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89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89화(989/990)
제989화
뚝. 뚝. 뚝.
검은 창날이 멀린의 가슴을 꿰뚫었고,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핏물이 창대를 따라 흘러내려 수풀을 붉게 적셨다.
“아….”
라온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을 감은 멀린을 보며 손끝을 떨었다. 그녀의 숨소리와 생기가 급격히 가라앉고 있었다.
‘멀린….’
검은 창대에 꽂힌 채 숨을 멈춘 멀린을 보자, 리메르의 마지막이 생각났다.
끝까지 자신들을 걱정하며 웃어주던 스승의 죽음이 떠오르며 뇌리가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찌지지지직!
자신의 육체에 라스가 아닌, 아예 다른 분노의 신이 깃드는 느낌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분노가 차오르며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고 싶어졌다.
-멍청한 것아!
라스가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듯 두 손으로 어깨를 내리쳤다.
-아직 죽지 않았느니라!
녀석은 멀린이 완전히 죽은 게 아니라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뭐…?’
라온이 거칠게 차오른 숨을 내뱉으며 다시 멀린을 살폈다. 아주 미세하지만, 그녀의 호흡이 이어지고 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마창회의 주인이자, 귀살창이라는 이명을 지닌 초월자 케른이 자신을 알아본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역시 이 계집과 이어져 있었나?”
귀살창은 그럴 것 같았다며 멀린을 꿰뚫고 있는 창대를 가늘게 흔들었다. 그녀에게서 흐르는 핏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다만 조금 늦었군. 방금 끝났거든.”
그는 아쉽게 되었다며 창대로 흘러내린 멀린의 보랏빛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너 이 새끼….”
라온이 폭발적인 살기를 일으키며 귀살창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라, 라온….”
멀린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아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시간이 멈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렸지만,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온 거야….”
멀린은 마창에 꿰뚫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힘겹게 웃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자, 심장이 깨질 것처럼 아려왔다.
“허? 이 상태에서 말을 한다고?”
귀살창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실력은 아쉬웠지만, 의지와 끈기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그는 한때지만 에덴의 간부다운 모습이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떠나….”
멀린은 본인을 놔두고 도망치라고 말하며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눈과 귀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제, 제발….”
멀린은 제발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생기가 더 급격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하실 건가?”
귀살창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서 장난을 치듯 멀린을 꿰뚫고 있는 창대를 빙그르 돌렸다.
“…….”
라온은 멀린을 비웃고 있는 귀살창의 눈동자를 보며 입술 안쪽을 물어뜯었다.
-정신 차리거라. 아직 살아 있느니라.
라스는 지금도 멀린이 죽지 않았다며 눈썹을 내렸다.
‘나도 느끼고 있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멀린은 가슴이 완전히 꿰뚫렸음에도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귀살창에게서 구해만 낸다면 그녀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창에 꽂혀 있어서 구하기는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해보라고!
‘그래. 지금은 분노에 머리를 적실 때가 아니지.’
리메르 때와 같은 실수를 또 저지를 수는 없었다. 글래시아의 냉기를 상단전으로 보내서 머리에 가득 찬 분노를 밀어냈다.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돼.’
자신이 아무리 빨라도 멀린을 창대에 꽂고 있는 귀살창보다는 느릴 수밖에 없다. 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멀린을 구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네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라온은 욕이 튀어나오려는 혀를 가라앉히며 귀살창에게 말을 걸었다.
“보고도 모르나?”
귀살창이 우습다는 듯 손가락을 돌려 주변을 가리켰다.
“나는 사마에 붙었다. 그중에서도 에덴과 함께하고 있지.”
그는 멀린을 쫓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며 창대를 바닥으로 기울였다.
투욱!
멀린은 스스로 깨어날 수 없는 듯 본인을 뚫은 창날이 땅에 내려왔음에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희극제를 따라 신주오령을 만들면 육황오마와 시원하게 붙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계속 눈치만 보더라고. 그래서….”
귀살창이 발끝을 들어 멀린의 머리를 밟았다.
“신주오령을 나와 사마에 붙었다. 오황과 제대로 싸워보고 싶었거든.”
“왜 오황이 아니라, 사마로 간 거지…?”
라온은 최대한 멀린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짧은 숨을 내뱉었다.
“오황이 숫자가 더 많잖아? 그러면 나와 싸울 놈도 더 많다는 뜻이니, 당연히 사마를 골라야지.”
귀살창은 더 많은 고수와 싸우고 싶어서 사마에 붙었다며 히죽거렸다. 말 그대로 싸움에 미친 인간이었다.
“에덴에서도 지루하게 대기만 하고 있었는데, 이 계집을 잡아달라는 부탁을 하더군 알아서 길을 막아주니, 나는 창만 찌를 수 있어서 편했지. 물론….”
귀살창이 멀린의 허리를 발끝으로 차며 눈썹을 내렸다.
“마법사라서 손맛은 없었어. 약하기도 했지만.”
그는 만족스럽지 않은 전투였다며 멀린이 누워있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럼….”
라온이 귀살창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내가 상대해주마. 대신….”
“이 계집을 달라는 건가?”
귀살창은 자신의 속이 다 보인다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내가 그럴 필요가 있을까? 네 꼴을 보면 이 계집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덤벼들 것 같은데?”
그는 자신이 억지로 가라앉힌 분노를 느끼고 있다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싸움을 좋아한다고 했지?”
라온이 자신의 뇌리를 헤집으려는 분노를 내리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분노에 휩싸여서 마구잡이로 칼질을 하게 된다면 또 흥이 떨어질 텐데?”
멀린에 대한 호소를 해도 소용없을 게 뻔하기에 싸움에 미쳐 있는 귀살창의 갈증을 건드렸다.
“호오?”
귀살창은 흥이 동한다는 듯 가라앉아 있던 눈동자를 은은하게 번뜩였다.
“지금 멀린을 내어준다면 전력을 다해서 네놈을 상대 해주마. 아니, 네게 체력과 오러를 회복할 시간도 주겠다.”
라온은 귀살창의 호승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소모된 힘과 체력을 회복시킬 시간도 주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제 라온 지그하르트의 이름으로 맹세하마.”
멀린을 데리고 도망치지 않고, 이 자리에서 끝을 보겠다고 말하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다른 건 다 됐고….”
귀살창의 관자놀이 위로 힘줄이 돋아났다.
“내게 힘과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주겠다고 한 건가? 너 따위가?”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썹을 구겼다.
“그래. 너도 지금은 전력이 아니니까.”
라온은 귀살창의 갑옷에 새겨진 여러 가지 마법의 흔적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는 쉬웠다지만, 실제로는 꽤 긴 추적과 싸움을 해왔던 게 분명했다.
“하! 도발하는 재주가 있네. 좋다! 어차피 죽을 마법사에게는 흥미 없으니까.”
귀살창은 재밌겠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다만 그 전에….”
그가 멀린의 품속에서 검붉은 빛을 띤 두 쌍의 방울을 꺼냈다.
“이건 꼭 회수하라고 해서 말이야.”
귀살창은 멀린에게서 꺼낸 방울을 본인의 품속에 넣으며 입맛을 다셨다.
“받아라.”
그는 비웃음을 흘리며 자신을 향해 멀린을 꽂아두고 있는 창대를 내질렀다.
파아아아아앙!
창대의 유연한 움직임에 따라 창날에 박혀 있던 멀린이 힘없이 튕겨 나왔다.
쿠우우웅!
라온은 귀살창의 공격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신검과 마검을 내린 채 멀린에게 달려갔다.
파아아아앙!
귀살창은 멀린을 내어주자마자, 자신의 머리를 향해 매섭게 세운 창날을 내리꽂았다.
콰드드드득!
라온은 오른손으로 멀린을 부드럽게 받으며, 왼손의 마검을 들어 귀살창이 내리친 창격을 받아냈다.
치이이이익!
멀린에게 갈 충격을 막기 위해서 글래시아의 냉기를 부채꼴로 펼쳐서 육체가 흔들리는 것을 막았다.
“좋군. 합격이다.”
귀살창은 약속을 지킬 만한 실력은 있어 보인다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자존심이 상했음에도 전력의 싸움을 원하는 듯 오러와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영약을 먹고 선 채로 연공을 시작했다.
-하!
라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뱉었다.
-정말 구해내다니, 네놈의 주둥이는….
녀석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그런 것에 감탄할 때가 아니야.’
라온은 귀살창의 움직임을 확인하자, 뒤로 물러나서 멀린을 살폈다.
쿠르르르륵.
창날에 뚫린 가슴의 상처에서 핏물이 끝없이 쏟아져 자신의 제복까지 적셨다. 검은 제복이 붉은빛으로 보일 정도였다.
‘아직 살아 있어.’
멀린은 귀살창의 창격에 가슴이 부서졌음에도 아직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물론 죽음을 향해 내달리고 있기에 최대한 빨리 조치를 해야 했다.
후욱.
라온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멀린의 가슴에 두 손을 얹었다. 지금까지 쌓아두었던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을 검게 그을린 듯한 상처에 퍼부었다.
파아아아아아!
성스러운 광채가 아닌, 은은한 빛이 멀린의 가슴을 적시자, 그녀의 상처가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
극심한 출혈이 멈추고, 새살이 돋아나는 모습은 신기나 다름이 없었다.
-아직 한참 모자라느니라! 더 뽑아내거라!
라스는 그럼에도 치유력이 부족하다며 손을 휘저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라온이 입술을 씹었다.
‘남은 게 많지 않아.’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을 대부분 소모했다. 남아 있는 힘으로 멀린을 치유하기에는 무리였다.
‘마지막 방법을 쓸 수밖에….’
라온은 얼마 남지 않은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 속에 영혼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나태>와 <색욕>의 권능을 담았다.
후우우우우욱!
일반적인 신성력이라면 마왕의 권능을 거부했겠지만, 자신의 신성은 어둠에서 태어났기에 마왕들의 권능을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이런 미친놈이!
라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지금보다 더 위험해질 수도 있느니라!
‘어차피 지금 회복을 못 시키면 죽어!’
멀린을 다른 곳으로 보낼 시간은 없다. 여기서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으음….
라스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낮은 신음을 흘렸다.
-…헌데 왜 나태와 색욕이나?
‘<나태>에는 수면을 취하며 몸과 정신을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어. <색욕>은 러스트와 함께 지낸 시간이 많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자신에게서 개방된 <나태>에는 수면을 취하는 동안 육체와 정신의 회복력을 높여주는 기능이 있고, 멀린은 러스트와 함께 지내며 색욕의 기운에 친숙해진 상태다.
그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두 마왕의 기운을 섞었다.
‘제발!’
라온은 멀린의 호흡과 생기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신성과 권능의 조화에 집중했다.
파아아아아아!
자신의 간절함이 먹힌 듯 멀린의 상처가 완전히 메워지고, 끝없이 쏟아지던 핏물이 멈췄다.
곧 죽을 사람처럼 피부가 창백한 것은 여전했지만, 천천히 숨소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회, 회복이 되고 있느니라!
라스는 기적이 일어났다며 두 손을 모았다.
‘아직이야.’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서 만화공의 열기로 멀린의 몸을 데워주며 그녀의 몸에 남아 있는 탁한 기운들을 태워버렸다.
‘영약도 먹이는 게 좋겠지.’
지그하르트의 보고에서 비상용으로 챙긴 영약을 꺼냈다. 멀린의 입에 넣어주기 위해서 가면을 떼려는데, 이상하게도 가면이 열리지 않았다.
‘뭐지?’
자신은 이전에 멀린의 노파 가면을 어렵지 않게 벗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힘을 주어도 가면이 벗겨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가면이 부러질 것 같았기에 영약을 잘게 쪼개서 가면 속에서 살짝 벌어진 멀린의 입에 넣어주었다.
후우우욱!
멀린의 육체에 영약의 열기가 올라오자, 가라앉았던 생기가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한숨 돌렸구나….
라스는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한 멀린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라온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천의 몬스터와 싸울 때보다 멀린을 구하는 게 몇 배는 더 힘들었다. 온몸이 물에 젖은 듯 무거웠다.
‘많이도 다쳤군.’
창에 뚫린 가슴의 상처가 너무 컸기에 다른 곳을 신경 쓰지 못했지만, 멀린의 몸에는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다.
전신에서 흘린 핏물 때문에 본래 검은색인 로브가 붉은색으로 보일 정도였다.
‘마법도… 잃었고.’
마법사는 본래 심장에 서클을 만든다. 멀린도 그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그녀가 지니고 있던 마나 서클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호오? 정말 그걸 살렸다고?”
귀살창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의술에도 재능이 있었나? 대단한데?”
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손뼉을 쳤다.
“다만 그건 고통을 늘리는 짓일 뿐이야. 어차피 다시 죽게 될 테니까.”
귀살창은 자신을 죽이고, 다시 멀린의 가슴을 뚫어낼 거라며 입맛을 다셨다.
“체력은….”
라온이 귀살창의 도발을 무시한 채 시선을 돌렸다.
“다 회복한 건가?”
“덕분에.”
귀살창은 만전이라고 말하며 창대로 땅을 내리찍었다.
그의 기파가 심장을 옥죄일 정도로 강렬하게 밀려 들어왔다. 확연한 상위 초월자의 기운이었다.
“그렇군.”
멀린의 주변으로 만화공의 불길과 글래시아의 냉기가 휘도는 방어의 진을 설치하고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시작하지.”
라온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신검과 마검을 세웠다.
“너도 체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귀살창은 괜찮겠냐는 듯 턱을 까딱였다.
“필요 없다. 어차피 결과는 같으니까.”
라온은 담담하게 고개를 젓고서 귀살창의 앞으로 다가갔다.
저벅.
그가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금빛 불꽃과 푸른 서리가 날개를 펼친 듯 뻗어 나가 숲 전체를 뒤덮었다.
“하?”
귀살창은 본인의 기파를 사납게 밀어내는 라온의 기세에 미간을 구겼다.
“소꿉장난이라도 치자는 건가?”
그는 자존심이 상한 듯 더 강한 기파를 불러왔지만, 라온의 기세는 절대 꺾이지도, 밀리지도 않았다.
“네놈에게….”
라온은 귀살창의 강대한 기파를 오로지 힘으로 짓누르며 서슬 퍼런 눈동자를 굽혔다.
“싸움의 공포를 알려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