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123)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154화(123/172)
154화. 충돌
“이거 놔! 놓으라고요! 좀 놓으라고!”
“절대 안 돼. 그 놈 꽉 잡고 있어!”
“네! 이봐, 준, 제발 진정하고 그만… 어우, 왜 이렇게 힘이 세! 마크! 구경만 하지 말고 너도 와서 붙어! 덕아웃으로 데리고 가라고!”
“네? 넵!”
“놓으라고!”
2루 도루를 시도하던 바비 와그너의 손가락이 뒤로 꺾였다.
본래 수비수는 주자가 진루하는 방향을 몸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 상황을 지켜본 심판은 타일러가 내민 무릎 옆으로 작게나마 공간이 남아 있었다고 판단, 아웃을 선언했다.
분노한 자이언츠 감독이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을 당하고, 자이언츠 선수들이 우르르 그라운드로 몰려나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휴스턴 선수들이 거기에 맞대응하며 순식간에 경기장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런 가운데 벤치클리어링 최대 요주의 인물인 도준우를 묶어 놓는데 성공한 자이언츠의 수석코치가 한숨을 쉬며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다음 이닝 중견수 수비는 레비, 네가 들어가고.”
“네! 코치!”
수석코치의 부름에 앳된 얼굴의 백업 야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소동이 정리되고 마지막까지 그라운드에 남아 있던 선수들이 하나 둘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개자식! 분명 일부러 그런 거야!”
“이게 아웃이라고? 심판은 눈이 삔 건가?”
“그러니까 날 놔줬으면!”
“안 돼! 준, 네 주먹은 너무 위험해!”
소동이 가라앉자 수석코치가 선수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다들 잘 들어. 젠장,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싫지만 이제부터 2루나 3루로 진루할 때 절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가지 마. 그렇다고 스파이크를 치켜들란 이야기가 아니야. 이기기 위해선 흥분하지 말고 정상적으로 플레이해야 해. 내 말 알아 들었나?”
“빌어먹을, 아무 것도 하지 말자고요?”
“로베르토, 너까지 왜 그래? 심판이 정상적인 수비라고 판단한 상황이야. 지금 명분은 저 개자식들에게 있다고. 다른 식으로 갚아줄 기회가 있을 거야. 적어도 베이스 러닝 관련해서는 문제 만들지 마. 그러면 명분도, 실리도 다 잃게 될 거야. 준, 자네한테 하는 말이야. 절대 주먹질은 안 돼.”
“……”
“준.”
“휴,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도준우에게서 대답을 받아낸 수석코치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짧은 사이 10년은 늙은 기분이다.
퇴장당한 감독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
야구는 보수적이다. 그 중에서도 메이저리그는 특히나 보수적이다. 2028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ABS 시스템 도입을 거부하고 있고, 배트플립을 한 타자에게는 여지없이 빈볼이 날아온다.
보수적인 건 선수들과 팬들 뿐만이 아니다. 비교적 나이대가 젊은 KBO 심판들과 달리 메이저리그에는 나이 많고 고집 센 심판들이 많다.
그들의 문제점은 새로운 시스템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방금 상황이 그렇다. 루상에서 주자와 야수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 시행되고, 사무국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새 규정을 적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일부 고집 센 심판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방금 전 타일러 개자식이 내민 무릎 옆으로 작은 공간이 있었다는 이유로 주루방해가 아닌 아웃을 선언한 심판처럼 말이다.
“플레이!”
지난 시즌의 부진을 극복하고 올 시즌 팀의 리드오프로서 완벽한 활약을 해주던 바비다. 그런 녀석의 손가락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설사 골절이 아니라 해도 꽤 긴 치료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운동선수는 로봇이 아니다. 고장 난 곳을 고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어쩌면 이번 부상이 바비의 선수 인생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슬럼프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젠장, 너희 애송이는 괜찮아?”
“이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대 고의는 아니었어. 심판이 말했잖아, 베이스 터치를 할 공간이 남아 있었다고. 그러니까 그건 그냥 사고일…”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
“뭐?”
“너희 빌어먹을 자식들은 그게 그냥 사고라고 생각한다는 거잖아?”
“이봐, 말조심해. 카일을 봐서라도 한 번 참을 테니, 앞으…”
“닥쳐, 이 개자식아. 내 앞에서 커리어를 들먹이지 마. 이런 플레이를 당연하게 하는 놈들의 커리어가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입 닥치고 야구나 해.”
“……”
포수 놈의 입을 닫게 만들고 투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 사고는 내 머릿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내 현역 은퇴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던, 백업 선수로나마 어떻게든 버티려 했던 나를 그라운드에서 쫓아냈던 손가락 부상,
바비의 부상은 내가 당했던 그 사건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바비가 손을 잡고 뒹구는 모습에 내 손가락이 찌릿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육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옛 부상의 기억이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다.
팀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모두 동업자다. 시비가 붙어 주먹질을 하는 건 논외로 치더라도, 적어도 일상적인 경기 내에서는 절대 상대를 다치게 할 위험한 플레이를 해서는 안 된다. 야구배트와 가죽공, 스파이크가 판치는 그라운드에서 마음 놓고 플레이할 수 있는 건 그런 믿음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일러 저 개자식은 그런 믿음을 깨버렸다.
파앙
“볼.”
“스트라이크 하나 못 던지는 겁쟁이 놈들.”
“누가 스트라이크를 못… 하아…”
차라리 빈볼이 낫다. 피할 수라도 있으니까. 하지만 타일러 저 개자식이 한 플레이는 주자로서는 전혀 손쓸 방법도 없는 그런 더러운 짓이다. 주자가 몸을 던지는 라인에 무릎을 밀어 넣는 짓 말이다.
파앙
“볼, 베이스 온 볼스.”
볼 네 개가 연속으로 날아왔다. 배트를 휙 집어던지고 1루를 향해 걸어 나갔다. 포수가 뭐라 말을 하려 하는 듯 했지만 그냥 무시해버렸다.
1루 베이스를 밟고 2루 쪽을 바라보았다. 타일러 놈이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거지? 그 짓을 해놓고 적반하장으로?
“하…”
오경식 놈 이후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분노다.
내가 한숨을 뱉자 1루수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지만 이놈과는 딱히 볼 일이 없다. 내가 볼 일이 있는 건 저기 저 놈이다.
스륵
베이스에서 발을 떼고 리드 폭을 잡았다. 기다렸다는 듯 견제구가 날아왔다.
“세이프!”
도루는 결국 타이밍과 집중력 싸움이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면 감각 대 감각의 싸움이다. 누가 더 예민하고 날카로운 눈을 가졌나 하는 싸움.
베이스 위에서 투수의 움직임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다음 동작을 유추할 수 있다. 투수의 고갯짓, 팔과 다리의 방향, 유니폼 밖으로 드러난 근육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법을 알게 되면 보다 쉽게 도루를 시도할 수 있다.
탓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뭐야! 또 뛴다고?”
“2루! 2루!”
바로 앞 타자가 2루 도루를 하다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내가 바로 뛸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지 휴스턴 내야진이 크게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2루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베이스 쪽에 가깝게 붙어 있던 타일러 놈이 베이스 커버를 들어오더니 송구 방향을 향해 글러브를 내밀었다. 아직까지 놈은 베이스 앞을 막지 않고 있다.
타다닷
포수의 송구가 2루를 향해 날아오고 나 역시 베이스에 거의 도착한 상황,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하려는 순간 타일러 개자식이 상체를 숙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래서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다. 놈이 또 비겁한 짓을 시전했다. 바비를 부상시켰던 무릎이 내 눈 앞으로 다가왔다.
그 와중에 과연 골드글러브 수상자다웠다. 무릎 옆으로 손 하나 들어가기 힘든 아주 작은 공간이 열려 있었다. 주루방해를 피하기 위한 개수작이었다.
하지만 난 저런 공간에 손을 구겨 넣을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다.
쭉 뻗었던 오른 팔을 반으로 접어 머리를 보호했다. 팔꿈치를 앞으로 내민 상태로 놈이 내민 무릎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뻐억
“어엌!”
“뭐야!”
타일러 놈이 무릎을 움켜잡고 그라운드를 굴렀다. 글러브에서 빠진 공이 쓰러진 놈의 옆으로 툭 떨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2루 베이스에 발을 얹으며 말했다.
“판정은요?”
“…세이프!”
심판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두 팔을 좌우로 벌렸다.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지고, 벌떡 뛰어나온 휴스턴 감독이 항의했다. 그 즉시 우리 수석코치도 걸어 나와 마주 고함을 질렀다.
“이런 미친! 반칙이잖아!”
“무슨 반칙? 베이스로 가는 길이 막혀서 다칠까봐 머리를 감싼 것뿐인데 반칙이라고? 어디에 그런 규정이 있는데?”
“……”
“덤프트럭이 다니는 길목에 지가 먼저 뛰어들어놓고 다쳤다고 하소연하는 꼴이군.”
“뭐? 개자식, 지금 말 다했어?”
“다했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역시 빅리그다.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KBO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다양한 욕설이 상대를 향해 쏟아졌다. 그 사이 들것이 들어와 타일러 놈을 싣고 나갔다.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앞을 가로막는 게 있으면 부수는 게 답이라는 걸.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휴스턴 애스트로스 간의 인터리그 1차전에서 발생한 두 건의 충돌, 자이언츠 외야수 바비 와그너, 애스트로스 내야수 타일러 아담스 부상으로 경기 중 교체>
<베이스 라인을 막은 타일러의 무릎, 그 무릎에 부상당한 바비 와그너, 그리고 또다시 도준우를 향해 내민 무릎, 하지만 다친 건 도준우가 아닌 타일러>
<경기를 지켜본 메이저리그 관계자들 “두 번 모두 명백한 주루방해였다. 손이 들어갈 틈이 있었다고? 그 말을 한 주심에게 직접 한 번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메이저리그 사무국 “베이스에서의 충돌방지를 위한 보다 명확하고 효과적인 규정을 마련하겠다. 또한 오늘 경기 2루심은 당분간 경기에서 배제할 것”>
<자이언츠의 리드오프 바비 와그너, 손가락 부상으로 DL명단에 올라, 마이크 스캇 단장 “다행이 큰 부상은 아니다. 일단 1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린 후 상황을 봐야할 것 같다. 선수생명을 위협하는 악질적인 플레이는 그라운드에서 사라져야 한다”>
<비매너 플레이로 상대 선수를 다치게 한 애스트로스 유격수 타일러 아담스, 도준우와 충돌 후 곧바로 병원행,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 유력>
└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무릎하고 팔꿈치 쪽이 부딪혔는데 전방십자인대가 나갔다는 거지?
└ 정답
└ 빌어먹을, 예전에도 느꼈지만 자이언츠의 저 루키는 인간이 아니야. 저놈이 시범경기 때 다저스 애들을 두들겨 팰 때부터 알아봤다고
└ 전문가들이 누누이 말했지. 도준우와 충돌할 일은 삼가라고, 그런 위험한 놈한테 먼저 무릎을 들이 밀었으니 죽고 싶어 환장한 거지
└ 이렇게 되면… 자이언츠는 주전 중견수 겸 리드오프가 빠지고, 애스트로스는 주전 유격수가 빠지게 된 건가?
└ 기껏 잘나간다 싶더니 자이언츠도 쉽지 않겠군
“흠, 준…”
“보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휴식은 필요 없습니다.”
“젠장, 차라리 타박상이라도 입지. 그러면 하루라도 좀 쉬게…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좋아, 어쨌든 다행이야. 그렇게 큰 소리가 났는데 다친 곳이 하나도 없으니 하느님이 돌보신 거겠지.”
어제 경기 중 퇴장을 당했던 감독이 눈을 꼭 감고 성호를 그었다.
사실 하느님이 아니라 다은이가 돌본 거지만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휴, 자네는 항상 날 놀라게 하는군. 여러모로 말이야. 어쨌든 좋아. 당분간 바비가 자리를 비우게 됐어. 타선이 조금 헐거워지겠지. 그렇다고 해서 선수들을 혹사할 생각은 없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바로 보고해. 무조건, 내 말 이해했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스.”
“…좋아, 나가봐. 난 이제부터 라인업을 어떻게 짜야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으니까.”
감독실을 나와 라커룸으로 돌아왔다.
내 자리로 걸어오는데 뭔가 허전하고 어색하다. 경기 전이면 쉬지 않고 들려오던 바비의 수다, 녀석이 틀어놓은 국적 불명의 음악소리가 없어져서인 것 같다.
“자! 다들 이리 와봐! 오늘은 바비를 위한 경기다. 녀석이 그곳에서라도 마음 편히 야구를 볼 수 있도록…”
로베르토가 비장한 표정으로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음, 그렇게 말하면 왠지 바비가 죽은 것 같잖아.
사실은 그냥 손가락 인대에 타박상을 입고 병원에 누워있을 뿐이다.
주장의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행동에 몇몇 선수들이 동조했다. 시꺼먼 남정네들이 둥글게 손을 잡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뭔가…
흐으음…
“젠장, 다녀왔어. 캡틴, 다녀왔어요.”
“휴스턴 자식들은 뭐래?”
“뭐라긴요, 할 말이 없다고 하죠. 어쨌든 어제 일로 더 이상 감정 상할 일은 만들지 않기로 했어요.”
경기가 시작되기 전 휴스턴 출신인 카일 뱅크스가 상대 라커룸에 다녀왔다. 혹시나 어제 경기로 인해 추가적인 충돌이 발생할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상황은 대충 정리된 것 같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애초에 타일러 그 개자식 말고도 저 팀 내야수들이 그런 식으로 수비를 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니까.
글쎄, 내 앞에서 또 그런 짓을 하면 그게 누구든 망설임없이 무릎을 박살내줄 것이다. 내야수 전원이 시즌 아웃되도 상관없다면 한 번 해보는 것도 좋겠지.
“이봐, 준! 너 표정이 왜 그래?”
“내가? 내가 왜?”
“눈이 희번득한게… 음, 분명 이상했는데.”
“아니, 전혀?”
그렇게 잡담이 오가던 순간, 감독이 들어와 라인업 용지를 붙여놓고 돌아갔다.
1번 중견수 잭 캠프
2번 유격수 도준우
3번 3루수 호세 마르티네스
4번 지명타자 카일 뱅크스
5번 1루수 로베르토 보니야
6번 포수 디에고 마르케스
7번 좌익수 제이슨 오닐
8번 2루수 마리오 러셀
9번 우익수 레비 콜린스
투수 존 에르난데스
이미 각오했지만 바비의 공백이 꽤 커 보인다.
휴스턴과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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