오르는 벽을 향해 대형 망치를 던졌다.
파지지지직!
혈기는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망치를 아예 분질러 버렸다.
“나갈 수 없소!”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붉은 혈기가 공방 전체로 퍼지며 자신과 파시론이 설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조,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주술사들이….”
파시론의 손이 그의 목소리처럼 떨려온다. 무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
발칸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는 공방의 천장과 벽을 보며 탄식을 흘렸다.
‘이렇게 죽는 건가?’
여러 가지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 첫 번째 검을 만들고 혼자 울었던 일, 살인마에게 검을 만들어주고 후회했던 일, 진천검의 마지막을 아쉽게 보냈던 일까지.
하지만 지금 자신의 가슴에 떠오른 검은 하나뿐이다.
제천검.
라온이 대륙의 정점에 설 때까지 그 아이의 검을 다져주고 싶었는데, 이리 죽게 된다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아니, 너는 내가 없어도 잘할 수 있겠지.’
발칸은 숯가마에서 처음 만났던 어린 시절의 라온을 떠올리며 시원하게 웃었다.
‘라온. 그때의 너처럼 절대 꺾이지 말거라.’
그가 죽음을 생각하며 눈을 내리감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공방의 문과 벽이 무너지며 노을빛 머리카락이 파도처럼 찰랑거리는 큰 키의 여성이 들어왔다.
“어….”
발칸은 거친 걸음을 다가오는 시원한 외모의 여성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아리스? 네가 왜 여기에….”
공방의 문을 부수고 들어온 사람은 아리스였다. 지그하르트에서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던 그녀가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이에요.”
아리스가 싱긋 웃으며 발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역시 여기에 있었네.”
그녀는 파시론의 주술에 걸린 상태에서도 날뛰는 흑검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뭐?”
“이 녀석이 절 부르더라구요.”
아리스는 흑검이 본인을 이곳으로 이끌었다며 픽 웃었다.
“불렀다고…?”
파시론이 아리스와 흑검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무, 물러나시오! 지금 이 검은 당신의 영혼을 마저 삼키고, 진정한 마검으로 태어날 생각이니까!”
그는 그런 상황이 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며 악을 질렀다.
“지금도 당신의 존재를 느끼고, 이렇게 날뛰고 있는 것이오!”
파시론은 주술의 올가미로 마검을 밀어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하얀 이빨 사이로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둘 다 물러나세요. 여기는 곧 무너질 테니까.”
아리스가 발칸과 파시론에게 공방 밖으로 나가라고 손짓했다.
“아, 아리스?”
“걱정 마세요. 지금의 저는 이 녀석이 찾을 때와는 다르니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깨어난 이후 이 흑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영혼이 이어진 것처럼 흑검은 눈을 뜨나, 감으나 언제나 자신을 불렀다.
그 목소리는 유혹이자, 협박이었고, 또 시프를 떠올리게 만드는 과거의 저주였다.
무리가 갈 정도로 육체 수련을 하며 억지로 놈의 유혹과 협박을 견뎠는데, 이제는 참을 필요가 없었다.
“붙어보자. 망할 검아.”
아리스가 이를 드러낸 채 흑검을 잡았다.
쿠와아아아아아!
흑검에 손이 닿자마자, 칼날 위로 무시무시한 혈기가 타올랐다.
단숨에 육체를 집어삼키고, 영혼을 잠기게 할 정도로 거대하고도 짙은 기운이었다.
후우우우욱!
아리스는 손을 통해서 스며드는 흑검의 혈기를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녀의 피부가 터질 것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아리스!”
“안 돼!”
발칸과 파시론은 전신의 핏줄이 돋아나는 아리스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괜찮아요.”
아리스는 놀란 두 사람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손짓을 하며 웃었다.
“이걸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흑검의 혈기가 자신의 마나 회로에 가득 찼을 때 단전 속 오러를 개방했다.
드래곤 하트의 기운을 정제하여 얻은 푸른 오러가 칼날처럼 쏘아지며 끝없이 밀려드는 마나 회로 속의 혈기를 찢어발겼다.
‘이제 내 차례겠지?’
아리스는 몸에 침투한 혈기를 모조리 지워버린 후 역으로 흑검을 노렸다.
우우우우우웅!
파도처럼 요동치는 푸른 오러를 흑검 내부로 밀어 넣었다.
후우우우욱!
흑검의 저주와 자신이 영혼이 공명하며 심상의 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터운 혈기의 벽이 느껴진다. 다만 우측 구석에 꽤나 큰 균열이 새겨져 있었다.
‘저쪽이다.’
아리스는 저 균열이 흑검의 약점이라는 것을 깨닫고, 극성으로 끌어 올린 오러를 쏘아냈다.
쿠구구구구!
저주를 보호하는 혈기의 벽이 천천히 깨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흑검은 이대로 쓰러지지 않겠다는 듯 장대한 혈기의 불꽃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아!
검붉은 불꽃은 푸른 오러를 집어삼키며 자신의 영혼을 압박했다.
‘내가 여기서 죽을 것 같으냐!’
아리스가 이를 악물고, 영혼의 격을 개방하며 지닌 오러를 모조리 쏟아냈다.
쿠구구구구!
아리스의 오러와 흑검의 혈기는 아귀처럼 서로를 잡아먹으며 점점 더 몸집을 불렸다.
다만 지금 싸우는 공간 자체가 흑검의 영역이었기에 천천히 아리스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흑검은 이대로 아리스의 영혼을 집어삼키겠다는 듯 끈적한 혈기를 일으켜 그녀가 서 있는 공간을 장악해 나갔다.
‘하아아….’
아리스가 흑검이 일으키는 격렬한 혈기의 파동을 느끼며 혀를 씹었다.
‘위험하군.’
흑검도 제약이 걸려 있기에 본래의 힘을 낼 수 없지만, 지금의 격으로 자신을 영혼을 짓누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주술에 균열이 생기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모든 것을 내보이지는 않았어.
자신은 북망산을 오르며 육체만을 단련하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 아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고통 그리고 이 일을 벌인 이들에 대한 복수심을 그리며 끝없이 정신을 다듬었다.
‘거기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라온 덕분에 얻은 순도 높은 오러가 남아 있었다. 그 고맙고도 짙은 기운을 끌어냈다.
파아아아아아!
이전보다 더 성장한 영혼의 격이 푸른 오러와 함께 피어나 찬란한 광휘를 터트렸다.
후우우우욱!
아리스의 영혼을 잡아먹을 것처럼 밀어닥치던 혈기가 그녀가 일으킨 푸른 빛 앞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찌지지지직!
흑검은 밀리는 와중에도 끝까지 반항하려는 듯 하늘과 땅에서 검붉은 혈기를 쏟아냈다.
“이 망할 놈의 검!”
아리스가 바드득 이를 갈며 발을 굴렀다. 바다와 같은 푸른 기운으로 흑검의 사이한 기파를 가라앉히며 앞으로 나아갔다.
“네가 가진 건 내 힘이다! 돌려주든가! 닥치고 따라와!”
말을 듣지 않는다면 이대로 부러뜨릴 거라며 두 손으로 흑검을 잡았다.
쿠와아아아아아!
혈기와 오러가 끝없이 경합하며 공방의 벽이 무너지고, 땅이 가라앉는다.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에 사방으로 검붉은 스파크가 튀었다.
쿠와아아아앙!
검붉은 빛과 푸른빛이 교차하듯 이어지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공방과 그 주변마저 지워버렸다.
“으으윽!”
“허어….”
발칸을 보호하던 파시론이 다급하게 손을 뻗어서 하늘까지 솟아오른 연기를 지웠다.
후우우우우.
아리스는 검게 그을린 땅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그녀의 손에는 검붉은 혈기가 반쯤 녹아내린 검이 잡혀 있었다.
“망할 놈이 더럽게 말을 안 듣네. 꼭 누구처럼.”
아리스는 콧잔등을 찌푸린 채 헛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손에 잡힌 흑검은 평범한 검이 된 듯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뭐, 뭐가 어떻게 된….”
파시론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면 알잖나.”
발칸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검이 주인을 찾은 거지!”
*
*
*
날카로운 달이 차오른 밤.
카룬이 무겁고, 탁한 걸음으로 가주전의 복도를 걸었다. 그는 이 길의 끝에 있는 알현실 앞에 서서 고요히 가라앉은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둥 앞에 서 있던 로엔이 고개를 숙인 후 알현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
카룬은 로엔에게 목례를 취하고서 알현실로 들어갔다.
“왔구나.”
글렌은 푸른 달빛을 어깨에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검의 신처럼 신비롭게 보이기도 했고, 면벽을 이룬 수도승처럼 초연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
글렌은 무엇을 말해도 들어주겠다는 듯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라온과 대련을 한 후에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을 기억하십니까?”
카룬이 붉은 카펫을 밟으며 단상 앞에 섰다.
“물론이다.”
글렌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강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카룬은 어깨를 살짝 떨다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가주의 자리가 무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력으로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끝까지 따라붙어서 그 녀석과 같은 선상에. 아니, 다시 넘어서고 싶습니다.”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하며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이전이라면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하지 못할 말이었지만, 패배로 인한 성장이 자신을 바꿔놓았다.
“그 어떤 방법이라고 해도 아버지를 따르겠습니다.”
카룬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글렌을 가주가 아닌, 아버지라고 불렀다.
“흐음….”
글렌이 턱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간 쌓은 실적을 생각해 보면 수련을 도와주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그가 은은하게 내려서는 달빛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내가 도와준다고 해도 너 혼자서는 라온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글렌은 라온은 지금도 강해지고 있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군요.”
카룬이 피가 흘러내리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안 되는 건가.’
글렌의 거절을 걱정했는데, 그가 도와주어도 안 된다는 소식을 들으니, 오히려 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카룬이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어서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멍해지고 온몸에 힘이 풀려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가주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럼….”
“잠깐.”
카룬이 고개를 숙인 후 가주전을 나가려고 글렌이 손을 저었다.
“기다려 보거라. 올 사람이 있으니.”
글렌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며 문을 가리켰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누구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닙….”
카룬이 짧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을 때였다.
쿠와아아아아앙!
가주전의 문이 무너질 것처럼 거칠게 열리고, 아리스가 들어왔다.
“아리스?”
카룬이 아리스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러를 회복하고 기절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지금 깨어나 있을 줄은 몰랐다.
“아버지.”
아리스가 글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전에 말씀드린 부탁을 하러 왔어요.”
그녀는 물건을 맡겨놓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하게 허리를 폈다.
“예전의 무력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아리스는 수련을 도와달라고 말하며 턱을 치켜들었다.
“허….”
카룬이 아리스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하는 듯한 태도를 보니,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카룬.”
글렌이 옥좌에서 일어나며 카룬의 이름을 불렀다.
“말했듯이 너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라온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검붉은 검을 어깨에 걸친 아리스를 보며 가느다란 웃음을 흘렸다.
“둘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해보겠느냐?”
글렌의 말을 들은 카룬의 눈동자 위로 붉은 섬광이 번뜩였다. 그는 찰나의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입술을 뗐다.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