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993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993화(993/1002)
제993화
“라온 지그하르트….”
녹랑사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라온이 비치는 눈동자를 떨었다.
“네놈이 귀살창을 죽였다고?”
그는 귀살창의 애마인 블러드 혼을 보며 입술을 깊게 깨물었다.
“…….”
라온은 녹랑사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 뒤에 있는 마크 괴튼에게 시선을 돌렸다.
“결국 이뤄내셨군요.”
마크 괴튼은 자신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각성하여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갔다.
버렌, 마르타, 루난이 각성할 때보다 더 높은 경지에 안착한 것을 보면 실력이 늘지 않아도 계속 검을 포기하지 않았던 오랜 세월의 보상이 이제야 찾아온 것 같았다.
“전주님이 믿어주신 덕분입니다.”
마크 괴튼은 자신 덕분이라며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지도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전주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여전히….”
“할 말이 많은 건 알고 있지만, 일단 이곳의 정리를 끝낸 뒤에 하죠.”
라온이 옅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이 녀석을 부탁합니다.”
블러드 혼의 안장에서 내린 후 마크 괴튼에게 멀린을 건네주었다.
“으음….”
마크 괴튼은 창에 찔린 상처로 가득한 멀린의 상태를 보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라온이 차분히 손을 내려 제천검을 뽑았다.
“무엇 하나 그쪽으로 가지 않을 테니까.”
그 누구도 닿을 수 없을 거라고 말하며 녹랑사의 앞으로 다가갔다.
“녹랑사.”
라온이 녹랑사를 보며 턱을 까딱였다.
“이제는 그 뱀 투구를 보는 것도 지겹다.”
에덴의 지부에서 처음 보았던 금면사부터 세이피아를 습격해왔던 저 녹랑사까지. 네 가지 색의 뱀 투구를 만나왔기에 이제는 보기만 해도 짜증이 일어났다.
“세이피아에서는 그냥 보내주었지만, 오늘은 그런 행운이 없을 거야.”
세이피아에서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놔주었지만, 오늘은 그렇게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녹랑사만이 아니라, 그다음 뱀 투구까지 죽이겠다고 다짐하며 제천검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크윽….”
녹랑사는 라온에게서 피어나는 살기에 질린 듯 입술을 깨물며 뒤로 물러섰다.
저벅.
라온은 녹랑사가 물러난 만큼 앞으로 걸어가며 시선을 좁혔다.
‘전혀 강해지지 않았어.’
세이피아에서 녹랑사를 본 후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놈의 무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계속 부활하듯 놈의 강함에는 다른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놈을 죽이기 전에….’
-또 뭘 하려고?
라스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몇 가지 확인해야 할 게 있어.’
라온이 제복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검붉은 방울을 꺼냈다.
“녹랑사.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나?”
손가락 끝에 방울을 연결한 고리를 걸어서 앞으로 내밀었다.
“그 물건이 왜 네 손에….”
녹랑사는 물러서던 걸음을 멈춘 채 투구 속에서 눈을 부릅떴다.
쿠구구구구!
녹랑사만이 아니다. 다른 에덴의 귀신들도 방울을 보자, 짐승과도 같은 눈빛을 드러내며 끈적한 침을 흘렸다.
“아니….”
녹랑사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낮은 숨을 내쉬었다.
“멀린이 너한테 있고, 귀살창이 죽었으니, 당연한 일인가.”
그는 이해가 된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아아….”
녹랑사가 검을 쥐고 있는 손을 파르르 떨었다.
“그 물건이 네게 있는 이상 그냥 물러설 수는 없겠군.”
그는 싸울 수 밖에 없다며 입술을 꾹 내리눌렀다.
“의견이 맞네. 나도 널 그냥 보낼 생각은 없었으니까.”
라온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에 끼운 방울을 돌렸다.
“그래서 이 방울이 뭐길래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지?”
턱을 까딱이며 녹랑사에게 답을 요구했다.
“너는 알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녹랑사는 라온의 가슴을 찢어발긴 귀살창의 창흔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귀살창의 뜻을 이어서라도 이곳에서 너를 막아주마.”
그는 자신의 부상을 노리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히며 입맛을 다셨다.
“너희들의 더러운 주둥이로 귀살창의 이름을 담지 마라.”
라온이 턱을 모로 튼 채 미간을 구겼다.
“흥!”
녹랑사가 코웃음을 치며 손을 내리자, 그의 뒤편에 서 있던 몬스터와 에덴의 귀신들이 동시에 라온에게 돌진해 왔다.
“이제 천라지망은 없습니다!”
마크 괴튼은 지휘관이 죽어서 진법의 압력이 사라졌다고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밀려오는 몬스터들의 파도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천라지망은 깨졌지만….’
몬스터들의 투기는 더 독해졌어.
이전처럼 천라지망의 강력한 압력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이 방울 때문인지 에덴의 귀신들에게서 피어나는 기세에 필살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거라.”
녹랑사는 바로 자신에게 달려들지 않고, 몬스터와 에덴의 귀신들 뒤로 물러나 기척을 감췄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주변을 돌며 공격할 기회를 노리려는 것 같았다.
-점점 더 추해지는구나.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예전에는 정면에서 싸우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녀석은 가면의 색이 바뀔 때마다 찌질해진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같은 생각이야.’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쿠우우우웅!
대형 몬스터와 에덴의 귀신들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글래시아를 운용하며 진각을 밟았다.
쩌저저저저적!
자신이 발로 내리찍은 땅거죽이 거칠게 뒤집히며 달려들던 몬스터와 에덴의 귀신들이 모조리 허공으로 떠올랐다.
“계, 계속 공격해!”
“여기서 놈을 죽여야 한다!”
“손이 안 되면 이빨로 물어뜯어!”
에덴의 귀신들과 몬스터들은 허공에 뜬 상태에서도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서 몸을 던졌다.
하지만 자신의 공격은 저들을 띄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콰드드드드득!
길쭉하게 갈라진 땅속에서 은빛 서리가 폭발하며 허공에 떠오른 몬스터와 에덴의 귀신들을 거대한 얼음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라스의 결전기 백은의 오로라를 응용한 무학이었다.
스으으으.
라온은 몬스터와 에덴의 귀신들이 얼어붙으며 시야가 열린 순간 우측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태양처럼 번뜩이는 적안에 뒤에서 움직이는 녹랑사의 움직임이 잡혔다.
“젠장!”
녹랑사는 라온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당황한 듯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거기에 있었군.”
라온이 손에 쥐고 있던 제천검을 허공으로 띄웠다.
후우우웅!
녹빛 바람을 두른 제천검은 생명을 지닌 듯 스스로 떠올라 녹랑사를 향해 떨어졌다.
“이기어검!”
녹랑사가 물러서던 걸음을 멈추고 두 손으로 검을 다잡았다. 그의 손끝에서 초월의 기파가 피어나며 검 위로 찬란한 녹색 광휘가 솟아올랐다.
“흐아아아아아!”
녹랑사가 전력의 검격을 쏟아내서 라온의 공세를 쳐내려고 하는 찰나 그의 눈앞에서 제천검이 사라졌다.
“무슨!”
녹랑사가 경악하며 눈동자를 떨 때 제천검이 공간을 뚫고 튀어나와 그의 가슴을 향해 굽어졌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검식.
제8형 소슬바람.
아리스의 공간참과 리메르의 가루누아를 한층 더 높게 진화시킨 자신만의 검격이 녹랑사의 검격을 관통하여 그의 빈틈을 찌르고 들어갔다.
“빌어먹을!”
녹랑사는 초월자답게 소슬바람의 흐름을 깨닫고 우측으로 물러나며 오러의 벽을 세웠다.
하지만 제천검은 자신의 의지를 따라 녹랑사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따라붙었다.
퍼어어어억!
경쾌한 녹빛 바람을 두른 제천검은 녹랑사가 마지막으로 일으켰던 오러의 벽을 뚫어내고, 놈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허허억!”
녹랑사가 검은 피를 토하며 발을 멈췄다. 그는 초월자의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제천검의 압도적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말하라.”
라온이 녹랑사의 눈앞으로 다가가 검붉은 방울을 들어 올렸다.
“이 방울은 뭐지?”
“…모른다. 알아도 말할 수 없고.”
녹랑사가 피를 뱉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냉기와 바람이 차오른 검이 가슴에 박혀 지독한 고통을 느끼고 있음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네 정체는 뭐냐. 왜 계속 살아나는 거지?”
라온이 눈매를 찌푸린 채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전에도 한 번 말한 것 같은데….”
녹랑사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곧 알게 될 거다. 이번에는 정말로….”
그는 이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듯 히죽였다.
“그래. 그러면….”
라온이 녹랑사의 가슴에 박힌 제천검을 뽑았다.
“죽어라.”
거침없이 검을 휘둘러 녹랑사의 목을 베었다.
“아, 아니….”
녹랑사는 바로 목을 벨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눈동자를 떨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이 이상 시간을 끌 필요는 없어.’
녹랑사를 고문하면 방울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도 있겠지만, 타천이나, 다른 에덴의 초월자가 언제 올지 모르기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초월자를 저리 쉽게….”
마크 괴튼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이전에도 녹랑사와 부딪친 적이 있기에 더 당황한 것 같았다.
“타세요.”
라온은 다시 블러드 혼의 안장 위에 올라탄 후 마크 괴튼에게 손짓했다.
“아, 아닙니다. 저는 제 다리로….”
“이 녀석을 타는 게 더 빠를 겁니다.”
블러드 혼의 속도는 마크 괴튼이 전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더 빠르다. 부상까지 입은 지금은 무조건 말에 타고 달리는 게 나았다.
“아, 알겠습니다.”
마크 괴튼은 믿기 어렵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블러드 혼 위에 올라탔다.
“가자!”
블러드 혼은 고삐를 흔들기도 전에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 먼저 땅을 박차고 들판을 내달렸다.
터어어엉!
블러드 혼은 어느새 들판을 가로질러 이곳에 오기 전에 올라갔던 산으로 들어갔다. 녀석은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뜻을 읽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본래 말은 산을 탈 때 많이 느려지는데, 블러드 혼은 그런 개념 자체를 무시하듯 평지와 같은 속도로 산을 뛰어 올라갔다.
“허억!”
마크 괴튼은 블러드 혼의 속도에 놀란 듯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확실히 놀랄만 하지.’
라온이 블러드 혼의 갈기를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고수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니까.’
블러드 혼의 기본적인 이동속도, 순간적인 가속, 방향 전환은 그랜드 마스터보다 더 뛰어났고, 산 같은 지형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런 전마가 존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보, 본왕도 타보고 싶구나.
라스는 블러드 혼에 직접 타보고 싶다며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시원하고 기분 좋기는 해.’
-그게 아니니라!
라스가 그런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눈매를 찌푸렸다.
‘그럼?’
라온이 라스를 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말이 크고 화려하지 않느냐! 본왕에게 딱 맞는 녀석이니라!
라스는 블러드 혼의 우아한 외형에 반했다며 침을 질질 흘렸다.
-네놈에게는 어울리지 않으니, 본왕에게 넘기거라! 아주 잘 써줄 테니까!
‘하아….’
라온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대답이 없는 것이냐! 네놈도 별로 받을 마음이 없지 않았느냐!
라스의 외침을 무시하고 마크 괴튼을 돌아보았다.
“축하드립니다.”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전주님 덕분입니다.”
마크 괴튼이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전주님이 저를 받아주시지 않았다면 지금도 술집에 박혀 있었을 테니까요.”
그는 결국 검의 길을 포기한 채 푼돈에 영혼을 팔았을 거라며 씁쓸한 미소를 그렸다.
“아뇨. 지금 그 경지는 제가 이룬 게 아니라, 당신이 직접 이룬 일입니다.”
라온이 마크 괴튼의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받아달라고 외치는 용기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이후에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는 의지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마크 괴튼과의 첫 만남이 어제처럼 떠오른다.
몸과 정신이 모두 망가졌던 사람이 지금 같은 무인으로 변한 것은 자신의 가르침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스스로가 죽을 듯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도와준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 변화를 이뤄낸 무인의 성장을 폄훼하고 싶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마크 괴튼은 자신의 뜻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전주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는 또 한 번 맹세하겠다는 듯 주먹을 들어 본인의 가슴을 쳤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질 거예요.”
라온은 계속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서 다시 앞을 보았다.
투두두두두!
블러드 혼은 어느새 산의 정상에 올라가 다시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고 있었다.
‘이 산을 넘어간 후 라리안을 부르는 게 좋겠지.’
라온은 산 아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상태도 좋지 않을 테니까.’
라리안은 체임버도 할 수 없는 마법으로 자신과 마크 괴튼을 이 장소로 보내주었다.
초월자가 30분가량 준비해서 마법을 사용할 정도였으니, 분명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주술이 가득한 땅을 벗어나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헌데….’
라온은 산을 내려가며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검붉은 방울을 꺼냈다.
‘이 방울은 정말 뭐지?’
천라지망까지 펼쳐서 멀린을 추적한 이유도, 녹랑귀가 도망치다가 덤벼든 이유도 모두 이 방울 때문이다. 정체는 모르지만, 중요한 물건인 건 확실했다.
‘정말 에덴의 신물인가…?’
라온이 소리가 나지 않는 방울을 흔들며 눈매를 좁힐 때였다.
-피하거라!
후우우우욱!
라스의 외침이 다 들리기도 전에 어둑한 하늘 위에서 찬란한 빛이 번뜩였다.
백광과 흑광. 수십 줄기의 빛은 자신의 감각을 뚫고,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치아아아아앙!
라온은 품에 안고 있는 멀린과 마크 괴튼 그리고 블러드 혼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천검을 뽑고, 목륜검을 이기어검으로 띄워서 두 겹의 염주벽을 세웠다.
하지만 천공에서 떨어진 섬광들은 염주벽을 뚫고, 자신의 가슴과 블러드 혼의 다리에 떨어졌다.
퍼버버버버벅!
라온이 블러드 혼에서 튕겨 나가며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젠장….”
피가 쏟아지는 가슴의 상처를 막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후우우우욱.
시꺼멓게 구멍이 뚫린 땅 위에 마크 괴튼이 피를 토하며 어깨를 떨고 있었고, 블러드 혼은 다리가 부러진 듯 몸을 나무에 기댄 채 고통스러운 울음을 흘렸다.
‘머, 멀린은….’
라온이 힘겹게 고개를 돌릴 때 좌측 바위 아래에 쓰러져 있는 멀린이 보였다. 그녀의 가슴에서 시뻘건 핏물이 돋아난다. 간신히 아물었던 상처가 다시 도진 것 같았다.
“멀린!”
라온이 제천검을 지팡이 삼아서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 힘을 주어서 멀린에게 달려가려고 할 때 검은하늘이 열리고 찬란한 광휘가 피어났다.
성스러우면서도, 사이한 빛무리 속에서 미청년의 가면을 쓴 괴인이 내려선다. 타천. 에덴의 수장이 직접 나와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또 화려하게 저지르셨군요.”
타천은 악마의 뿔과 천사의 날개가 그려진 회색 의복 위로 손을 올리며 따스한 미소를 그렸다.
“검제 라온 지그하르트.”
그가 햇볕 한 번 보지 않은 듯한 새하얀 손을 펼쳐 자신의 목을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투콰아아아아앙!
자신과 멀린, 마크 괴튼을 휘감는 순백의 마법진이 솟아나 타천의 손길을 밀어냈다.
우우우우웅!
마법진 속에서 펑퍼짐한 로브를 걸친 금발의 여성이 걸어 나와 자신을 보호하듯 타천의 앞에 섰다.
고오오오오오!
마탑주 라리안. 언제나 나태하고, 지루해 보이던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명검의 칼날처럼 날카롭게 명멸하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
라리안이 라온에게 시선을 돌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비를 좀 해놔야 했거든. 그리고….”
그녀가 웃음을 잃지 않은 타천을 향해 푸른 빛을 띤 단도를 겨누었다.
“저놈을 해부할 도구를 고르느라.”
라리안은 지금부터는 믿고 있으라는 듯 담대한 걸음으로 타천을 향해 나아갔다. 그 고요한 걸음 아래에 펼쳐진 마나의 줄기에 산 전체가 뒤흔들렸다.
쿠구구구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