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106)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137화(106/172)
137화. 각자의 사정
따악!
“아웃!”
10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상대 리드오프를 내야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브랜든 워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지난 시즌에도 두 차례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한 경험이 있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당장 방금 전 상대한 바비 와그너부터가 다르다. 떨어지는 공에 붕붕 선풍기를 돌리던 놈이 배트를 짧게 잡고 달려드는 통에 꽤나 진을 뺐다.
하지만 괜찮다. 어쨌든 잡아냈으니까.
<2번 타자 DH 도준우>
문제는 이놈이다. 아무리 10경기 밖에 안 치렀다 해도 4할이 넘는 타율에 1.243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장타율을 기록 중인, 한 경기당 거의 한 개에 가까운 홈런을 때려내고 있는 프로 2년차 루키, 어쩌면 한 팀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도준우.
“플레이!”
생각해보면 이놈과 이렇게 투타 맞대결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WBC 때는 타자 대 타자로만 만났고, 시범경기 때는…
뭔가 기회를 갖기도 전에 저놈이 퇴장당해버렸다. 다저스의 주전포수 턱을 박살내고.
그때 턱이 박살난 포수는 앞으로도 최소 한 달 이상은 더 결장해야 할 듯하다. 다른 팀 주전 못지않은 백업포수를 보유한 덕에 큰 구멍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타격은 타격이다. 다저스가 초반 삐걱거리는 데는 분명 그 영향도 있다.
‘몸 쪽 포심으로 가볼까’
‘아니’
‘그럼 바깥쪽 스플리터?’
‘오케이’
지난 시즌 빅리그에 등록되어 한 번이라도 100마일 이상을 던진 투수의 숫자가 무려 57명이다. 마이너리그까지 영역을 확장하면 100마일을 넘게 던질 수 있는 투수의 숫자는 100명을 훌쩍 넘어간다. 이제 더 이상 100마일은 무적을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최고 구속 102마일, 평균구속 98.8마일, 평균회전수 2,580RPM에 달하는 브랜든 워커의 포심은 빅리그 기준으로도 최상급에 해당하는 공이었다. 하지만 브랜든은 그 공을 던지기를 거부했다.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에반 브라운이라는 대투수를 상대로 두 방의 홈런을 때려낸 도준우, 저 녀석에게 몸 쪽 포심은 위험하다. 마음 같아서는 힘 대 힘, 정면대결을 벌이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 중요한 건 브랜드의 경쟁심이 아닌 소속팀 다저스의 승리니까.
파앙
“볼.”
바깥 쪽 낮은 코스로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도준우가 살짝 움찔했지만 결국 배트는 나오지 않았다. 아쉽기는 하지만 괜찮다. 일단 저 정도 반응을 끌어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몸 쪽 스위퍼’
‘끄덕’
덕아웃에서 사인이 나오고 있지만 다행인 건 투수에게도 어느 정도 선택권을 주고 있다는 거다. 첫 번째 포심 사인은 조금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번 사인에는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타자의 몸에 맞을 듯 날아들다 존안으로 급격하게 꺾여 들어가는 스위퍼, 지난 시즌 브랜든을 12승 투수로 만들어준 바로 그 공이 도준우를 향해 날아갔다.
부웅
“스윙!”
헛스윙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배트와의 거리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했다.
195cm에 달하는 큰 키, 거기에 그 키에 비해서도 긴 팔다리. 그 긴 리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다이나믹한 타격 폼, 게다가 조금 빠지는 공이라 해도 본인 마음에 들면 바로 배트가 나오는 호전적인 성격까지.
조심해야 한다. 저놈은 야수다. 타석에 선 도준우는 그야말로 야수라는 말로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그런 존재다.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지는 스위퍼’
끄덕
도준우와 같은 유형의 타자를 흔히 배드볼 히터라고 부른다. 원조 괴수 소리를 듣던 블라드미르 게레로 같은 타자가 대표적인데 쉽게 말해 존 밖으로 빠지는 공을 때려내 안타를 만들어내는 선수들을 말한다.
보통 이런 타자들은 일반 타자들에 비해 리치가 길고, 배트 스피드가 빠르며, 로우 파워가 뛰어나다. 그러다 보니 타격폼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말도 안 되는 홈런을 만들어내곤 한다. 도준우가 딱 그렇다.
물론 배트볼 히터들에게도 단점이 있다.
선구안이 나쁠 경우 턱없이 벗어나는 공에 배트를 붕붕 휘두르다가 어이없는 삼진을 먹곤 한다.
하지만 도준우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녀석의 올 시즌 출루율은 0.488로 타율에 비해 거의 1할 가까이 높다. 선구안까지 갖췄다는 뜻이다. 아니, 애초에 삼진 자체를 잘 당하질 않는다.
배드볼 히터의 두 번째 약점은 나이가 들어 피지컬적인 능력이 떨어지면 성적이 급격하게 추락한다는 거다. 배트스피드가 느려져 공을 맞추기도 힘들어지고, 설사 맞춰도 안타나 홈런이 될 경우 야수에게 잡히는 것이다.
하지만,
‘저놈은 이제 열아홉인데, 최소 십 몇 년은 더 해먹을 텐데’
생각할수록 황당한 놈이다.
하늘에 대고 외치고 싶다. 왜 나 브랜든 워커를 낳고 또 도준우 저놈을 내려 보낸 거냐고.
‘음’
하늘에 대해 항의하는 건 나중에 교회에 가서 하기로 하고 일단은 승부다.
볼 카운트 원 볼 원 스트라이크, 브랜든 워커가 던진 스위퍼가 존에서 한참 벗어난 곳을 향해 맹렬하게 휘어져나갔다.
파앙
“볼.”
역시나 반응하지 않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저놈과의 승부에서 요행같은 건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마음 같아서는 몸 쪽 낮은 곳으로 빠지는 포심을 한 번 던져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덕아웃에서는 전혀 다른 사인을 내보냈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인 다저스 전력분석 팀이 산출하고, 코칭스태프들이 검수한 사인이 브랜든에게 전해졌다.
‘바깥쪽 하이패스트볼’
여기서 바깥쪽 높은 공을?
조금 의외긴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모든 건 확률싸움이다. 아마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공이 가장 공략당할 확률이 낮은 공일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야구의 인기가 점점 하락하고 있는 건 늘어지는 경기시간, 정적인 경기진행, 슈퍼스타의 부재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거기에 한 손 보탠 게 바로 이 소름끼치도록 치밀한 데이터 야구의 등장이다.
매 순간순간 어떤 플레이를 선택해야 경기에 이길 수 있을지를 사람의 머리가 아닌 컴퓨터가 산출해주는 이 시스템이야말로 야구의 가장 큰 재미인 의외성을 해치는 주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기기 위해서는 그걸 따를 수밖에.
스륵
브랜든이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비록 도준우가 던지는 공만큼은 못하지만 그의 진심이 담긴 102마일, 2,600RPM에 달하는 공이 우타자에게서 가장 먼 바깥 쪽 높은 코스를 향해 힘차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따아아아아악!
그 속도만큼이나 힘찬 속도로 우중간을 향해 날아갔다.
– 제대로 맞았습니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었던 타구! 도준우가 오라클파크 우중간 펜스를 넘기는 선제 홈런을 때려냅니다! 스플래시 히트에 몇 피트 모자라는 아주 큰 타구였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단 둘 뿐인 투웨이 선수간의 첫 번째 맞대결에서 도준우가 승리합니다!
“하아…”
짙은 탈력감이 온 몸에 내려앉는다.
자이언츠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성 속에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는 녀석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분하다. 차라리 내가 선택해서 던진 공이었으면 이정도로 허망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기기 위해, 오직 승리를 위해 덕아웃에서 보낸 사인을 받아들였건만, 그럼에도 패배하고 말았다.
11번의 경기에서 10번째 홈런을 때려낸,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엄청난 홈런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는 도준우가 마침내 홈을 밟았다.
“빌어먹을 다저스 놈들! 맛이 어떠냐!”
“그래! 바로 이걸 보러 온 거야!”
“티켓 값을 더 올려도 좋으니 어디서 저런 꼬마 하나 더 데려올 수 없는 거야?”
“JUN! JUN! JUN!”
순간 도준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녀석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혀를 쭉 내밀며 덕아웃으로 들어가 버렸다.
망할 자식.
**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1선발 알렉산드로 힐과 LA 다저스의 4선발 브랜든 워커 간의 맞대결, 자이언츠가 도준우의 선제 홈런으로 1대 0, 한 점차로 앞서가고 있는 가운데 3회 말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타석에는 2루수 마리오 러셀이 들어섭니다
– 네, 지난 시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팀 타율이 0.235로 서부지구 다섯 개 팀 중 4위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0.258까지 올라왔죠. 도준우가 워낙 잘 쳐주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타자들이 지난 시즌보다 나은 지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딱 한 명, 마리오 러셀만 빼고 말이죠
– 그렇군요. 하지만 자이언츠 입장에서는 이 선수를 뺄 수도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난 시즌 골드글러브를 차지한 내야수비의 핵이니까 말이죠
– 맞습니다. 살려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타석 승부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함께 지켜보죠
“플레이!”
루키와 베테랑 그룹 간의 힘겨루기로 박살이 났던 자이언츠 라커룸의 분위기는 도준우의 합류와 문제의 근원이었던 타일러 아담스의 트레이드, 그리고 팀 성적의 호조 등이 겹치며 거의 대부분 해소된 상태였다.
원래 팀이라는 것이 그렇다. 성적이 나쁠 때는 작은 문제도 커지는 법이고, 반대로 잘 나갈 때는 사소한 문제같은 건 흔적도 없이 덮어지는 법이다.
지금 타석에 서 있는, 한때 베테랑 그룹의 핵심멤버 중 하나로 호세를 비롯한 신예 그룹과 갈등을 빚었던 마리오 러셀이 갖고 있는 작은 불만은 바로 그 사소한 문제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파앙
“볼.”
솔직히 말하면 일이 그렇게 커지는 건 원치 않았다. 그저 야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돈만 많은 구단주가 애송이들을 물고 빠는 게 꼴 보기 싫었고, 그런 애송이들이 베테랑의 말을 따르지 않는데 분노했을 뿐이다.
이제 와 생각하면 이쪽이나 저쪽이나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지만.
파앙
“스트라이크!”
며칠 전, 마리오와 키스톤 콤비를 이뤘던, 팀 내 불화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결국 휴스턴으로 트레이드 된 타일러 아담스와 처음 통화를 가졌다. 어찌된 노릇인지 그곳에서도 몇몇 선수들과 트러블이 생긴 모양이다. 트레이드 된 지 한 달 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다. 그것도 참 재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앙
“볼.”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구장에 출근했다. 저녁 경기임을 감안하면 정말 쓸데없는 짓이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잘 한 일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자이언츠의 구장 관리를 담당했던, 이제 은퇴를 앞두고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진행 중인 백발의 관리인 톰과 오랜만에 이야기할 시간이 생겼다.
그는 마리오가 처음 빅리그에 콜업되었을 때 가장 먼저 환한 얼굴로 맞이해줬던 사람이며, 이 구단의 누구보다 오래 이 팀을 위해 일해 온 자이언츠의 역사와도 같은 사람이다.
‘마리오, 요즘은 어떠냐’
‘뭐, 항상 똑같죠. 야구니까요’
‘그래, 그게 야구지’
‘톰은요?’
‘나? 되도록 상반기 안에 인수인계를 마치고 와이프랑 크루즈 여행을 떠날 생각에 매일 가슴이 설레고 있지’
‘부럽네요’
‘부럽긴, 크루즈 여행은 언제든 갈 수 있지만 이곳 구장에 서는 건 기한이 정해져 있는데. 그게 선수든, 관리인이든 말이야’
‘……’
‘마리오’
‘네, 톰’
‘기억나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빅리그에 콜업되고 한동안 선수들 중에 가장 먼저 구장에 출근했던 거’
‘당연히 기억나죠. 그때는 저도 꽤 부지런하고, 뭐, 절박하기도 했죠. 마흔 여덟 번이었던가? 맞나요? 제가 1등으로 구장에 출근한 횟수가’
‘정확히 마흔 아홉 번이었지. 맞아. 너는 내가 본 가장 성실한 루키야. 아니, 였었다고 해야겠구나’
‘네?’
‘호세, 제이슨, 바비, 잭, 그놈들이 지난 시즌부터 벌써 1년 넘게 1등으로 구장에 출근하고 있거든.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난 그 녀석들 얼굴을 보면서 깨닫는단다. 아,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하고 말이야’
‘……’
‘마리오’
‘네, 톰’
‘왜 이제는 부지런하지 않는 거냐, 절박함은 어디로 사라진 거야? 혹시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순간 톰은 그냥 구장 관리인이 아니었다. 마리오라는 선수의 성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가장 오래된 조언자였다. 그런 사람의 질책에 마리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네가 그 부지런한 루키들과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인다고 했을 때 한 번 불러 혼을 내려다가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넌 이 지구상에 몇 백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빅리거니까. 스무 살 먹은 애송이가 아니라 자이언츠라는 팀을 끌고 나갈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니까. 그런데 이 꼴이 대체 뭐냐’
‘……’
‘마리오, 화를 내는 건 쉽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도 쉬워. 문제의 원인을 내가 아닌 외부에서 찾으면 마음은 편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답이 아니야. 항상 모든 문제는 네 자신에게서 시작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 루키들이 설쳐서 꼴 보기 싫다고? 그럼 네가 야구를 더 잘해서 구단에 요청했어야지. 저 놈들 다 내보내지 않으면 다른 팀으로 갈 거라고. 그런데 넌 어땠지? 일곱 살 어린애 마냥 감정싸움이나 하면서 불평불만만 늘어놨지?’
오라클 파크가 지어지기 전, 지금은 철거된 캔들스틱 파크 시절부터 자이언츠의 홈구장을 책임져온 노인의 질책에 마리오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건 그가 하는 말들이 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할 말을 모두 마친 노인이 마리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을 맺었다.
‘그럼에도 하나 다행인 건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거란다’
‘네?’
‘지금 자이언츠를 봐. 너희는 강해. 앞으로는 더욱 강해질 거고 말이야. 그리고 마리오, 너는 아직 서른하나에 불과해. 네 야구 인생은 이제 시작이야. 자, 그럼 이제부터 뭘 해야 한다?’
‘…노력?’
‘노력은 당연한 거고, 잘 해야지. 야구를 잘 해야지. 네가 내셔널리그, 아니, 메이저리그 최고 2루수라는 걸 증명해봐. 수비는 지금도 잘 하잖아? 그러니 공격에서 어떻게 좀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라고. 자, 널 믿어도 되겠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노인과의 대화에 마리오는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였고, 노인은 만족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파앙
“볼.”
볼 카운트 쓰리 볼 투 스트라이크, 풀 카운트.
예전 같으면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잖아? 어차피 난 8번 타자인데, 뭐 큰 걸 바라진 않겠지?
하지만 아니다. 톰의 말이 맞다. 더 이상 미적거리다가는 정말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그러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 팀 유니폼을 입고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다.
홈플레이트에 바싹 붙어 섰다. 횡 변화구 중 가장 큰 궤적을 그리는 스위퍼를 때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투수의 얼굴에 아주 약간이나마 난감함이 떠올랐다.
슈웅
다저스가 자랑하는 14년 8억 달러짜리 애송이의 손끝에서 하얀 공이 발사되었다.
젠장, 빌어먹게도 잘난 놈들, 이젠 개나 소나 다 천만 달러고 일억 달러다. 그래, 난 무슨 수를 써도 그런 큰돈은 만져볼 수 없을 거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부를 포기한 건 아니다.
야구는 장기레이스니까. 일 년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경기를 벌여, 최소 10년 이상 커리어를 쌓아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고루하고 보수적이며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스포츠니까.
난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동면을 앞둔 다람쥐가 열심히 도토리를 모으듯 남들 눈에는 한심해보여도 내 나름 최선을 담은 일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딱!
지난 시즌 골드글러브를 따내고도 타격에서 최악의 부진을 보이며 팀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마리오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스위퍼를 있는 힘껏 받아쳤다.
도준우나 호세같은 큰 타구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커리어 내내 두 자리 수 홈런을 한 번도 기록해보지 못한 마리오였으니까.
하지만 2루수의 머리를 살짝 넘길 정도는 충분했다.
“좋아! 바로 이거지!”
“한 점 더 가자! 자이언츠!”
“고! 고! 고!”
그렇게 만들어진 무사 1루 찬스,
1루 베이스 위에 올라탄 마리오가 타석으로 들어서고 있는 뒤 타자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젠장, 제이슨! 한 방 날려봐!”
“…네?”
두 그룹으로 나뉘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던 두 사람 사이에 일 년 만에 오간 제대로 된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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