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72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72화(972/990)
제972화
“라온이 자네의 딸을 바꿨다?”
글렌이 청발의 남성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게 무슨 뜻이지?”
“우리 딸이 능력이 출중한 만큼 성격이 뒤틀려서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는데, 저 친구를 만나고 나서부터 많이 바뀌더군요.”
청발의 남성이 손을 곱게 펼쳐서 올려서 라온을 가리켰다.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먼저 나와봤습니다.”
그는 정말 인사를 하러 왔을 뿐이라며 옅은 미소를 흘렸다.
“하아, 저 미친….”
체임버는 익숙한 상황인 듯 이마에 손을 올린 채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음….’
라온이 눈앞에 선 청발의 남자를 보며 눈썹을 내렸다.
‘이 남자가 발카르의 국왕이라고…?’
바다를 담아내고 있는 듯 화려한 청발이 인상적인 남자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에 거대한 마나를 품고 있어서 발카르가 숨기고 있는 비밀 무기라고 생각했는데, 국왕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크산토스 루인 발카르라고 합니다.”
발카르의 국왕은 정말 왕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왔다는 듯 짧게 목례를 취했다.
“…지그하르트의 광풍전주 라온 지그하르트입니다.”
라온이 가슴에 손을 올린 채 깊게 허리를 굽혔다.
‘나한테 고개를 숙일 줄이야.’
아무리 아버지로서 왔다고 해도 발카르의 왕이라는 사람이 먼저 고개를 숙일 줄은 몰랐다.
당황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갈라졌다.
“제이나가 여러모로 실례를 저질렀던데, 끝까지 챙겨주어서 고맙습니다.”
크산토스는 자신 덕분에 제이나의 성향이 올바른 쪽으로 바뀐 것 같다며 웃었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라온이 멍하니 크산토스를 바라보다가 떨리는 손을 저었다.
‘당혹스럽군.’
국왕으로서의 위치와 명예가 있는데, 한참 어린 자신에게 먼저 인사를 해오고, 말을 높일 줄은 몰랐다.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딸에게 들었던 것보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시는 것 같군요.”
크산토스가 연한 미소를 그리며 입맛을 다셨다.
“왕녀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뒷일 따위는 생각도 안 하고 들이받는 무식한 멧돼지라고 하더군요.”
그는 직접 만나니 멧돼지가 아니라, 하늘을 노니는 용처럼 보인다며 턱을 까딱였다.
-용은 무슨!
라스가 아니라는 듯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요놈은 다 들이박고 보는 멧돼지가 맞느니라! 욕심은 그 이상으로 많고!
녀석은 좋게 봐서는 안 된다며 두 팔을 팔딱였다.
“…사람을 가릴 뿐입니다.”
라온이 라스를 밀어내고서 시선을 내렸다.
“사람을 가린다?”
크산토스가 푸른 빛을 띠는 머리카락을 넘기며 웃음을 터트렸다.
“본래라면 좋지 않게 들려야 하는 말이지만, 광풍전주가 꺼내니 신기하게도 나쁘지 않군요.”
그는 말보다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 아빠? 아니, 아바마마!”
뒤늦게 올라온 제이나가 크산토스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왜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
그녀가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크산토스에게 달려갔다.
“우리 딸을 바꾼 게 내가 아니라, 외간 남자라는 게 열받아서 한 번 보려고 왔지.”
크산토스는 단순한 인사라고 말하며 제이나의 등을 두드렸다.
“아니이이이이이!”
제이나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비명을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니에요! 아니야!”
그녀는 본래의 성격으로 돌아간 듯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저었다.
“빠, 빨리 가세요! 다들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제이나가 크산토스의 등에 손을 얹고, 왕궁 쪽으로 밀었다.
“회의는 재미없잖아. 광풍전주. 아저씨, 아줌마들은 놔두고 우리끼리 맥주 한잔 어때요?”
크산토스가 같이 가자는 듯 맥주를 마시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망할 전하….”
체임버가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린 채 이를 꽉 깨문 듯한 음성을 흘렸다.
“쪽팔리니까. 그만하고 회의장으로 가시지요?”
그녀는 폭발하기 직전인 듯 이마 위로 두꺼운 힘줄이 돋아나 있었다.
“으음….”
크산토스도 체임버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듯 마른침을 삼켰다.
“노, 농담 좀 해봤어요. 너무 진지하시네.”
그는 다 장난이라는 듯 손을 젓고서 뒤로 물러섰다.
“가주님. 가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크산토스는 체임버의 눈빛을 피하려는 듯 슬쩍
글렌의 옆으로 다가갔다.
“알겠네. 헌데….”
글렌이 크산토스의 뒤를 따라가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광풍전주가 왕녀를 어떻게 바꿨다는 거지?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그가 궁금하다는 듯 작게 까딱였다.
“알려드릴까요?”
크산토스가 귀를 쫑긋거리며 발걸음을 늦췄다.
“조금 궁금해서 말이야.”
글렌은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궁금하다는 듯 길쭉하게 입맛을 다셨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애가 버릇이 좀 많이 없었습니다. 세상이 다 제 것인 줄 알고 있을 정도였죠.”
“그렇군.”
그는 빠르게 라온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바로 맞장구를 쳤다.
“막내라 아끼기도 했고, 능력도 좋아서 너무 오냐오냐 키웠죠. 저 성격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카멜룬의 지하 경매장에서 광풍전주에게 크게 데였더군요. 그때부터 제이나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제이나가 제발 그만하라는 듯 크게 발을 굴렀다.
“사실 그 이후에 성격이 더 포악해졌지만, 다행히 광풍전주와의 만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과 부딪칠 때는 아예 자존심이 무너져서….”
크산토스는 제이나가 당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놓으며 즐겁다는 듯 웃었다.
“으으으….”
제이나가 분한 듯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지만, 글렌과 크산토스의 대화를 막을 배짱은 없었다.
“저, 저기 그게….”
제이나는 라온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후드를 쓰고 시선을 돌렸다.
“과거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라온이 제이나를 보며 살짝 턱을 내렸다.
“…못난 짓을 했던 건 사실이니까요.”
제이나는 민망할 수밖에 없다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지금도 못난 사람이었다면 부끄러워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라온은 입술을 짓씹는 제이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당신은 과거의 당신과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과거를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그 못남에서 빠져나온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됩니다.”
라온이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서 제이나의 앞에 세웠다.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변하는 건 그런 성향을 타고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지만, 극적으로 변한 사람은 오직 카룬 한 명뿐이다.
제이나도 나름대로 변화를 이뤘으니, 이제는 부끄러운 과거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아….”
제이나는 자신의 말에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뭐,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 처음에는 매 순간 싸대기가 마려울 지경이었다고.”
마르타가 아직도 마음에는 안 들지만, 변한 부분은 인정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주님의 말대로 지금은 훌륭한 왕녀님이 맞습니다. 흑탑과의 전쟁에서도 끝까지 수하들의 앞에 서 있었으니까.”
버렌도 제이나의 변화가 놀랍다며 웃었다.
“표정이 좋아….”
루난은 다른 것보다도 제이나의 안색이 밝아졌다며 고개를 꾸벅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얼굴이 무서워서 가까이 가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지셨어요.”
도리안이 배 주머니를 긁으며 시원한 웃음을 흘렸다. 자신과 함께 제이나를 가장 먼저 만났기에 더욱 놀라운 것 같았다.
“아….”
제이나는 라온과 광풍전 검사들의 달라진 평가에 놀란 듯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가, 감사합니다.”
그녀는 투명해진 눈동자를 숨기며 고개를 숙였다.
“왕 놈 때문에 열받았는데, 애들 보니까 좀 풀리네.”
체임버는 자신들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정화된다며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라온이 체임버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괜찮다고 하고 싶다만, 안 괜찮아.”
체임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무리를 하기는 했나 봐. 상단전이 회복되질 않네.”
그녀는 쉽게 회복될 상처가 아닌 것 같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올가. 지금의 너라면….”
라온이 광풍전 검사들과 함께 있는 올가를 돌아보았다.
“소용없어.”
체임버가 올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 상처는 육체가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야. 그것도 내가 직접 입혔기에 신성력으로는 지워지지 않아.”
그녀는 몬티로에서 육체의 상처를 고쳐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웃었다.
“체임버 님의 말씀이 맞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올가가 아쉽다는 듯 거칠게 혀를 찼다.
“그리고 남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내 힘으로 회복해야 이전의 경지로 복귀할 수 있을 거야. 초월은 그런 영역이니까.”
체임버는 남의 도움을 받는 건 좋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우리도 들어가자.”
그녀는 이제 회의장에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듯 앞서가는 크산토스와 글렌을 가리켰다.
“제, 제가 안내할게요.”
제이나가 소매로 눈가를 닦은 후 다시 앞으로 나갔다.
라온은 제이나를 따라서 붉은 비단이 커튼처럼 내려오는 거대한 백색 건물로 들어갔다.
내부의 복도에는 노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듯한 벽과 천장이 길게 펼쳐져 있어서 화려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도착해 있어. 중립 세력을 포함한 대회의는 사흘 후에 열릴 거고.”
체임버는 사흘 뒤에 열리는 회의가 진짜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럼 들어갈까?”
“잠시만요.”
라온이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너희는 밖에서 쉬고 있어.”
광풍전 검사들에게 휴식을 지시했다.
“예!”
“그리고….”
라온이 크게 입을 벌려서 대답하는 검사들을 보며 손가락을 올렸다.
“내가 아침에 했던 말은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검사들은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타. 날뛰어도 좋아.”
“정말로?”
마르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격한 숨을 토해냈다.
“그래. 내가 책임질 테니까. 마음대로 해.”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손을 내렸다.
“그 말 후회할지도 몰라. 가자!”
마르타가 루난을 어깨에 걸친 채 왕성 밖으로 달려 나갔다. 훈련을 하면서 쌓인 게 많은 것 같았다.
“야! 아니, 전주님?”
버렌이 눈을 부릅뜬 채 라온과 마르타의 등을 번갈아 보았다.
“괜찮으니까. 너도 즐겨.”
라온은 피식 웃고서 회의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오오오오오!
대륙을 형상화 한듯한 거대한 원탁 앞에 여섯 개의 옥좌가 세워져 있었고, 그 자리에는 오황의 수장과 크산토스가 앉아 있었다.
“라온! 드디어 왔구나!”
가장 먼저 자신을 맞아준 건 야수연맹주 야왕 오그람이었다.
“소식은 들었다! 네가 저 늙은 마법사를 구했다고!”
오그람은 정말 잘했다고 외치며 솥뚜껑처럼 두꺼운 손을 흔들었다.
“형제여! 나는 너를 믿고 있었다!”
“볼 때마다 놀라게 만드는군.”
그의 뒤에 서 있는 가로나와 스란 부족장도 반갑다는 듯 손을 펼쳤다.
“주인공은 언제나 늦게 오는 법이라더니.”
레크로스 국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니, 아직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닌 것 같았다.
“크게 신세를 졌는데,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가서 죄송합니다.”
삼왕자 그리어가 미안했다는 듯 깊게 허리를 굽혔다.
“이제는 아예 바라보기도 힘든 존재가 되었군요. 부럽다는 말도 나오지 않아요.”
보리니 키튼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
마탑주 라리안이 로브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흘렸다.
“라온 님! 오랜만입니다! 저 이 책도 세 권씩 샀습니다! 감상용, 소장용, 포교용으로!”
반면 몸집이 더 커진 듯한 신번 유리아가 라온 지그하르트 전기를 흔들었다. 같은 책을 세 권 샀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환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온이 숨을 깊게 내쉰 후 원탁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광풍전주 라온 지그하르트입니다.
진지한 자리였기에 모두에게 고개를 숙인 후 셰릴과 로엔처럼 글렌의 뒤에 섰다.
“흐흠….”
글렌은 라온이 모두의 환영을 받는 게 즐겁다는 듯 아주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저 영감탱이가 이제는 숨길 생각 자체가 없구만….
라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에휴, 벌써 지치는 기분이네.”
체임버가 한숨을 내쉬고서 크산토스의 옆자리에 앉았다.
“모두 자리에 앉았으니, 지금부터 오황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크산토스는 언제 장난을 쳤다는 듯 진중한 눈빛으로 원탁을 두드렸다.
“회의도 좋다만, 그 전에 할 일이 있네.”
오그람이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라온을 바라보았다.
“이런 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해준 발카르의 마법사와 지그하르트의 검사들에게 먼저 박수를 보내는 게 옳지 않겠나!”
그는 두 세력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런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며 발을 굴렀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글렌님 덕분에 목숨도 구할 수 있었으니까.”
레크로스 국왕이 부드럽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오그람 크산토스, 체임버 그리고 마탑주 라리안까지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음….’
라온이 귓가를 울리는 따스한 박수 소리를 들으며 손 끝에 힘을 주었다.
‘이건 또 느낌이 다르군.’
왕도에서 발카르의 국민들에게 환호받을 때도 기뻤지만, 대륙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약동했다.
“주인공도 감격한 듯하니, 이제 시작하죠.”
크산토스가 라온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원탁에 손을 얹었다. 그의 눈빛이 예리한 도끼처럼 뚝 떨어져 내렸다.
“사마를 모조리 으깨버리기 위한 회의를.”
*
*
*
발카르 왕도 외곽에 세워진 주점, 갈색 시약은 축제 기간답게 대낮임에도 발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다만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건 발카르의 주민들만이 아니었다. 회의에 초청받아서 온 중립 세력의 사람들도 낮부터 술을 즐기고 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봤어?”
“봤지. 자연스럽게 얼굴에 눈이 가던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생겼지?”
“난 정면에서 봤는데, 천사라는 놈들도 그렇게는 안 생겼을 것 같더라.”
“외모도 외모지만, 기세가 장난이 아니던데? 보고 있는 것만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그 뒤에 서있던 광풍전 검사들도 무언가 격이 달라 보였어….”
주점에 있는 사람들은 조금 전에 왕궁으로 들어간 라온과 광풍전의 이야기하며 헛바람을 삼켰다.
“오늘 광풍전주를 직접 보니까. 그가 흑탑주를 죽였다는 소문도 믿어지네.”
붉은 로브의 마법사가 경악스러운 기파였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우리가 제일 잘 알잖아. 흑탑주가 어떤 괴물인지.”
푸른 로브의 마법사는 아직 믿을 수가 없다며 눈매를 찌푸렸다.
“그 말이 맞아.”
왼쪽 가슴에 붉은 매가 새겨진 무복을 입은 적발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광풍전주가 강한 것 확실해. 천재라는 단어와도 잘 어울리지. 하지만 흑탑주를 죽인 건 달라.”
그가 눈매를 깊게 좁혔다.
“흑탑주는 결국 체임버 님도 잡지 못한 괴물이다. 그런 놈이 초월의 초입에 있던 라온 지그하르트에게 당한다고? 말이 안 되는 일이지.”
흑발의 남자는 신뢰성이 낮은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흑탑주도 힘이 빠졌으니까….”
“흑탑주는 언제나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놈이야. 체임버님이 끝을 냈다면 몰라도 광풍전주가 끝냈다는 건 믿기 힘들지.”
그는 소문을 다 믿어서는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무조건 믿어서는 안 돼. 흑탑주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은빛 갑옷을 두른 기사가 짧게 입맛을 다셨다.
“그럼 왜 흑탑주가 죽었다고 말하는 거지?”
“그런 대형 작전이 실패했다는 게 들키면 문제가 커지니까.”
흑발의 남자는 외부에 퍼진 소문만 듣고 길을 결정해서는 안 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흑탑주의 시체는 없었지.”
흑발 남자의 말에 이끌린 백의의 마법사가 침음을 삼켰다.
“맞아. 광풍전주의 불꽃에 전부 타버렸다고 했어….”
“그걸 태우는 게 이상하잖아. 시체를 보여주기만 해도 오황 전체의 사기가 오를 텐데, 놈들의 기세는 뚝 떨어지고.”
흑발 남자는 이상하지 않냐며 고개를 저었다.
“음, 확실히 무조건 믿기는 좀 그렇지.”
“우리도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거기다 우리가 오황 쪽에 붙으면 언제 사마가 공격해 올지 몰라.”
중립 세력의 무인과 마법사들은 그동안 당했던 것이 떠오른 듯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라온 지그하르트가 정말 흑탑주를 잡았을 수도 있어. 다만 우리는 그게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해.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니까.”
흑발의 남자는 머리를 잘 굴려야한다고 말하며 손가락을 세웠다.
“솔직히 라온 지그하르트는 인정하겠지만, 광풍전? 거기는 영 아니야. 애들의 눈빛만 봐도 알잖아. 다들 멍해. 경지는 높지만 다들 어떻게 싸우는지를 모르고 있다고.”
그가 라온에 이어서 광풍전까지 끌어내리려고 할 때였다.
“그럼 네가 알려주지 그래?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번들거리는 흑발흑안. 마르타가 악마보다 사이한 미소를 그리며 흑발의 남자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나, 나찰검! 잠깐만!”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마르타는 흑발의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그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나와!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