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91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91화(991/1002)
제991화
“개, 개소리다!”
귀살창은 본인이 이길 수 있는 싸움만 즐겼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이를 갈았다.
“나는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왔다. 이기는 싸움 따위가 아니라, 그저 전투가 즐거울 뿐이다!”
그는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라온은 귀살창의 목을 찌른 마검을 가늘게 흔들었다. 그의 목에 끈적한 핏물이 흘러내렸다.
“네가 싸울 가치가 있는 무인이라고 생각했지.”
멀린을 추적한 일은 에덴에서 내려온 임무라고 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어.”
라온이 짧은 숨을 내쉬고서 뒤를 돌았다. 넝마가 된 로브로 몸을 감싸고 있는 멀린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멀린…….’
멀린의 몸에는 가슴의 관통상 말고도 셀 수 없이 많은 상흔이 새겨져 있었다.
대부분이 귀살창에게 당한 상처였기에 심장 속에서 분노가 터져 나왔다.
“왜 양아치들도 안 할 짓을 한 거지?”
귀살창은 멀린을 단숨에 죽일 무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끝을 내지 않고, 어린아이가 벌레의 다리를 뜯어내듯 그녀의 몸을 난도질해놓았다.
이전 신주오령의 축제에서 보았던 귀살창의 담대한 태도와는 너무 달랐기에 묘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저런 놈이었던 것이니라!
라스가 귀살창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본왕은 싸움에 미친 것 중에 제대로 된 놈을 본 적이 없느니라!
녀석은 전쟁을 좋아하는 놈들은 전부 정신이 나가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닌 사람도 있어.’
라온이 가늘게 눈을 내리감았다.
‘부왕 로만처럼.’
부왕 로만은 강자와 싸우기 위해서 살아가던 사람이다.
본인이 죽을 상처를 입었음에도, 패배를 인정하고 만족스럽게 웃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지막까지 무인다웠던 남자였다.
-으음, 본왕이 다 보지는 못했다만…….
라스가 눈매를 찌푸렸다.
-그놈이 제일 미친놈 같던데?
녀석은 그런 광기는 마계에도 몇 없다며 입맛을 다셨다.
“아니다! 내가 그럴 리가 없어!”
귀살창은 본인이 공포에 질렸다는 것도, 약자를 농락했다는 것도 믿지 못하겠다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의미가 없군.’
라온은 더는 귀살창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마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죽어라.”
마검이 귀살창의 목을 잘라내려고 할 때였다.
“내가 귀살창 케른이다! 나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아!”
귀살창이 포효를 터트리자, 검은 불길이 그의 목으로 솟아오르며 마검의 칼날을 튕겨냈다.
쿠와아아아앙!
귀살창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발을 굴렀다.
거대한 울림이 지축을 관통하며 대지가 갈라지고, 그 아래에서 선명한 불꽃이 솟아올랐다.
‘붉은 화염? 아니, 저건…….’
라온이 땅에서 치솟은 불길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말이야!’
대지에서 솟아난 것은 불꽃이 아니라, 자신보다도 키 훨씬 큰 전마였다.
피부가 붉게 타오르는 신비로운 말이었는데, 안장은 금빛이었고, 그 옆에는 시퍼런 날을 번뜩이는 방천화극에 매여있었다.
‘전마 블러드 혼과 사염극인가.’
귀살창을 무적의 장수로 만들었던 애병과 애마가 검은 핏물이 차오른 땅에 강림했다.
“나는 전장에서 태어나, 전장에서 자랐다. 약자와 강자 모두가 내 먹이일 뿐이다!”
귀살창은 오직 그게 전부라 외치며 블러드 혼의 안장 위에 올라탔다.
파아아아아아!
귀살창이 블러드 혼과 하나가 되자, 그에게서 풍겨 나오던 추악한 악취가 말의 투레질 소리에 지워졌다.
“보여주마! 내가 누구인지를!”
귀살창은 덤비라고 외치며 흑색의 창을 자신에게 겨누었다. 그의 눈동자에 어려 있던 흐릿한 빛이 가라앉고 본래의 푸른색이 드러났다.
‘맞아.’
라온이 천장의 장수처럼 허리를 곧게 편 귀살창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귀살창은 본래 저 말을 타고 다녔지.’
귀살창의 무기는 창만이 아니다. 그는 전마 블러드 혼에 타고 난 후에야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인이었다.
‘지금부터가 진짜라는 건가.’
라온이 입맛을 다시며 신검과 마검을 고쳐잡을 때였다.
파지지지직!
귀살창이 쥐고 있는 마창에서 검은 불꽃이 타오르자, 다시 그의 눈동자가 음울한 회색빛으로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저 창…….’
라온이 끝없이 검은 불꽃을 뿜어내는 흑색의 창을 보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무언가 이상한데?’
귀살창의 무기는 저 흑창이 아니라, 블러드 혼의 안장에 매인 방천화극이다.
마창이라 불릴 정도로 특별한 힘을 지닌 애병을 놓고, 저런 기이한 창을 들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새로운 무기를 얻었다고 하기에는…… 아!’
귀살창과의 대화 그리고 그의 반응을 떠올리며 입술을 씹었다.
“너…….”
라온이 귀살창의 흐릿한 눈동자를 마주한 채로 눈썹을 내렸다.
“타천에게 무슨 짓을 당한 거냐?”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귀살창의 모습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사람의 성격이 변할 수는 있지만, 지금 놈은 그 수준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에덴에 가만히 박혀 있었다는 것도 이상해.’
귀살창은 싸우기 위해서 신주오령을 나와서 사마의 편에 선 싸움광이다. 그런 미친놈이 그동안 조용히 에덴에 박혀 있다가 임무를 받았다는 것도 이상했다.
“당하다니! 무슨 헛소리냐!”
귀살창은 절대 아니라고 외치며 악을 질렀다.
“입 다물고 덤비기나 해! 아까와는 다를 테니까!”
그는 지금부터가 진짜라며 블러드 혼의 고삐를 잡았다.
쿠우우우우!
블러드 혼이 투레질하며 땅을 걷어차자, 어느새 귀살창의 창날이 자신의 눈앞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빨라.’
귀살창의 움직임이 자신의 감각을 뚫어낼 정도로 빨라졌다. 초월자의 보법보다 말이 더 빠르고 민첩하다는 게 놀라웠다.
‘거기다 창격의 위력도 강해졌어.’
귀살창은 단순히 빨라진 것만이 아니라, 창술과 오러의 위력도 강화시켰다. 말에 탔을 뿐인데, 아예 무력의 격 자체가 달라진 것 같았다.
‘다만…….’
라온이 손목을 비틀어서 서리로 타오르는 마검을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쩌어어어어엉!
마검으로 펼쳐낸 적섬은 더 빠르고 강맹해진 귀살창의 공세를 정면에서 막아내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힘과 속도 그리고 오러가 강해진 정도라면 지금 자신의 무력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아니, 확실하게 이길 수 있었다.
“아직이다!”
귀살창은 기마대처럼 흑창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는 본인과 블러드 혼의 전신에 검은 불꽃이 일으키며 하나의 창이 되어 자신을 향해 돌진해 왔다.
쿠구구구구구!
말과 무인이 하나가 된 돌진 창술에 대지가 뒤틀리고, 검게 타오르는 열기에 하늘이 일그러졌다.
아직 닿지 않았음에도 피부와 뼈가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후우우우욱!
라온은 귀살창의 돌진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신검의 검극 위로 만화공의 불꽃을 집중시켰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검식.
제2형 중천포.
금빛 화염이 작은 구체가 되어 타오르더니, 장대한 인력을 일으켜 귀살창의 돌진을 막아섰다.
쿠구구구구구!
귀살창과 블러드 혼의 돌진은 자신에게 닿지도 못한 채 중천포의 인력 앞에 막혀 굳어버렸다.
“이, 이게 무슨…….”
귀살창은 아예 자신에게 다가오지도 못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듯 흐릿한 눈동자를 부릅떴다.
“아직 안 끝났어.”
라온이 당황한 듯한 귀살창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잘 막아보라고.”
막으라는 말을 끝내기 전에 검극에 응집된 불길을 터트렸다.
쿠와아아아아앙!
신검과 흑창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폭발하며 대지가 녹아내리고, 하늘을 갈라버릴 듯한 금색의 불꽃이 솟아올랐다.
“끄으으윽…….”
귀살창은 다급하게 몸을 피한 덕분에 살아남기는 했지만, 얼굴과 팔,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은 듯 피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왜…….”
귀살창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보았다.
“분명 내가 더 빠르고 강했는데, 어째서…….”
그는 지금도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떨었다.
“맞아. 너는 강해졌다.”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과 속도 그리고 오러만.”
초월자의 싸움에서도 힘과 속도, 오러는 분명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학에 어떤 가치를 쌓아왔고, 어떤 신념을 지니고 있는가다.
자신은 초월의 영역에서 검과 창을 부딪친 것으로 귀살창의 영혼이 텅 비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닥쳐. 닥쳐. 닥치라고!”
귀살창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악을 지르며 흑창을 세웠다.
푸르르르!
블러드 혼은 어딘가 서글픈 울음을 흘리며 주인의 명을 따라 땅을 박찼다.
*
*
*
쿠우우웅!
귀살창은 라온의 묵직한 검격을 막아내며 말라붙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버틸 수 있어!’
라온의 검격은 분명 강하고 단단했지만, 자신의 뼈와 살을 뚫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계속 싸운다면 흑창의 마력을 운용하는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었다.
“계속 가주마!”
귀살창은 기합을 내지르며 라온의 전신을 향해 창격을 쏟아냈다.
하지만 라온은 자신의 모든 수를 읽고 있다는 듯 어렵지 않게 창격을 막아냈다. 악무신창의 초식을 계속 바꿔도 소용이 없었다.
‘뭐, 이런 놈이…….’
수많은 전쟁을 통해 천재라는 것들을 많이 상대해 보았지만, 라온 같은 놈은 처음이었다.
분명 자신과 비슷한 경지인데, 한참 위의 초월자를 상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괜찮아! 끝까지 가면 내가 다 이긴다!’
자신에게는 전장에서 치른 경험과 끝없는 힘을 주는 마창이 함께 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싸운다면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었다.
쩌어어어엉!
귀살창이 라온의 거센 참격들을 튕겨낸 후 다시 돌진하려고 할 때였다.
흐르르륵.
블러드 혼이 탁한 신음을 흘리며 무너질 것처럼 다리를 떨었다.
“무슨 짓이냐! 이 중요한 순간… 어?”
귀살창이 고삐를 잡고 블러드 혼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눈을 부릅떴다.
“블러드 혼?”
블러드 혼의 몸에 타오르는 적색 불꽃이 곧 꺼질 것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이 녀석과 긴 세월을 함께했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설마…….’
귀살창은 전신에서 땀이 아니라, 피를 토해내는 블러드 혼을 보며 턱을 파르르 떨었다.
‘네가…… 나를?’
블러드 혼의 상태를 보니, 라온의 검격에서 전해지는 충격이 자신에게 닿지 못하도록 이 녀석이 모두 감당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프르르르.
블러드 혼은 괜찮다는 듯 떨리는 다리를 세우고서 힘겹게 투레질했다.
“크으으윽.”
귀살창이 가라앉은 블러드 혼의 갈기를 만지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내가 왜 이걸 몰랐지……?’
블러드 혼은 아티팩트지만, 자신의 애마이자, 동료이며, 가족이다. 왜 이 녀석이 이 상태가 될 때까지 신경도 쓰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만에 이 녀석을 부른 거지?’
본래 자신은 블러드 혼을 매일 불러서 녀석이 좋아하는 당근을 건네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오랜만에 소환한 것 같았다.
‘에덴, 타천…… 아!’
귀살창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기억을 떠올리려고 할 때 흑창이 거센 진동을 하며 검은 불꽃을 일으켰다.
후우우우우욱!
검은 불꽃과 함께 뇌리에 새까만 무언가가 파고들어 오는데, 그걸 막을 수가 없었다.
“크으윽!”
오러를 일으켜서 상단전으로 스며드는 기이한 힘을 지우려고 했지만, 먹히지가 않았다.
‘설마…….’
귀살창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타오르는 흑창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창이?’
이 흑창은 타천이 에덴에 들어오라며 내어준 고대의 창이다.
자신에게는 마창이라 불리는 사염극이 있기에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한 번 휘둘러보기라도 하라는 말에 받았었다.
‘그냥 한 번 써보기만 했는데, 내가 왜 계속 이 창을 사용한 거지?’
흑창이 뛰어난 창인 것은 분명했지만, 사염극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무기다.
받기만 하고 사용하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언젠가부터 자신은 이 흑창만을 지니고 휘둘렀다.
‘그것만이 아니야.’
에덴에 들어온 이후의 기억이 흐릿하다. 생각나는 거라고 하루에 한 번씩 타천과 대화를 나눈 것과 이번 임무를 받은 것뿐이었다.
“하…….”
귀살창이 헛웃음을 흘리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같잖은 수를 쓰다니!”
이제야 라온이 했던 말이 이해가 간다. 자신은 타천에 의해서 무언가를 잃은 상태였다.
‘망할 가면쟁이 놈이…….’
아무래도 타천은 자신이 에덴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까 봐 이딴 짓을 벌인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귀살창이 욕을 내뱉으며 발을 굴렀다. 지금도 흑창에서는 자신의 정신을 집어삼키려는 듯 기이한 힘을 밀어 넣고 있었다.
“버려주마!”
스스로가 다른 이가 될 수는 없기에 라온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흑창을 던져 버렸다.
찌지지지지직
하지만 흑창을 버렸음에도 자신의 뇌리는 정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이 더 어지러워졌고, 약물에 중독된 환자처럼 창을 잡고 싶다는 욕망만 떠올랐다.
“…….”
라온은 자신의 변화를 느낀 듯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주었다.
“허어어억…….”
귀살창이 전신을 떨다가 입에서 검은 핏물을 토했다.
‘차, 창…….’
창이 필요해.
흑창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본인을 잡아달라고 외치며 남겨둔 힘으로 자신의 뇌리와 심장을 짓밟고 있었다.
‘어, 어쩔 수가 없…….’
지금 피폐해진 자신의 정신으로 흑창의 유혹을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흑창을 잡기 위해 블러드 혼에서 내려왔다.
푸르르르르.
창을 잡기 위해서 허리를 굽히다가 블러드 혼과 눈이 마주쳤다.
애마의 검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전장을 호령하는 장수가 아닌, 약쟁이와 같은 떨리는 손과 눈동자를 보자, 자신이 영혼이 터질 것처럼 크게 울렸다.
찌이이익!
귀살창은 흑창을 쥐려던 손을 빼고, 혀가 잘릴 정도로 깊게 씹었다.
“걱정 마라…….”
입술 밖으로 핏물을 내뱉으며 흑창을 걷어찬 후 블러드 혼의 안장에 매여있는 사염극을 쥐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귀살창이 라온을 보며 비틀어진 웃음을 그렸다.
“네놈의 말대로 타천이 내게 더러운 짓을 한 모양이다.”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놈의 꼭두각시가 되기 전에…….”
귀살창이 방천화극을 세워서 라온을 겨눴다.
“끝을 내자, 라온 지그하르트!”
“그 상태로는 위험할 텐데.”
라온은 이미 귀살창의 상태를 알고 있는 듯 눈썹을 내렸다.
“지그하르트에는 의술과 신성에 능한 이들이 있으니, 치료할 수도…….”
“아니…….”
귀살창이 고개를 저으며 입에 물고 있던 검은 핏물을 토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그는 제발 지금 상태에서 싸워달라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나를…….”
귀살창은 제발 싸워달라는 듯 고개를 숙였다.
“무인으로 보내 다오.”
*
*
*
“음…….”
라온은 절실한 눈빛을 한 귀살창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저 창에 무슨 짓을 한 건가?’
아니, 창만이 아닐 거야.
귀살창은 전장을 알고 있는 경험 많은 무인이다.
저런 초월자를 무기 하나로 세뇌했을 리는 없다. 주술, 음식, 진법 알지는 못해도 다양한 수로 집어삼켰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겠지.’
귀살창의 상태를 보니, 흑창을 쥐지 않으면 금단증상과 함께 몸이 망가지도록 만든 것 같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오도록.”
라온이 가는 숨을 내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귀살창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블러드 혼의 고삐를 쥐었다.
“가자! 전우여!”
그는 끝까지 함께 나아가자며 블러드 혼과 함께 돌진해 왔다.
후우우우우웅!
귀살창은 머리 위에서 방천화극을 휘돌리며 어마어마한 불길을 일으켰다.
쿠와아아아아아아!
블러드 혼은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다 알고 있다는 듯 무너진 대지를 박차고 뛰어올라 귀살창의 창격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높이와 각도를 만들었다.
악무신창 극의.
번량무극.
붉은 화염으로 타오르는 창과 전마를 타고, 하늘을 무너뜨릴 듯한 창격을 쏟아내는 귀살창의 모습은 그야말로 마창(魔槍)이며, 마창(馬槍)이었다.
“전력으로.”
라온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신검을 어깨 위로, 마검을 허리 뒤편으로 젖혔다. 패도의 자세. 그 무엇이라도 갈라버릴 의지를 다지며 두 자루의 검을 내뻗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검식.
제6형 신마조화결 연계기 청홍무적검.
인마가 하나가 되어 그려낸 악무신창의 극의와 쌍검술의 극의를 담아낸 청홍무적이 하늘과 땅에 교차하는 중점에서 맞부딪쳤다.
쿠와아아아아아아!
무시무시한 힘이 격돌하며 천지가 이어지는 듯한 새까만 균열이 돋아나고, 사방에서 검붉은 용오름이 솟아올랐다.
후우우우욱!
라온과 귀살창은 그 거대한 여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서로를 스쳐 지나간 채 멈춰 있었다.
“어땠나.”
귀살창이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마지막까지 약자를 멸시하는 창이었나?”
그는 그걸 알고 싶다는 듯 어깨를 떨었다.
“아니.”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퍼어어어어억!
가슴을 찢고, 핏물을 쏟아내는 창격의 흔적을 보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위를 향해 도전하는 훌륭한 창이었다.”
귀살창의 마지막 창격은 자신이 기대했던 마창의 주인다운 신념을 담아내고 있었다. 전력을 다했음에도 중상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군.”
귀살창은 이제야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힘없이 블러드 혼의 안장에서 떨어졌다.
“커헉….”
그는 가슴을 찢어버릴 듯 파고든 검흔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내가 정상이었어도 결국 졌겠어.”
귀살창이 패배를 인정하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방천화극의 날이 낡은 유리창처럼 바스러졌다.
“이런 꼴이지만, 부탁이 하나 있다.”
“뭐지?”
라온이 귀살창을 보며 턱을 까딱였다.
“저 녀석….”
귀살창은 힘이 다 빠진 듯 자신의 옆에 주저앉은 블러드 혼을 가리켰다.
“저 녀석을 데리고 가다오.”
그는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푸흐르르르.
블러드 혼은 주인을 떠나기 싫다는 듯 힘이 빠진 다리로 기어서 귀살창에게 다가갔다.
“못난 주인과 함께 해주어서 고맙구나.”
귀살창이 블러드 혼의 이마를 매만지며 웃었다.
“저 녀석이 나보다 더 잘해줄 것이야. 따라가거라.”
그는 본인들의 여정은 여기까지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귀살창은 이제 힘이 다 빠진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죽기 전에 내가 아는 것을 말해주마.”
“아는 것?”
라온이 귀살창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에덴과 데루스, 백혈교는 너희 오황의 생각보다 더 긴말하게 합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에덴이 준비하는 것은 마룡의 부활만이 아닌 것… 아.”
귀살창은 마지막 말을 다하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푸르르르르르!
블러드 혼은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은 귀살창의 뺨을 핥아주며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
라온은 귀살창이 남긴 말을 뇌리에 새긴 후 잊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끄덕인 후 멀린을 남겨둔 곳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무사했군.’
멀린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을 썼기에 그녀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늘어나지 않았다.
다만 상태가 호전된 것은 아니었기에 빨리 데리고 돌아가야 했다.
쿠우우우우웅!
라온이 멀린을 업고 일어나려는데, 숲 밖에서 거대한 울림이 들려왔다.
‘마크 괴튼.’
자신의 뒤를 막아준 마크 괴튼이 지금도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 그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는데, 지금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빨리 돌아가야… 아!’
라온이 숲 밖으로 달려가려다가 멈춰섰다.
‘맞아. 그 방울.’
숨이 끊어진 귀살창에게 다가가서 그의 품에 있던 방울을 꺼냈다.
“음?”
라온은 검붉은 빛을 띤 방울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이 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